나는 연구과제를 진행하기 전에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첫번째는, 내 논지를 찾는데 목적이 있고, 두번째는 내 논지를 뒷받침할 자료들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자료수집과 검토에 많은 시간을 보내니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완성할 시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다행히 지금껏 마감을 넘겨본 적은 없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한 후에 책상과 그 주변을 살펴보면, 참고한 자료도 많지만 손도 대지 못한 자료들도 꽤나 된다.
소논문이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호기심이 시들해진다. 가끔 독창적인 견해를 담고 있는 자료들을 발견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내용들로 채워진 글들이 많아서 그렇다. 가끔은 정말 시원찮은 글도 읽게 된다. 한 동안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자료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직접 글을 쓰고 싶어진다. 때로는 '내 주장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왜 없지?'라는 착각을 머금고. (사실 독창적인 주장일수록 참고문헌이 없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내 자신이 무던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유독 글을 쓸 때는 독창적인 발상을 추구하게 된다. 나는 기존 연구들의 유익함을 잘 알면서도 그것들을 익히는데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반면, 사소한 발견을 하더라도 개인연구를 진행하는 쪽에 더 끌린다. 한국교육과정을 20년 넘게 이수했는데도, 시험이나 암기를 요구하는 과목에서는 학업에 대한 열정이 끓어 오르지 않는데, 창의성을 요구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몰입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성적도 이런 내 경향성의 영향을 받는다.
가을학기에 진행할 자율연구(independent study)와 전공연구(major paper) 모두 기존 연구와 차별성을 갖고 있다. 자율연구의 주제는 <미가서의 목자 은유>이고, 전공연구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목자 은유 비교>인데, 각각 나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견지할 예정이다. 내 연구계획의 참신성을 인정 받은 덕분에 신약학 전공 학생이 구약학 교수의 지도로 두 편의 소논문을 쓰는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지금은 리처드 B. 헤이스 교수의 <바울 서신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을 읽으며 내 모자란 머리를 탓하고 있고, 미가서 연구를 위해서는 내 독창적 연구를 빛내줄 자료들을 찾고 있다. 문제는 미가서를 내 관점과 동일하게 보거나 최소한 내 주장을 지지해줄 자료들을 발견하지 못해서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논지를 주장할건데 왜 기존 자료에서 우물을 발견하고자 하는거지?
사실 나는 애초에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실행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었다. 내 논지를 뒷받침할 자료들은 성경 본문에 있다. 그런데 나는 직접 본문과 씨름하지 않고 기존 연구들의 덕을 보려고 했다. 본문연구는 매우 유익하지만 그만큼 고되다. 이제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몇 일전부터 미가서 본문을 읽고 있다. 어제부터는 여전히 까마득한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서 단어 하나의 의미를 보고 영역본들과 비교하면서 각 구절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특정 부분에서는 도움 받을 수 있는 자료들이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겁난다. 다른 학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체 오로지 내 관찰을 통해서 내 주장을 뒷받침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기대된다. 이 과정을 극복해내면 내 연구의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나는 당분간 이 둘 사이의 긴장에서 살아야 한다.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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