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어떻게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고대근동과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통념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가?


구약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인들의 고유한 사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고대근동 지역에서 히브리인들처럼 독창적인 사고를 한 민족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인류 문명의 발생지인 앗수르와 이집트 사이에서, 두 문명권과는 엄연하게 차별되는 독자적인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념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발언들을 서슴치 않았던 이들이 바로 선지자들이다.


선지자들은 어떻게 독특한 신학을 형성할 수 있었는가? 난 그 과정에 대한 의문이 있다. 특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 시온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떻게 기존의 신학을 전복하는 새로운 시온주의를 주장할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사실 이 질문은 나의 포로기 신학에 관한 관심과 맞물려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야웨 신앙을 저버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기는 신앙의 붕괴를 가져오기에 충분한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세월을 거쳐 제련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했다. 내 궁금증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짐작컨대 선지자들도 초기에는 자신의 발언과 자신의 신학 사이에 괴리감이 있었을거다.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수령 받아 선포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신학에 반하는 이질감을 수용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존재했을거라고 여겨진다. 만약 선지자들의 선포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면, 선지자들의 발언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정념에 사로잡힌 선지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다. 


선지자들의 희망적인 선포는 대체로 출애굽 사건과 새로운 다윗의 출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역사적 사실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회자되는 출애굽 사건과 다윗 왕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재현가능한 미래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철저한 심판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위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을지 모른다.


다시 내 질문을 떠올려보면, 하나님의 계시 그리고 선지자 내면의 치열한 갈등과 극복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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