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는 딱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과제라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내 필요 때문이다.
칼빈신학교에서는 첫 학기 연구방법론 수업을 제외하고는 서평을 쓰라는 과제가 없었다. 학기 말에 제출할 페이퍼에 필요한 책 한 권을 꼽아서 A4 1장 반 분량으로 정리하는 과제라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 이후로는 서평을 요구받은 적이 없다. 에외적이라고 해야 하나, 작년에 박사 과정 지원을 위해 지도 교수를 찾는 과정에서 교수의 질의에 답하려고 책 한 권을 다 읽고 내 생각을 보낸 적은 있다. 당시 그 교수는 참고하라고만 했지 반영하라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꼼꼼히 읽고 내 생각을 알려주었더니 굉장히 좋아하셨다. 앞으로 지도 교수가 독서 과제를 내줄 텐데, 사실 지금 작업하는 책도 그 일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교수의 평가에 부합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응하기는 해도 자발적으로 할 생각은 별로 없다. 아, 한 가지 명분이 있긴 하다. 박사 과정 학생은 저널에 서평을 기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박사 과정 학생에게 저널 기고가 필수 덕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구 활동 중 서평을 저널에 실어보는 경험은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은 든다.
지금 독서후기라는 명칭으로 완독한 책 중 기억해 둘만 한 책을 짧게 기록해두고 있다. 나를 위한 기록이라지만, 남이 읽을 수 있는 완성형 문장으로 쓰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팟캐스트 전용으로 녹음하고 업로드하는 시간을 합치면 허비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내 연구와 차후 강의를 위한 자료 축적이라는 명분이 아니면 귀차니즘에 빠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서평은 연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그 책을 이해하고 글로 정리하는 노력이면, 차라리 소논문을 쓰는데 집중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연구사나 현재 학계 현황, 관련 연구의 문제점을 제기하기 위해서라도 책 내용 전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지만, 서평 수준까지는 다룰 필요가 없다.
내 생각에 서평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평가자 입장에서 학습자의 이해력을 평가하는 수단이다. 평가자 입장에서 학생이 책을 얼마나 잘 소화했는지 평가하는데 서평만한 게 없다. 책을 대충 훑어보고 쓴 서평과 정말 고민해서 쓴 서평은 다르다. 두 번째는, 저자와 학문적 교류를 위해서다. 사실 학계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학자들은 서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내 주변 교수님들은 영미권 저명한 저널에 자신의 책을 서평한 글이 올라오는지 확인하고, 신규 서평이 올라오면 꼼꼼히 읽고 만족스러우면 은근히 자랑했다. 연구자 입장에서 서평을 통해 수용할 만한 비판은 받아들이고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게 바람직한 선순환으로 보인다.
사실 서평은 전문영역이다. 신학처럼 세분화된 전문 분야일수록 더욱더 그렇다. 저자의 논지를 평가하려면 그의 주장과 근거를 이해하고, 장단점과 차후 보완사항 등을 지적해야 하는데, 내가 볼 때 서평이라는 목적에 걸맞은 수준의 서평을 쓰는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감히 평가하기에 조심스럽지만, 서평자가 그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허다한데 그의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 내용을 단순 반복하는 수준에 약간의 양념을 덧붙이는 정도라면 출판사 소개 글과 내부를 들여다보는 게 더 실용적이다.
현 수준에서 서평은 내 연구에 도움이 안 되고, 서평을 쓸 만큼 역량이 안된다. 이런 이유로 서평은 그다지 유익한 활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평 아닌 서평을 쓰다가 골치 아파서 이 글을 쓰는 건 또 뭐니... 여러 저자가 쓴 글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라 더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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