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영국 유학을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 휴식을 취하며 유학에 관한 유튜브를 제작하였다. 당시에는 내 경험과 주변 정보를 최대한 객관적이면서 현실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주관적일 수 있다고 인정한다. 영국 유학을 통해 내 생각에 변화가 있어서 최신화할 필요가 있지만, 시간 대비 결과물을 고려하면 더는 손대고 싶지 않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튜브를 보고 유학 문의를 하는 이들이 꾸준히 있다. 주변에서 유학 정보를 얻지 못해서 인터넷에서 구한 정보로 나에게 연락하기도 하고, 이미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했으나 현재 유학생의 조언을 참고하려는 이들도 있다.

유학 문의를 위해 개인적으로 공개한 사연들을 읽어보면, 개별적인 상황에 안타까울 때가 적지 않아서 오히려 내 상황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목회학 석사 시절 유학에 관심이 전혀 없었으나, 동기를 비롯한 교수들로부터 유학을 권유받았고, 교수님들 조교를 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은 덕분에 원치 않아도 개인의 유학 시절이나 최신 동향 등에 관한 정보를 들어야 했다. 내가 유학을 결심한 이후로는 때에 맞게 적절한 조언을 받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토플 점수를 위해 어학원을 다닐 때부터 힘들었고, 미국 유학 시절에는 하루 종일 박사 진학을 위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영국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후로는 박사 수준에 맞는 논문 작성을 위해 고전분투하고 있다. 더하여 재정적 어려움이 주는 심리적 압박은 말로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박사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꽤 긴 시간 의무감으로 학업에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흥미와 호기심이 되살아나 이전보다 더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또한 논문 제출 이후 한국에 복귀하면, 그리 먼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에게 적합한 자리가 주어질 거라는 기대도 있다.

조만간 나는 시편 기자와 동일한 고백을 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시편 126편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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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수) 오후 1시 30분에 지도 교수를 만날 예정입니다. 곧 연례 평가(Annual Review)가 있거든요.

다음 주 토요일이나 늦어도 15일(화)까지 초안을 매듭지으려고 합니다. 앞으로 몇몇 본문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지만, 용례 분석을 마친 뒤로 도입부부터 결론까지 글 쓰고 다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지요.

지도 교수에게 면담 이전에 초안을 넘기고, 당일에는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 관해 대화하려고 합니다. 내 주요 관심사 위주로 논점을 명확히 설정하면, 초안이 금방 완성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근래 센앤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바람은 여전하지만, 햇볕 드는 날이 잦아지고 해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산책할 맛도 나고 기분이 덜 가라앉습니다. 언젠가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더딘 듯해도 어느덧 논문이 완성될 날이 다가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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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자-양 유비의 역사"를 통해 목자-양 유비가 목자-왕 사상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증명하고자 한다. 오랫 동안, 이 유비를 다뤄온 입장에서는 굳이 증명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낯설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목자-왕 전승을 설명하려면, 목자-양 유비의 용례를 분석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스가랴서 14장은 껄끄럽다. 목양 어휘군이 사용되지 않아서 목자-양 유비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목자와 왕을 동일시하는 관점에서는 왕권 개념으로 목자-왕 전승에 포함할 수 있는 본문이기 때문이다. 

"목자-양 유비의 역사"는 목자-왕 사상을 증명하는 단계이므로, 스가랴서 14장을 범위에서 제외하고,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 연구에서 선한 목자가 왕권 사상이라는 주장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는 선행 작업으로 지금 해둬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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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이성적 존재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감정의 동물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있다면, 이성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이성적 존재라 주장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플라톤과 플루타르코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이성을 통한 절제된 삶을 향유하는 인간을 이상화한다. 열정은 이성을 마비시켜 불법을 저지르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그 열정이 이성을 북돋아서 이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플라톤의 유산은 개인의 윤리, 그리고 정치가의 덕목에 집중한다. 내가 현실에서 낙심하는 이유는 플라톤 철학에서 경계했던 현상이 지금 만연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내 연구에서 플라톤에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지만, 현 상황은 내 바람과 반대로 가야 할 명분을 주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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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학 전공자로서 지금까지는 유대 문헌의 영향이 그리스-로마 문헌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내 박사 학위 논문에 한정해도,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은 로마 압제라는 상황 속에서도 유대 전통의 영향이 더 크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전체에 미친 영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성경 본문 이해를 위해서는 유대 문헌에 더 열중해야 하지만, 그리스-로마 문헌이 주는 유익이 있다.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분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눠서 표현하자면, 유대 문헌은 성경 이해에 유익을 주고, 그리스-로마 문헌은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를 준다.

내 박사 학위 논문이 유대 문헌과 그리스-로마 문헌을 다룬다는 강점을 가진 덕분에 학위 취득 이후에도 두 분야 모두 교수할 가능성이 높다. 내 선호와 상관없이 학교와 학생, 또는 학계의 요구가 예상된다.

학생 입장에서는 나와 공부하고 싶다면, 유대 문헌이든 그리스-로마 문헌이든 선택지가 높아지겠으나, 그것이 과연 학업 만족도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 학습 요구량이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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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The History of Shepherd-Sheep Analogy 원문 분석을 끝냈다. 지금은 선행 연구를 찾고 분석하며 내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 어디 하나 쉬운 본문이 없으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저작은 플라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쿰란문서이다. 저마다 독특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용례라서 분석이 정말 쉽지 않았다.

앞으로 2~3주 정도 선행 연구로 원고를 보완하고 초안을 지도 교수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을 진행하려고 한다. 

현 원고를 20개월가량 붙들고 있었는데 조만간 잠시라도 떨쳐 낼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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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학 석사 학위 논문부터 줄곧 논문작성법에 신중히 처리하고 있지만, 박사 과정에 와서 정통하지 못하고 여전히 헤매고 있다. 가장 낯설었던 건 쿰란문서와 그리스-로마 문헌 표기법이다.

쿰란문서는 문서 발견과 연구 결과에 따라 문서 이름과 배열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며칠 동안 쿰란문서 본문 분석을 하고 있는데, 연구서에 따라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로마 문헌의 경우 라틴어 제목과 영어 제목에 따라 축약이 다르다. 많은 작품이 대체로 통일된 축약법을 따르지만, 여전히 제각각 사용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내 경우 웨신과 칼빈 시절 이와 관련하여 배운 적이 없다. 웨신 시절에는 기독교 교육 전공자로부터, 칼빈 시절에는 조직신학 전공자에게 논문작성법을 배운 탓이다. 성서학 전공자에게 배웠더라도 석사 과정생에게는 이르다고 판단했을까? 현 센앤에서는 코스웍이 없어서 논문작성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한국 박사과정에는 코스웍이 있으니 논문작성법 시간에 쿰란문서와 그리스-로마 문헌 표기법을 가르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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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원고 재심사 결과가 공지되었다.

익명 심사자는 자기 관심사는 성, 불임과 장애(gender, infertility and disability)이며 그와 관련된 수정을 요청했으나, 내 수정은 그 견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참조된 이메일로 검색해 보니 익명 심사자는 여성이다...

내 원고 제목 "The Identity of the Feast in 1 Samuel and Jubilees: The Feast of Tabernacles as a Prayer for Birth or as a Celebration of Birth"에 나타나 있듯이, 내 주요 관심사는 절기의 정체이고, 그 절기가 초막절인가를 묻는다. 또한 출산과 연관성을 따진다.

심사자는 마지막 문단에 "but I am very much open to the possibility that I am being too critical. 제가 너무 비판적일 가능성에 매우 열려 있습니다."라고 남겼다. 내 관점에서 익명 심사자는 여성이라는 자기 성적 정체성에 기반한 자기 관심사를 나에게 강요한다고 생각된다.

결론은 저널 담당자가 추가 수정을 해서 올 1호는 아니지만, 2호 혹은 3호에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나로서는 저널 게재는 뒷순위이고, 논문 완성이 최우선 순위이다. 지도 교수도 학회 발표나 저널 게재와 같은 활동을 요구하지 않으며, 논문 제출에 집중하고 있다.

사무엘상 본문은 내 논문에서 제외될 본문으로 이리저리 내 시간을 갈아 먹고 있다. JSP 투고로 만회하려고 했으나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일단 논문 작업에 집중하고 여유 시간에 짬짬이 저널 원고 수정을 해야겠다. 저널 담당자가 게재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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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신약부 세미나에서 발표할 “The Shepherd-Sheep Analogy of Plato and Philo” 원고를 완성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의 일부를 공개하여 피드백을 받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또한 신약학 세미나 발표는 관행상 박사 과정생의 졸업 전 특전이라고 생각하기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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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 + 169

끄적 2025. 3. 10. 22:40

오늘 출근길에 불현듯 생각나기를 6개월 후면 내가 이곳에 없겠구나 싶다. 가능하면 구술시험과 수정 작업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고 싶지만, 현실은 9월 중순쯤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distance learning으로 시작하여 part time에서 full time으로 전환한 탓에 프로그램으로는 4년 차이지만, 실제로 학업을 지속한 시간은 5년이다. 어쩔 수 없는 외부 상황 탓이긴 하지만, 애초에 2년 6개월에서 3년을 계산한 나로서는 너무나 긴 지연이다.

사무실에서 일수를 계산해 보니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 1,595일이고, 학위 논문 제출까지 169일 남았다. 의욕보다는 더딘 진행이지만, 꾸역꾸역 한발씩 나아가고 있고, 큰 변수가 없다면 논문제출일 이전에 제출이 가능한 일정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덧 한국행 비행기를 탈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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