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사무엘 프리도 트레젤레스(Samuel Prideaux Tregelles)의 An Account Of The Printed Text Of The Greek New Testament; With Remarks On Its Revision Upon Critical Principles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곳이 있어서 적어봅니다.


다운로드 링크
http://www.archive.org/download/anaccountofthepr00treguoft/anaccountofthepr00treguof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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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장동수 교수의 글로 <성경원문연구> 제 7호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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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에 대한 정보와 그가 쓴 들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http://www.united.edu/directory/boomershine.shtml
http://www.tomboomershine.org/pages/writing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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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의 개념에 대해 슬로미스 림몸-케난(Shlomith Rimmon-Kenan)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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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신학연구원 "리브가와 이삭의 결혼 이야기: 창세기 24장의 주인공은 누굴까?"


리브가와 이삭의 결혼 이야기: 창세기 24장의 주인공은 누굴까? [각주:1]

유연희


I. 머릿말

창세기 24장은 67절이 들어 있어서 창세기에서 가장 긴 장이면서 일관된 줄거리가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흔히 이삭의 결혼,[각주:2] 이삭과 리브가,[각주:3] 아브라함의 종의 단편(novella)[각주:4] 등의 제목이 붙는다.[각주:5] 우리의 관심은 주인공을 찾는 일이다. 이 결혼 이야기는 자주 무대가 바뀌고 긴 반복이 들어 있다. 등장인물도 사건 전개에 따라 바뀌고 굵직한 이름의 등장인물이 많아서 이 24장에서 주인공을 정하기란 얼핏보기에 용의자가 많은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처럼 복잡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존 밴 시터스(John Van Seters)는 24장에는 계속 주의집중을 받는 인물이 도무지 없다고 지적한다.[각주:6]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오는 순서로 열거하자면,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종, 리브가,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 이름 없는 어머니, 오빠 라반, 이삭 등이 능동적인 역할을 맡고, 그 밖에 종의 일행과 리브가의 시녀들 등 무대배경을 만드는 인물들도 있다. 전통적으로는 주인공을 아브라함, 종, 이삭 등이라고 보았다. 우리의 글은 이 전통적인 관점에 도전하며 리브가가 주인공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을 밝혀내는 일은 이야기가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의미와 목적을 담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올바른 대답을 찾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주인공을 밝히면서 24장의 기능과 목적을 파악하고자 한다. 리브가가 24장의 주인공임을 밝히는 일은 족장설화 안에서 창 22:20-24의 탄생보고부터 시작해서 창세기 27장에서 리브가가 하나님께서 정한 상속자 야곱에게 복을 전달해주기까지 이르는 전체 리브가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방법론으로 수사학(문학)비평을 적용하고, 정독(close reading, 자세히 읽기)을 통해 인물묘사를 분석하고 문학기법을 살피고자 한다. 관점으로는 여성의 시각을 써서 24장을 읽으려고 한다. 이 수사학비평과 여성의 시각을 결합하여 읽는 이 작업은 우리에게 24장을 새롭게 읽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II. 구성과 줄거리

  창세기 24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면  아브라함과 종의 대화: 과제 도입 (1-9절)
        둘째 장면  과제의 해결과 절정 (10-61절)
                일화 1: 우물가에서 종과 리브가의 만남 (10-27절)
                일화 2: 종과 리브가의 가족과의 만남 (28-61절)
        셋째 장면  대단원: 리브가와 이삭의 만남 (62-67절)

이 67절의 긴 이야기를 한 막(act)이라고 볼 때 여기에는 크게 세 장(scene)이 들어 있다. 첫째 장면은 서론이자 이야기가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아브라함은 충직한 종을 불러 중요한 과제를 맡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고향 땅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아들 이삭을 위해 신부감을 찾아오는 일이다. 이 과제의 중요성은 종에게 맹세시키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놓고 맹세하라고 종에게 요구한다.[각주:7] 종은 맹세하기 전에, 신부감을 찾았어도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와서 이삭을 그리로 데려가야 할 것인지를 묻는다. 아브라함은 펄쩍 뛰면서 이삭은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신부감이 오고 싶어 하지 않으면 종이 맹세에서 풀려난다고 말해 준다. 이처럼  첫째 장면은 과제를 도입하면서도 동시에 신부감이 오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여 이야기에 긴장을 조성한다. 그리고 신부감은 나름의 견해와 의지가 있는 여자일 것이라고 암시한다.
둘째 장면은 이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종은 아브라함의 고향 땅, 우물가에 도착한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저녁 시간에 물을 길러 나오는 아가씨들 중 한 사람에게 물을 달라고 할 것인데 종에게 물도 주고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면 바로 그 아가씨가 신부감인줄 알겠다고 한다. 이것은 비교적 간단한 시험이고, 마침 물을 길으러 나오는 아가씨도 리브가 한 사람 뿐이다. 우물가에서 종과 낙타에게 물을 날라주며 친절을 베푸는 리브가의 모습은 24장의 백미이다. 게다가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조카 손녀가 아닌가. 종은 리브가의 집에서 묵게 되고 가족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아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가족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리브가를 집에 더 머물게 하려고 한다. 가족은 결국 최후 결정을 리브가가 내리게 한다. 리브가가 가겠다고 하여 사건이 순조롭게 마무리된다.
셋째 장면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신부감 리브가가 가나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삭과 만나 결혼하는 장면이다. 이 장은 첫째 장면이 설정한 이야기의 과제와 목표를 달성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셋째 장면은 첫째 장면과 수미쌍관(inclusio)을 이루고, 둘째 장면을 에워싼다.

III. 등장인물의 수사학적 분석

적어도 일곱 명이 이야기 속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맡는데 그들은 아브라함, 종, 리브가, 라반, 어머니, 브두엘, 이삭 등이다. 쉬몬 바에프라트(Shimon Bar-Efrat)는 인물 묘사의 네 요소로서, 외모(outward appearance), 성품(inner personality), 대사(speech), 행동(action)을 든다.[각주:8] 이 기준은 24장에서 누가 충분히 발달된 인물인가를 판별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된다.  
한 이야기에서 한 명 이상의 주인공이 등장할 수 있고 때로는 여러 인물이 똑같이 주의집중을 받을 수도 있다. 헤르만 궁켈(Herman Gunkel)이 24장의 주인공으로 종과 리브가라고 볼만큼[각주:9] 종이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바에프라트는 일차적인 주인공과 부차적인 주인공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 항상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고 지적한다.[각주:10] 그러나 주변 이야기와 관련해서 24장의 의미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과 리브가 중 누가 정말 주인공인가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
바에프라트의 인물묘사의 네 가지 기준 말고도 주인공을 결정하는데 다음과 같은 기준을 보탤 수 있다. 그 인물이 어떠한 역할을 맡는가, 주변 이야기에서도 등장하며, 중요한 역할을 맡는가, 이야기꾼이 그 인물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등이다.
일곱 명의 주요 인물 중 먼저 아브라함, 브두엘, 리브가의 어머니, 라반, 이삭에 대해서 다루고, 그런 다음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종과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보는 리브가에 대해 다루기로 한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이야기의 첫 단계에서만 등장한다. 충직한 종에게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오라고 함으로써 아브라함은 이야기의 과제와 목표를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종을 파송한 이후에 그는 24장에서 재등장하지 않는다. 1-9절에서는 그토록 중요한 일인양 종에게 맹세를 시키는데,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돌아오는 종을 기다려야 할 장면에 아브라함은 없다.[각주:11] 대신 그 자리에 이제 최종적으로 족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성년의 이삭이 기다리고 있다. 아브라함은 조상설화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적어도 이 리브가와 이삭의 결혼이야기에서는 부차적인 인물이다. 아브라함 설화라는 관점에서 읽는다면 24장은 아브라함의 최후 시기에 속한다.

아버지 브두엘

브두엘은 리브가의 탄생 보고(22:20-24)에서 잠깐 리브가와 함께 언급된다. 이 단편족보에서 브두엘은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조카 손녀라는 것, 즉 브두엘이 아브라함의 형 나홀의 아들이고 리브가는 그의 딸이라는 것을 연결해주기 위해 등장한다. 그는 리브가가 종에게 우물가에서 할아버지(나홀), 할머니(밀가), 아버지(브두엘)를 들어 자신의 가계를 잠깐 소개할 때 또 언급된다(24, 47절). 그리고 브두엘 자신이 실제 등장한 것은 딱 한 번인데, 중매장이로서 종이 혼인을 제안할 때 아들 라반과 함께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50절). 22장의 족보에서와 같이 브두엘은 여기서도 22장과 24장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브두엘은 신부의 아버지이면서도 아들 라반 뒤에 이름이 나오고(50절), 종이 가족에게 선물을 주는 장면에서 제외되고, 다시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나머지 리브가 이야기(25-27장)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각주:12]

어머니

리브가의 어머니는 무명으로 나오지만 남편보다 더 능동적인 역할을 맡는다. 우물가에서 종을 만난 일을 보고하기 위해 리브가가 “어머니의 집(המא תיב)”[각주:13]으로 뛰어갔다는 표현에서(28절) 이 어머니가 어느 정도 권한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남편 브두엘이 다시 언급되지 않는 즈음부터 아들 라반과 함께 리브가의 결혼 문제에 적극 관여한다. 어머니는 라반과 나란히 종에게서 선물을 받고(53절), 리브가를 집에 더 머무르게 하고 싶다고 종에게 말하고(55절), 리브가의 의견을 묻자고 제안하고(58절), 리브가가 떠날 때 복을 빌어 준다(59-60절). 리브가의 어머니는 나중에 언급되는 이삭의 어머니 사라와(67절) 균형을 이루고, 24장에서 여성 이미지를 고조시킨다.

오빠 라반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족보(창 22:20-24)에 리브가의 탄생은 나왔는데 라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라반은 리브가 다음에 태어난 동생일까? 라반은 여기 24장에 처음 나오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는 우물가로 뛰어가 종을 환영하고(29-31절), 종에게서 선물을 받으며(53 하반절), 아버지 브두엘과 더불어 리브가의 결혼에 대해 일차 결정을 내리고(50-51절), 어머니와 함께 계속해서 이 결혼 문제에 관여하고(55-58절), 리브가가 떠날 때 복을 빌어 준다(59-60절).
그러나 라반이 능동적인 역할을 맡지만 인물묘사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가 종을 환대한 이유는 리브가가 종에게서 받은 보석 때문인 듯하다. 29절은 라반이 우물가의 노인에게로 급히 달려갔다고 하고, 31절에서 노인을 만난다. 그 사이에 있는 30절(“동생이 코걸이와 팔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은 라반이 달려오면서 방금 리브가에게서 보고 들은 바를 생각하는 것을 묘사한다. 31절에서 “낙타와 함께 있는”[각주:14] 노인이라는 표현도 물질에 관심이 보이는 라반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라반이 물질에 관심을 보이는 주제는 창세기 28장 이후 야곱-라반 이야기에서 충분히 발달된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24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때 31절에서 라반이 종을 환영한 것은 그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환대는 숙박에만 제한되어, 숙박과 식사 둘 다를 명시한 리브가와(25절) 대조가 된다. 보통 학자들이 생각하듯 32절과 33절의 주어가 라반이라면[각주:15] 그의 환대는 극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주어를 다음 절의 주어로 취하는 히브리어 구문 상 멀리 떨어져 있는 라반을 주어로 볼 수 없다. “그 남자는 집에 왔다. 그리고 낙타들의 짐을 내렸고 낙타들에게 짚과 여물을 주었고 그의 발과 그와 함께 있던 남자들의[각주:16] 발을 씻을 물을 주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 남자는 다름아닌 노인이다. 즉 낙타의 짐을 내리고 낙타에게 먹이를 주고 일행에게 발씻을 물을 준 모든 행동은 라반이 한 것이 아니라 노인이 스스로 한 것이 된다.
  이 24장에서 라반이 출현하여 능동적인 역할을 맡은 이유는 E. A. 스파이저(Speiser)가 제안하듯이 아버지 사후에 오빠가 누이의 혼사에 권한을 가져서가 아니라,[각주:17]리브가가 27장에서 에서의 복수를 막고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 보낼 곳으로서, 또 28장 이후 야곱-라반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미리 라반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삭

24장은 아케다(Aqedah, 창 22) 사건에서 죽을 고비를 벗어난 이삭이 성인이 된 후 처음  등장하여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24장은 이삭과 리브가를 차세대의 족장과 여족장으로 공식적으로 지명하는 장이다. 이것은 종이 이삭을 가리켜 “나의 주인입니다”라고 소개했을 때(65절) 분명해진다. 이삭은 신랑으로서 결혼하는 장면인 제 3장(62-67절)에서야 리브가와 함께 무대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삭은 본인의 아내감을 찾는 과정에서 줄곧 제외된다. 무슨 뜻일까? 그는 신부를 찾는 과정이 끝난 후에야 무대에 등장한다. 게다가 그의 행동을 처음 묘사하는 63절은 리브가를 못알아보던 그의 나쁜 시력은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서 문학적 상징이 된다.[각주:18] 이 두 가지 사실은 이삭이 장차 어떠한 족장이 될 것인지, 특히 좀 더 좋은 시력을 가진(64절 참조) 그의 아내 리브가와의 관계에서 어떤 남편 및 족장 역할을 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삭은 결혼하는 장면에서도 그다지 독립적인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마지막 절은 이삭이 리브가를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어머니 다음에” 리브가에게서 위로를 받는다(67절)고 한다. 학자들과 성서 역본들은 “어머니 다음에”라는 구절을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라고 해석하지만[각주:19] 성서는 그냥 “어머니 다음에”라고만 할 뿐이다. 이삭은 어머니에서 아내로, 보호받고 위로받을 여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실제로 어머니 사라는 이삭의 상속권을 보호하기 위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쫒아냈다. 아내 리브가는 하나님이 정한 상속자(야곱)가 제대로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상속자를 보호하기 위해 친정으로 보낼 것이다(27:42-45). 이런 관점에서, 24장을 “이삭의 결혼”이라고 제목 붙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67절 중에서 불과 다섯 절에만 등장하는 사람을 주인공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종

학자들은 아브라함의 종을 그 어느 인물보다도 더 자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지목하였다.[각주:20] 볼프강 로쓰(Wolfgang M. W. Roth)는 전승사비평을 적용하여, 24장의 주요 주제는 헌신적이고 신중하고 인내심있는 하인을 보여주는 본보기 이야기인데, 이스라엘의 왕국시대에 궁정 관리들을 교육하고 감독하는데 쓰였다고 보았다.[각주:21] 리베 튜글스(Lieve Teugels)는 종의 역할이 매개자에 불과하지만 그가 24장의 주인공이라고 본다. 그의 대사가 드러내듯이 그는 매우 영리하고여 아브라함을 대신할 만하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대표한다면, 종은 하나님의 가호와 도우심을 대표한다.[각주:22]
인물묘사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종은 바에프라트가 말한 네 요소 - 외모, 성품, 대사, 행동 -가 고루 발달되어 있다. 24장에서 가장 빈번히 출현하고 대사도 가장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종이다. 종은 “그[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보고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2절)이라고 묘사된다. 아브라함의 소유를 맡아 본다는 말은 종이 믿을만하고 유능하다는 것이고 나이가 많다는 것은 외모를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신중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인물 묘사는 그가 주인 아들의 신부감을 찾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은 전권을 가지고 신부감을 찾는다. 주인이 정하지도 않은 신부감의 조건을 나름대로 정하기도 한다(13-14절).  
종은 영리한 정략가(shrewd)하기도 하다. 종이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난 후 리브가야말로 하나님이 정하신 이삭의 신부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리브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묵게 된다. 그는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에게 그 댁에 온 이유를 16개 절에 걸쳐 설명한다(종에게 말해보라고 권하는 사람은 라반밖에 없는데, 종이 보고를 마치자 브두엘과 라반 두 사람이 대답한다.).
그의 설명은 이제까지의 일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결혼 허락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종은 아브라함의 말을 인용하면서 “내 친족이 딸을 주기를 거절하면 나에게 한 이 맹세에서 너는 풀려난다. 그렇다. 정말로 네가 나에게 한 이 맹세에서 네가 풀려난다”(41절, 표준새번역)고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사실 아브라함은 신부감의 가족이 아니라 신부감이 거절하면 종이 맹세에서 풀려난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실을 살짝 바꿈으로써 종은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에게 부담을 주고 결혼 승낙을 내리도록 은근히 압력을 가한다.
종의 역할과 인물묘사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종이 24장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종이 이야기 내내 철저히 이름 없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이 종이 창세기 15장에 나오는(2-3절) 엘리에셀이라고도 보았다.[각주:23] 아브라함의 하인들 중에서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는 유일한 사람일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꾼이 종을 익명으로 둔 것은 의도적이다. 성서의 이야기꾼들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평가하는 한 수단으로서 익명성을 쓴다. 즉, 이름이 없는 인물은 미미한 인물이다. 예를 들어,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룻기에서 나오미의 이름없는 친척의 경우에, 그의 익명성에 부정적인 문학적 평가가 따른다고 지적한다.[각주:24]
그는 고인의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고 하기에 이름이 없고, 등장했을 때처럼 곧 이름없이 무대에서 사라진다. 메이어 스턴벅(Meir Sternberg)에 의하면, 익명성은 “구성에 필요한 단역과 뻔한 인물과 관례적 인물의 몫이자 표식이다 …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에 간 아브라함의 종조차 자기 나름의 생명이 없이, 이름 없이 나오게 하고, 얼굴 없게 만든다.”[각주:25]
둘째로, 종은 이 결혼이야기에서 결혼의 주체인 신랑이 아니고 신부감을 찾는 임무를 띤 중매장이일 뿐이다. 리브가와 이삭이 만나는 이야기의 절정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종은 부차적인 인물로 밀려나고 아주 사라진다. 또한 리브가의 어머니와 오빠가 리브가를 금방 떠날 수 없게 막는 바람에 긴장이 가장 고조되었는데, 이 때 종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리브가였고 리브가가 종의 임무를 성공하게 만들어준 셈이었다.
셋째로 종이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서 그가 24장 말고는 주변 이야기 중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전체 리브가 이야기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전개되며 24장은 그 일부라고 볼 때, 종이 단역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우리는 이 종의 인물묘사가 이삭의 인물묘사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야기꾼은 종을 활용하여 이삭을 의도적으로 낮추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종은 24장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신부감을 찾아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렇지만 그는 이 중요한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하기는 해도, 독자의 주의를 받지 않아야 한다. 즉 그의 역할은 이삭의 수동성을 강조하지만 본인이 무대의 중심 조명을 받아서는 안 된다.

리브가

탄생 보고(22:20-24, 특히 23절)를 통해 리브가는 이미 독자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이 탄생 보고에서 리브가라는 이름은 아케다 사건에서 살아남은 이삭을 위해 새로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곧이어 사라의 죽음(창 23) 이야기는 “죽음”과 “무덤”과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 찼다. 그만큼 사라의 부재를 강조했으며 독자로 하여금 새 여족장의 도래를 기대하게 했다.
이런 배경으로부터 이야기꾼은 24장에서 리브가의 정식 등장을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리브가의 인물묘사는 외모, 성품, 대사, 행동의 모든 측면에서 고루 발달되어 있다. 리브가는 아름다웠는데, 모든 것을 아는(omniscient) 이야기꾼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리브가가 “남자를 알지 못했다”(16절)는 정보를 흘린다. 이 두 요소가 이야기꾼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부”의 조건이었음을 엿보게 한다.
리브가의 친절한 마음씨는 우물가에서 나그네와 동물(낙타)을 부지런히 대접할 때 잘 드러난다. 리브가의 성품 묘사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리브가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데 힘을 행사한 때이다(58절). 리브가의 대사는 직선적이고 (18, 19, 25, 58절), 행동은 재빠르고 신속하다(18, 20, 28, 46절). 독자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리브가가 새 여족장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독자는 리브가를 저절로 다른 여족장들의 인물묘사와 비교하게 된다. 그 어느 여족장도 인물묘사에서 리브가와 같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사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보다 말하고 등장하는 빈도수가 적다. 리브가는 이야기의 삼분지 일을 차지하지만 종은 결혼식 장면을 제외하고는 내내 무대에 서 있다. 그러나 등장 횟수와 대사의 양으로만 주인공을 결정할 수는 없다. 아브라함이 종에게 임무를 내릴 때 리브가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리브가는 찾아야 할 신부감이었기 때문이다. 밴 시터스는 종이 리브가의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때 (28-57절) “리브가는 하는 일이 없다”고 하는데[각주:26]이것은 타당한 관찰이 아니다. 종이 반복해서 설명할 때 리브가의 행동 역시 반복되어 나오기 때문에 리브가가 전혀 부재한 것은 아니다.
리브가는 단지 이삭의 아내가 될 새 여족장이 아닌 아주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될 여족장이기 때문에 결혼 이야기에서 리브가를 매우 인상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주변의 이야기들은 리브가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여족장(창 22:20-24; 24)이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신탁을 받았고 사명을 깨달은 이(창 25:19-34),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지정하신 상속자를 보호하는 이(창 27)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삭이 아닌 리브가에게만 하나님의 계획을 밝히신다(창 25:23). 하나님은 왜 이삭에게 이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실까? 리브가는 하나님의 신탁을 끝까지 혼자만 간직하고 기회가 왔을 때 실행에 옮긴다(27장). 이삭은 왜 이 중요한 일을 죽을 때까지 몰라야 하며 리브가는 왜 혼자서 처리할까? 성서는 우리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줄곧 한 가지 주제를 말한다. 리브가가 족장설화의 주제인 땅과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에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독자에게 리브가의 탄생부터 알리기 시작했다. 이삭 전승이 아브라함과 야곱의 전승에 비해 미미한 것도 다 리브가의 활약 때문이다.

IV. 리브가의 인물묘사

창세기 24장의 이야기꾼은 리브가의 인물묘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식으로 여족장 데뷔를 하는 이 장면은 나머지 리브가 이야기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이다. 족장설화 내에서 리브가가 맡는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24장에서의 리브가의 인물묘사가 정해진 것이다. 족장설화에서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이삭은 본인이 상속자였지만 다음 상속자를 몰랐고 정해진 상속자(장남 에서가 아닌 차남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책임을 맡은 이삭과 리브가 세대의 대표는 이삭이 아니라 리브가이다. 이런 리브가를 인상적으로 소개하고자 한 이야기꾼의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종의 대사: “그 여성이 저를 따라 이 땅으로 오지 않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5절).

제 1 장에서 아브라함은 종에게 자신의 고향땅에 가서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맡기면서 맹세를 하라고 한다. “너의 손을 내 다리 아래에 놓아라.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야훼를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 너는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성을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찾지 말아라. 내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내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아라”(2-4절, 표준새번역[각주:27])). 맹세를 하기 전에 종은 불확실한 부분을 보충한다. “그 여성이 저를 따라 이 땅으로 오지 않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아드님을 주인님이 나오신 그 땅[메소포타미아]으로 모셔갈까요?”(5절) 아브라함은 펄쩍 뛰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자손에게 “이 땅[가나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삭을 그 땅으로 데려가면 안 된다고 대답한다(6-7절). 아브라함은 이삭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거주하게 될까봐 염려하는 듯하다. 그는 종의 표현을 반복하면서, “그 여성이 너를 따라 오지 않겠다”고 하면 종이 맹세에서 풀려날 것이라고 말한다(8절).
종이 제기한 문제, 즉, 신부감이 결혼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의 문화와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까? 24장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읽는 우리는 이것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종의 염려는 일의 성패가 마치 신부감에게 달려 있는 듯이 신부감의 역할과 성품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종의 말은 일종의 복선으로서, 긴장을 깔아두고 이야기를 펼치게 한다. 실제로 이 염려했던 긴장은 실현되는데, 리브가가 결정권을 갖게 되었을 때 가지 않겠다고 대답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리브가의 결정적인 역할을 예시하는 것이다(55-58절). 종의 질문에 아브라함 역시 이삭의 신부감이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고 동의한다.

2. 아름답고 친절한 우물가의 아가씨

리브가는 우물가에서 종과 만나는 장면에서 인물묘사가 가장 두드러진다. 이 부분에서 리브가는 가장 많이 말하고 행동하며 각광(spotlight)을 받는다. 아브라함의 고향땅에 도착한 종은 먼저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부터 한다(12-14절). 그는 기도 속에 신부감의 조건을 제시하며 그 조건에 부합하는 아가씨면 하나님이 정한 신부감인줄 알겠다고 한다(14절). 아브라함은 며느리감이 “내 땅과 내 친척” 출신이어야 한다고만 했는데 종은 애써서 아브라함의 친척들부터 찾아나서지 않는다. 그 대신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나오는 아가씨들을 대상으로 찾는다. 그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나름대로 신부감의 조건을 정한다. 자신과 낙타들에게 물을 대접하는 여성이기만 하면 된다.
모세와 기드온은 하나님께 징표를 요구한 바 있다. 모세는 소명을 받을 때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나님께 말한다(출 4:1). 이 말은 간접적으로 징표를 요구한 것으로서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뱀이 되게,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손을 품에 넣었다 빼니 피부병이 있는 것처럼 하얗게 되고 다시 품에 넣었다 꺼내니 원상태로 되게 하신다(출 4:2-7).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소명을 받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하는데,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직접 세 번이나 증거를 요구하고 시험한다(삿 6:11-18). 하나님은 바위에서 불이 솟아나 고기와 무교병을 불사르시고(삿 6:19-24), 마른 양털을 젖게, 젖은 양털을 마르게 하신다(삿 6:36-40).
아브라함의 종이 요구한 징표는 하나님의 활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부감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면에서 모세와 기드온의 경우와 대조를 이룬다. 종과 열 마리의 목마른 낙타들에게 물을 대접하는 일에는 관대한 마음과 친절도 필요하고 힘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종은 신부감의 성품을 시험하고자 한다. 독자들은 신부감이 어떻게 이 시험을 통과할 것인지 궁금하게 된다. 하나님이 정해주실 아가씨는 문장 구조상 맨 앞에 놓여 강조되어 있다.

“그-아가씨를(התא) 주님이-정하실-것이고 주님의-종 이삭을-위해,
그-아가씨로써(הב) 제가-알-것입니다 주님이-행하셨다는-것을 성실하심을
   제-주인께.”(14절 하반절)[각주:28]

종이 기도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우물가에 나타난다. “보라! 리브가가 오고 있었다”(15절 상반절).[각주:29] 종은 기도 속에서 많은 아가씨들이 물을 길러 나올 것처럼 “이 성 남자들의 딸들이”라고 복수를 썼으나 리브가와의 모든 대화가 끝날 때까지 리브가 말고는 아무도 더 등장하지 않는다. 리브가는 결혼 적령의 아가씨(14절의 רענ 나아라와[각주:30] 16절의
הלותב)가 되어 나타난다.[각주:31] 어깨에 물동이를 메고 나오는 리브가를 보며(15절) 독자들은 리브가가 종이 미리 정해놓은 조건을 충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독자와 이야기꾼은 우물가에 나온 이 아가씨가 누구인지 알지만 종은 아직 모르기에 이야기꾼은 종의 입장에서 리브가를 계속 “그 아가씨(the girl)”라고 부른다. 이야기꾼은 그 아가씨가 “매우 아름다웠고,” “처녀였고 남자가 그 아가씨를 알지 못했다”고 보고한다(16절). 여성의 아름다움과 처녀성을 언급한 것은 이상적인 신부에 대한 이야기꾼의 남성중심적 견해를 반영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여성은 본인과 같은 여성으로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창 12:1-3을 참조.) 낯설지만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종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여성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 남편의 바램을 기쁘게 이루어 준다.[각주:32]  
16절 하반절은 리브가가 물긷는 동작을 세 동사를 써서 단숨에 묘사한다. 리브가는 “우물쪽으로 내려갔고 물동이를 채웠고 올라왔다.” 이 동사들은 리브가의 성품을 드러낸다. 리브가는 주저함이 없이 곧장 우물에서의 볼일을 마친다. 이러한 행동 방식은 리브가가 자신의 운명을 두고 결정을 내릴 때 다시 나올 것이다(58절).
17-21절은 친절을 베푸는 리브가의 모습과 종이 리브가를 관찰하는 것을 묘사한다.

A  그리고-달려갔다 종은 그를-만나려고
    그리고-말했다 “마시게-해주세요 물을-조금 아가씨-물동이의.” (17절)

    X  그리고-그녀가-말했다 “드시지요, 선생님(my-lord).”
           그리고-서둘렀다
           그리고-낮추었다 물동이를 손에
           그리고-그에게-물을-주었다. (18절)
           그리고-마쳤다 그에게-물-주기를
       그리고-그녀가-말했다 “또한 낙타들을-위해서 제가-물을-긷겠습니다
             때까지 그들이-마칠 마시기를.” (19절)
           그리고-서둘렀다
           그리고-비웠다 물동이를 물구유에-부어
           그리고-달려갔다 다시 우물로 물을-길러
           그리고-물을-길었다 모든-낙타들을 위해. (20절)

A'  그리고-그-남자는 응시했다 그녀를 조용히
      보려고 성공적으로-만드실-것인지 야훼께서 그의-길을 또는-아닌지. (21절)[각주:33]

종의 접근(A)과 침묵의 응시(A')가 리브가의 대사와 행동(X)을 에워싼다. 이 구조의 중심(X)은 각각 리브가의 대사로 시작하는(“그리고-그녀가-말했다”) 두 개의 평행 부분을 써서 리브가를 눈부시게 소개한다. 네 개의 동사로 된 각 부분이 리브가의 말을 따라 나온다.

“드시지요, 선생님”    “또한 낙타들을 위해서 다 마실 때까지 제가 물을 긷겠습니다.”
    서둘렀다             서둘렀다
    낮추었다             비웠다
    물을 주었다          달려갔다
    마쳤다               물을 길었다

대사와 동작의 동사 열 개가 리브가의 친절한 환대를 묘사한다. 그래서 히브리어 동사에서 여성 주어를 나타내는 형태소(morpheme)인 -ת가 두드러진다. 능동형 동사를 쓰는 것은 인물의 성품을 드러내는 수사 기법이다. 이 단위에서 일곱 쌍의 단어가 반복이 되었다. 이것은 리브가가 알지는 못하지만 종이 정해둔 조건에 부합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이야기꾼이 한 장면에서 한 인물에게 열 개의 동사를 부여하는 유일한 곳이다. 이런 식으로 리브가는 모든 주의를 한 몸에 받고 무대의 중심을 차지한다.
종은 기도할 때 스스로 물을 마실 생각이었다(14절 상반절, ‘내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물동이를 낮추어 주세요’). 리브가는 물동이를 낮출 뿐만 아니라 종에게 물을 준다. 종은 물을 “조금” 달라고 했는데(17절), “마치다(to finish)”라는 말의 반복이 보여 주듯이 리브가는 충분히 물을 제공한다. 종이 물을 마시는 순간조차 리브가가 동사의 주어이다. 즉, “그리고 그에게 물을 주었고 그에게 물 주기를 마쳤다” (18절, 19절).
리브가는 종을 위해 말하고 서두르고 물동이를 낮추고 물을 주고 물주기를 마친 것처럼 낙타들을 위해서도 말하고 서두르고 물동이를 비우고 다시 달려가 물을 긷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물을 주기 위해 리브가는 두 번째로 “서두르고” 물을 더 긷기 위해 “다시” 달려간다. 리브가는 “또한” 이것을 “모든” 낙타들을 위해서 반복한다. 리브가의 관대함은 “또한(םג),” “다시(דוע),” “모든(לכ)”과 같은 단어들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24장의 바로 앞(창 23장)은 사라의 죽음을 보고하면서 무덤으로 쓸 막벨라(Machpelah) 동굴을 구입하는 과정을 기술하는데 죽음에 관한 표현과 이미지가 온 장에 가득 차 있다. 특히 “고인,” “무덤,” “장사지냄”과 같은 단어는 등장인물(아브라함, 헷 사람들, 에브론)의 모든 대사에서 계속 반복되어 나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4장은 결혼 이야기라는 것과 물을 많이 언급한다는 점에서 생명에 관한 표현과 이미지가 풍부하다. 제럴드 젠즌(J. Gerald Janzen)이 지적하듯이, (족장설화에서) “세대 교체는 사라에서 리브가로 이동에 초점을 두는데, 이 이동은 장소의 전이로 나타난다. 즉, 고인을 품는 동굴에서[사라와 막벨라 동굴] 생명을 주는 물의 근원인 우물로 바뀐다[리브가와 우물가].[각주:34] 24장에서는 특히 물과 관련된 말놀이(paronomasia)가 두드러진다. “물구유(תקשה)”와 “응시하다(האתשמ)”와 같은 단어는 “마시다(התש)”와 “물을 주다(הקש)”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생명 이미지가 집중되어 있고 리브가의 말과 행동이 두드러지는 이 우물가 장면은 24장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각주:35]
성서에는 손님 대접 또는 환대(hospitality)라는 단어가 없지만 손님 대접하는 행위는 24장에서 종이 신부감의 기준으로 쓴 것처럼 종종 인물의 성품을 평가하는 척도로 쓰인다.[각주:36] 에너지가 넘치고 열심히 나그네를 대접하는 리브가의 모습은 세 천사를 대접한(창 18:1-8) 미래의 시아버지인 아브라함과 비슷하다.[각주:37] 아브라함이 대접한 이야기에도 “서두르다”(세 번)와 “달리다”(두 번)가 나온다. 리브가처럼 아브라함도 서두르고 (רהמיו, 6절), 달린다(2절의 ץריו와 7절의 ץר). 그런데 아브라함 이야기에는 사라와 이름없는 하인도 달린다.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반기느라 서두른 후(2절) 아내에게 서둘러(ירהמ, 명령형) 빵을 만들라고 한다(6절). 또한 아브라함이 살진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 하인에게 주니 하인은 음식을 준비하려고 서두른다(רהמיו, 7절). 여기서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잘 대접할 수 있었던 것은 사라와 하인이 모든 일을 했기 때문이다. 24장에서는 리브가가 몸소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푼다. 그러므로 사실 리브가의 환대가 아브라함의 환대를 뛰어넘는다.
“응시하다”는 단어는 성서에 단 한번 나온다(hapax legomenon). 종의 눈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눈도 리브가가 물을 긷느라고 여러 번 우물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동작을 보는데 고정되어 있다. 독자들은 리브가가 우물가에 모습을 나타낸 이래 이야기가 결혼 장면에 갈 때까지 이 인상적인 신부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낙타들이 물을 다 마시자 종은 대뜸 리브가에게 값비싼 코걸이 하나와 금팔찌 두 개를 준다(22절).[각주:38] 이 선물은 리브가로 하여금 종을 궁금하게 여기게 하고 리브가의 호의를 확보하고자 준 것이라는 존 스키너(John Skinner)의 제안이 그럴 듯하다.[각주:39] 보석을 선물로 받은 리브가의 반응은 나와 있지 않다. 나중에 집으로 뛰어가는 것으로 미루어 종과의 만남을 흥분된 사건으로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뉘집 딸인지가 몹시 궁금해 하면서도 선물부터 주는 종의 행동은 리브가야말로 하나님이 점지한 신부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종은 리브가에게 뉘집 딸인가, “아버지의 집”에서 묵을 수 있겠는가고 연거푸 묻는다(23절, רמאיו가 한 번). 리브가는 두 번에 나누어(24, 25절, רמאתו가 두 번) 차근차근 대답한다. 리브가는 간단한 족보, “브두엘의-딸 저는(יכנא)-입니다 밀가의-아들 낳아준 나홀에게”를 말하면서 자신을 한 가운데에 두며 강조형 아노키를 쓴다. 이 집중식(concentric)구조는 나홀의 족보에서 리브가의 탄생보고가 한 가운데 있던 구조를 연상시킨다(창 22:23). 그런 다음 리브가는 “묵을 장소도 짚도 여물도 넉넉”하다면서 낙타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데, 감(םג, “-도”)을 세 번이나 써서 관대히 초대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여기서 가족의 동의없이 나그네를 집에 초대하는 리브가의 모습은 당시 사회 관습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자율적인 리브가의 성품을 보여주는 인물묘사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각주:40]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조카 손녀인 것이 밝혀지자[각주:41] 종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리브가의 족보를 알기 전에도 신부감으로 맘에 들었는데 족보를 안 후에는 더할 나위없이 확실하게 된 것이다. 우물가에 도착했을 때 드린 청원의 기도가 이제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다. 두 기도사이에는 기도의 응답인 훌륭한 신부감 리브가가 들어있다. 종의 감사기도는 사뭇 감정적이다. 첫 기도에는 없던 자세를 취하기까지 한다. 야훼께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찬양과 감사를 드린다.
  
3. 리브가의 결정: “가겠어요”(58절).

종이 리브가의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리브가의 결혼 승낙을 받아내기까지 리브가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리브가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대사를 두 번 더 한다. 집을 떠나기 전에 한 번, 그리고 네겝에 도착해서 이삭과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말할 기회가 있다. “가겠어요(ךלא)”(58절)라는 리브가의 말 한마디는 24장에서 가장 짧은 대사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대사이다.
에스더 푹스(Esther Fuchs)는 성서에 나오는 몇 가지 약혼 및 결혼 장면을 관찰하면서 여성의 역할이 아예 없거나 처음에 강하다가 약해진다고 지적했다.[각주:42] 리브가의 경우에,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가 리브가를 이삭에게 넘기기로 결정했고 리브가의 자율성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자세히 읽으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24장의 목가적인(idyllic) 아름다운 결혼이야기도 리브가처럼 인상적인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의 등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주인공과 이야기의 구성을 둘러싼 기승전결 안에서 복선, 긴장, 긴장의 해소, 대단원과 정점(climax)이 있어야 흥미로운 이야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일이 잘 성사된 것으로 알았던 종은 다음 날 아침 뜻하지 않은 장애에 직면하게 된다. 리브가의 어머니와 오빠가 “저 아이가 며칠 또는 열흘만이라도 우리와 머물게 해주세요. 그 후에는 갈 것입니다”(55절)라고 말했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 “며칠”과 “열흘”을 며칠에서 한 계절, 10주, 10달, 일년 등 다양하게 이해한다.[각주:43] 여기서 문제는 정확한 시일이 얼마냐가 아니라, 이 제안 때문에 애초의 결혼 결정이 번복되고 무효가 되게 생겼다는 점이다. 일인칭을 많이 써서 애원조로 말하는 종의 말은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가를 드러낸다. “저를 붙잡지 마십시오. 야훼께서 저의 길을 성사시켜주셨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제 주인에게 갈 수 있게 말이지요”(56절).
어머니와 오빠는 “저 아이를 부릅시다. 아이의 입에게 물읍시다”라고 제안한다(57절), 이야기꾼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나서 마지막 결정적인 답변을 말 그대로 리브가의 “입”에 담아 주고자 한다. 이것은 이야기의 첫머리에 깔렸던 복선이 실현된 순간이다. 어머니와 오빠는 리브가에게 “이 남자와 함께 가겠느냐?”고 묻는다(58절 상반절). 하나님께 기도했고 리브가의 가족을 설득할 수 있었던 신실하고 영리한 종도 이 시점에서는 아무 힘이 없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선물을 더 주지도 않는다. 리브가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다. 이 새로운 상황은 리브가를 한 번 더 이야기의 초점에 둔다. 종이 맡은 임무의 성패가 갑자기 리브가의 한 마디에 좌우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리브가의 직선적인 대답은 단번에 위기를 해결한다. “가겠어요”(58절 하반절). 성서 그 어디에서도 신부가 결혼으로 집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할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다. 학자들은 이 특이한 일을 성서 밖의 문헌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밴 시터스는  아버지가 아닌 오빠가 결혼을 주선할 때 누이의 동의를 요구하는 누지(Nuzi)의 결혼 계약을 찾아냈다.[각주:44] 브루스 보터(Burce Vawter)는 딸이 원하지 않으면 낯선 땅의 이방 남자에게 결혼시킬 수 없는 아시리아 법을 발견했다.[각주:45] 스파이저와 낸시 제이(Nancy Jay)는 리브가가 결혼에 동의한 것과 떠날 때 가족이 복을 빌어 준 것은 모계제도의 풍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각주:46]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장면을 문화사회적 배경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리브가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문학기법이라고 본다. 그래서 리브가가 “종보다 부차적인 역할을 하고 … 종이 수행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동적으로 따른다”는 조지 코우츠(George W. Coates)의 생각은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각주:47]
리브가는 “가겠어요”라는 말로 고향땅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땅을 떠나라고 명하신 적이 있다(창 12:1-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알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었다. 리브가는 여기서 고향땅을 떠날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 하나님의 약속도 없이 그렇게 결정한다. 리브가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있다. 아브라함은 본인과 같은 며느리감을 원했지만 리브가는 그보다 더 용감하다.

4. 리브가가 받은 복 (60절)

  위기가 해결되고 리브가가 떠날 때가 되자 가족은 복을 빌어준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인이 될 것이다.
        너의 씨가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이 복의 내용은 시집가는 누이에게 주는 것치고는 범상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은 자손이 많아질 거라는 면에서 이삭이 희생될 뻔한 사건 직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과 비슷하다. 특히 “너의 씨가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에 똑같이 나온다(창 22:17 하반절). “그들[가족]이 리브가를 축복했다”는 표현에는 리브가의 이름(הקבר)과 어근 “복을 내리다”(ךרב)에 대한 어희가 들어있다. 고든 웬햄(Gordon J. Wenham)은 축복문 자체가 또 하나의 어희를 담고 있다고 관찰한다.
즉, 천만인은 레바바(הבבר)로서 리브가의 이름과 두 개의 자음을 공유한다.[각주:48] 이들 어희는 전체 리브가 이야기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이다. 복이라고 하는 말은 족장 설화의 열쇠이다.[각주:49]특히 리브가가 하나님의 복을 지정된 상속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역할을 족장설화 안에서 맡게 되므로(창 25:23 참조) 복, 자손의 복이라는 말과 리브가라는 말이 어우러지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하겠다.

5. 리브가와 이삭의 만남(63, 64절)

이삭은 종이 자신의 신부를 찾아서 돌아올 것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가 기다렸다고 하는 것은 “보는” 것과 관련된 말에서 엿보인다(63절): “그는 눈을 들고 보았다.” 다음에 놀람을 나타내는 불변화사, “보라!” “눈을 들다”와 “보다”의 결합은 보통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보게 될 때 쓰인다.[각주:50]
지평선 위로 점점 나타나는 일행 중에서 리브가는 이삭과 구조 면에서 다음과 같이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그는-들었다 눈을 그리고-보았다 그리고-보라! 낙타들이 오고-있었다. (63절)
        a                        b
그리고-들었다 리브가는 눈을 그리고-보았다 이삭을 그리고-내렸다 낙타에서. (64절)
        a'                        b'

리브가와 이삭은 똑같이 눈을 들어 본다. 이 평행 구조는 리브가와 이삭이 똑같이 “보는” 행동을 취했지만 본 “내용”이 달랐음을 보여 준다. 이삭은 낙타들을 보았고, 리브가는 이삭을 보았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는데[각주:51] 이삭은 큰 대상인 낙타들만 볼 수 있었을 뿐 리브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여기서 이삭의 시야가 제한되었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서 상징적이고 문학적인 기능을 하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를 알아보지 못하며 둘째 아들 야곱에게 속게 된다 (창 27).
모든 것을 다 아는 이야기꾼은 리브가가 보고 있는 남자가 이삭이라고 밝힌다. 그것은 리브가의 추측이기도 하지만 종에게 물어서 알기까지 (65절) 아직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리브가는 예의를 갖추기 위해,[각주:52] 설레임에서, 또 남편감과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낙타에서 내린다.

VI. 맺음말

많은 학자들이 주인공이라고 보는 아브라함의 종은, 여기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사신으로서의 그의 역할은 끝나고 다시 등장할 필요가 없다. 그가 없이도 이야기의 목적은 성취될 수 있다. 그러나 리브가가 없으면 24장과 주변 이야기들의 전개 자체가 불가능하다.
리브가는 우물가에서 친절과 행동이 돋보이는 아름답고 인상적인 신부감이고, 자신의 결혼과 미래에 관하여 직선적 결정을 내리는 여성이고, 결혼 장면에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 사람이었고 예의가 바른 신부이다. 이러한 리브가의 인물묘사는 나머지 리브가 이야기에서 리브가가 맡을 역할을 예시하는 것이다.
24장의 이야기는 사라의 뒤를 잇는 여족장 리브가를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새 여족장은 매우 특별한 여족장일 것임으로 사라나 다른 여족장의 인물묘사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삭과 리브가 세대에서 족장인 이삭이 아니라 리브가가, 자손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복이 주제인 족장설화 안에서 하나님께서 정한 상속자 야곱에게 복을 전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이 구성(plot)과 리브가의 역할은 창 22:20-24의 탄생보고부터 시작해서 창세기 27장에서 이르는 전체 리브가 이야기 속에 잘 전개되어 있다. 독자는 이 특이한 여족장이 앞으로 수행할 활약에 대해 커다란 기대를 안게 된다.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Ph.D.





  1. 이 글은 Union Theological Seminary(New York)의 Ph. D. 논문, A Rhetorical Reading of the Rebekah Narratives in the Book of Genesis의 일부를 발췌, 개정한 것이다. [본문으로]
  2.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본문으로]
  3. The Revised English Bible, E. A. Speiser, Genesis(Anchor Bible 1; Garden City: Doubleday, 1964), 174. [본문으로]
  4. George W. Coats, Genesis with an Introduction to Narrative Literature(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Grand Rapids, Eerdmans, 1983), 166. [본문으로]
  5. 표준새번역이 ‘이삭의 아내’라는 제목을 붙여 리브가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았지만 리브가에게 중점을 둔 것은 이삭이나 종을 중심으로 제목을 붙인 대부분의 성서에 비해 파격적인 제목이다. [본문으로]
  6. John Van Seters,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New Haven: Yale Univ. Press, 1975), 244. [본문으로]
  7. 허벅지(thigh)는 생산력의 자리(the seat of procreative power)인 성기를 가리킨다. 성서는 아들들이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나온다고 표현한다(창 46:26; 출 1:5; 삿 8:30). “허벅지 아래에 손을 두고 하는 맹세”는 상황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이런 맹세가 한 번 더 나오는데 야곱이 이집트에 묻지말고 조상들과 함께 묻어달라고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할 때이다(창 47:29). Francis Brown, S. R. Driver, Charles 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Oxford: Clarendcon Press, 1907), 438; John Skinner, Genesis(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Edinburgh: T & T Clard, 1930), 34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2nd ed.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5), 139를 보라. [본문으로]
  8. Shimon Bar-Efrat, Narrative Art in the Bible(Sheffield: Almond Press, 1989), ch. 2; Shlomit Rimmon-Kenan은 인물묘사에는 직접 정의(direct definition)와 간접 설명(indirect representation) 등 두 범주가 있는데 그 중 간접 설명에는 대사, 행동, 외모, 환경 등 네 요소가 있다고 본다. Narrative Fiction: Contemporary Poetics(London: Methuen, 1983), 59. [본문으로]
  9. Hermann Gunkel, Genesis(Mercer Library of Biblical Studies; Macon: Mercer Univ. Press, 1997), xxxii. trans. M. E. Biddle. Translation of Genesis, 3rd ed. Goe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77. [본문으로]
  10. Bar-Efrat, Narrative Art in the Bible, 86. [본문으로]
  11. 그 사이 아브라함이 죽었다고 보는 학자들은, 67절 하반절의 “어머니 사라 다음에”라는 모호한 구절을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의 제안에 따라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라고 번역한다. Blum, Die Composition der Vaetergeschichte, 383-84; Skinner, Genesis, 348; Speiser, Genesis, 185; Van Seters, Prologue to History: The Yahwist as Historian in Genesis(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92), 265-66; Westermann, Genesis 12-36, 391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어머니’를 그대로 두는 편이 24:67절 상반절의 “그의 어머니 사라”와도 어울리고, 리브가가 사라를 이어받은 것을 확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본문으로]
  12. E. A. Speiser는 브두엘이 죽었기 때문에 하란(Haran) 지역과 같은 후리안(Hurrian) 사회의 관습대로 리브가의 오빠 라반이 아버지의 권한을 행사한다고 보았다. 50절에서 브두엘이 언급된 이유는 족보상 연결 때문이거나 본문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Genesis(The Anchor Bible 1; Garden City: Doubleday, 1964), 91-2, 184. [본문으로]
  13. Nancy Jay는 “어머니의 집(המא תיב)”이 모계제도(matriliny)를 가리킨다고 본다. “Sacrifice, Descent, and the Patriarchs,” 61. Vetus Testamentum 38.1(1988): 52-70. 그러나 Carol Meyers는 이 구절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사회 단위, 즉 가족 또는 친족 그룹을 가리키는 용어인 “아버지의 집(בא תיב)”과 같은 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마이어스는 24장의 이야기꾼이 왜 “아버지의 집”을 쓰지 않고 “어머니의 집”이라고 썼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Carol Meyers, “‘To Her Mother's House’: Considering a Counterpart to the Israelite Bet ’ab,” 41. pages 39-51 in The Bible and the Politics of Exegesis, ed. D. Jobling, P. L. Day, and G. T. Sheppard(Cleveland: Pilgrim, 1991). 페쉬타(Peshitta)는 아예 “아버지의 집”이라고 고쳐 써서 남성중심적 관점을 드러낸다. [본문으로]
  14. 낙타들을 신부값(bride price)의 일부로 여기는 견해로는, Juris Zarins, “Camel,” Anchor Bible Dictionary 1: 825을 보라. [본문으로]
  15.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Westermann, Genesis 12-36; Stephen Mitchell, Genesis: A New Translation of the Classic Biblical Stories(New York: HarperCollins, 1996), 47; 그러나 Robert Alter는 라반을 주어로 번역하지 않고 종이 모든 행동을 한 듯한 인상을 준다. Genesis: Translation and Commentary(New york: Norton, 1996), 118. New JPS Translation은 이 점을 인식하고 “낙타들에게는 겨와 여물이 주어지고 . . . 발을 씻을 수 있는 물이 왔다”고 수동태로 번역한다. [본문으로]
  16. 숫자를 알 수 없는 이 남자들의 출현은 뜻밖이다. 종이 아브라함의 집을 떠날 때 낙타와 보석을 준비했다고만 나오고(10절) 또 우물가에서 리브가의 친절을 시험할 때도 이 일행은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들의 출현은 낙타와 보석과 더불어 리브가의 가족에게 아브라함의 물질적 풍요를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도록 고안된 듯하다. [본문으로]
  17. 앞의 주 12 참조. [본문으로]
  18. 아래 리브가의 인물묘사 부분을 보라. 하나님이 지정한 상속자(둘째 아들 야곱)를 몰라보던 이삭은 창 27장에서는 시력을 잃은 상태로 나온다. [본문으로]
  19. 앞의 주 11 참조.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라고 읽는 성서로는 표준새번역, New JPS Translation, New English Bible, Revised English Bible, New Jerusalem Bible 등이 있다, [본문으로]
  20. George W. Coats, Genesis, 167; Wolfgang M. W. Roth, “The Wooing of Rebekah: A Tradition-Critical Study of Genesis 24,” Catholic Biblical Quarterly 24(1972): 177-87. [본문으로]
  21. Roth, “The Wooing of Rebekah.” 로쓰는 24장의 두 번째 주제는 “좋은 아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역시 전승사비평을 적용한 케넷 에트켄(Kenneth T. Aitken)은 24장이 어디까지나 결혼이야기이므로 기꺼이 친정을 떠나 시집을 가는 모범 신부(paradigm bride)가 주요 주제라고 생각했다. Kenneth T. Aitken, “The Wooing of Rebekah: A Study in the Development of the Tradition,"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30(1984): 3-23를 보라. [본문으로]
  22. 튜글스는 리브가를 하나님이 보내신 “도우미”(helper)라고 부른다. Lieve Teugels, “The Anonymous Matchmaker: An Inquiry into the Characterization of the Servant of Abraham in Genesis 24,”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1995): 13-23. [본문으로]
  23. Gerhard von Rad, Genesis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2), 254; John Skinner, Genesis, 341; Nahum M. Sarna, Genesis: The Traditional Hebrew Text with the New JPS Translation (JPS Torah Commentary;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9), 162; L. I. Rabinowitz, "The Study of Midrash," Jewish Quarterly Review 58(1967): 149. [본문으로]
  24. Phyllis Trible, God and the Rhetoric of Sexuality(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8), 190. [본문으로]
  25. Meir Sternberg, The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Ideological Literature and the Drama of Reading(Bloomington: Indiana Univ. Press, 1985), 330. 스턴벅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이슬란드 설화(saga) 등이 단독적인 이름과 전형적인 이름을 섞어 쓰는 반면, 성서는 등장인물에게 나름의 이름을 붙이는데, 단독적인 이름을 붙이든가 익명으로 두든가를 선택하여 쓴다. [본문으로]
  26. Van Seters,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244. [본문으로]
  27. 별(*) 표시는 표준새번역을 고쳐 쓴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하지 않는 한 모든 번역은 나의 변역이다. [본문으로]
  28. 번역을 위해 원문에 없는 “아가씨”를 넣었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인칭 주어를 모두 “주님”으로 번역했다.  이처럼 히브리어 문장 안에서 단어가 배열된 위치를 그대로 따라 번역하면 어떤 문학기법이 쓰였는지를 보여 주기 쉽다. [본문으로]
  29. Dennis J. McCarthy는 wehinneh의 다양한 용법으로 흥분된 지각(exited perception), 원인, 이유, 조건, 양보, 시간, 목적, 결과, 반대 등을 든다. 그는 여기 창 24:15와 24:30(“보라! 그[종]가 우물가에서 낙타들 곁에 서 있었다. . .”)의 wehinneh를 시간의 용법으로 보고, “리브가가 나왔을 때”와 “그가 아직 서있었다”고 번역한다. 그러나 이 두 곳에서 베히네가 흥분된 지각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보라! 리브가가 오고 있었다”와 “보라! 그가 아직 우물가에서 낙타들 옆에 서 있었다.” “The Uses of wehinneh in Biblical Hebrew,” Biblica 61(1980): 330-42를 보라. [본문으로]
  30. 여기서 리브가를 가리켜 여성 어미 ה없이 רענ라고 한 것은 그가 맡을 남성적 역할을 암시하는 것일까? [본문으로]
  31. Gordon J. Wenham은 הרענ의 용법을 성서에서 찾아 열거한다. 이 말은 아버지의 통제 하에 있는 미혼 소녀(창 39:3), 하녀(출 2:5; 왕하 5:4), 과부 룻 (2:6), 신부 룻(4:12), 첩(삿 19:3), 후궁(에 2:2), 매춘여성(암 2:7) 등을 가리킨다. “Betulah ‘A Girl of Marriageable Age,’” Vetus Testamentum 22(1971): 326-48. n. 2. 또한 Wenham은 베툴라를 전통적인 번역처럼 “처녀”가 아니라(BDB: 143b; KBL: 159b) “결혼 연령의 아가씨”로 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24:16절은 수식구(“남자를 알지 못했다”) 때문에 “처녀”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본문으로]
  32. Susanne Gillmayr-Bucher는 הרענ(a girl), השא(a woman), 리브가 등 용어들의 관점에서 아브라함과 종과 리브가의 가족과 이삭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관찰한다. “The Woman of Their Dreams: The Image of Rebekah in Genesis 24,” in The World of Genesis: Persons, Places, Perspectives, ed. P. R. Davies and D. J. A. Clines(JSOTS 257; Sheffield, Eng.: Sheffield Academic Press, 1998), 90-101, 특히 n. 17을 보라. [본문으로]
  33. 같은 글자체를 써서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본문으로]
  34. J. Gerald Janzen, Genesis 12-50, Abraham and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93), 83. [본문으로]
  35. Van Seters는 종의 기도가 리브가의 행동을 통해 드라마처럼 반복된 것이 24장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본다.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244. [본문으로]
  36. 손님 접대에는 보통 음식과 음료와 숙박을 제공한다. 성서에는 잔치처럼 음식을 준비하는 것(창 19:1-3의 롯)에서부터 왜곡된 형태(삿 19:16-30에서 기브아의 노인이 손님의 아내를 불량배들에게 제공)까지 여러 가지 유형의 손님 대접법이 나온다. 참조. John Koenig, “Hospitality,” Anchor Bible Dictionary 3:300. [본문으로]
  37. Victor P. Hamilton과 Avivah G. Zonberg도 이것을 언급한다.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147; Zonberg, Genesis: The Beginning of Desire(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5), 139. [본문으로]
  38. 금고리(בהז םזנ)는 성서에서 보통 코걸이나 귀걸이를 뜻한다. 주로 귓불에, 그 다음으로는 코에 뚫은 구멍으로 통과하도록 양쪽이 뾰족하게 만든 고리는 팔레스타인에게 가장 흔한 형태의 귀 장식품이었다. 참조. Elizabeth E. Platt, “Jewelry, Ancient Israelite,” Anchor Bible Dictionary 3:826. Bruce Vawter는 이 선물이 bride price의 일부라고 본 반면 스키너는 친절에 대한 답례로 본다. Vawter, On Genesis: A New Reading(Garden City: Doubleday, 1977), 270; Skinner, Genesis, 344. [본문으로]
  39. Ibid. [본문으로]
  40. 성서의 남성은 가족과 상의하지 않고 나그네를 집에 초대하는 권한이 있었던 듯하다(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과 사사기 19장의 기브아의 노인). 그러나 여성에게는 제한된 권한이 있었던 듯하다. 라헬은 자신을 도와 준 야곱을 초대하지 않고 뛰어가서 아버지에게 보고한다(창 29:12). 르우엘의 딸들 역시 모세를 초대하지 않는다(출 2:19-20). 아비가일이 다윗을 초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나발이 만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삼하 ). [본문으로]
  41. 내오미 스타인벅(Naomi Steinberg)에 의하면 족장설화에 나오는 결혼은 결연이나 동맹을 위해서가 아니라 데라의 가문 안에서 부계중심의 자손을 형성하고자 했다. 결혼은 일정한 친족 경계 내에서 땅 유산을 보전하는 제도였다. 그래서 올바른 아버지를 통해 자손을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Alliance or Descent? The function of Marriage in Genesi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51(1991): 45-55. [본문으로]
  42. Esther Fuchs, “Structure and Patriarchal Functions in the Biblical Betrothal Type-Scene: Some Preliminary Notes,” Journal of Feminist Studies in Religion 3(1987): 12. [본문으로]
  43. Gunkel은 “days(yamim)”를 양수형(yomaim)으로 모음부호를 제안하여 “이틀”로 고친다. Genesis, 258; Westermann, Genesis 12-36, 389; Francis S. North, “Four Month Seasons of the Hebrew Bible,” Vetus Testamentum 11(1961): 446-48; Wenham은 Targum Onqelos와 Rashi를 따라서 “일년 정도” 라고 본다. 사마리아 오경은 “열흘”을 “달”로 바꾸었는데 이 구절을 “일년 또는 한달”로 해석하는 것이다. ? The Book of Genesis, 150. [본문으로]
  44. Van Seters,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77. [본문으로]
  45. Vawter, On Genesis, 275. [본문으로]
  46. Speiser, Genesis, 184; Jay, “Sacrifice, Descent, and the Patriarchs,” 62. [본문으로]
  47. Coats, Genesis, 167. [본문으로]
  48. Wenham, Genesis 16-50, 151. 스키너는 형태상 운율이 있는 결혼 축복문(룻 4:11 이하 참조)이 리브가라는 이름과 연관된 부족시(poetry)의 옛 잔재라고 제안한다. 그의 Genesis, 347을 보라. 보터는 이 축복문을 다산(fertility) 축복문이라고 본다. On Genesis, 275. [본문으로]
  49.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축복(복을 빔)이 받는 사람에게 행복, 번영, 존경, 다산 등을 가져오는 힘을 발산한다고 믿었다. 야훼기자는 축복하는 관습을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창 12:1-3)의 일부로 만들어 전환점을 이루었다.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땅과 자손에 대한 복이다. Josef Scharbert, [본문으로]
  50. Westermann, Genesis 12-36, 390. [본문으로]
  51. 진을 깨끗하게 하는 법에서 lifnot 'ereb (해가 질 무렵에, "approaching of or turning toward evening," BDB, 815)는 kebo' hassemes(해가 진 후에)와 대조하여 쓰였다: “밤에 몽설하여 부정을 탔을 때에 그 사람은 진 밖으로 나가서 마물러 있어야 한다. 해가 질 무렵에 목욕을 하고, 해가 진 다음에 진으로 들어올 수 있다” (신 23:11-12a). 그러므로 lifnot 'ereb는 해가 진 시각보다 더 이르고 더 밝은 시간이다. [본문으로]
  52. 대부분의 학자들은 리브가가 존경의 표시로 낙타에서 내렸다고 본다. Driver, Genesis, 239; Skinner, Genesis, 348; Westermann, Genesis 12-36, 390. 여성이 동물(나귀)에서 내리는 경우는 수 15:18(악사)과 삼상 25:23(아비가일)에도 나온다. 이 세 본문의 공통점이 흥미롭다. 리브가와 악사와 아비가일은 모두 남편을 지배한다. 리브가와 악사의 경우 우물과 물이 연관되어 있고, 악사와 아비가일(남편 나발)은 갈렙 사람들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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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길 교수가 한국신학연구원에서 발표한 <Coherence Relations in the Book of Jeremiah 30-33>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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