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비판과 책임

성찰 2017. 12. 30. 15:15

[비판과 책임]

난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다. 교수의 강의를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해 배우면서 동시에 토론과 소논문 등을 통해 비판해야 한다. 비판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더 나은 견해를 제시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서론 부분에서 기존 연구들에 대한 평가를 서술하는 이유는 연구자가 앞선 연구들의 공헌과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하는데 있다. 뒤이어 자신의 연구가 학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분명히 밝힌다. 이것이 바로 학자의, 그리고 학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는 학생의 책임이다.


특히, 소논문이나 졸업논문처럼 공식적으로 제출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글의 경우 비판과 대안제시는 매우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소논문이라면 교수의 평점으로, 졸업논문이라면 심사관들 앞에서 구술시험을 거쳐야 한다.


내가 학문의 세계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대안 없는 비판은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비판은 공허한 메아리로 취급 받는다. 대학이란 비판의식과 함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학자를 양성하는데 목적이 있지, 비평가나 평론가를 배출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훈련 덕분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남에 대한 비판을 함부로 못하게 된다. 더구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더욱 그렇다.


인터넷의 확산과 SNS의 발달로 누구나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이다. 특히, 언론의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게다가 흔히 말하는 진보적 성향의 정권이 들어섰다. 예전 보다 비판의 목소리는 많아졌는데, 그와 비례하여 책임은 지지 않으니, 어떻게 그들을 향한 시선이 부드러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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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신약학(New Testament)이다 보니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접할 기회가 많은데, 원어 폰트를 사용한 원고를 편집하는데 수반하는 제약 때문인지 발음으로 표기한 책들을 자주 접한다. 발음 표기는 대체로 영문 폰트에 기울기 효과를 적용한다. 이러한 편집의 경우 정작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역추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독자의 편의성을 위해서는 폰트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통일된 외래어 표기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출판사마다 제각각이라 독자로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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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중심의 신학계는 재편되고 있다]

앞서 팀 켈러의 기사에 이어 신학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다루러 한다. 짧은 유학 생활이지만, 십 년 넘게 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서 글로 남겨 본다.


지난 번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내가 현재 재학 중인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는 CRC(Christian Reformed Church) 교단에서 운영하는 직영신학교이다. 규모 자체로는 영세한 편이고, 교단 본부와 칼빈신학교가 위치한 그래드래피즈를 중심으로 미국 중북부와 캐나다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학은 네덜란드 개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 학교는 유학생들에게 매우 환대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부학생처장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인유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학교입학상담부터 실제 현지 생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작교정과 작문법 교습을 전문으로 하는 Rhetoric Center는 전문인력으로 운영하여 한인유학생들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서강대학교에서 은퇴하신 강연안 교수님이 초빙교수로 오셔서 한인학생들이 비빌 언덕으로 기대하고 있다(그 기대는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종합적으로 이 학교는 한인유학생들이 적응하기에는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학교 역시 백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백인 중에서도 네덜란드 계열의 CRC 교단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져 있다. 최근 교수 영입이 원활하지 못한 이유가 아마도 이 부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식이 한인학생들 사이에 존재한다.


그런데, 학생들 대다수는 전혀 백인들이 아니다. 미국인과 캐나다인들이 많기는 하지만, 한인학생들의 비중이 상당하고, 학교재정은 히스패닉 계 학생들이 많은 부분을 충당한다. 이 부분은 재학생과 졸업생 비율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학교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박사과정에는 백인들의 지원과 입학이 줄어들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교수진 확보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신학석사(Th.M.) 과정에 입학하는 한인유학생들도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는건 분명하다.


운영진과 학생들 구성원의 차이에서 백인 중심의 신학은 이미 탈피하고 있다. 이미 유명한 종합대학교는 다인종 교수진으로 구성된 곳이 많다. 다만 신학교 수준에서 변화가 더딜 뿐이다.


최근에 성서해석에 다양한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역사비평이니 본문비평이니 다양한 비평 방법론이 시도되어 왔지만, 이런 방법론은 여전히 백인 중심이었다. 페미니즘 비평이라고 해서여성의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여성신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덕분에 남성적 시각의 한계를 발견하게 되는 장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또한,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Africa Bible Commentary』처럼 아프리카 신학자들에 의해 집필된 주석도 시도되고 있다.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시각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실 성경 배경 자체가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 신학교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거다. 그 변화는 단지 신학적 기류만이 아니라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이라는 인종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이제 두 학기를 마친 햇병아리 유학생이지만, 영미권 교수라고 해서 한국 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영어만 압도적으로 잘하는 정도 이외에는 딱히 매력적인 부분은 못 느끼고 있다. 결국은 내 짧은 영어실력에 대한 한탄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건가?




이 글은 기독교언론사 "드림투게더"에 "재편되는 백인 중심이 신학계"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thedreamtogether.com/news/articleView.html?idxno=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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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복음주의의 쇠퇴]

신학부 시절 내가 고민하던 주제중 하나가 바로 '복음주의'였다. 당시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국제외환위기 이후 시대적 변화가 역동적인 시기였는데, 교계에서는 '복음주의'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내가 이해한 복음주의는 교단 간에 합의 할 수 있는 최소분모이다. 즉, 복음의 정수이다. 교단이나 어떤 정치적 함의가 존재하지 않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정의가 바로 복음주의였다.


미국은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건너온 청교도인들이 개척한 축복의 땅이라는 믿음이 존재하는 곳이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든 요새 널리 쓰이는 용어인 가나안 성도이든 미국인들은 대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곳이다. 최근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백인 복음주의의 쇠퇴 현상은 교회만이 아니라 신학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학교마다 다문화선교를 말하고,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인 이유는 백인 위주로 구성된 신학교를 유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진정성을 가지고 선교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신학교도 많다.


조심스럽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사례를 들어 보면, 풀러신학교의 코리안센터 사태는 백인 우월주의가 구조조정이라는 가면으로 가장된 사례라고 여겨진다. 사실 풀러신학교는 백인이 아니라 한국인들에 의해 재정이 충당되는 곳이다. 그러니 당연 한국어 과정에 소속된 교수들이 학교운영에 힘을 쓰게 되고, 그 꼴을 못 보는 소수 백인 교수들 혹은 위원회 등이 구조조정을 빌미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기사에서 언급되었다시피, 백인들을 제외하고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서 기독교가 확산되고 있다. 즉, 백인 중심의 기독교가 재편되고 있다. 백인 복음주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근거 없는 우월주의에 빠져서 헛발질 하지 말고.


[관련기사]

팀 켈러, "복음주의는 트럼프와 무어 시대를 견딜 수 있을까?"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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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 세미클론]
교내 RC(Rhetoric Center)에 교정을 맡기면 단골로 지적 받는 사항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적응이 안되는 용례가 바로 '세미클론'이다.

편집자들의 교과서로 통하는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7』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쌍반점 semicolon (;)
쌍반점은 우리 글에서는 원래 쓰지 않고 영어권에서 쓰는 문장 부호이다. 그래서 국어에서는 이 용법에 대한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쌍반점은 영어권에서는 문장을 자세하게 풀이할 때 쓰는 부호이지만, 우리말에서는 풀어서 써주거나, 부득이한 경우 줄표(—)나 쌍점( : ) 등으로 대체한다.

위 설명을 읽어보면, "영어권에서는 문장을 자세하게 풀이할 때 쓰는 부호"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꼭 그렇지 않는 듯 싶다.

예를 들어보겠다.

The term “God” occurs six times (vv. 1, 3, 5, 7, 8, 9), “Jesus” occurs three times (vv. 1, 2, 6), and “Holy Spirit” occurs one time (v. 8).

만약 내가 이렇게 영작을 해서 RC에 맡기면, 아래처럼 교정해준다.

The term “God” occurs six times (vv. 1, 3, 5, 7, 8, 9); “Jesus” occurs three times (vv. 1, 2, 6); and “Holy Spirit” occurs one time (v. 8).

교정자의 의도는 아마도 실제로는 한 문장이지만, 각 용어별로 구분되는 문장이라는 의미에서 세미클론을 표기하는 듯 하다.

자세한 설명은 문법오류 점검할 때 자주 사용하는 grammarly의 글을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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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헤이즈(Richard B. Hays)의 책 『Echoes of Scripture in the Gospels』에 대한 프랜시스 왓슨(Franscis Watson)의 서평입니다. 상호본문성(intertextuality)와 공관복음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세요.


Franscis Watson's review for 『Echoes of Scripture in the Gospels』

http://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002096431773133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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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le vs. Logos Bible Software]

If you meet the following three criteria, choose Logos: 1) a seminary student 2) interested in books 3) interested in e-books. 

Comparing readability, device compatibility, and product launch rates, the Kindle leads the Logos, however, it is difficult to distinguish page numbers when deciding to quote. After purchasing a book on the Kindle, you may have to deal with the hassle of locating and checking the books in the library to verify the page number. In addition, if you are an international student, getting used to the Logos is beneficial in many ways.


만약, 다음 세 가지 항목에 해당한다면 로고스를 선택하십시요: 1) 신학생이다 2) 책에 관심이 많다 3) e-book에 관심이 있다.

가독성과 기기 호환성, 제품출시율은 단연 킨들이 앞서지만, 결정적으로 인용할 때 쪽 번호를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킨들로 책을 구매할 경우 쪽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도서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직접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유학생일 경우 로고스에 익숙해지는게 여러모로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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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론 연구서]

베일러대학교 출판부 담당자인 케어리 뉴만(Carey Newman)이 초기기독론 연구서에 대한 발표를 했다. 초기 기독론에 관심 있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 있다.


The Library of Early Christology

https://davidbcapes.com/2017/12/14/the-library-of-early-chris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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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작성 교수법을 바꿔야 한다]

학부 시절에 논문작성법을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나는건, 졸업필수자격이었던 논문이 시험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대원 시절에 배운 기록만 따지면, 총 3번 수강했다. 목회학 석사(M.Div.) 과정에서 1번, 신학 석사(Th.M.) 과정에서 각 1번씩, 이렇게 총 3번이다. 그렇다. 난 신학석사 과정을 두 번째하고 있다.


보통 입학과 동시에 첫 수강과목으로 논문작성법이 배정되어 있다. 교수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소논문(essay)은 공통적인 요구사항이다. 소논문은 작성자의 지식과 논리적 사고를 평가하는데 최적의 평가방식 중 하나이다. 언어적 감각에 대한 평가는 덤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평가방식들 가운데 소논문만큼 짧은 시간에 비평가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래서 상위교과과정일수록 글쓰기를 매우 중요하게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상 논문작성법을 성실하게 지도하는 교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신대원 목회학 석사 과정에서는 불성실한 태도를 반복적으로 지적 받는 교수를 배정 받았고, 학생들이 반복적으로 불만을 토로해서 졸업필수였던 논문이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 신학 석사 과정 때는 일대일 수업을 진행했는데, 연구주제를 찾기 어려워서 수업진행이 잘 안되었다. 현 칼빈신학교에서는 불성실한 강의로 몇 년째 지적을 받다가 계약종료를 앞둔 교수에게 마지막 수업을 배웠다. 역설적이게도,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 받았던 두 교수들 모두 글쓰기에 있어서는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다른 한 분은 나와 관련성이 별로 없는 분야에 계신 분이라 잘 모르겠다.


내 논문작성 실력은 목회학 석사 시절 수강한 주해방법론 시간을 통해 기초를 다듬었고, 목회학 석사 졸업논문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이후 주해는 자심감은 생겼다. 물론,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리고 주위 학생들의 경험을 들어 보면, 논문작성법 시간에 담당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연구주제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논문작성법 책들을 몇 권 소개해주고, 그 중 몇 가지를 다룬다. 그리고는 학생들이 선택한 주제들을 최종결과물로 발전 시킬 수 있도록 지도해준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첫번째, 학생들은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학교에 입학하는 이유는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지 연구할 주제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내 경우만 해도 글쓰기 보다 연구주제를 찾는게 더 어렵다. 이번 학기에 고생한 이유 중 하나가 데살로니가전후서의 과제물로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서 그렇다. 주제와 범위를 선정한 이후에는 비교적 금방 끝냈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Rhetoric Center의 교정까지 반영해서 말이다. 요한복음은 '초막절'이냐 '목자기독론'이냐를 두고 고민해서 그렇지, 방향을 선정한 이후 실제로 작성을 시작하고는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학생의 연구주제선정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 논문작성법과 동시에 훈련되어야 할 능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주제를 찾다가 정작 논문작성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함정이 있다. 다행히 웨신대는 논문작성규정이 명확했고, 그 규칙에 따르면 되었다. 물론, 칼빈신학교는 튜라비안 메소드라고 해서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 Eighth Edition: Chicago Style for Students and Researchers』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정대로 배운 적은 없다.


두번째, 교수들은 학생의 연구주제에 대해 잘 모른다. 지금껏 논문작성법을 지도해준 교수들의 전공은 조직신학, 기독교교육, 역사신학이었다. 설령 자신의 분과라도 해도 전공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내 경우 전공과 관련된 글쓰기를 배우길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지도교수들은 학생들의 연구주제에 대해 평가하는게 아니고, 결과물이 얼마나 '틀'을 갖추었는지만 본다.


담당교수와 학생의 전공이 불일치하면, 학생들은 연구주제를 선별하는 능력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내 경우 졸업논문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도교수들의 안목 덕분이었다. 주제선정을 두고 상담할 때 가지치기를 잘해주신 덕분에 내 안목 역시 자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본 대안은 이렇다.


첫번째, 담당교수와 학생의 전공이 일치해야 한다. 이 부분은 학생의 주제선별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가령 성서학의 경우 담당교수의 전공이 구약이든 신약이든 상관 없이 주해를 중심으로 연구하도록 하면 된다. 어떤 본문이든 간에 실질적인 연구방법을 배울 수 있다.


두번째, 실습위주의 수업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주제선정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교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주제를 좁히세요"이다. 그래서 주제를 찾다가 제출기한이 다가오면 닥치는대로 쓴다. 그러면 교수들이 학생들의 글을 지도해 줄 시간은 없다. 주제선정에 진을 쏟다가 논문작성법이란 수업의 목적은 어디로 가버린다. 


이런 반복적인 실수를 피하려면, 실습 위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요새는 시청각 시설이 잘 갖추어서 있으므로 이 시설을 잘 이용하면 된다. 교수가 실제 글 한편을 화면에 띄우고, 오늘 가르쳐 줄 내용을 실제로 보여주면 된다. 가령, 각주처리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싶으면, 여러 사례들을 나열해 두고, 실제로 교정하면서 모범사례를 보여주면 된다. 너무 쉽다.


그리고 학생이 논문작성법에 익숙하다고 판단이 되면, 해당 과목을 제외 시켜주고 다른 과목을 수강하도록 해야 한다. 내 경우 영문으로 글을 써 본적이 없어서 기존 졸업논문을 번역하는데 시간을 보냈다만, 정말 하나도 배운게 없어서 열 받았었다. 혹시나 박사과정에서도 논문작성법을 수강하라고 하면...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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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와 교단의 관계]

제기 현재 재학 중인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는 CRC(Christian Reformed Church) 교단 산하에서 운영중인 직영신학교입니다. 교단 자체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교단 본부와 칼빈신학교가 위치한 그래드래피즈를 중심으로 미국 중북부와 캐나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교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1년 동안 목회학 석사(M. Div.) 과정 재학생들과 노회 활동 내역을 보면서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가 바로 신학교와 교단 간이 유기적 관계입니다.


신학교의 존재가치는 교단을 위한 사역자들을 배출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학교는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과정을 어디에서 마쳤느냐에 따라 출신을 선별하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 재수, 삼수를 하면서도 통합이나 합동에 들어가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출신 때문이겠죠.


칼빈신학교는 올해 가을학기 목회학 석사 과정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mentoring)'이라는 제도를 실행했습니다. 이 제도는 모든 신입생들마다 멘토를 지정해서, 그 멘토의 교회에서 실질적인 사역을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 룸메이트가 이 제도에 따라 주일마다 교회봉사를 하고 있고, 토요일에는 심방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신입생인지라 신학을 처음 접해서 어려움도 겪고 있고, 빡빡한 학사일정에 밤새우는 날도 종종 있지만, 교회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다소 힘들지만 사역자로서 훈련 받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제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칼빈신학교와 CRC 교단을 보며 감탄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학교와 교단 모두 외형을 키우는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따른 운영방안을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는 모습이 보일 뿐입니다. 즉, 본질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신학교와 교단이 서로 사역자들을 배출하는데 협력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은 참 암담합니다. 신학교와 교단 어디에서도 재학생들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대형교단이나 소형교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스스로 생존법을 찾아야했고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현 총신대학교 사태로 인해 한국신학교들이 변하길 소망해 봅니다. 말로만 '선지동산'이니 '우리의 목표는 목회자 배출'이니 떠들지 말고, 본질에 충실하는 신학교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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