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십 년도 더 지난듯싶은데 예전에 고대근동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A 교수님께 전자우편으로 포로기 문학에 관한 질의를 한 적이 있다. 몇 권의 책을 소개해 주시며 포로기 문학을 공부하려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 당시에는, 사실은 얼마 전까지도, 그분의 조언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포로기 신학에만 몰두한 건 아니지만, 대략 십 년 정도 관심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금껏 나는 "포로 이전", "포로기", "포로 후기"로 시기를 나누고 포로 시대에 집중해 왔다. 왜냐하면 포로기 신학의 발상이 포로기라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나는 포로기 당시에 수많은 변절자가 있었음에도 일부 신실한 자들이 견고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 왔다. 며칠 전 떠오른 신명기 사관과 역대기 사관, 언약의 관계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어제인가 그젠가 포로기 신학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비로소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중요성을 넌지시 깨닫게 되었다. 묵시문학에 관한 책 덕분이었던가.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포로기 신학은 예언자들이 선포한 회복의 말씀을 붙들고 포로 시대를 이겨낸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태동한 게 아니라, 이방 제국의 통치자에 의해 모국으로 귀환한 생존자들의 각성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에스라 3장 12절은 기록한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성전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었던 귀환 공동체의 몇몇 지도자들은 성전 재건을 재촉했다. 이 과정에서(혹은 이후에) 바벨론에서 귀환한 제사장 혹은 지도자 계층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언 문헌에 정통한 일부가 이국땅의 종교와 문화 등을 견주어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기를 재정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제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이스라엘의 생존을 고민해봤을 개연성이 있다. 성전파괴와 포로기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반면 그들을 지배했던 제국은 더 강력한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성전의 부재와 디아스포라의 존재는 국가라는 개념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를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것.

좀 더 나가서 다니엘을 통해 내가 던졌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신학 혹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그와 같이 살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이 해소되었다. 여전히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질문들이 산더미 같지만, 진일보할 수 있는 토대가 생긴 듯해서 속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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