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독서는 저자와 독자가 책이란 매개체로 간접적인 소통을 하는 행위이다. 저자는 독자를 향한 저술 목적이 있으며, 본인의 의도에 부합한 이해를 갖기를 희망한다. 때로는 독자의 반응을 저자의 저작물에 반영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자는 전달에 중점을 둔다.

지식 축적 과정에서 핵심 파악 능력이 중요하다.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독서는 저자가 저술을 통해 의도했을 독법을 배제하고, 독자의 일방적인 수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학계에서는 '독자반응비평'이라고 해서 저자의 의도보다 독자의 이해에 더 강조점을 두기도 하는데, 나는 여전히 대세는 저자의 의도를 중요하게 간주한다. 저자의 입장을 고려할 때, 독자반응비평은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내 입장이다. 혹여나 독서의 목적이 여가 선용이라면 별문제가 없겠으나, 지식 축적이나 활용에 있다면 큰 문제를 낳는다. 독자는 시간과 양이 아닌 질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또한 거대 담론이나 지엽적인 서술이 아닌 핵심 파악에 집중해야 한다. 각 문단의 핵심이 쌓여 책 한권을 꿰뚫게 된다. 국어 시간에 문단마다 핵심 주제를 찾는 훈련을 하는 이유가 있다.

상위 과정으로 올라갈수록 독서량은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당연히 정확한 이해는 필수이다. 소논문 수준의 과제를 해야 한다면, 최소 10권 이상의 책을 읽을 텐데, 책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다면 손쉽게 인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인용할 때 낭패를 본다. 실제로 학계에서 저자가 새로운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은 기존 해석의 결함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교수로 활동하고 있더라도 주요 논지를 잘 못 파악해서 다른 학자로부터 학술적으로 두들겨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강의마다 강사가 의도하는 방향이 있다. 수업 교재는 그 방향성에 가장 부합한 책이거나 서로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강의와 별도로 학생이 오랜 시간 고민해야 할 주제가 있다면, 강사는 서평이라는 과제를 부여하는데, 교수 입장에서 요약이나 서평은 학습자의 이해를 가늠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학원 과정까지 요약이나 서평 과제는 10쪽 내외로 주어진다. 요약이라도 1장 정도는 개인의 견해를 쓰도록 한다.

3년 정도 대안학교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북 포럼을 진행한 적이 있다. 1년 반 정도는 독서 토론으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글쓰기 훈련을 했었다. 그때 경험에 의하면, 요약이나 서평만으로 학생이 성실히 과제를 수행했는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의도대로 책을 읽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약과 서평이 좋은 훈련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초급 단계에서는 각 분야에 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책 한 권 소화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점차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소화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초반에는 직접 인용이 많겠지만, 점차 재진술(paraphrasing)과 간접 인용을 늘려야 한다. 학습자는 점차 요약 분량을 줄이는 훈련을 하면서 간접 인용도 줄이는 훈련도 해야 한다.

지난한 훈련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본에 속한다. 예를 들어 논문에서 연구사가 곧 요약이다. 중요도에 달려 있지만, 서론 단계에서는 몇 줄 정도로 압축해서 다룬다. 최소 소논문 하나, 최대 책 한 권 분량을 단 몇 줄로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저자 재량껏 분량을 조절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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