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독창성은 훈련으로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알고 있다. 독창성 계발을 위한 방법은 다양하지만, 신학 전공으로 이 주제를 접할 기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경우 논문 작성법이란 과목 이외에 독창성이란 주제를 다룬 수업은 없었다. 신학교가 교단을 모태로 한다는 특수성을 가져서 그런지, 교단과 교수의 입장을 얼마나 잘 계승/답습하느냐로 평가하는 분야가 신학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설령 독창성을 중요시해도 학습자가 습득해야 할 기초 지식이 방대해서 박사 과정 학생도 끊임없이 선행 연구와 씨름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이 인정하더라도,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문화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온다.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문화

웨신은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모태가 교단이 아니다. 게다가 대학원대학이라는 형태를 갖고 있어서,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생존을 위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성경 주해를 주력 분야로 내세웠고, 교수들은 교리나 특정 신학을 강조하지 않고 학생의 창의력을 권면하는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래도 교수진이 합동, 합신, 고신 등 보수 교단 출신이라 암묵적 동의라는 게 존재했다. 비록 교수와 학생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다 해도 논리적 설득력이 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고 기억한다).

 

최신 연구 방법론에 능숙한 교수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목회학 석사 과정에서 본문비평, 내러티브, 텍스트 언어학 등을 배운 덕에, 박사 과정 지원을 위한 연구 제안서를 준비할 때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지 당시에는 겁 없는 도전이라 고생을 꽤 했다. 최근 연구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읽다 보면, 가끔 신대원 시절 교재였거나 과제였던 자료를 다시 보게 된다. 당시에는 열심을 냈으나 교수들의 수준 높은 강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놓친 부분이 많았음을 깨닫고 있다.

 

문화라는 측면에서, 나는 특혜를 받았다고 인정해야 한다. 대다수가 그렇듯이, 나는 독창성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국 신대원 석사 과정 시절부터 평소 궁금증을 연구 주제로 발전시키기보다는, 글을 읽으면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주제를 연구 과제로 선택했었다. 간단히 말하면 평소 궁금한 게 없었다는 말이다. 더구나 애초에 성경 본문에 충실한 설교자가 되려고 공부에 매진했기에, 독창적인 사고보다는 바른 해석을 숙지하는 데 힘썼다. 강의나 글을 이해 못 하면 바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내 머리 탓을 하며 혼자 골몰해서 답에 도달하려고 애썼다. 옛말에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웨신에서 5년가량 공부하면서 그 문화에 젖어 한국 사회, 특히 교단 신학교의 현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만난 타 교단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내가 예외적인 환경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유학생들은 한결같이 연구 주제 선정과 자기주장을 힘겨워했다. 신학 분야에서는 보통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유학길에 오르는데, 교단 사역자가 되기 위해 3년 동안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한국 교육 자체가 주입식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소 19년!). 현지 생활 적응부터 쉽지 않은데 과목마다 교수가 "내 생각이 뭐냐?"고 물어대니 한인 유학생들은 벙찌게 된다. 교수의 질문은 학생에게 생각의 지평을 넓히도록 자극을 주지만, 이러한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한인 유학생은 맨땅에 헤딩하듯이 새로운 학습법을 익혀야 한다. 한국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들은 별 어려움 없이 대처했는데, 그들도 한국에서는 바닥부터 기어 올라와서 요령이 생긴 것일 뿐 처음부터 남다른 비법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만 해도 웨신에서 공부하는 5년 동안 매 학기 맨땅에 헤딩했다.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학교의 문화는 혜택인 동시에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렇다고 미국 유학 생활이 수월했냐고? 요령껏 대처했을 뿐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처음 알게 된 제도인데, 미국 학교에는 "independent study" 제도가 있다. 이와 관련해 Calvin College(현 Calvin University) 재학생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대학에도 해당 제도가 있다고 한다. 보통 4학년이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 준비로 선택하는데, 학점 이수가 쉽지 않아서 수업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이 제도의 혜택을 많이 봤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수업을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짐작건대 미흡한 영어 실력이 큰 몫을 했다. 교수의 말은 제아무리 집중해도 20%가량 들리는데, 나머지는 소리의 파장이 귀 주변에서 맴돌며 상상력을 자극할 뿐 당최 이해되지 않는다. 교수가 느닷없이 질문할까 긴장하다가 당황하며 반응한 적도 있다. 다행히 성적에 영향을 미칠 만한 실수를 한 적은 없다. 무엇보다 교수의 강의안을 외워서 시험을 치른 경험은 대학원 과정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했다. 전략상 미국 석사 학위 취득 후 영국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고 했기에, 샘플 페이퍼와 연구 제안서를 준비하려고 independent study를 선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연구 주제 선정부터 페이퍼 제출까지 전 과정을 자기 주도적으로 진행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만큼 성과가 컸다. 강의를 듣지 않으니 수업료가 아깝지 않냐고 하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이 있었는데, 단언컨대 독창성을 훈련하고 내 학술적 역량을 극대화하는데 independent study만큼 유용한 제도가 없다고 할 만큼 후회가 없다.

 

게리 버지(Gary M. Burge) 교수와 인연은 내게 중요한 경험이다. 버지 교수는 타고난 강연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사람이다. 학문적으로는 고 하워드 마샬(I. Howard Marshall) 박사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는 기독교계의 하버드로 불리는 휘튼대학(Wheaton College)에서 25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는 의도하지 않게 그와 다른 주장을 하는 페이퍼를 두 번이나 제출했는데, 매번 논리적 타당성이 있다면서 "A"를 주는 포용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격려와 강력한 추천서 덕분에 영국 대학교 박사 과정 진학 문의 과정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대부분의 학교에서 긍정적인 대답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영국 학교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이곳이 학생의 '독창성'을 높게 평가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입학 절차에서 의무로 수강해야 하는 과목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고, 지도 교수와 대화를 해봐도 학생에게 독창성을 요구한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문화의 힘은 크다. 독창성을 타고났다면 모를까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독창성을 훈련하기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문화는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학점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반강제적 요인이 있다고 쳐도 말이다. 혹여나 독창성을 훈련하고 싶으나 마땅한 환경을 갖추기 쉽지 않다면, 외부적으로 독창성을 자극하는 환경에 자주 노출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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