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사람은 천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면 편해진다. 얼마 되지 않는 선행 연구이지만, 죄다 사람은 천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근거도 여러 가지를 제시한다. 반면에 문자 그대로 인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 피곤해진다. 이 쪽 진영에 포함된 학자들은 근거 제시 자체를 안 한다. 오죽하면 내가 그들의 방법론이 그 근거라고 변호해줄 정도이다.
지난 글에 인간을 천사로 해석하는 경향을 '동일시의 오류'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천사의 외형을 설명하는 87:2(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이 천사 집단은 사람(men)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색상은 '희다'(white).
동물묵시록에서 짐승의 종류와 색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담의 자손을 예로 들어 보겠다. 아담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다. 하나는 '검정'으로 가인을 지칭하고, 다른 하나는 '빨강'으로 아벨을 지칭한다(85:3). 검은 송아지가 붉은 송아지를 죽인다(85:4). 여기서 우리는 색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검정'은 죄악된 속성을 의미하고, '빨강'으로 죽음을 가리킨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새로운 자녀가 출생하는데, 창세기에서 그의 이름은 '셋'이며, 그는 흰 황소이다. '흰색'은 순수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천사에게 '희다'라는 속성을 부여한 의미는 그들이 천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물묵시록에서 천사는 반복적으로 '흰 사람들'(white men)으로 등장한다. 타락한 천사들은 점차 짐승의 무리를 일꾼다고 묘사되어 있음을 명심하라.
반대로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became a man’과 ‘had become a man’라는 문구가 사용하지만, 그들의 외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희다'라는 단어에서 이미 사람과 천사의 구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노아와 모세의 변형 자체가 그 두 인물의 남다른 위치를 드러내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어떠한 묘사도 더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존재와 사람의 외형을 한 존재는 동일시될 수 없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수많은 해석자들이 천사의 외형에서 'man/men'에 집착하고,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man/men'을 천사로 해석한다.
심하게는 those first seven white men(90:21–22)이라고 해서 명백하게 천사를 지칭하는 본문을 모세의 변형과 연결시킨다(James VanderKam and Dulcinea Boesenberg).
나로서는 노아와 모세의 변형을 천사라고 주장해도 된다. 내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이 주장이 대세라서 내가 이 주장을 따라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천사가 아니라는 근거가 자꾸 발견된다. 그것도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다. 다만 내가 열폭하는 이유는 명백한 근거 없이 주장을 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학계에서 손꼽히는 대가라는 사람들 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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