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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은 수호신(guardians of nations)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원론적 세계관과 70 목자의 등장 등 수호신 이론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미가엘이 이스라엘의 수호신이었다는 주장은 보류되어야 한다. 내가 볼 때, 동물묵시록의 저자는 수호신 신앙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들을 신으로 보지 않고 야웨가 하늘의 주인이며 이스라엘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천사 서기관이 70 목자의 행동을 살피며, 이스라엘의 과도한 피해에 개입해 마치 수호신처럼 행동하지만, 그마저 서기관의 직무에 지나지 않는다.
더 큰 고민은 70 목자의 정체로 추정되는 수호신의 기원이다. 내 관찰에 의하면, 동물묵시록의 저자는 그들의 기원을 서술하지 않는다. Nickelsburg는 본문에 그들의 존재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결단코 없다고 주장한다.
70 목자의 정체와 수호신에 관하여 더 많은 말들을 할 수 있겠지만, 본문의 의도대로 그들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 기원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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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H. Charles가 제시하는 70 목자가 사람이 아닌 천사인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1) the seventy shepherds exist contemporaneously, and are summoned together before the Lord of the sheep to receive their commission, 89:59. This could not be said of either native or Gentile rulers. (2) The shepherds are appointed to protect the sheep, 89:75, and to allow only a limited portion of them to be destroyed by the Gentiles. This could not be said of heathen rulers. (3) Jews and Gentiles and their kings also are alike symbolized by animals. Hence the shepherds cannot symbolize men. If not men, they are angels. (4) In the earlier history God was the true shepherd of Israel, but on its apostasy He withdrew from it and committed its pasturing to seventy of His angels. With the growing transcendence of God, His place was naturally taken by angels. (5) The angel who records the doings of the seventy shepherds is simply named ‘another’, 89:61, in connexion with them, and so naturally belongs to the same category. (6) In the last judgement they are classed with the fallen angels, 90:21–25. (7) God speaks directly to the shepherds and not through the medium of angels as elsewhere in the book. The idea of the seventy shepherds is used by the author to explain some pressing difficulties in Israel's history. 출처는 The Book of Enoch, 200.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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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H. Charles 는 70 목자가 열국의 수호신들이라는 견해는 거부하지만, 천사 서기관은 이스라엘의 수호 천사라고 주장한다.
Charles는 양의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70 목자에게 임무를 위임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천사 중 하나인 천사 서기관이 수호 천사 역할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나는 천사 서기관이 수호 천사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70 목자의 역할에 대한 그의 견해도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호신에 관한 그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다는 비판을 가할 수 있다. 이방 국가에는 수호신이 없는데, 이스라엘에는 수호 천사가 있다? 차라리 Charles가 수호신 이론을 수용했더라면, 그의 주장에 일관성이라도 생긴다.
이외에 100여 년 전에 예레미야의 70년 포로 예언을 토대로 다니엘의 네 왕국론이 나왔으며, 동물묵시록이 다니엘의 예언을 적용했다는 견해가 통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Charles는 동물묵시록의 시대 구분에 관한 본인의 해석에 근거해, 다니엘의 네 왕국론을 수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의 시대 구분을 수용하는 후대 연구자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겠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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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적 존재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에 관해서는 채영삼의 주장을 살펴보겠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세 가지이다(Chae, Jesus as the Eschatological Davidic Shepherd, 104). 첫 번째, 목자는 이방 세력을 가리키는 맹수가 아니며, 계층 구조에서 열방을 넘어서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90:3는 평행 구조이다. 세 번째, “양의 주인”(the Lord of the sheep)은 70 목자의 활동을 보고할 ‘또다른 목자 그룹’(another group of the shepherds, 89:61)을 부르신다. 내가 볼 때 이 주장은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하다. 첫 번째, 목자의 위치가 남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천상적 존재로 규정할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두 번째, 90:3이 평행 구조라면 이방 세력과 70 목자는 동일하게 지상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70 목자의 통치가 역사적 사건이라고 인정한다면, 그들의 정체가 천상적 존재가 될 수 없다. 세 번째, 70 목자와 관찰자는 서로 다른 영역에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덧붙여, 본문은 그 관찰자를 목자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다른 자”(another one)로 불리며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은 곁들여져 있지 않다. 앞으로 다루겠지만, 나는 70 목자는 지상적 존재이고 관찰자는 천상적 존재로 간주한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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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천사가 등장하는 구절을 추적해 보았다. 대다수가 천사라고 주장하는 70 목자가 나오는 구절도 살펴보았다. 잠정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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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0–27은 최후 심판을 다룬다. 심판의 대상은 타락한 천사(90:21–24), 70 목자(90:22–25), 눈먼 양 떼(90:26–27)이다. Nickelsburg는 심판이 벌어지는 장소는 하늘 법정이 아니라 ‘기쁨의 땅’(the pleasant land, 90:20; cf. 89:40)이라고 지적한다(1 Enoch, 403). 세 집단 모두 심판을 통해 유죄가 선고되고 무저갱에 던져진다(90:24–26). 최후 심판은 지상 세계에서 진행되므로, Nickelsburg의 주장 이후 대다수가 따르고 있는, 89:59–64의 공간이 하늘 법정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70 목자의 소환과 심판은 모두 지상 세계에서 이뤄진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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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동물로 비유한다는 특징이고, 또다른 하나는 묵시록이라는 장르적 특성이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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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ler는 노아의 변형을 설명하며, "동물묵시록에서 모든 인간은 천사를 나타내기 때문에, 동물의 인간화는 반드시 그 인물이 천사가 되는 것을 지칭해 한다."고 진술하고 모세의 변형이 나오는 89:36을 보라고 썼다. 이 무슨 내부순환논리인가?
또한 "에녹(87:3)과 엘리야(89:52) 역시 낙원(paradise)에 거하였으므로 실제로 천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천사와 같은 지위를 얻었다"고 서술하고 있다(A Commentary o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259).
앞서 내가 "동물묵시록에 나타난 계시와 비밀"란 글에서 주장했듯이, 노아와 모세의 변형 그리고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은 모두 '계시'와 '비밀'이란 주제로 읽어야 한다. 내가 볼때 Tiller는 본문 자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고, 거대담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현재 글을 열심히 쓰는 중이며, 지도 교수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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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ler는 "동물이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대표하듯이, 사람은 천사를 대표한다"라는 문장에 각주를 달아서 에녹 1서 17:1을 보라고 썼다(A Commentary o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245 n.2).
And they took me (and) led (me) away to a certain place in which those who were there were like a flaming fire; whenever they wished, they appeared as human beings. (1 Enoch 17:1)
'활활 타오르는 불'(a flaming fire)은 천사의 외형적 특성으로 보인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천사는 자신의 외형을 사람처럼 보이도록 했다. 사람만한 활활 타오르는 불이 에녹을 안고 혹은 에녹의 팔을 잡고 공중 비행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중요한 사실은 천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 문장은 Tiller의 의도대로 사람이 천사라는 의미로 직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문장을 보면 천상의 외형을 서술한 87:2를 이해하게 된다.
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 (1 Enoch 87:2)
이 문장에서 천사들은 흰 사람들의 외형을 갖고 있다. 여기서 '희다'는 단순히 피부색이 아니라 천상적 특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다른 해석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인종 차별에 민감한 서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고 본다.
하나님의 외형에 대한 유일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his appearance was majestic and fearful and mighty, (1 Enoch 89:30)
이러한 묘사로 하나님의 외형을 추측할 수 없다. 다만 지상에서 표현할 수 없는 형태를 갖고 있었다는 정도만 추정할 수 있다.
천사의 '활활 타오르는 불' 같은 모습은 충분히 하나님의 외형만큼이나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다. 천사의 변신을 언급한 이유가 되겠다.
출애굽기 3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에녹 1서의 저자가 성경을 인용하지는 않았겠지만, 기원전 2세기 무렵에는 천상적 존재를 불꽃과 연결짓는 관행이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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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사람은 천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면 편해진다. 얼마 되지 않는 선행 연구이지만, 죄다 사람은 천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근거도 여러 가지를 제시한다. 반면에 문자 그대로 인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 피곤해진다. 이 쪽 진영에 포함된 학자들은 근거 제시 자체를 안 한다. 오죽하면 내가 그들의 방법론이 그 근거라고 변호해줄 정도이다. 지난 글에 인간을 천사로 해석하는 경향을 '동일시의 오류'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천사의 외형을 설명하는 87:2(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이 천사 집단은 사람(men)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색상은 '희다'(white). 동물묵시록에서 짐승의 종류와 색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담의 자손을 예로 들어 보겠다. 아담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다. 하나는 '검정'으로 가인을 지칭하고, 다른 하나는 '빨강'으로 아벨을 지칭한다(85:3). 검은 송아지가 붉은 송아지를 죽인다(85:4). 여기서 우리는 색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검정'은 죄악된 속성을 의미하고, '빨강'으로 죽음을 가리킨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새로운 자녀가 출생하는데, 창세기에서 그의 이름은 '셋'이며, 그는 흰 황소이다. '흰색'은 순수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천사에게 '희다'라는 속성을 부여한 의미는 그들이 천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물묵시록에서 천사는 반복적으로 '흰 사람들'(white men)으로 등장한다. 타락한 천사들은 점차 짐승의 무리를 일꾼다고 묘사되어 있음을 명심하라. 반대로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became a man’과 ‘had become a man’라는 문구가 사용하지만, 그들의 외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희다'라는 단어에서 이미 사람과 천사의 구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노아와 모세의 변형 자체가 그 두 인물의 남다른 위치를 드러내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어떠한 묘사도 더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존재와 사람의 외형을 한 존재는 동일시될 수 없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수많은 해석자들이 천사의 외형에서 'man/men'에 집착하고,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man/men'을 천사로 해석한다. 심하게는 those first seven white men(90:21–22)이라고 해서 명백하게 천사를 지칭하는 본문을 모세의 변형과 연결시킨다(James VanderKam and Dulcinea Boesenberg). 나로서는 노아와 모세의 변형을 천사라고 주장해도 된다. 내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이 주장이 대세라서 내가 이 주장을 따라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천사가 아니라는 근거가 자꾸 발견된다. 그것도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다. 다만 내가 열폭하는 이유는 명백한 근거 없이 주장을 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학계에서 손꼽히는 대가라는 사람들 조차도 말이다. '연구주제 > 에녹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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