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아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세대 차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데, 같은 세대 군에 있어도 사고방식이 꽤 차이나는 경우가 있다.
요한복음이 통용되던 1세기는, 지금만큼은 아니겠지만,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서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요한복음의 청중과 독자들은 서로 다른 성장 배경과 신앙 등을 가진 개개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텐데, 요한의 입장에서는 최대 교집합을 토대로 자신의 사상을 정리했을 개연성이 높다. 나는 요한복음의 유대적 특성들을 근거로 요한 공동체 혹은 요한복음의 대상으로 설정된 집단은 유대교에 익숙한 희심한 기독교인들로 간주한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유대 메시아 사상은 기존 문법과 변형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성취되었다. 그래서 요한은 오늘 날 우리가 분류하는 구약과 당시 의례였던 절기 등을 최대한 활용하되, 그 전통들을 자신이 이해한 구속사에 근거해 적절히 변형해 사용한다. 그러므로 유대 전통과 요한의 사용 방식 사이에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발견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인간의 인지 능력은 항상 한계에 부딪힌다. 이미 예수의 공생애 시절에 그러했고, 그의 구속 사역 이후에도 여전히 그러한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같은 한계에도 요한은 예수의 생애를 모두 기록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남겨두었다(20:30-31; 21:24-25).
이러한 현실에서, 더구나 2000년이라는 세월 사이에 존재하는 각종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석자의 한계를 인정하며 겸손하게 본문을 해석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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