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생활 3년에, 현재 영국 유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영미권에서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수학 국가와 기간을 보면 영어를 꽤 잘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어민들과 대화할 때, 특히 상대방이 내 말을 못 알아듣거나 내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때 느끼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나로서는 신기하게도, 영어에 가장 까다러워야 할 교수들은 정작 나에게 후한 평가를 준다는 사실이다.
Calvin Seminary 시절 교수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independent study로 학점을 이수해도 그들은 점수를 후하게 주었으며, 내가 추천서를 요청할 때마다 지원 학교를 가리지 않고 다 써주었다. 현재 재학 중인 UStA에서는 지도 교수가 내 영어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작년 Probationary Review에서 지도 교수 외 다른 심사자도 내 영어에 대해서 아무런 비판이 없었다) 매주 교회에서 인사만 해도, 세미나 때 말수가 적어도 서운한 내색이 전혀 없다. 나를 2년 정도 지켜보고 있고 지금은 아직도 Literature Review를 진행하고 있는데, 내가 준비되었을 때 제출하라고 할 정도로 나보다 더 여유롭다. 내 지도 교수를 아는 사람들은 잘 알지만, 그의 웃는 모습과 다르게 평가는 아주 냉정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학생을 엄선해 선발하기로도 유명하다. 내가 그의 프로필을 2년 동안 지켜보니 박사 과정 학생을 4명 넘게 지도한 적이 없다. 현재 4명을 지도하는데, 2명은 본인이 선발한 학생들이고, 다른 2명은 Second Supervisor로 지도한다. 그런 그가 왜 나에게는 좋은 평가를 주고 여유롭게 기다려주는지 내가 궁금할 정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 경쟁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분명 나는 영어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객관적인 평가 자료인 페이퍼에서 영어에 관한 비판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영어 이외에 요소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구글 번역기와 grammarly의 성능 향상?) 내가 교수들에게 제출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페이퍼들을 생각해보면, 그 글들은 모두 선행연구의 대세를 따르지 않고 내 나름의 분석과 주장을 담고 있다. 지금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내 구상과 비슷한 선행연구를 보지 못했다. 나는 여기에 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선행연구를 최대한 많이 읽고 분석하면 내 나름의 견해가 생긴다. 의도하지는 않지만 나는 소수 견해에 가까운 입장에 자주 서게 된다. 아니면 아예 없던 주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교수들은 여기에 흥미를 느끼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 구상을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내곤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해 보인다. 교수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발상을 들고 오는 학생들은 제법 있지만, 막상 글로 써오는 학생들은 드문 모양이다.
교수들의 평가와 내 경험을 버무려 보면, 확실히 나는 영어 이외의 요소로 현재까지 살아남고 있다. 내가 영어를 남들만큼 한다면 내가 영어를 잘하니까 영미권 학교에서 살아남는다고 말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내가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언어 이외의 경쟁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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