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개론서는 선행 연구를 학계 추세를 반영하여 대세의 입장을 견지하되, 중요한 소수의 주장을 소개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을 잡아 중도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개론서는 말 그대로 특정 주제를 전반적으로 소개해야 하는 목적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저자 고유의 관점이 이질감 없이 쏟아내는 방향을 택할 수 있다는 견해에 무게가 조금씩 옮겨지고 있다. 만약 내가 요한복음 개론서를 집필한다면, 내가 견지했던 개론서의 방향이 전자가 아닌 후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학위 논문을 위해 선행 연구를 섭렵하고 약술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난관이 있고, 나만의 견해가 농축되어 가면서 점점 선행 연구와 차별화되고 있어서, 두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는 더 어려운 과제가 되어 가고 있다. 아마도 내 관점에 일관성을 더하는 작업이 더 쉬워 보인다.
이전에는 선행 연구를 다루지 않고, 저자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개론서를 못마땅히 여겼다. 하지만 막상 내 입장에서 고려해 보니 그 저자와 출판사 관계자들이 많이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당장 박사 학위 논문에 매여 있는 입장이지만, 혹여나 개론서를 써야 할 기회가 온다면 꽤 긴 집필 기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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