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인간의 죄와 예수의 죽음을 예수의 속죄와 제사장직으로 가장 잘 진술한 성경 본문으로는 히브리서가 꼽힌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에 비하면 덜 주목을 받지만, 예수의 속죄와 제사장직을 히브리서보다 더 설명하는 본문은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각 성경 본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히브리서적 관점으로 예수의 속죄를 설명하고자 할 때 빚어진다. 가령 내 박사 학위 논문의 연구 본문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이고, 연구 주제는 선한 목자의 죽음이다.

선행 연구를 분석하다 보면 선한 목자의 죽음을 속죄로 설명하고, 간혹 예수의 제사장직으로 풀이한다. 내 관점에 의하면, 이러한 해석은 요한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 빈번한 사례는 세례 요한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는 선포에 대한 해석에서 나타난다. 해석자 대부분이 이 구절을 속죄로 해석하며, 일부는 예수의 제사장직을 언급한다. 내 관점에 의하면, 이러한 해석은 요한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기존 해석이 요한복음의 의도가 아닌 이유와 진정한 요한의 의도를 밝혀야 할 의무가 내게 지워진다는 사실이다.

내 지도 교수는 히브리서 전공자이고, 속죄 전문가이다. 내가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후 나와 지도 교수 사이의 이견을 좁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학위 논문을 적당히 전개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내가 학위 논문 원고로 지도 교수를 설득하여 동의를 얻는다면, 나로서는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로부터 요한복음의 독특성을 도출한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 반대로 내가 지도 교수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다면, 나는 학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내 역량의 문제이지만, 지도 교수는 나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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