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반제국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5.02.21 필론의 반제국주의?
  2. 2016.08.11 친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내 생각
  3. 2016.08.02 반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반대

필론은 이집트와 로마 제국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두 제국의 권력과 부요 등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반제국주의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필론은 『아벨과 카인의 제사』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파라오를 대면하는 장면에서 둘 사이를 대조한다 (Philo. Sacr.48–49).

Thus Jacob’s sons, trained under an all-wise father, may go down into Egypt the passion-loving body, and meet with Pharaoh the disperser of the good, who deems himself the sovereign of the animal and the composite; yet they will not be dazzled by his lavish pomp and splendour, but will confess that they are shepherds of sheep, and not only they, but their fathers also (Gen. xlvii. 3). 

And indeed no one could in power and sovereignty find so lofty a cause for boasting as these can in their office as shepherds. Surely to those who can reason it is a prouder task than kingship to have the strength to rule, as a king in a city or country, over the body and the senses and the belly, and the pleasures whose seat is below the belly, and the other passions and the tongue and in general all our compound being—aye and to rule them with vigour and with a right strong yet ever-gentle hand. For like the charioteer he must sometimes give the rein to his team, sometimes pull them in and draw them back, when they rush too wildly in unreined career towards the world of external things.

(구글 번역)
따라서 전지전능한 아버지 아래에서 훈련받은 야곱의 아들들은 열정을 사랑하는 몸으로 이집트로 내려가 동물과 합성물의 주권자라고 생각하는 선을 분산시키는 파라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호사스러운 화려함과 화려함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양치기임을 자백할 것이요, 자기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도 양치기임을 자백할 것이니라(창 47:3).

그리고 실제로 권력과 주권에서 목자로서의 직책에서 이 사람들이 자랑할 만한 고상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왕권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이며, 도시나 나라의 왕으로서 몸과 감각과 배와 배 아래에 자리 잡은 쾌락과 다른 정욕과 혀와 일반적으로 우리의 모든 복합적 존재를 다스릴 힘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강하고 강하면서도 항상 부드러운 손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차꾼처럼 그는 때때로 자신의 팀에 고삐를 넘겨야 하고, 때때로 그들을 끌어당기고 다시 끌어내야 합니다. 그들이 외부 사물의 세계를 향해 너무 거칠게 돌진할 때 말입니다.


이와 유사한 대조는 요셉 일화에 잘 서술되어 있다(참조. Philo. Agr.14; Philo. Post.96). 요셉 일화에서는 이집트는 거짓 부요를 추구하는 곳이요 야곱의 아들들이 영원히 거주할 수 없는 곳이라 단언한다.

필론은 로마 제국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표출한다 (Philo. Sacr.45). 

After hearing this the mind turns away from pleasure and cleaves to virtue, for it apprehends her loveliness, so pure, so simple, so holy to look upon. Then too it becomes a shepherd of the sheep, one who guides the chariot and controls the helm of the unreasoning faculties of the soul, who does not suffer them to be swept away in disorder and discord, without a master or a guide, lest their unbridled instincts come to perdition, when they lack the protection and control of a father’s hand, and help is far away.

(구글 번역)
이것을 듣고 나서 마음은 쾌락에서 벗어나 덕에 집착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아름다움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거룩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또한 양치기가 되어, 전차를 인도하고 영혼의 비이성적인 능력의 키를 조정하며, 그들이 주인이나 안내자 없이 무질서와 불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합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손의 보호와 통제가 부족하고 도움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의 억제되지 않은 본능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말입니다.


필론은 호메로스의 '백성의 목자'(shepherd of the people) 칭호를 알고 있다. 필론의 언급은 이 칭호가 당시 로마 목자-왕 사상에서 범용적이었다는 증거이다. 필론은 이 칭호에서 왕권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즉 그는 로마 황제의 행실을 보면, 황제가 목자의 책임보다는 왕의 특혜에 젖어 탐욕에 길들어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그는 로마 황제 가이우스를 알현했을 때 그의 무절제함을 목격한 적이 있다 (Philo.Legat.44).

결론적으로, 필론은 이집트와 로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노출한다. 그는 두 제국의 왕권과 부요에 대한 무절제함을 구전과 목격을 통해 알고 있고, 반제국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유목 생활을 이상적으로 그린다.

관련글: 필론의 목자-양 유비와 목축 사회 이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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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내 생각>


요새 반제국주의 관점으로 본문을 해석하는 경향의 글들을 접해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반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반대>라는 짧은 글을 남겼었다. 요점만 쓴거라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김세현 교수님이 댓글로 생각의 물꼬를 터뜨릴만한 질문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질문은 그대로 옮겼다.


질문: 성경언어에는 반제국주의적 경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친제국주의 언어도 있지 않을까요? 요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그 시대의 언어로 소통했기에 오늘의 관점에서 반제국주의, 친제국주의 등의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여 성경저자(바울)이 어떻게 줄타기하듯 자신의 글을 기록했는지를 좀 더 심도있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항적 언어와 수용적 언어가 미묘라게 얽혀있어 보입니다. 그 부분을 좀 더 세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바울이 승화시켜 자신의 목회적 관점을 가지고 편지를 썼는지를 말입니다.


우선, 친제국주의 관점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앞 글에서도 사도 바울을 예로 들었으므로, 이번에도 동일한 인물로 적용하는게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사도 바울의 글을 보면 친제국주의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다. 가령 로마 시민권이 그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바울은 유대인이자 로마시민권자였다. 그는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에 처했을 때, 로마시민권자의 권한을 사용하여 로마 황제에게 심문을 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넘겨졌다면, 그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신성모독죄로 사형 당했을 거다. 하지만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선교여행을 계획했던 바울에게 로마 황제의 심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로마시민권자의 권리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했다. 분명 이 지점에서 친제국주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제국주의 혹은 로마제국에 우호적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내가 볼 때 바울에게 로마시민권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던 도구 가운데 하나다. 그의 글을 보면 자신이 로마시민권자라고 자랑한 적이 없다. 동족으로부터 죽임 당할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찬스로 사용했을 뿐이다. 반면 자천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신음을 앓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자신은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며 가멜리엘의 제자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자랑한 적이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모든 것이 헛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때 그는 자신이 로마시민권자인 것 보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더 자랑스러워했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다시말해, 바울에게 로마시민권은 수단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즉, 친제국주의적 태도는 바울의 선교전략을 위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친제국주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경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반제국주의와 친제국주의 관점 모두 반대한다. 두 관점 모두 사도 바울의 성향에서 비롯된 해석적 틀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둘 중 하나도 전제하지 않는다. 반제국주의는 성도의 불순종에 대한 훈계와 권면에서 드러나는 부차적인 요소이며, 친제국주의는 바울 자신의 사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나는 선교사이자 목회자인 바울이 짊어지었던 주제는 복음증거와 그리스도인의 완전(혹은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의 글은 대부분 교인이 수신자였기에 당연히 후자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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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반대>


반제국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울과 반제국주의"이다. 이 관점은 바울은 당시 패권국이었던 로마제국에 반대하여 기독교사상을 전개했다고 가정하고 본문을 해석한다. 황제숭배의 경우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일부 총독들에 의해 지역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유일신 사상에 위배되므로 마땅히 반대해야 했다. 바울의 반제국주의가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바울의 반제국주의적 관점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바울의 편지는 수신자들에 대한 관심이 동기가 되어 기록되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복음전도을 위해 보냈지만, 여러 신앙공동체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바울의 조언은 불순종에 대한 책망과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한 권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불순종과 순종이 중심이다. 황제숭배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라는 명령에 대한 불순종의 문제이다. 순종을 권면하다 보니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가르친 셈이다. 즉, 바울의 목적은 권면에 있었으나, 그에 대한 결과로 반제국주의로 나타나는 것이지, 애당초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반제국주의 관점으로 보는 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바울의 저의를 무시하고, 반제국주의에 강조점을 둔다. 바울은 애초에 반제국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바울은 이념적 반대에 우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선교자로서 목회자로서 훈계한다. 그의 관심은 신앙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있다. 이러한 이해 때문에 나는 반제국주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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