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반제국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8.11 친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내 생각
  2. 2016.08.02 반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반대

<친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내 생각>


요새 반제국주의 관점으로 본문을 해석하는 경향의 글들을 접해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반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반대>라는 짧은 글을 남겼었다. 요점만 쓴거라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김세현 교수님이 댓글로 생각의 물꼬를 터뜨릴만한 질문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질문은 그대로 옮겼다.


질문: 성경언어에는 반제국주의적 경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친제국주의 언어도 있지 않을까요? 요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그 시대의 언어로 소통했기에 오늘의 관점에서 반제국주의, 친제국주의 등의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여 성경저자(바울)이 어떻게 줄타기하듯 자신의 글을 기록했는지를 좀 더 심도있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항적 언어와 수용적 언어가 미묘라게 얽혀있어 보입니다. 그 부분을 좀 더 세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바울이 승화시켜 자신의 목회적 관점을 가지고 편지를 썼는지를 말입니다.


우선, 친제국주의 관점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앞 글에서도 사도 바울을 예로 들었으므로, 이번에도 동일한 인물로 적용하는게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사도 바울의 글을 보면 친제국주의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다. 가령 로마 시민권이 그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바울은 유대인이자 로마시민권자였다. 그는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에 처했을 때, 로마시민권자의 권한을 사용하여 로마 황제에게 심문을 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넘겨졌다면, 그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신성모독죄로 사형 당했을 거다. 하지만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선교여행을 계획했던 바울에게 로마 황제의 심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로마시민권자의 권리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했다. 분명 이 지점에서 친제국주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제국주의 혹은 로마제국에 우호적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내가 볼 때 바울에게 로마시민권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던 도구 가운데 하나다. 그의 글을 보면 자신이 로마시민권자라고 자랑한 적이 없다. 동족으로부터 죽임 당할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찬스로 사용했을 뿐이다. 반면 자천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신음을 앓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자신은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며 가멜리엘의 제자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자랑한 적이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모든 것이 헛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때 그는 자신이 로마시민권자인 것 보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더 자랑스러워했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다시말해, 바울에게 로마시민권은 수단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즉, 친제국주의적 태도는 바울의 선교전략을 위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친제국주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경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반제국주의와 친제국주의 관점 모두 반대한다. 두 관점 모두 사도 바울의 성향에서 비롯된 해석적 틀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둘 중 하나도 전제하지 않는다. 반제국주의는 성도의 불순종에 대한 훈계와 권면에서 드러나는 부차적인 요소이며, 친제국주의는 바울 자신의 사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나는 선교사이자 목회자인 바울이 짊어지었던 주제는 복음증거와 그리스도인의 완전(혹은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의 글은 대부분 교인이 수신자였기에 당연히 후자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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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국주의 관점에 대한 반대>


반제국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울과 반제국주의"이다. 이 관점은 바울은 당시 패권국이었던 로마제국에 반대하여 기독교사상을 전개했다고 가정하고 본문을 해석한다. 황제숭배의 경우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일부 총독들에 의해 지역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유일신 사상에 위배되므로 마땅히 반대해야 했다. 바울의 반제국주의가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바울의 반제국주의적 관점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바울의 편지는 수신자들에 대한 관심이 동기가 되어 기록되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복음전도을 위해 보냈지만, 여러 신앙공동체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바울의 조언은 불순종에 대한 책망과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한 권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불순종과 순종이 중심이다. 황제숭배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라는 명령에 대한 불순종의 문제이다. 순종을 권면하다 보니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가르친 셈이다. 즉, 바울의 목적은 권면에 있었으나, 그에 대한 결과로 반제국주의로 나타나는 것이지, 애당초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반제국주의 관점으로 보는 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바울의 저의를 무시하고, 반제국주의에 강조점을 둔다. 바울은 애초에 반제국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바울은 이념적 반대에 우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선교자로서 목회자로서 훈계한다. 그의 관심은 신앙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있다. 이러한 이해 때문에 나는 반제국주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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