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학문의 객관성을 위해 고대 근동, 구약성경, 제2성전기 문헌, 그리스-로마 문헌을 포괄한 배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내 판단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독자적인 위치에 있다.

그동안 수많은 주장이 제기되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론은 예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복음이야말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가령, 예수의 죽음을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과 비교하지만, 엄밀히 말해 누구도 고난받는 종의 정체를 알 수 없으며, 그가 메시아사상과 연관이 있던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사야 본문은 이사야 자신도 종의 정체를 잘 몰랐다고 고백한다. 후대에 사도들의 고백에 의해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과 예수를 연결하는 해석이 정당화되고 있으나, 이 같은 해석은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설명하려는 시도의 일부이며, 이사야서의 본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혹은, 그리스-로마 배경에서 고귀한 죽음과 예수의 죽음을 연결하지만,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같은 부류의 고귀한 죽음은 없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료 분석이 요구되지만, 지금껏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히브리 전통이든 그리스-로마 전통이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견줄 만한 사례는 없다.

박사 학위라는 자격 취득과 학문이라는 틀 안에서 활동해야 하는 학자로 훈련받고 있는 자로서 배경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을 뿐, 더 많은 시간을 성경 본문 해석에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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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Reading the Lamb of God (Jn 1:29) as a Johannine Christological Title"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마쳤다. 이번 발표는 설계 자체를 화상 회의와 녹화 기술을 접목해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접속해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발표자는 Presenter Backstage는 시간을 통해 미리 발표 준비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나 진행 방식 등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요한복음 1장 29절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 관한 토론은 대체로 어린 양의 정체에 이목이 쏠려 있다. 이미 학계에서 이런 논의는 만족스러운 설명에 이르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요한복음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한복음 전체의 흐름에서 예수의 죽음을 검토하고, 어린 양에 관한 논의를 정체에서 요한의 왕권 사상, 더 정확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에 집중하자고 주장한다.

다음 발표는 6월에 예정되어 있고, 6~8월은 발표 준비와 참여로 바쁠 예정이다. 당분간 발표 준비와 잠시 미뤄둔 논문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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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학기는 "Readings in Intertextuality"라는 제목으로 Doctoral Seminar가 진행되고 있다. 작년 가을 학기부터 "기호학과 상호본문성"이라는 주제로 연계된 세미나이다. 작년에 내가 한국에 두 달 가량 가 있었고, 이번 봄학기는 논문 작업과 학회 발표에 집중하느라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지난주 Dr. Stefan Alkier가 본교 NT Research Seminar에서 발표하고 doctoral Seminar에 특별 손님으로 참석해서 두 모임에 모두 참석했다. 오늘은 어제 지도 교수 면담에서 doctoral Seminar를 언급해서 참석했다.

Dr. Stefan Alkier는 독일 학자로 Goethe-Universität에서 신약과 초기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Dr. Richard B. Hays와 공동 집필 작업을 여럿 진행했고, 지금은 그의 제자인 Dr. David M. Moffitt과 협업을 하고 있다.

이날은 특별히 저녁 식사를 하며 자유로운 대화 시간을 가졌는데, Dr. Alkier과 Dr. Moffitt의 돈독한 관계로 가질 수 있는 특혜였다. Dr. Alkier는 독일 학자로, 독일 학계와 교회가 가진 한계성을 직시하고 영미권 학자와 대화하며 자신의 학문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날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Dr. Moffitt의 학자로서의 정체성이다. Dr. Moffitt은 자신을 신학자로 규정하고 있었고, 이와 관한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내가 가진 생각과 상당 부분 통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오늘은 "Structuralism versus Hermeneutics"와 "Literary Allusion"을 다루었다. 나는 성경 해석에서 유독 "교차대구법"(chiasm)과 "평행법"(parallelism)을 강조하는 분석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같은 해석은 구조와 핵심 단어에 대한 강조에 도움이 되지만, 더 큰 의미를 축소한다는 한계가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Dr. Moffitt이 성서학 상호본문성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Dr. Hays의 제자이고, 여전히 이 방법론을 가르치지만, 중립적 입장을 취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상호본문성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나를 포함해 그의 지도를 받고 있는데, 상호본문성에 관해 대화할 때마다 그의 입장은 한결 같다.

또한 그는 세미나의 목적이 학생들이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미나가 단순히 지식을 얻는다거나 논문 작업에 도움을 얻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학생은 자신의 연구 주제에 갇히지 않고, 열린 자세로 지적 탐구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의 취지에 동의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빡빡한 일정으로 인한 현실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음.

다음 세미나를 끝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데, 나는 학회 발표와 논문 작업으로 인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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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교수 면담

끄적 2024. 4. 3. 06:36

오늘 오전에 지도 교수를 만났다. 조만간 실시될 연례 평가(Annual Review)를 위해 내 내년 계획을 공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도 교수의 편의를 위해 2023~2024년 활동 명세와 함께 현 작업 중인 "The History of Shepherd-Sheep Analogy"의 원고를 정리해 인쇄해 가져갔다. 중요한 대화는 10분 이내에 끝났고, 몇 가지 대화를 추가하여 20~25분 정도 면담을 가졌다.

논문 작업이 더디지만, 작업이 진척되고 있고, 학회 발표 일정이 올해만 10회가 잡혀 있어서 연례 평가는 무난하게 진행될 듯하다. 지도 교수도 내 활동과 일정을 문제 삼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 졸업을 목표로 삼은 일정을 내년으로 조정할 예정이라 일정에서 차질을 빚을 변수가 사라졌다. 작년 연례 평가에서 유일한 변수는 촉박한 일정이었음.

학회 발표는 올해 일정만 소화하고, 논문 작업에 집중해서 끝맺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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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SAH (Scottish Graduate School of Arts and Humanities) 후원으로 열리는 Scottish Universities Biblical Studies Postgraduate Day Conference 2024에서 "Jeremiah’s Shepherd Metaphor and Its Theology"라는 주제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목자 은유를 전부 다뤄서 그 신학을 분석합니다. 발표 장소는 에든버러대학교이고, 발표일은 6월 3일 (월) 현지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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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학계에서 요한복음이 독자적인 자료를 사용했다는 입장이 주류였다면, 근래에는 요한복음이 마가복음을 주요 자료로 사용했다는 주장이 확산하는 추세이다. 이 같은 추세의 변화는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의 공통점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서 그러지 않나 싶다.

현재 나는 요한의 독창성에 주목하고 있고, 특정 본문에 관해서는 이사야서나 에스겔서보다는 스가랴서의 영향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마가복음을 공부한 지 십 년도 더 지나서 최근 경향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혹여나 요한복음이 마가복음을 주요 자료로 활용했다 하더라도, 혹은 다른 자료를 사용했더라도, 여전히 요한복음의 독창성은 평가절하될 수 없다. 내 관찰에 의하면, 요한은 청중의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의 신학을 한층 더 얹힌다. 나는 그 한 층의 차이가 기존 자료와 요한복음 사이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고 가정한다.

내 학위 논문에는 요한복음과 마가복음 비교를 다룰 일이 없겠으나, 다음에 이 작업을 하게 된다면, 두 복음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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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28일(일)~ 8월 1일(목)에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에서 열리는 SBL International Meeting에 발표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발표 영역은 Prophets이고, 제 주제는 "Micah’s Shepherd as Judge and Redemer"입니다.

앞서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America Mid-Atlantic Regional Meeting 2024에 복수 발표가 가능할까 싶어 여분의 제안서를 보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주제가 선정되어 버렸습니다. 발표마다 다른 주제로 접근할 예정이라 동일한 주제로 발표할 생각이 없어서 주제와 발표 방향에 변화를 줄 예정입니다.

이번 SBL International Meeting 2024에서는 Prophets와 Johannine Literature에 발표자로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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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단체마다 제안서 확보가 성공적인 학회의 관건이다. 단체의 성격에 따라 제안서를 제출할 수 있는 자격이 다르다. Graduate는 석사 과정 재학 이상, Postgraduate는 박사 과정 재학 이상, Junior Researcher는 ABD (All But Dissertation) 이상을 자격 조건으로 둔다. 박사 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단체에서 박사 과정 재학생의 제안서를 받기도 한다. 간혹 지도 교수의 추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자격 조건을 두는 이유는 당연히 단체가 추구하는 질적 수준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제안서는 제안자의 학술 역량이 담기기 마련이다. 제안서에는 선행 연구에 대한 이해와 문제 제기, 그리고 제안자의 주장 등이 포함된다. 평가자는 단 몇백 글자 내외로 제안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제안서 마감과 학회 기간 사이에는 몇 달의 차이가 있다. 제안서 평가와 최종 발탁, 제안자의 최종 참석 여부 확인, 학회 일정 조정 등 조율해야 할 작업이 적지 않아서 4개월 정도 간격을 두는 단체가 많아 보임.

제안자는 제안서를 바탕으로 최종 원고를 준비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제안서를 제출하고 원고를 다듬을 때마다 새로운 발상이 계속 떠올라서 발표일에는 적잖은 변화가 반영된다.

간혹 제안서와 발표 원고 사이의 차이를 묻는 참석자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답변은 그 차이가 발생한 이유와 현재 원고가 더 나은 대안인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제안서와 발표 원고를 일치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제안서를 바탕으로 최선의 원고를 준비하려는 태도가 발표자와 참석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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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구약(혹은 히브리 성경) 사용은 신약의 구약 사용 분야에서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이다. 요한은 인용 공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요한이 선지자의 이름을 밝히더라도 그 선지자와 무관한 내용인 사례도 있으며, 여러 선지자 중 이사야를 대표적으로 밝히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되었든 요한복음이 이사야를 언급하므로, 이사야서와 요한복음의 관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나는 선행연구의 주류와 달리 스가랴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 7:37-39는 스가랴 14장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사 학위 논문의 주요 본문인 10장 선한 목자 담론은 스가랴서 9-14장과 연결해서 해석할 예정이다.

요한복음 7:37-39에서 37절은 이사야 55:1, 38절은 에스겔 47:1이 요한이 인용했다고 주장되는 대표적인 본문이지만, 나는 스가랴 14장으로 두 구절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 입장에서는 스가랴 14장이 요한이 생각한/의도한 본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이사야서와 에스겔서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혹여나 주류의 견해대로 요한이 이사야서와 에스겔서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스가랴 14장을 통해 읽어야 본문의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는 입장이다.

아직 가정 관계이지만, 혹시나 요한이 이사야서를 사용했다면 그의 의도는 실제로 그의 신학이 이사야서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아직 배제할 수 없지만, 이 같은 독법에 익숙한 청중들을 고려한 요한의 의도적 사용일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즉 요한은 대다수의 이해를 고려하여 대중적 읽기를 사용하지만, 그의 진의는 스가랴서를 통해 밝혀진다는 전제이다.

내 주장은 극소수의 입장이라 앞으로 학회나 저술 등을 통해 반박 과정을 거쳐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학자로서는 확실한 독자성을 갖게 되겠지만, 그만큼 외로운 길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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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JSEC 2024 발표를 마치고 오늘 새벽 1시쯤에 집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고 라운델에 나와 SBL Global Virtual Meeting 2024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26일까지 발표 자료를 업로드하고, 리허설에 참여해야 해서 촉박한 일정이다. 직접 프로그램을 가동해 봐야겠으나, 가상 환경에서 발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나 싶다.

이것을 마쳐도 잇따라 발표 일정이 잡혀 있어 방심할 틈이 없다. 마감 효과를 위해 내가 자초한 일이니 오로지 홀로 뒷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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