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University of St Andrews) 박사 과정 등록을 위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 가운데 "Research Integrity Training"이 있다. 대학원 의무 교육이라고 하니, 석사 과정이나 박사 과정 신규 입학생은 모두 이수해야 한다. 이 과목은 표절, 저작권, 출판 등 연구 윤리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핵심 요지는 연구자의 덕목은 독창성(originality)이며,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해 훈련을 받는 학생은 독창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구성을 이루고 있다.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 학위가 학계/현장에 독창성으로 이바지했다고 인정될 때 주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즉 박사 과정 학생에게 독창적인 주장은 숙명과 같다. 학위 취득 이후에는 자신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그전에는 독창성을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한다. 박사 학위 과정에서 독창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박사가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독창성의 의미

여기서 다루는 주제인 '독창성'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넓은 뜻에서 독창성은 모방이나 파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개성과 고유의 능력에 의해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술 분야를 비롯하여 인간의 정신문화 창조 전반에 적용되는 평가의 기준이다. 독창성의 의미는 이 용어를 좁은 뜻으로 사용할 때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협의의 차원에서 독창성이란 예술 창작의 모든 측면에 있어서 모방이나 표절 등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고유의 힘과 개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는 성향이나 성질을 가리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창성 [獨創性, Originality, Originalité] (문학비평용어사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국학자료원)

한 주제로 관련 논문이나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다른데 내용은 비슷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선행 연구 분석에서 그런 경험을 자주 하는데, '독창성'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짜깁기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짓을 하는 부류도 있으나, 저자 스스로 기존 자료를 분석해서 자신의 언어로 써도 엇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참고 자료가 비슷하면 그런 결과가 나올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도 여기서 저자가 직접 기존 자료를 분석하고 자신의 언어로 새로운 주장을 전개할 토대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독창성이란 말에서 전일무이한 주장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의외로 독창성을 발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흔한 방식은 연구 방법론을 바꾸는 것이다. 연구자가 직접 창조하지 않아도, 다른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법론을 자신의 영역에 적용하면 그 자체로 새길을 열었다고 인정받는다. 가령, 내 전공 분야인 신약학에서는 문학 이론을 적용하는 게 주요 흐름 중 하나이다. 아니면,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법론을 채택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다듬어도 된다. 연구 방법론에 기여가 있다고 해서 학위가 보장되지는 않지만, 방법론은 결국 후속 연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방법론을 강조하는 것이다.

독창적이라고 해서 모든 주장이 새로울 필요는 없다. 선행 연구와 다른 한 가지 주장을 내세울 수 있으면 그로 족하다. 당연히 그 한 가지 주장을 발견하고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는 작업 자체가 고역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수많은 인재들이 박사 과정에서 좌초하는 이유가 대부분 여기에 있다. 여유롭게 남 말하듯 글 쓰는 거 아님...

지금은 누구나 '독창적 사고'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마냥 학습자를 탓할 수 없는 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암기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난 학생이 후한 평가를 받는다. 고등 교육으로 분류되는 대학교 역시 그렇다. 대학원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더 문제는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따르길 바라는 교수가 있다는 사실이고, 일부 학생은 그러한 교수의 입장을 거스를 생각이 없다는 데 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라 '독창성'으로 글을 써보지만, 내가 남모를 특별한 비법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작년에 대학원 동기 목사님과 연구 주제에 관해 대화하다가, 나는 "내가 어떻게 연구 주제를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분의 반응은 "연구 주제를 발견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우연이 아니더라."이었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모처럼 빛을 발할 순간에 내 기억력은 이 모양이다. 이 놈의 기억력...

그분의 말대로 연구 주제를 스스로 찾았다는 사람은 그 계기가 우연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우연이 반복된다면 일종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질문을 품으며 독창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성과를 인정받으며 박사 과정까지 성공적으로 진학했다는 점에서 내 직·간접 경험을 통해 독창적 사고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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