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 1서에서 동물묵시록은 고대 이스라엘의 연대기를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동물묵시록'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본문은 두 가지 특징을 내포한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을 동물로 묘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짐승의 종류와 색상 등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주요 인물의 경우 부연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두 번째는, '묵시록'이란 장르의 특성상 천상적 존재가 등장한다. 천상적 존재 가운데 천사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편의상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사람은 아니다. 타락한 천사는 짐승으로 변한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는 따로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있다. 에녹, 노아, 모세가 그들이다.
에녹서에서 에녹은 계시 수령자이다. 그는 꿈과 환상을 통해 하늘의 비밀을 전달받았다. 또한, 에녹은 계시 전달자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아들 므두셀라에게 가르쳐준다. 이러한 특별한 역할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창세기 5장 24절의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에서 에녹에 관한 언급은 극히 제한적이라 그런지, 에녹서에서도 그의 생애나 행적에 대한 언급은 한정되어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에 대한 기록(85:3-9) 이후 계보에 대한 언급이 잠시 중단된다. 중간에 에녹이 자신의 계시 수령 체험을 기록하며 신적 심판의 사유(86-88장)을 말한다. 이후 노아가 등장하며(89:1) 다시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은 아담과 노아를 비교하는 기법인 동시에 에녹의 생애를 건너뛰는 효과가 있다. 면밀히 말하자면, 동물묵시록에서 에녹의 역할은 환상을 보는 관찰자이다.
노아는 홍수 심판의 때에 방주를 지어 구원을 경험한 인물이다(창 6-10장). 노아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기록이 대변해 준다. 동물묵시록에서 노아는 흰 황소로 등장하며 추후 사람으로 변한다(89:1). 사람으로 변하는 시점은 방주 사건 이후로 보인다 (89:9). 에녹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선포하는 데 있으며, 노아의 홍수를 다가올 심판을 위한 심상으로 사용한다. 에녹서는 ‘노아의 탄생'(The Birth of Noah, 106-107장)을 수록할 정도로 노아를 중요한 인물로 그린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가 갖는 위치는 남다르다. 그의 위상을 반영하듯이 동물묵시록에서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모세이다. 단순히 구절만 비교해도 노아(89:1-9)보다 모세(89:17-38)가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에녹서 전체에서는 노아의 비중이 더 크다. 모세는 양으로 태어나 사람이 된다(89:36, 38). 그가 변형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나의 입장은 성막과 연결하는 해석이다. 몇몇 학자는 본문이 변형과 성막을 연결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한다 (“And I saw in this vision, until that sheep became a man and built a house for the Lord of the sheep and made all the sheep stand in that house,” 89:36). 한편으로는 시내산 현현을 변형의 순간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James VanderKam and Dulcinea Boesenberg). 나는 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내가 생각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본문은 변형 이후 성막을 지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우선, 모세의 생애에서 성막 건축 이전의 광야 생활을 압축적으로 진술하면서 양에서 사람으로 변형된 순간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89:36). 또한 모세의 광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변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And that sheep that had led them, that had become a man, was separated from them and fell asleep, and all the sheep searched for him and cried bitterly because of him,” 89:38). 모세의 생애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부분은 시내산 현현이다. 두 번째, 변형과 성막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 솔로몬의 업적은 성전과 궁전 건설이다(89:50). 변형과 성막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면, 솔로몬은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솔로몬은 조그만 양에서 숫양이 된다고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89:48b).
이처럼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그려지는 역사적 인물은 에녹, 노아, 모세가 전부이다. 이외에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 등장인물은 70 목자들(89:59)이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존재이다(89:59). 70 목자를 타락한 천사와 연결하는 해석이 있는데, 나는 그러한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 본문은 명백히 하나님이 70 목자를 소환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동물묵시록에서 이방 세력은 온갖 짐승으로 묘사되지만, 여기에서는 이방 통치 기간의 정당성을 위해 ‘목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임무는 양 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다 (89:59–60). 70목자는 70년을 다스린다. 70년의 시대 구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내가 볼 때 목자의 숫자나 통치 기간의 관련성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70’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70년이 이방 통치자의 지배라는 해석에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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