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 경험과 상황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이다.
대안학교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3년 정도 독서 토론을 재능 기부 형태로 진행한 적이 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반에 토론으로 진행하다가 후반에는 글쓰기로 전환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토론다운 토론이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모르고, 상대방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차라리 글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도록 하는 방향이 더 효과적이었다.
영미권에서 세미나와 토론 시간을 보면, 대체로 발표자들은 완성도가 낮은 아이디어 차원의 발상을 일정 수준으로 발효시켜서 의견을 개진해보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발표자가 설익은 아이디어을 꺼내 청중과 대화를 통해 발전시킨다는 인상이 강하다. 유독 한국인들은 완성된 원고를 발표 이전에 나눠주고 읽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구현 완성도가 높으며, 청중으로부터 질문이 덜 들어온다.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Master of Theology 과정을 하고 있을 때, 수업에서 시험을 치르긴 했어도 가장 큰 점수를 차지하는 건 paper였다. 자율연구(independent study)는 100% paper로 평가받는다.
현재 재학 중인 영국 학교에서는 세미나나 스터디 그룹 공고는 하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다. 지도 교수마다 지도 방법이 다르겠지만, 내 지도 교수의 경우 신약학부 교수들이 전원 참석하는 세미나를 권했을 뿐 그마저도 의무 참석이 아니었다. 최근 스터디 그룹 홍보에는 "글 쓰느라 바쁘겠지만 일단 공고가 있으니 이메일을 돌린다"라고 써서 보내셨다.
현재 distance learning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고,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어서 차후 진행 상황을 잘 모르지만, 학위 논문 구술 면접 이외에는 paper로 평가받는 걸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토론보다 글쓰기가 더 중요한 상황이고, 그 글쓰기를 위해서는 독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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