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언어와 상관 없이 강연자가 자신이 아는 주제를 다룬다면, 상대방이 전개할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금방 따라가고 좋은 성적을 받는 이유가 다름아닌 선지식에 달려 있다.

유학생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이다. 더자세히 말하면 "영어가 부족해서"라는 말이 수식어로 붙는다. 실제로 영어 실력이 유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나는 언어 이외에 배경지식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한다고해서 그 학생이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교수자가 한국말로 가르치고 강의 자료는 영어나 독일어를 활용해서 한글로 공부하더라도 결과는 똑같다. 그는 수업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말할거다.

이유는 언어와 상관없이 배경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부차적이다. 내가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하고, 미국에서 다시 석사 과정을 했을 때 큰 어려움 없이 수업을 따라가고 최종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은 이유는 서로 다른 언어라 해도 석사 과정을 이미 해봤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내 영어는 형편없었다.

영어의 본토인 영국에서 내가 여전히 형편없는 영어 실력으로 살아 남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박사 학위 논문과 관련한 배경지식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실제로 관련 연구들을 이미 해두었다. 학생들을 소규모로 뽑고 평가가 객관적이라고 소문난 지도 교수는 나를 믿고 놔두고 있으며, 다른 교수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내게 직접 말해주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수단이다. 평가자인 영어 원어민들에게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당연히 상당한 영어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형편 없는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영작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칼빈에서 영작은 대체로 A를 받았고, 이곳 영국에서도 Probationary Review를 두 명의 심사자로부터 단번에 통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어민으로부터 Proofreading을 한번도 받지 않고 12,000자를 조금 넘게 써서 통과했다고 하니 놀라는 사람들이 있긴하다. 더구나 한국에서 distance learning으로 진행했다고 하니 더 놀란다. 실제 내 영어 실력은 상당히 별로 인데,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게 영작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지도 교수가 진행하는 박사 과정 세미나에서도 나와 같이 참석하는 동료학생이나 지도 교수가 턱없이 후달리는 내 회화 능력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 없이 3시간씩 진행 할 수 있는 이유는 자료들을 두 번 정도 읽고 참석하기 때문이다. 질의응답과 토론에서 내 표현이 서툴지만, 책과 소논문을 어느 정도 소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도 교수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최근 한국 신학 출판계에서 출판 흐름이 바뀐 탓에 영미권과 격차를 줄이고 있다. 지금은 한국어로 배경지식을 탄탄히 갖출 여건이 된다는 말이다.

여전히 영미권에서 공부한다면 영어는 제법 큰 장벽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 어느때보다 장벽을 극복하기 수월한 시대이다.

[성찰] - 독창적 사고를 위하여 3. 독창적 사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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