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학교마다 연구 제안서와 샘플 페이퍼의 글자 수를 제한하고 있다.

영국 학교에서 요구하는 연구 제안서의 글자 수는 보통 1,000자이다. 500자 정도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샘플 페이퍼는 대충 3,000~5,000자 사이로 기억한다. 석사 과정에서 쓰는 페이퍼 분량이 보통 15~20쪽이고, 많아 봐야 30쪽 정도이니 글자 수 제한에 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구나 샘플 페이퍼는 수정을 요구하는 곳이 없어서, 박사 지도 문의를 하기 전에 잘 만들어두면 사실상 끝이다.

연구 제안서는 다르다. 학교 교정에 따른 글자 수 제한을 언급하는 교수들이 종종 있다. 내 경우 교수와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글자 수가 점점 늘어나는데, 흥미롭게도, 제안서에 만족한 탓인지 글자 수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더 재밌는 건, 지원서를 제출하라고 말하면서도 수정 사항을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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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University of St. Andrews)가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를 물리치고 영국 2위 학교로 올라셨다는 기사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는 확고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St Andrews beats Oxford to take second place in Guardian university rankings
https://www.theguardian.com/education/2019/jun/07/st-andrews-beats-oxford-to-take-second-place-in-guardian-university-rankings

얼마 전, 나는 "내 맘대로 성서학 UK TOP3"라는 글을 썼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라. 
https://survivor.tistory.com/980

평가 자체가 절대적이 될 수는 없다. 분야나 평가 기관에 따른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디언'이라는 공신력이 있는 언론사에서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건 의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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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순서

끄적 2019. 8. 17. 03:40

요새 설교 번역을 하고 있다. 독자와 통역자를 위해 정확성과 가독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게 된다. 현재 고수하고 있는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번역기를 사용한다.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번역기를 사용한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총 세 가지의 번역기를 사용하고 있다. 구글(https://translate.google.com/), 카카오(https://translate.kakao.com/), 파파고(https://papago.naver.com). 딱히 어디가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내 사용빈도는 1. 카카오, 2. 파파고, 3. 구글 순이다.  

 

2. 사전을 참고한다.

번역기에서 원문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조어이거나 영어를 기준으로 외국어일 때 자주 그렇다. 한글과 영어 사이의 뉘앙스 차이를 파악하는데 사전이 큰 도움을 준다. 딱히 네이버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한국 내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런지 네이버 사전(https://dict.naver.com/)이 꽤나 우수하다.

 

3. 검색 기능을 이용한다.

번역기와 사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단어나 숙어 등이 간혹 있다. 이럴 때 네이버나 구글을 이용한다. 검색 결과를 단서로 가장 적절한 대체어를 찾는다.

 

4. 때로는 의역이 정답이다.

원문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직역을 고수하지만, 때로는 의역을 해야 해석이 명확해지는 문장들이 있다. 이럴 경우 과감히 의역을 택한다.

 

5. 맞춤법과 문법을 검사한다.

한국인 중에서도 한국어를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맞춤법과 문법이 존재한다. 검사기를 돌려보면 내 예상보다 더 자주 틀리기도 한다. 부산대학교 인공지능연구실과 (주)나라인포테크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http://speller.cs.pusan.ac.kr/)가 가장 뛰어나다.

 

6. 최종검토

원고와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오역을 수정한다. 최종적으로 번역본만 읽으면서 가독성을 높이는 작업을 한다.

 

총 7장 분량의 원고를 번역하지만, 내 영어과 국어 실력이 별로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현대 기술이 없었으면 어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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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특히 성서학 전공으로 학교 순위를 매긴 글은 볼 수 없다. 각 학교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지만, 영국 박사 과정에 지원하는 입장에서 내 맘대로 선정해본다. 참고로, 나는 신약학 전공이지만 연구 제안서의 특성상 구약, 2차 성전기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1. 캠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역사와 명성, 도서관, 교수진, 출판사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타 대학에 비해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이 적다. 

2.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University of St. Andrews)
옥스퍼드대학교와 캠브리지대학교에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학교이자 스코틀랜드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학교이다. 교수진 수준이 최상급이다. 일찍이 은퇴하신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 박사가 이 학교에 있었고, 지금은 은퇴를 앞둔 톰 라이트(N. T. Wright)가 이 학교 소속이다. 성서학 학회에 대한 지원이 남다르다고 알고 있다. 단점이라면, 학교 명성이 예전과 같지 않아 보인다. 

3. 에딘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
현재 대학 순위로 보면 에딘버러대학교가 스코틀랜드 1위이다. 영국 내에서는 대략 TOP5에 꼽히는 듯하다. 성서학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는 티머시 림(Timothy Lim) 박사이고, 헬렌 본드(Helen Bond) 박사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근래에 메시아 사상 연구로 매튜 노벤슨(Matthew Novenson) 박사의 인지도가 급부상하고 있다. 단점이라면, 신학 분과 기준으로 성서학 보다 타 전공이 더 유명하다. 

이 순위는 내 상황이 반영된 결과이다. 앞서 밝혔듯이, 내 연구 제안서에 따라 교수진들을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박사 과정 지도를 문의하기 위해 여러 학교에 소속된 교수들과 전자우편을 주고 받은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가령 킹스칼리지런던(king's College London)도 아주 좋은 학교이지만, 내 연구 제안서에 따른 지도 교수진을 구성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런던 시내에 위치해 있어서 학비와 생활비가 치명적이다. 

더럼대학교(Durham University) 역시 아주 좋은 학교이지만, 교수진이 바울 신학에 치중된 느낌이다. 만약 바울 신학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단연 TOP3에 들 학교이다. 현 시점에서는 1세기 유대교나 복음서에서 내 연구 제안서를 받아줄 교수가 없는 듯하다.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는 단연 최고 중 최고로 손꼽히는 학교이지만, 내 관심사인 성서학 교수진은 우위를 점할 만큼의 역량을 갖추었다는 인상을 못 받는다. 개개인의 역량은 출중하겠지만, 교수진 전체의 총합에서는 다소 아쉽다. 다른 학교와 달리 이곳에는 박사 지도를 문의해 보지 않았다. 

결론은 본인의 전공과 상황에 따라 대학 순위는 달라진다. 진학 할 학교가 상위권에 속해 있고 자신의 상황에 적합하다면, 진학 그 자체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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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같은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와중에 성전 운영을 독점하려는 제사장 가문 후손들이 등장한다. 전통에 따라 성전 운영에 제사장 가문들이 개입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다시 종교적 이권을 남용하는 세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언자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제사장과 예언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된다.


성전 중심 종교의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 예언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 같은 질문이 당시 이스라엘이나 현 한국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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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학자들은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혹은 제3이사야까지 분류한다. 이사야의 이름으로 예언이 전승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사야의 예언을 계승한 후대 편집자들이 있다고 가정한다. 난 이사야의 단일 저작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각 본문의 차별성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만약 후대 편집자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예언자든 서기관이든 상관 없이, 내가 궁금한 건 '왜 그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이사야의 예언을 확장하는 길을 선택했는가?'이다.


자신들의 예언이 이사야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판단했나? 이사야의 예언이 확장성을 가졌는가?


이사야서가 내 관심사인 묵시문학과 시온 전승 등과 연관이 있다보니 별의별 관심을 다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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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자의 의무, 채움

끄적 2018. 11. 9. 13:09

나는 본문에서 특정 주제를 다루기 전에, 본문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다. 때로는 논의와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해석이라고 여겨져도 최대한 각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고달프더라도 궁극적으로 얻는 유익이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연구소에서 현미경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과학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주석서들의 헛점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대체로 그 부분들을 다른 자료로 보충하기도 하지만, 아주 간혹 내 상상력이나 분석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은 내 체력과 정신을 소모 시키지만, 앞선 연구자들의 자료들을 이용하는 잠정적인 후배의 입장에서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의무감을 느낀다. 그 의무감이 실제로는 내 기여로 작용할텐데, 현재로서는 학기 중반을 넘어선 상태로 조금씩 지친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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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국인 평신도로부터 "네 영어 글쓰기는 대체로 영미권 출신 신학자들과 교수들 그리고 미국인 동료들의 글에서 배운 듯 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 부분은 굉장한 칭찬으로 들리는데, 그 뒷말이 반전이다. "나는 평균 이상의 어휘력과 문법 실력을 갖고 있는데, 네 글은 따라잡기 어렵다." 덧붙여 그는 "글은 간결해야 하는데, 학자들은 종종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보이려고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내 영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내 글은 분명 영미권 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인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당시 모교엔 국내에서 알아주는 성서학 전문가들이 있었고, 난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주석들을 원서로 읽으면서 주해 연습을 부단히 했었다. 늦깍이 군 입대를 해서도 영문 소논문들을 틈틈이 읽으며 주해 연습을 하기도 했다. 성서연구의 기본적인 틀은 졸업논문을 통해 다질 수 있었다. 신학석사 과정에서도 원서 중심으로 글을 읽었고, 지금도 부단히 읽고 있다. 난 영미권 신학자들의 글을 열심히 읽으면서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왔고 지금도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2. 철저한 인용 표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내가 목회학 석사 과정에서 공부할 때 성서학 교수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각주가 많아도 상관 없으니, 인용한 부분은 다 표기하라." 표절에는 얄짤 없는 교수들 덕분에 각주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다만 신학자들의 글을 많이 읽다 보니, 나만의 글로 소화를 해도 글의 구조가 복잡해진다. 글의 구조를 단순화하려면, 그만큼 각주가 늘어나게 된다. 내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본문과 각주가 엇비슷하다. 지금도 각주가 많아서 줄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글을 단문으로 줄인다면 본문 보다 각주가 더 많아질거다. 아마도 지금의 내 글쓰기는 이 같은 고민의 타협점일지 모른다. 학자들의 견해를 최소한으로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최대한 많은 글을 읽고 나만의 글로 쓰면서 동시에 독창적인 글을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당분간 내 글쓰기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지 모른다. 3. 난 전문가 과정을 훈련 받고 있다 난 쉬운 글쓰기를 지향한다. 어휘나 문장력이 고급지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평소 나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난 엄연히 신학, 그중에서도 신약학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과정은 석사. 난 이미 한국에서 신학 석사를 마친 상태인데, 몇 전 년 졸업논문 심사과정을 통과한 후에 지도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이제 준 전문가가 된 걸 축하한다" 학문의 벽.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결국에는 전문가가 아니면 도달하기 어려운 지식의 장벽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견해를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해당 분야는 학계에서도 지극히 전문적이다 보니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존재하는 듯 하다. 낯설다 못해 난해한 글이 된걸까? 반면 내 글은 교수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내 글을 가장 자세히 읽는 사람은 담당교수들이다. 내가 문법오류나 단어선택에서 지적을 받고는 있지만, 때로는 원어민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을 듣기도 하지만, 글에 대해서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4. 글을 쉽게 쓸 방법은 있다 궁극적으로 학문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적인 퇴고를 거쳐야 가능하다. 아쉽게도 지금은 내 학문성을 인정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서 간결한 글로 전환하는데 한계가 있다. 결론은, 내 글쓰기를 정당화하는 글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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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칼빈신학교에서 3학기를 마쳤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이후로 방학을 맞이하고 있지만, 오늘 도서관 개인열람석을 비워줌으로서 진정한 휴식을 맞이하고 있다. 당분간 강제 휴무.


이제 다음 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하게 된다. 이 말은 곧 박사 진학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로서는 연말에 OPT를 신청해서 진학 준비에 전념하고, 지금은 성적과 추천서를 위해서 학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매 학기마다 욕심 만큼 공부하지는 못하지만, 다행히 이번 학기에는 자율연구를 통해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다. 지도교수인 게리 버지 박사는 내 연구에 만족하는 분위기이고, 지난 학기에 좋은 성적을 받았으니, 나중에 추천서를 요청하면 잘 써주실거 같다. 무엇보다, 내 예상대로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화'는 박사과정에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번 연구로 샘플페이퍼는 준비된 셈이고 앞으로 연구제안서 준비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다음 학기에는 구약에 나타난 목자 모티프를 중점적으로 연구할 계획인데,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면 박사 과정에서 시간을 아낄 수 있겠다는 예상이 든다.


문제는 영어성적이다. 내가 희망하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적은 최소 토플 100/아이엘츠 7.0 혹은 토플 110/아이엘츠 7.5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박사과정 요구조건으로 최소 토플 100/아이엘츠 7.0을 요구하니, 당연히 그 정도는 충족시켜야겠지만, 토플시험으로 고생을 좀 해본 입장에서는 걱정이 된다. 리딩은 그렇게 오래 공부했는데 고득점이 쉽지 않고, 리스닝은 반복해서 들어도 잘 안 들리기는 마찬가지이고, 스피킹은 예상한 질문이 나와도 버벅거리고, 라이팅은 한두 문장에서 실수하면 바로 아웃 오브 토픽이다. 쩝. 현 상황에서는 영어성적이 박사과정 진학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작년에 몇몇 학교에 진학 문의를 해봤는데, 담당자들로부터 내가 미국 내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이미 신학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지원하거나 앞으로 영어성적이 웨이브될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히 보장할 수는 없다는 답변을 받았었다. 그러니 내가 지도교수로 문의하게 될 교수들이 나에게 영어성적을 요구하지 않는 한, 무조건 점수를 내야 한다. 이번 여름 방학에 영어 시험 공부를 할건데 올해 안이나 내년 초에 성적이 나와주면 환상적인 시나리오이다.


주변에서는 연구제안서와 영어성적으로 고전분투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내 경우는 수월한 편이긴 한데, 시험이 나한테는 쥐약이라 걱정이 앞선다. 남들 보기에는 "준비된 신약학자"인데 그들이 내 속을 알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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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과 학교 수준

끄적 2018. 5. 18. 10:34

솔직히 웨신대 시절에는 도서관 이용율이 그리 높지 않았다. 우선 내가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어서 공부하러 도서관에 갈 일이 없었다. 학교 규모가 작아서 도서관 내 서적 보유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M.Div.와 Th.M.까지 공부하는데 큰 불편을 겪지는 않았다. 도서관에 필요한 자료가 없으면 주변에 위치한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도서관을 이용하면 되었다. 그곳에 가면 국내 성서학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감사하게도 성서학 분야만큼은 교수진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세계 정상급 수준의 신진학자들을 통해 최신 경향의 방법론들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본문비평, 내러티브 비평, 텍스트언어학 등 당시에는 생소한 방법론들을 터득한 신진학자들을 통해 성경을 연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부분은 해외 유학을 나온 지금도 경쟁력이 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국내 학자들의 역량이 왠만한 영미권 학자들 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칼빈신학교 학생은 칼빈대학 헤크만 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다. 관내 지역에서는 나름 규모가 있는 학교로 평가 받고 있고, 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어서 사용자 입장에서 불편함이 없다. 다만 성서학 박사과정이 없어서 인지 내가 필요한 책들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경우 미시간 내 타 도서관 자료들을 대여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자주 기분이 나쁜데, 내가 타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책들 대부분이 제칠일안식교 학교 도서관 소유이다. 미국에서는 제칠일안식교가 이단 혹은 사이비가 아니라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다.


요새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가 도서관과 학교 수준의 상관성이다. 내 생각에 도서관 시설이 잘 되어 있을 수록 학교 수준도 높다. 교수진의 역량이 뛰어날 수록 학생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높기 마련이고, 교수들의 연구활동과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서는 장서 보유량이나 관련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학교가 높은 학문적 수준을 유지하려면 교수 확보와 도서관 관리에 전념해야 하는 구조이다. 신학교는 신학 노선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 때문에 도서관 관리에 신경을 못 쓰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나는 책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학생이 교내 도서관에서 확보할 수 있는 자료의 양이 그 학교의 수준이다. 즉 학생들이 책 구입에 돈을 안 쓰게 하는 학교가 좋은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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