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희년서는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계명과 절기 등 준수 명령과 심판 선언이 주어진다. 이후 하나님은 천사에게 창조부터 역사를 진술하도록 명령하신다(1장). 역사 진술은 창조 기사가 제일 먼저 기록된다(2장). 마지막 부분은 유월절(49장)과 안식일(50장)로 끝난다. 희년서는 시작과 마지막이 출애굽/유월절, 안식일이라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창조와 안식은 창조 세계의 완전한 상태를 드러낸다. 죄악으로 얼룩진 세상을 향한 홍수 심판은 창조 상태에 근접한 초기화를 상징한다.

홍수 심판 이후 노아에게 주어진 약속은 심판에 관한 내용이다 (6:4-16). 하나님의 명령 중 하나는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 포함된다 (6:13). 노아 언약 이후 기록된 사건은 칠칠절 기념이다 (6:17-24). 노아가 칠칠절을 준수한 이유는 명령이나 언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 서판과 관련이 있다 (6:17). 노아는 칠칠절만이 아니라 초실절도 기념하였다 (6:21). 희년서 저자는 노아의 칠칠절과 초실절을 통해 창조 세계의 주인에게 수확물을 바침으로써 그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과 농경 사회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짐작된다. 노아의 포도주 축제(7:1-6)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아브라함 언약은 노아 언약의 본질이 심판에서 후손을 향한 축복으로 변경되었다는 중요성을 가진다. 언약의 변화는 절기의 변화로 이어진다 (14:20). 이후 아브라함의 절기 준수는 자녀의 탄생과 관련된다.

언약과 절기의 상관관계는 희년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두 상관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정립하는 데 실패한다. Betsy Halpern-Amaru는 칠칠절을 족장의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제사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희년서 저자는 칠칠절은 신명기 16:9–11, 특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v.11)를 재상황화하였다. 그에게 이삭과 에서가 칠칠절을 기념한 사건은 족장의 임의적인 축제이다 (22:1). 또한 초막절은 안전한 여행(16:20; 32:4–7)을 기뻐한 절기로 이해한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의 출생 이후 칠칠절/초실절을 기념하고, 이삭의 출생 이후 초막절을 기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후손의 번성을 향한 축복이므로, 두 자녀의 출생을 위한 절기 기념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칠칠절/초칠절 준수는 두 자녀의 화해로서 의미가 있다. 아브라함 언약은 후손의 축복이며, 이스마멜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축복을 받아야 하므로, 이삭을 통해 언약의 계승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이스마엘과 이삭의 화해는 필연적이다. 따라서 이스마엘의 출생을 기념한 칠칠절/초실절을 이삭과 함께 기념한 것은 절기 준수의 의도에 부합하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그 주변에 닥친 기근을 위해 초실절을 기념하는데(44:4), 이때는 위기 상황과 초실절의 의미가 상통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첫 초막절 기념(16:20–31) 이후 야곱이 초막절을 기념한다(32:4–29). 아브라함 언약이 사라가 낳은 자녀를 통해 실현된다는 약속 (15:16)과 이삭을 위한 아브라함의 축복(21장)에 이어 야곱의 초막절 준수는 야곱이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임을 밝힌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연속성은 야곱을 향한 아브라함의 애정과 리브가에게 전한 조언에서 드러난다(19:15-31).

유월절은 아브라함 언약 성취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통해 출애굽하고 하나의 독립적인 집단이 되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번성하고 국가를 이룬다는 약속의 성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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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서는 출애굽 이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역사를 가르치신다고 진술한다 (1:1-4).이스라엘이 징벌받고 포로로 끌려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 언약의 절기, 안식일 등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여호와의 언약의 절기"(the festivals of My covenent)는 절기의 특성을 잘 함축하고 있다. 절기는 여호와의 언약을 상기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사유가 반복적으로 명시된다 (1:13). 이스라엘은 달력(정확히는 초승달[new moons]을 기준으로 삼은 달력), 안식일, 절기, 희년을,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하나님의 성소에 그가 머무실 때, 이스라엘은 진리와 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1: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리와 의이다.

희년서에서 가장 먼저 제정되는 휴일(holidays)은 안식일(Sabbath)이다. 2장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일을 기록하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 이후 안식하셨고, 인류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서 준수의 의무가 지워진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신 이후 다시는 이와 같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노아에게 하셨고 (6:16), 그 이유로 칠칠절(The Feast of Weeks) 준수 명령이 주어진다 (6:17). 칠칠절은 희년서에서 가장 먼저 제정되는 절기이며, 달력의 셋째달(참조. 1절)에 언약 갱신을 위해 매년 기념해야 한다. 칠칠절 준수 명령은 당시 농경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자녀들이 칠칠절을 지켰으나, 그 후손은 이 절기를 다시 기념하기 전까지 잊고 있었다 (6:19). 칠칠절은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과 동일시하는 이유가 이 절기의 이중적 특성 때문이라고 밝힌다 (6:21). 후술하겠으나 절기의 특성으로 기쁨(joy)이 언급되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또한 노아 언약은 홍수 심판과 관련이 있으며, 노아 후손의 번영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의 절기(the feasts of the covenant)를 잊어버리고, 이방인의 절기(the feasts of the Gentiles)를 따른다 (6:35).

노아는 포도나무를 방주가 방치된 곳에 심고, 일곱 번째 달에 거두었다 (7:1). 노아는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들고 15년 첫 달 첫날까지 보관하였다 (7:2). 그리고 그는 이를 기쁨으로 이 절기의 날을 기념하였다 (7:3). 이곳에서는 절기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는데, 이는 노아의 언약이 맺어진 달과 같은 때이며, 아브람은 그 절기를 갱신한다 (14:20). 아브람의 절기 갱신은 뒷부분에 기술된다. 아브람 언약은 그 자손의 번영에 대한 약속이다 (14:18).

아브람은 자신을 향한 언약을 인간의 방법으로, 정확히는 사래의 권유로, 성취하고자 한다 (16:22ff).

아브람은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을 낳고 (14:24),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을 기념한다 (15:1). 초실절은 희년서에서 칠칠절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이 명시된 절기이며, 득남 이후 실시된 절기라는 특징이 있다. 이스마엘의 출생과 초실적 기념 이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다시 한번 언약을 선포하신다 (15:3-4). 이로부터 아브람의 이름은 아브라함으로 바뀐다 (15:7).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마엘을 통해 실현되리라 기대하지만 (15:18),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지으라고 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신다고 말씀하신다 (15:19, 21).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이유에 달려 있지 않으며, 그는 이스라엘과 그의 자손을 선택하셨다 (15:30). 하나님의 언약은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라는 셋째 달에 아들을 낳는데, 저자는 이 시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16:13). 이삭은 셋째 달 중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때, 초실절을 드리는 때에 태어난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할례를 실시하고 (16:14), 기쁨의 절기(a festival of joy)를 드리는데, 이 절기가 바로 초막절이다 (16:20-31). 저자는 아브라함이 지상에서 처음으로 초막절을 드렸다고 기록한다 (16:21). 아브라함을 이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 곧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제"(the festival of the Lord, a joy acceptable to the Most High God)라고 일컫는다(16:2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셔서, 아브라함은 순종하고자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사를 멈추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상기시키신다 (18:1-16). 아브라함과 그의 어린 아들들이 맹세의 우물에 머물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여호와의 절기"(the festival of the Lord)라고 부르며, 기쁨의 절기(joy of festival)로 드린다 (18:17-19). 이 절기의 특정 이름은 지정되지 않는다. 또한 초막절과 유사성이 있지만, 둘이 동일한 절기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삭이 르브가로부터 야곱과 에서를 낳는다 (19:12). 아브라함 언약이 이삭을 통해 성취된다는 약속이지만, 이삭의 자녀 출생에서는 언약과 절기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그의 열두 아들, 그리고 이삭과 그의 두 아들, 케투라(아브라함의 셋째 부인)의 여섯 아들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20:1-10). 그리고 이스마엘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케투라의 아들들에게 선물을 주고, 이삭과 그의 아들로부터 떠나게 하고, 이삭에게는 자신의 전부를 준다 (20:11). 

아브라함의 죽음을 앞두고 이삭과 이스마엘이 맹세의 우물에서 아브라함을 위해 칠칠절, 즉 초실절을 기념하고, 아브라함은 두 아들로 인해 기뻐한다 (22:1). 칠칠절 혹은 초실절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의 출생을 기념한 절기이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불화를 해소하기에 적합한 절기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죽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축복하시고, 이삭은 환상의 우물(the Well of the Vision)에서 머무른다 (24:1). 아브라함의 맹세의 우물과 이삭의 환상의 우물은 이름에서 언약의 기능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이삭이 열네 번째 날에 십일조를 드렸고, 라헬이 베냐민을 임신한다 (32:2-3). 이삭은 열다섯 번째 날에 제사를 드리는데 (32:4-31), 이 제사의 시작일 (32:4)와 설명(32:27-29)은 이 절기가 초막절로 밝혀지게 한다. 절기 동안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 언약과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32:18-19). 아브라함이 이삭의 출생을 기념한 절기가 초막절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언약이 이삭을 통해 성취된다고 말씀하셨기에, 이삭이 초막절을 지키고 아브라함 언약과 동일한 말씀을 듣는 것은 그가 언약의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꿈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성소를 짖지 말라는 명령을 듣는다 (32:22). 다윗의 성전 건축과 유사한 기록인데, 초막과 성소 그리고 성전의 유사성을 의도하는 듯하다. 이삭은 자기가 본 꿈의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하루를 더 기념하여 제사를 드리는데, 결과적으로 이레 동안 기념하는 절기에 하루가 더 추가된다 (32:26-27).

이스라엘은 이집트로 여행 중에 기근이 극심한 가나안 지역과 기근을 위해 묵은 곡식으로 초실절을 기념한다 (44:4). 여기서 초실절은 절기의 본연적 기능을 위해 기념된다.

희년서의 마지막 두 장(chs. 49-50)은 각각 유월절과 안식일을 다룬다. 49장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에 관한 역사를 서술한다. 유월절은 밤에 시작되는데, 기쁨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49:2). 기쁨은 유월절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희년서에서 절기는 "기쁨"이라는 특징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달리 말해 기쁨이라는 특징으로 절기의 특성을 구별할 수 없다. 구약성경에서는 절기 가운데 초막절이 유독 기쁨과 연관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이름이 적시되지 않은 절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기쁨이 포함되기도 한다. 희년서도 초막절의 특징으로 기쁨이 강조되지만, 다른 절기에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독특한 특징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희년서에서 절기는 기명과 무기명으로 일차 구분이 가능하다. 기명 절기로는 칠칠절과 초실절, 초막절, 유월절이 있다. 무기명 절기로는 노아가 포도주를 만들고 기념한 절기와 일명 이삭의 희생 사건을 기념한 절기가 있다.

칠칠절, 초실절, 초막절은 농경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 절기 모두 아브라함의 자녀 출생과 관련이 있다. 칠칠절과 초실절은 이스마엘, 초막절은 이삭의 출생 이후 아브라함이 기념한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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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서의 초막절 본문으로 16:20–31와 32:4–29는 이견이 없다. 반면 18:18–19는 절기의 정체에 대한 이견이 있다. 내가 초안 완성을 앞두고, 18:18–19를 초막절 본문으로 분류한 이유는 이 구절과 다른 두 구절이 가진 유사성 때문으로 짐작된다. 나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일부 존재한다.

세 구절 모두 이 절기의 특징으로, 매년 기념되는 절기로 칠 일 동안 기쁨으로 즐겼다고 서술한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The Festival of the Lord, 16:27; 18:18)라고 불렀다는 공통점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공통점이 두드러져서 셋 모두 초막절로 분류해도 가능해 보인다. 

이와 달리 VanderKam은 달력을 기준으로 무교절(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이어야 하지만, 아브라함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자기 생각을 밝힌다. 그는 "여호와의 절기"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유월절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Jubilees 1, 577). 또한, 중단되었으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사로 드리려고 했던 사건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한다 (Jubilees 1, 578). 하지만, 희년서가 성경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절기는 모세의 명령으로 제정되지만, 희년에서는 칠칠절(The Feast of Weeks)은 노아와 관련이 있고,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과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은 아브라함의 자녀 이스마엘과 이삭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이 같은 희년서의 독특한 절기 사용으로 인해 그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초막절의 시작 이래 절기의 이름이 적시되지 않은 점과 절기의 시기를 밝히지 않은 점이 이 절기의 정체가 초막절이라는 주장에 의구심이 들 수 있겠으나, 두 사이의 공통점은 상당히 긴밀하다.

설령 18:18–19이 초막절이 아니라면, 희년서의 저자가 이 절기를 초막절을 연상하도록 의도했다고 해석해야 한다. 초막절이 이삭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면, 이 절기는 이삭의 두 번째 탄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초막절이 아브라함 언약의 실현을 기념했다면, 이 절기는 아브라함 언약을 재확인한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이 절기가 초막절이 아니라고 해도, 내 견해를 일부 수정해도, 내 연구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연구 분량이 줄어들 뿐 아니라 내가 전에 발견하지 못한 주장을 더 강력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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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서에서 칠칠절(The Feast of Weeks) 제정은 일명 노아 언약과 관련이 있다 (6:17-19). 노아 언약은 매년제(annual feast)로 드려야 하고, 언약 갱신을 목적으로 삼는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의 출생(14:21-24)를 기념해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을 드린다 (15:1-2).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고, 그는 국가를 이룰 것이라는 일명 아브라함 언약을 선포하신다 (15:3-16). 

아브라함은 초실절에 이삭을 낳고 (16:13),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을 기념한다 (16:20-31).

초실절과 초막절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첫 번째, 초실절과 달리 초막절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즐거움이 크다고 밝히고 있다 (16:19). 두 번째, 희년서에서 아브라함 언약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을 향한 약속으로 설정되어 있음이 명확해진다 (15:21).

아브라함이 죽는 해에, 이삭과 이스마멜이 맹세의 우물 (the Well of the Oath, Beersheba)에서 칠칠절을 기념하는데, 이 절기를 초실절이라고 설명한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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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1-2:26에서 '매년제'(the annual sacrifice)의 정체에 관한 글 중에서 초막절의 참여 대상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있다. 하나의 진영은 남자만 그 절기를 지켰다는 견해이고, 또 다른 진영은 여성도 참여했다는 견해이다. 난 이미 초막절의 역사와 관련해 구약과 제2성전기 문헌까지 유대 문헌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초안을 완성한 상황이다. 여기에서는 모세오경에 나타난 모세의 명령을 위주로 살펴본다.

첫 번째로, 초막절은 남자만 지켰다는 견해를 살펴보자. 이 견해를 지지하는 여러 학자들이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Menahem Haran의 글을 위주로 다룬다. 내가 참고한 글은 Menahem Haran, “Zebah Hayyamim,” VT 19 (1969) 11–22이다.  

Haran은 초막절을 남자만 지키는 절기라는 근거 구절로 출애굽기 23:17과 34:23을 제시한다.

출 23: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출 34:23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하지만, 모세의 절기 준수 명령에 관한 다른 구절은 참여 대상을 남자로 제한하지 않는다. 그 근거 구절로는 레위기 23:2, 44와 민수기 29:40, 그리고 신명기 31:9-13을 제시할 수 있다.

먼저, 레위길 23:2, 44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의 절기를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 남자로 한정될 리 없다.

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레 23:44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다음 민수기 29:40에도 여호와의 명령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남자로 한정될 리 없다.

민 29:40 모세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라


가장 명확한 근거는 신명기 31:9-13을 꼽을 수 있다. 모세는 면제년의 초막절에 대한 명령을 추가하는데, 율법을 듣는 대상은 '온 이스라엘'이다 (11절). 이어서 '온 이스라엘'의 범위를 적시하고 있다 (12-13절).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성읍 안에 거주하는 타국인과 그의 자녀들까지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한다.

신 31:9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12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모세오경에서 출애굽기 23:17과 34:23을 제외한 나머지 구절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을 준수 대상으로 명령하고 있다. 따라서 출애굽기를 근거로 초막절이 남자가 준수하는 절기라고 주장할 수 없다.

반대로 Susan Ackerman는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절기라는 이유로 엘가나와 그의 가족이 드렸던 매년제가 초막절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참고한 저작은 Susan Ackerman, Women and the Religion of Ancient Israel, AYBRL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22)이다.

초막절의 다른 특징은 '즐거움'이다.

레 23:3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사사기 21:19-23에서 '춤추는 여자'(21, 23절)는 초막절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초막절만이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절기이며 즐거움을 수반한 절기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 이유는 3대 연례 절기를 명령하는 본문 중 하나인 신명기 16장에 나타난다.

신명기 16장에서 유월절은 출애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유월절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인데, 이날의 특징 중 하나는 '고난'이라 할 수 있다 (참조. 3절)

신 16:3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유월절과 달리 칠칠절과 초막절은 즐거움을 명령하는 절기이다.

먼저 칠칠절에 관한 명령은 아래와 같다. 여기서 칠칠절에 참여하는 대상에 너 (아마도 남자)와 네 자녀, 노비, 레위인, 객과 고아와 과부까지 포함된다 (11절).

신 16: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다음 초막절에 관한 명령은 아래와 같다. 여기서 초막절에 참여하는 대상 역시 칠칠절과 마찬가지로 너 (아마도 남자)와 네 자녀, 노비, 레위인, 객과 고아와 과부까지 포함된다 (14절).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이어 두 구절은 연례 절기의 참여 대상을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로 명령한다 (16절),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남자 이외에 참여 대상이 있으므로, 남자의 책임 아래 각 가정과 주변 이웃을 참여 대상으로 명령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따라서 초막절만이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절기이며 즐거움을 수반한 절기라고 주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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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1:19-23에서 내 관심사는 19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명절'의 정체이다.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이 명절의 특징은 '실로'와 '매년'이다. 더하여 '여자들의 춤' 혹은 '춤추는 여자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George F. Moore, Judges, ICC (New York: Scribner’s Sons, 1910), 451은 구약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으로 두 경우를 소개한다.

1. 승전가 (celebration of victory)

1) 사사기 11:34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2) 출애굽기 15:20

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이 구절만으로는 상황 파악이 안 되므로 전후 구절을 덧붙인다.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3) 사무엘상 18장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다윗의 승리를 축하하는 무리 중 여인들의 환영식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다음 구절에도 이어진다.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2. 종교 축제 (religious festivities)

1) 출애굽기 32:19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 아가 6:13
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딱히 생각해본 주제가 아니라서, 나도 연구 주제라서 관심을 두고 있어서, 구약을 여성의 춤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경우가 없다. 구약에 여성의 춤을 기록한 사례가 많지 않고, 그 사례마저 사사기 21:19-23와 동일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춤이라는 요소로 인해서 앞 두 단서와 합쳐져 초막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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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5장에서 이스라엘의 군주가 주도하는 속죄는 이스라엘 족속을 위해서 드린다 (17절). 에스겔의 주요 관심사는 성소와 성전 정화이며(18-20절), 군주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명절에 대속죄일은 포함되지 않는다. 앞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본 대속죄일과 초막절"에서 "에스겔 45장에서 대속죄일은 성전 정화와 관련이 있으며,"라는 문구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에스겔이 군주가 지켜야 할 명절로는 유월절과 초막절을 언급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신학이 요한복음에 흐른다(고 보인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첫 사역은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울 때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노끈으로 장사꾼과 환전상을 내쫓은 일이다 (2:13-22). 가나의 혼례는 첫 표적이며, 내가 매번 강조하듯이 예수의 의지에 반하는 사건이다 (2:1-12). 예수의 구속사를 예수의 대제사장직과 대속죄일로 해석하는 경향과 다르게, 요한이 이야기 전개에서 유대 절기를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지만, 그가 대속죄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한은 이 사건 이후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을 행했다는 기록(23-25절)으로 자신의 전개를 이어간다. 또한 요한은 유월절은 세 번 배치하고, 7:1-10:21은 초막절로, 10:22부터는 수전절로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한다.

요지는 에스겔의 성소와 성전 정화, 그리고 유월절과 초막절 준수 명령이 요한복음에서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에스겔에서 대속죄일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반복적인 속죄제를 통해 정화하기 때문일 수 있고, 아니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명절"에 포함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 간에, 에스겔과 요한복음이 대속죄일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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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속죄 사역, 즉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두고 예수의 대제사장 사역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다. 요한복음 19-20장을 대속죄일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지만, 앞으로 요한복음 전체를 더 세밀히 살펴봐야겠지만, 현 이해에 따르면 요한복음은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다. 비록 요한복음 1장 29절에 기록된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는 세례 요한의 선포는 예수의 대제사장직과 대속죄일과 거리가 멀다. (관련 글: 요한복음의 예수와 대속죄일; 속죄일과 초막절)

대속죄일을 강조하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구약 성경은 이 절기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막절을 더 강조한다. 에스겔 45장에서 대속죄일은 성전 정화와 관련이 있으며, 군주가 집례해야 할 명절에 포함되지 않는다. 에스겔이 군주가 지켜야 할 명절로는 유월절과 초막절을 언급하고 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가 이스라엘 재건 과정에서 성문에 모여 지킨 절기는 초막절이며, 대속죄일은 언급하지 않는다. (관련 글: 에스겔 45장 25절과 스가랴 14장 16절에 나타난 초막절; 에스겔 45장에 나타난 초막절; 느헤미야 8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귀한 공동체의 정체성과 초막절)

그 이유는 성전 신학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군주제의 등장으로 종교와 정치의 영역이 나눠지고, 솔로몬의 성전 봉헌과 관련하여 초막절이 지켜지면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성전과 관련지어지며, 대속죄일의 중요성은 낮아졌지만 초막절의 위상은 올라간다. 성전 파괴와 재건 과정에서 그 위상은 더 명확해진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성전과 자주 연결 짓는다. 예를 들어, 2장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자기 죽음과 부활을 처음 암시하셨으며, 7장 37-39절은 예수의 죽음과 성령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 성전과 생수의 강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요한복음은 유대 절기를 아주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며, 요한의 절기 사용에서 초막절은 7~10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대속죄일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성전 신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이러한 배경에서 요한복음이 예수를 성전으로 묘사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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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사기 21장 19절의 축제와 사무엘상 1장의 매년제는 서로 다른 행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앞 구절은 초막절이 확실하고, 뒤 구절은 절기로 특정할 수 없으나 확실히 초막절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사사기 21장 19절과 사무엘상 1장에 나타난 초막절"과 "희년서와 사무엘상에 나타난 초막절, 그리고 창세기의 아브라함 언약"에서 사무엘상 1장이 초막절을 배경으로 한다는 부분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다만 이전 글 이후 갱신이 되지 않았고, 마침 발표를 위해 소논문 형식으로 재작성을 하고 있어서 최근 조사를 반영하고자 한다.

두 본문에 나타난 행사의 정체를 다루기 전에, 내 전제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1. 저자/편집자는 절기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2. 군주제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사사기 21장 19절은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라고 진술되어 있다. 사무엘상 1장은 3절에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라고 기록되어 있고, 21절에 이 제사를 "매년제"라고 부른다. 두 행사는 실로에서 드려졌으며, 매년 시행되는 행사이지만, 그 행사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실로에서 매년 시행되는 행사이지만, 그 행사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청중 혹은 독자가 잘 알고 있어서 적시할 필요가 없거나, 저자 혹은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회피했을 가능성이다.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사사기 21장은 회중의 장로들이 베냐민 지파의 멸절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실로의 여자들을 납치하는 기록이다. 베냐민 지파의 멸절을 막기 위해 실로 지역의 여자를 없애는 역설이 이 단락의 핵심 내용이다. 그래서 사사기 전체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5절)이라는 말과 함께 마무리된다. 본문의 관심사는 실로의 여자 납치이며, 회중의 장로들이 제시한 대책이 시행으로 옮겨지는 시기가 바로 "실로에서 매년 시행되었던 여호와의 명절"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문이 굳이 명절을 명시할 필요는 없어진다.

사무엘상 1장은 시대 상황에 대한 언급 없이 엘가나의 종교적 신실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엘가나의 열심으로 인해 그를 비롯한 그의 온 가족이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게 된다 (21절). 엘가나의 열심과 한나의 서원은 엘리의 아들들의 행실(특히, 2장)과 대비된다. 이러한 대비를 위해 저자 혹은 편집자는 특정 절기를 명시하지 않고, "매년제"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매년제는 초막절의 성격과 거리가 멀다.

따라서, 두 본문의 저자/편집자는 절기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사사기 21장 25절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진술로 사사기 전체의 막을 닫았다면, 사사기 1장은 사무엘의 탄생 배경, 즉 엘가나의 열심과 한나의 서원이 전술된다. 사무엘은 사사-예언자의 전형으로 사사 시대를 마무리하는 인물이자 군주제의 시작을 여는 인물이다. 사무엘은 사울 왕조의 시작과 종말, 그리고 다윗 왕조의 시작에 동참한다. 사사기와 사무엘상은 "왕"이라는 주제로 연결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두 본몬은 군주제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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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초막절 단락(7:1-10:21)의 기능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이 글의 내용은 대체로 내 분석에 근거하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학위 논문에 포함될 예정이다. 

초막절 단락이 시작하기 앞서 저자는 예수를 떠나는 제자들을 다룬다 (6:66-71). 이 단락에서 저자는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고한다 (vv.70-71). 이어 예수의 활동 무대는 갈릴리로 옮기시고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이 명시된다 (7:1).

본격적으로 유대인의 명절 초막절이 언급되고 (v.2), 명절의 중간에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시기 시작한다 (v. 14). 여기서 초막절과 성전이 연결된다.

7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락은 예수의 죽음과 성령에 관한 가르침이다 (v. 37-39). 나는 이 단락의 기원을 스가랴 14장과 연결한다. 선행 연구에서는 초막절의 헌수 의식(water libation ceremony)에 초점을 맞추지만, 초막절의 기원은 출애굽의 구원이며, 점차 농사를 위한 비와 관련지어져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감사하는 절기로 정착된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v.37),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 (v. 38)고 말씀하신 이유는 다 이러한 초막절의 배경을 근거로 한다. 가장 중요한 신학적 전환은 예수께서 생수의 강을 성령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v. 39).

이어 그리스도 논쟁 (7:41-42)을 위치시킨 이유는 분명하다. 요한은 초막절 단락에서 그리스도/다윗 기독론의 절정을 의도하고 있다.

8장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자손과 펼쳐지는 논쟁이다 (특히, vv.33-59). 예수의 정체는 아브라함을 능가한다.

9장의 핵심은 모세의 제자와 펼쳐지는 논쟁이다 (특히, vv.28-41). 예수의 정체는 모세를 능가한다.

10장의 핵심은 선한 목자로서 예수께서 목자-양 유비를 사용해 자기 죽음과 부활을 가장 극명하게 가르치는 장면이다 (vv.1-18).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v.18). 선한 목자 담론은 예수의 구속 사역과 그의 권위를 통해 신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보통 목자-양 유비는 왕권 사상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스가랴 14장에서 여호와의 날 이후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고 이방 나라에 초막절을 명령하시는데, 이 명령은 열방 국가의 통치자에 대한 순종, 여호와의 열방 통치를 상징한다. 요한이 선한 목자 담론을 통해 예수의 사역과 권위를 드러냈기 때문에, 이 담론의 배경인 초막절을 고려해 스가랴 14장을 적용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요한복음은 초막절 단락에서 예수의 왕권을 진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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