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에서 박사 학위는 최종 단계에 해당하며, 그 위치에 준하여 학술적 역량에서 최상급을 요구한다. 박사 학위 소지자는 이상적으로는 전공 분야, 현실적으로는 학위논문만큼은 제출일을 기점으로 세계 최초이자 세계 최고의 담론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 해당하는 신학은 최종적으로 논문을 통해 학생 개인의 학술적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학위 논문에 포함되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글로 심사자들을 설득해야 하고, 최종 단계에서 구술 면접으로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
주로 글로 지도 교수(진)를 비롯한 심사자들과 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나처럼 회화 능력이 다소 부족해도 학업을 진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그만큼 단일 요소로 학습자의 역량을 다 보여줘야 한다.
영국 대학 박사 과정이 연구자 배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지도 교수(진)가 학생에게 세세한 지침을 주지 않는다는 교육 방식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수긍하다 해도 교정이라는 또 다른 장벽에 마주치게 된다. 비영어권 국가 유학생에게는 영어라는 언어적 장벽이 더해짐.
비원어민 학생들이 교정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는 Grammarly가 있다. 최근에는 ChatGPT가 유용하다고 한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런 서비스를 활용해도 지도교수(진)로부터 교정을 반복적으로 요구받을 수 있다. 개인의 편차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논문 최종 제출 전에는 최소 1회 이상 전문 편집자로부터 교정을 받는다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교정은 문법과 어휘, 가독성 등을 다룬다. 영작 경험이 적은 이들은 대다수 이 단계에서 도움을 많이 받는다. 문법 오류나 각주 양식 등 기본적인 사항은 엄수해야 하겠으나, 지도 교수(진)가 교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문헌조사와 연례 평가를 위해 지도 교수를 만났을 때, 그가 내게 교정을 요구하면서 "자신이 집중해서 읽고 더 나은 피드백을 주기 위해서"라고 직접 이유를 밝혔다. 나는 그의 말에 교정이 갖는 두 번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도 교수는 학생의 글에 담긴 주장과 근거 등을 가장 먼저 판단해 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책임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학생은 지도 교수가 일차적인 교정 작업을 건너뛰고 바로 내 글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비싼 학자금을 내는 학생의 입장에서 교수가 그 정도는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지만,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다음은 박사 학위 논문은 최종적으로 출판을 목표로 하므로 논문 자체가 출판할 수 있는 상태로 제출되어야 한다. 논문 집필 단계에서 교정을 병행하면 글의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에, 최종 교정을 할 때 수정 작업이 수월해질 수 있다.
또한 교정 단계에서 작업자가 글의 질적 향상을 위한 일차 독자의 기능을 할 수 있다. 교정자의 역량과 정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독성과 흐름 등에 도움을 주기도 하므로, 그로부터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왜 학자금 이외에 별도의 자금을 들여 교정받아야 하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지만, 학생이 아니더라도 논문 게재를 위해 사설 업체에 교정을 맡기는 사례가 적잖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역시 현실에 순응하고 더 나은 방향을 잡아야 하는 쪽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문제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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