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세미나 후기] Catrin Williams, “Sign(s) and Scripture in the Gospel of John”

카트린 윌리엄 교수는 요한복음 전문가로 유대 경전과 전승 수용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2016년부터 SBL의 ‘John, Jesus, and History Group’에서 Craig Koester 교수와 함께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며, 근래 SNTS Johannine Seminar에서 Jörg Frey 교수와 Christina Hoegen-Rohls 교수와 함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오늘 세미나 주제의 본문은 요한복음 6:16-21이다. 카트린 교수는 요한복음이 마가복음을 재작성(rewriting)했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에 의거해 요한복음 6:16-21은 마가복음 6:45-52을 토대로 하다고 본다. 이와 별개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뜨거운 관심사이다. 이 부분은 아래 책을 참고하라.

John's Transformation of Mark
https://www.amazon.co.uk/dp/0567691896/

요한은 공관복음과 경전 사용에 있어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요한이 자신의 의도대로 여러 자료들을 병합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요한의 원칙에 관해서는 Wendy E.S. North의 『What John Knew and What John Wrote: A Study in John and the Synoptics』, 용례 연구에 관해서는 "Composite Citations in the Gospel of John" in 『Composite Citations in Antiquity: Volume Two』를 보라.

마가복음 6:45-52과 요한복음 6:16-21를 비교하면, 요한이 마가의 자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의 강조점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카트린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요한은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이 출애굽 모티프를 두 차례나 나타나며,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를 그린다.

카트린 교수는 대중들과 제자들 간의 반응이 대조된다고 간주한다. 대중들은 떡과 물고기 사건에 이어 이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반면 제자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나는 제자들의 반응은 사건의 중요성을 알았다거나 그 의미를 이해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예수를 향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질문했다. 그러나 카트린 교수는 문자 그대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답했다. 내가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사용한 단어에 따른 의미적 차이를 부여하는 해석은 무리라고 본다.

요한은 대중들이 갖고 있는 모세에 관한 인식들을 의식해 예수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마가복음을 재작성했다고 결론짓는다.

내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고, 강연자의 주제와 접근 방식이 흥미로워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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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후기] Prof Philip Alexander (Manchester), “Materiality and Coherence: To what extent is the literary coherence of ancient texts affected by the technologies of their composition?”


필립 알렉산더 교수는 고대후기 시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랍비 유대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992-95년에는 Oxford Centre for Hebrew and Jewish Studies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William Tooman 박사가 알렉산더 교수의 연구 이력을 말해주는 데 한참을 소개했다.

3장짜리 인쇄물을 나눠주었는데 전부 참고문헌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늘 강연이 오랜 세월 동안 자료들을 섭렵해온 결과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세미나에 참석한 이유는 고대 자료의 "일관성"(coherence)와 집약 기법 등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주제는 내가 연구하고 있는 문헌들의 신뢰성에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다.

구술 전승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기억'에 관한 사안들, 기록 문화가 확대되면서 발생한 필기와 필사 등과 같은 사안들을 먼저 다루었고, 일관성에 대해서는 문헌의 상태와 축약 등 일부를 다루었다.

내용 자체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다. 내가 강연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선에서 더나아가지 못했다. 수확이라면 3장짜리 참고문헌들?

Emeritus Professor Philip Alexander
https://research.manchester.ac.uk/en/persons/philip.alex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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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후기] Loveday Alexander, “Paul's Roman Embassy: Reading Luke-Acts with Josephus in Rome”

Emeritus professor Loveday Alexander 
https://www.sheffield.ac.uk/religion/people/loveday-alexander

러브데이 알렉산더 교수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주로 연구하고, 그리스-로마를 역사적 배경으로 해석한다. 오늘 세미나 주제에 그녀의 관심사가 잘 묻어난다.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1장짜리 인쇄물에는 사안 별 참고문헌들을 기입해두었다. 누구든 차후에 관심있는 주제에 따른 연구의 시발점으로 삼을만 하겠다. 

오늘 세미나를 통해 러브데이 교수의 제안대로 사도행전을 로마의 요세푸스와 비교해서 읽을 때 발생하는 상황을 대강 훑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 기준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안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자면,

1. 요세푸스의 전쟁사 기록이 과연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을 받았는지 아니면 특정 집단에 통용되던 기록에 지나지 않는지 물어야 한다. 즉, 동시대 사람들은 요세푸스가 기록한 사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2. 전쟁 이후, 70년 경 유대 성전의 파괴 이후 상황에서 사도행전에 성전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2.1) 전쟁과 성전파괴의 상관관계
 2.2) 로마와 성전의 상관관계

3. 누가의 헤롯 왕조에 대한 시각에서 강력한 이방 지도자들에 의해 소수 민족들의 운명이 좌우되는 현실을 상반되는 관점을 마주하게 된다.

4. 헬라어 loudaios와 christianoi 사이의 구분은 어떻게 하는가? 여전히 유대인들의 정체 규명이 쉽지 않은 과제이다.

여담으로 세미나 홀에 한 노신사가 앉아 있었는데, Madhavi Nevader 박사 그리고 Elizabeth Shively 박사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길래 누군가 싶었다. David Moffitt 박사의 소개로 그가 Philip Alexander 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됨. 참고로 내일 진행될 구약학 세미나 발표자임.

Emeritus Professor Philip Alexander
https://research.manchester.ac.uk/en/persons/philip.alex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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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후기] Grant Macaskill, “Cultic Practice and Divine Reciprocity in 2 Enoch: A Rhizome of Religion in Late Antiquity?”

Grant Macaskill
https://www.abdn.ac.uk/people/grant.macaskill/

그랜트 마카스킬 교수는 St Andrews에서 2005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후과정까지 마친다. Senior Lecturer로 재직하다가 Aberdeen으로 이직한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Kirby Laing Chair of New Testament Exegesis로 재직하고 있다. 영국 내에서 St Andrews 박사 학위 출신으로 가장 잘 알려지고 널리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오늘 세미나 주제는 “Cultic Practice and Divine Reciprocity in 2 Enoch: A Rhizome of Religion in Late Antiquity?”이다.

세미나 제목에 나타나듯이, 에녹 2서를 후기고대 시대의 종교 기원(Rhizome)으로 볼 수 있냐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같은 질문은 에녹 2서에 나타나는 독특한 개념들로부터 도출된다.

본교 Senior Lecturer로 재직 중인 T.J. Lang 박사가 "Rhizome"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마카스킬 교수는 나무의 뿌리와 그 가지로 설명을 했다.

랑 박사가 마카스킬 교수가 사용한 "Rhizome"에 질문을 던진 이유는 본인이 아래 책을 읽었으나 그 개념이 오늘 주제에 적용이 가능한지 묻고 싶어했던 거 같다.

Deleuze and Guattari's A Thousand Plateaus: A Critical Introduction and Guide
https://edinburghuniversitypress.com/book-deleuze-and-guattari-s-a-thousand-plateaus.html

우리말샘이 제공하는 네이버 국어사전에 포함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리좀 ([프랑스어]rhizome)
이항 대립적이고 위계적인 현실 관계 구조의 이면을 이루는, 자유롭고 유동적인 접속이 가능한 잠재성의 차원.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Gattari, P. F.)가 제시한 관계 맺기의 한 유형이다.

마카스킬 교수가 자신의 노트북 옆에 책 한 권을 올려 두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저작이었다.

The Slavonic Texts of 2 Enoch
https://brill.com/display/title/19042

현재는 내 연구와 관심사에 접점이 없으나 추후 연구활동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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