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스는 고대 크레타 섬을 통치했던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된다.

저는 그곳에서 제우스의 빛나는 아들, 미노스를 보았습니다.
그는 앉아서 황금 지팡이를 쥔 채 망자들에게 법도를 알려주고 있었고,
그들은 문도 넓은 하데스의 집에서 그를 둘러싼 채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판결을 구하고 있었답니다. (11.568-571)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이준석 역, 아카넷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11권에서 주인공 오뒷세이아는 하데스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지인들을 만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미노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바라본 미노스는 하데스에서 망자들에게 법도를 알려주고 판결을 내려주고 있었다. 이런 역할은 그의 왕의 지위와 그가 이상적인 왕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묘사한다. 또한 "제우스의 빛나는 아들"이라는 설명은 그가 갖는 위상을 드러내며, "황금 지팡이"는 그의 왕위를 드러낸다.

플라톤의 『미노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왕은 사람의 영혼에 법을 제공하는 사람이며, 미노스를 이상적인 왕이라고 평가한다.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생애에 300~400년의 시간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미노스에 대한 인식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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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일리아스』에서 '목자'의 용례는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왕(혹은 지휘관)을 지칭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전투 장면(과 관련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문자 그대로 목자와 관련된 진술이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사용한 목자의 용례 중 첫 번째는 왕(혹은 지휘관)을 지칭하는 경우이다. 호메로스는 왕(혹은 지휘관)을 지칭하는 용어로 '백성들의 목자'라는 칭호를 빈번히 사용한다. 이 칭호는 총 39회 사용되고, 총 19명에게 적용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논문과 관련된 내용이라 생략한다.

호메로스의 '백성들의 목자'라는 칭호가 중요한 이유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 왕을 목자로 비유하는 사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용례를 통해 고대 그리스 사회에 목자-양 비유 혹은 목자-왕 전승이 존재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호메로스는 전투 현장을 생생히 묘사할 때 목자-양 비유를 사용한다. 다음은 그 사례 중 일부이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 주목하라.

튀데우스의 아들은 다시 한번 선두 대열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안 그래도 그는 트로이아인들과 싸우고자 진작부터 기세가 올라 있었는데, 이제는 무려 세 배의 기운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들판에서 털복숭이 양 떼 곁에 있던 목자가, 울타리를 뛰어남은 사자에게 생채기만 입힐 뿐, 제압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사자의 힘만 돋워놓은 채 막아내지는 못하고, 우리 안으로 숨어들어 가니, 버려진 양 떼는 겁에 질려 도망친다. 양들은 서로를 향해 무더기로 쓰러지고 달아오른 사자는 마당 깊숙한 곳에서 부터 뛰쳐나온다. 꼭 그런 모습으로, 강력한 디오메데스는 작정하고 트로이아인들에게로 섞여 들어갔다. 5. 134-143

그가 이렇게 말하자 빛나는 눈의 아테네는 디오메데스에게 기운을 불어넣었고 그는 닥치는 대로 살육하기 시작했다. 칼에 맞은 자들에게서는 지독한 절규가 치솟았고, 대지는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목자 없는 염소 떼나 양 떼에게 사자 한 마리가 독기를 품고 다가와 뛰어오르듯이, 튀데우스의 아들은 트라케인들에게 다가와 열두 명을 쳐 죽였다. 10.482-488

세 번째로, 호메로스는 실제로 목자 혹은 양과 관련된 사건을 서술하기도 한다.

양떼를 많이 둔 퉤에스테스 2.106

노토스(북풍)가 산꼭대기에 안개를 쏟아부으면, 목동에게야 좋을 리 없겠지만, 3.10-11

이 육중한 소리는 멀찍이 떨어진 산속 목자의 귀에도 들린다 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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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에서 목자-양 유비는 1권과 4권, 이렇게 단 두 곳에서 나타난다.

1권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를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기 위해 "양과 목자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그에게 목자가 양을 돌보는 이유는 양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이며,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기술과 보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통해 목자가 양을 돌보는 이유는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며 양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여기서 목자-양의 관계가 통치자와 피통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특징이 발견된다.

4권에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목자를 언급하지만, 이곳에서는 목자-양 유비가 아니라 목자와 개의 관계를 사용한다. 소크라테스에게 불의한 일에 대해 목자가 개를 부르는 것은 이성적 추론을 통한 통치를 의미하며, 개가 목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국가의 보조자들이 통치자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목자와 개는 통치 개념이 적용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플라톤의 『국가』에서 목자-양 유비는, 목자와 개의 관계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다소 변형이 있으나, 통치자와 피통치자에게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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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제일 관심은 국가 운영으로 보인다. 

『미노스』는 그리스에 영향을 미친 고대법(the ancient law)을 통해 전설의 크레타의 왕인 미노스를 등장시킨다. 소크라테스는 미노스를 이상적인 왕으로 칭하며,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찬가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 소크라테스가 미노스를 칭송하는 이유는 크레타 백성은 법을 준수하는 모범으로 알려졌으며, 법의 준수가 가능한 원동력은 고대 법이었고, 그 법을 통치 수단으로 입법화한 인물은 미노스였다. 다만 이 책은 영혼을 위한 배분으로써 법의 실재를 다루려는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끝맺음을 낸다. 내 짐작에 이런 결말은 저작 당시에 미완성된 저자의 사상에서 비롯되었거나, 자신의 다른 저작 『법률』에서 강화하려는 의도이거나, 한때 제기된 위작론을 고려하여 위작의 한계로 인해 플라톤의 경험과 사상을 오롯이 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화두는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소크라테스의 대담자들은 저마다의 정의에 관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각자가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정리한다. 그에게 정의는 국가와 개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본서에서 통치자로 철학자를 지명한다.

『정치가』는 국가 운영의 실체로서 정치가를 지목한다. 본서에서 정치가는 입법이라는 국가 운영의 실체를 감당하며, 시민이 주도적으로 법이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세간에 『국가』가 플라톤의 주저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 플라톤의 정치 혹은 법에 관한 정점은 『정치가』에서 나타난다. 이 생각은 『법률』이나 다른 저작을 통해 바뀔 수 있음. 플라톤의 저작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적지 않지만, 내 주요 관심사는 아니라서 필요만 충족하는 선에서 매듭지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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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에서 목자-양 유비가 나타나는 본문 중 하나는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대화이다. 이 논쟁의 화두는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트라시마코스느 "정의는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소크라테스는 "전문지식은 강자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살피거나 명령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약자에게 이로운 것을 살피거나 명령한다"는 말로 반박한다.

자신의 주장이 전복된 상황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양과 목자를 언급하며, 목자가 양을 목양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양 치는 기술은 그 대상인 양에게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플라톤의 저작을 읽으며 느껴지는 몇 가지 감정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 다루는 부분에 한정하면, 내가 볼 때 소크라테스는 권력의 속성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그는 그저 현실감각이 뒤처지는 논리 이상주의자라는 인상을 준다.

내 역할은 일차적으로 이 대화에 나타난 목자-양 유비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 그리스-로마 문헌에 나타난 플라톤의 저작이 가진 특징을 서술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유대 문헌과 비교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굳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필요 이상으로 비판할 필요가 없으니, 이 정도만 언급하고 내 할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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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미노스』에는 목자가 두 번 나타난다. 첫 번째 용례는, 소크라테스가 이상적인 왕으로 미노스를 칭송하는 이유 중 하나로 호메로스가 훌륭한 장군을 "양 떼의 목자"라고 부른 용례를 제시한다. 두 번째 용례는, 배분자 혹은 적임자의 사례 중 하나로 목자를 언급한다. 양 떼를 가장 잘 양육하는 사람은 목자이다. 이어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영혼을 위한 법은 왕이 적임자라고 말한다. 두 용례 모두 목자-양 유비를 왕 혹은 지도자와 연결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 저작에서 목자-양 유비를 예시로 사용되었을 뿐 그 이상의 기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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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내가 살펴본 플라톤의 『정치가』와 『미노스』를 미루어 보아, 플라톤의 주요 관심사는 국가 운영이며, 법은 국가 운영을 위한 도구이다. 플라톤은 국가 운영의 조타로서 법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으며, 그 결과로 법률 3부작으로 꼽히는 『미노스』(Minos: On the Laws), 『법률』(The Laws), 『에피노미스』(Epinomis: On the Laws)가 탄생했다.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미노스』와 『에피노미스』를 위작으로 간주했으나, 지금은 진작론이 대세라고 한다.

플라톤의 저작 여부와 저작 시기는 내 관심사가 아니지만, 플라톤의 저작이라는 전제하에서는 『미노스』가 초기 작품에 『정치가』가 중후기 작품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결정적인 증거라면, 국가 운영의 도구로서 법에 대한 구체화가 『미노스』보다는 『정치가』에서 개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미노스』가 영혼을 위한 배분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전에 매듭을 짓지만 『정치가』는 더 다양한 예들을 통해 논의를 완성해 간다.

두 작품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보이는데, 그중 하나는 왕에 대한 묘사이다. 『미노스』에서는 크레타 왕 미노스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고대법의 가치를 강조하지만, 『정치가』에서는 왕의 역할을 미비하게 간주하며 법 제정자로서 정치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플라톤의 시대 상황을 고려한다면, 『미노스』보다는 『정치가』가 저자의 현실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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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정치가』에서 크로노스 신화는 시대의 전환과 그에 준하여 인간이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목적을 가진다. 크로노스 시대에 짐승과 인간은 신성한 목자, 즉 신의 돌봄을 받았다. (뒤집어 말하면, 인간이 지성을 활용할 만큼 발전된 사회가 아니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현 제우스 시대는 분열의 시기로 이전과 달리 신을 의지하지 말고 인간이 신이 준 지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반면, 『미노스』에서 크로노스는 신화에 알려진 대로 그의 포악성을 통해 법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목적을 가진다. 작품에서 동료는 소크라테스에게 국가마다 다른 법을 갖고 있다고 항변한다.

두 작품 모두 크로노스를 제우스와 대비된 인물로 묘사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약 『정치가』에서 크로노스 시대를 이상향으로 그리지 않고, 반어적으로 읽어야 한다면 두 작품 모두 크로노스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공통점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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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학계의 경향대로 『정치가』와 『미노스』가 플라톤의 저작이라고 전제하면, 두 작품에 존재하는 저자의 제우스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역서의 해설에 따르면, 『미노스』는 한때 위작론이 대세였고, 지금은 진작론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먼저 『정치가』에서 제우스는 크로노스 신화에서, 크로노스 시대와 대비되는 현시대의 상징, 즉 플라톤이 처한 현실을 제우스의 유산으로 정의한다. 크로노스 시대에는 인간이 신성한 목자의 목양에 의존하면 되었으나, 제우스 시대에는 인간 스스로 지식/기술을 사용하여 생존해야 한다.

이어 『미노스』의 등장인물인 소크라테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한다. 미노스는 왕의 기술을 습득한 자로, 제우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유일한 왕이었다. 미노스를 향한 찬사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저작에 잘 나타난다.

결국, 플라톤은 제우스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을 기술로 정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두 저작에서 국가 운영의 주체로서 왕과 정치가의 입장을 달리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으나, 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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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via de Luise, “L’età dell’oro e il rovesciamento del mito del buon governo nel Politico di Platone. Una lezione sull’uso dei modelli,” Plato Journal 20 (2020): 21–37.

윗글은 이탈리아어로 작성되었다. 영문 제목은 "The Golden Age and the Reversal of the Myth of Good Government in Plato’s Statesman: A Lesson on the Use of Models"이고, 한국어로는 "플라톤의 정치가에 나타난 황금시대와 좋은 정부 신화의 전복: 모델 사용의 교훈" 정도가 되겠다. 이 논문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글의 목적이 논문 요약이 아니라서 축약도는 떨어진다. 

저자는 크로노스 신화의 시대를 '황금기'(the golden age)에 비유한다. 그녀의 해석에 의하면, 호메로스의 왕권-목축 사회(kingship-pastoralism)은 구시대 제도(an archaic scheme)이며, 크로노스 신화의 신성한 목자 (divine shepherd)와 달리 현재는 인간이 이성을 사용해야 하는 시대이다. 신화는 시대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드러내는 기교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훌륭한 국정운영(good governance)은 목양 기술(the art of shepherding)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국가론』의 철학자에 대한 논의하며, 『정치가』에서는 철학자에 대한 논의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크로노스 신화가 헤시오도스 신화, 즉 『신들의 계보』 혹은 『신통기』와 비교되며, 플라톤의 독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녀의 해석에 의하면, 『정치가』에 진술된 신화 갱신은 헤시오도스의 사관(역사는 쇠퇴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과 플라톤의 사관(인류는 진보한다)의 대조를 보여준다. 기술은 신성한 재능 (divine gifts)이다. 

정치인은 신이 아니며 목자가 아니다. 왕과 정치가를 목자로 인식하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왕과 정치가는 목자가 아니다. 오늘날 시민은 신화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국정운영은 목자의 먹임이 아닌 양육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양육자(caretaker)를 신화처럼 목자로 보면 폭군이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국가론』과 『법률』를 토대로 『정치가』를 보면 크로노스 시대의 종말은 곧 신성한 목자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그녀는 패러다임 사용의 이점과 한계를 지적한다. 신화는 신성한 목자 모형에서 정치권력으로 이동한 현실을 반영한다. 

정치학의 패러다임은 직조(weaving)이다. 『정치가』는 정치학의 예술/기술에 집중해서 다룬다. 왕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질서정연한 체계에는 자율성이 요구된다. 오늘날 필요한 국정 운영 모형은 목자 모형이 아니라 기술 모형이다.

황금시대의 신성한 목자 신화는 부정성과 긍정성을 둘 다 갖고 있다. 부정적인 효과는 "왕족" 남성에 대해로 정치가를 명령의 위치에 있는 신의 위치로 올려놓게 된다.  긍정적인 효과는 무리의 이익을 지향하는 "돌봄"의 모형을 제시한다.

국정 운영은 기술적이며, 비신화적 요소의 쇠퇴를 요구한다. 시민의 신뢰와 협력이 요구된다. 시민은 신성한 목자의 인도에 기대어 자신의 의무를 무의식적으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논문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플라톤이 신화를 사용한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저자의 본문 이해와 주장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몇 가지는 재고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신성한 목자 모형에 관한 견해이다. 저자는 제족에 '전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학계의 대세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진술을 따라가 보면 과연 '전복'이란 단어가 적합한지 의아하다. 후반부에 신성한 목자 신화의 양면성을 지적하면서, 목자 모형의 긍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볼 때, 플라톤의 정치가에서 행인(the stranger)과 젊은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정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내 해석에 의하면, 플라톤은 신성한 목자에 관한 시민의 인식을 '전복'하지 않고, 교정 혹은 재정립하고 있다. 가령, 플라톤은 목자에게서 돌봄의 기술(the art of caring)을 토대로 정치가의 덕목을 유추해 낸다. 내가 볼 때, 저자는 이런 흐름을 인식하고 있지만 플라톤이 목자 모형이 '전복'된다는 주장으로 결론을 맺는 이상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또한, 그녀의 의도대로 플라톤이 패러다임을 사용하는 이유와 그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플라톤이 목자 모형에서 직조 모형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례가 덧붙여지는데, 그 이유는 단일 모형으로는 이상적인 정치가의 덕목을 진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신성한 목자 모형을 재인식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된 플라톤 시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플라톤은 생전에 왕정(Monarchy)이 아닌 공화정(Republic)을 전제하고 있다. 플라톤이 왕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정치가의 덕목에 집중하는 이유는 크로노스 신화와 같은 왕정 국가의 왕권 사상은 과거이며, 그의 현재는 공화정 체제에서 다수의 정치가가 활동하는 시대에 이상적인 국정 운영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상적인 정치가의 덕목을 진술하면서 시민의 역할도 강조한다. 이러한 국가 체제와 정치 기술의 변화에 따른 국정 운영 기술의 변화는 마땅히 시민의 과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군데군데 『정치가』 내부가 아닌 『국가론』과 『법률』에서 논증을 가져온다. 내가 볼 때 플라톤의 저작이라 하더라도 필수적인 논증에 도움이 되는 활용은 아니다. 달리 말해  정치가의 논리로 서술할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 불필요한 논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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