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동물묵시록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의 인생을 동물의 특징에 빗대어 묘사한다. 연대기의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동물의 종류와 시대 구분 사이의 관련성에 주목하되, 특별히 황소(bull)와 숫양(ram)에 초점을 맞추었다.

 

황소와 숫양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황소로 묘사된 대표적인 인물은 아담(85:3), 노아(89:1), 아브라함(89:10), 이삭(89:11)이다. 또한, 그들은 흰 황소라고 묘사된다. 흰색은 그들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갖는 정당성을 의미하는 듯하다. 황소로 묘사된 인물들이 활동한 시기는 천지창조부터 족장 시대이다. 가부장 중심으로 군락을 이루던 시대적 특징을 황소라는 동물로 표현한 듯하다.

 

숫양으로 묘사된 첫 인물은 야곱(89:12)이다. 흥미롭게도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은 흰 황소(89:11)인데, 정작 그는 흰 숫양이다(89:12). 야곱의 열두 아들은 열 두 마리의 양으로 묘사된다(89:12).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은 흰 숫양으로 일컬어지고, 나머지 형제들은 열한 마리 양으로 묘사된다(89:14). 여기서 숫양은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이 이집트에 거주하도록 해주며, 야곱의 후손들은 그 땅에서 번영한다 (89:14). 숫양의 출현은 족장 시대의 종말과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을 의미한다. 이후 숫양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칭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울(89:42), 다윗(89:46), 솔로몬(89:48b), 유다 마카비(90:13, 16. cf. 90:9)가 있다. 미세하지만 각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첫 번째로, 사울은 처음부터 숫양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다윗과 솔로몬은 양에서 숫양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유다 마카비는 양(90:9)으로 등장한 이후 숫양(90:13, 16)으로 묘사된다. 숫양은 양의 성별을 구분하는 용도가 아니라 무리의 지도력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뿔에 대한 언급이다. 사울과 유다 마카비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뿔”의 존재를 부각한 반면, 다윗과 솔로몬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도 숫양이 뿔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본문에서 뿔의 기능/존재를 언급하는 의도가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특이하게도, 출애굽 공동체를 이끌었던 모세는 숫양이 아닌 양으로 묘사된다. 더 놀라운 건, 모세가 양에서 사람이 되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노아는 황소에서 사람이 됨).

 

황소와 숫양은 지도력을 상징한다. 황소는 가부장 중심의 일족을 대표한다면, 숫양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지도력의 범위가 확대된다. 이러한 변화는 성경에서 양을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환유를 반영하려는 의도가 있다(Nickelsburg, 1 Enoch, 378).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출발점(창 35:10–11)이므로, 그를 숫양으로 묘사한 것은 타당하다.

 

덧붙여, 하나님의 등장과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출현과 동시에 시작한다(창 1:1). 하지만 동물묵시록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한 마리의 황소가 땅에서 나온다고 진술한다(85:3). 흥미롭게도 황소가 등장하는 본문에는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 숫양의 등장 이후, 정확히는 늑대로부터 억압당하는 양의 부르짖음으로 인해 “양의 주인”(the Lord of sheep)이 언급되기 시작한다(89:15).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칭호에서 둘 사이의 관계가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 정의는 목자-왕 전승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관계는 종말론적 구원이 실현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

,

에녹 1서에서 동물묵시록은 고대 이스라엘의 연대기를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동물묵시록'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본문은 두 가지 특징을 내포한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을 동물로 묘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짐승의 종류와 색상 등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주요 인물의 경우 부연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두 번째는, '묵시록'이란 장르의 특성상 천상적 존재가 등장한다. 천상적 존재 가운데 천사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편의상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사람은 아니다. 타락한 천사는 짐승으로 변한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는 따로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있다. 에녹, 노아, 모세가 그들이다. 

에녹서에서 에녹은 계시 수령자이다. 그는 꿈과 환상을 통해 하늘의 비밀을 전달받았다. 또한, 에녹은 계시 전달자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아들 므두셀라에게 가르쳐준다. 이러한 특별한 역할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창세기 5장 24절의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에서 에녹에 관한 언급은 극히 제한적이라 그런지, 에녹서에서도 그의 생애나 행적에 대한 언급은 한정되어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에 대한 기록(85:3-9) 이후 계보에 대한 언급이 잠시 중단된다. 중간에 에녹이 자신의 계시 수령 체험을 기록하며 신적 심판의 사유(86-88장)을 말한다. 이후 노아가 등장하며(89:1) 다시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은 아담과 노아를 비교하는 기법인 동시에 에녹의 생애를 건너뛰는 효과가 있다. 면밀히 말하자면, 동물묵시록에서 에녹의 역할은 환상을 보는 관찰자이다.

노아는 홍수 심판의 때에 방주를 지어 구원을 경험한 인물이다(창 6-10장). 노아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기록이 대변해 준다. 동물묵시록에서 노아는 흰 황소로 등장하며 추후 사람으로 변한다(89:1). 사람으로 변하는 시점은 방주 사건 이후로 보인다 (89:9). 에녹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선포하는 데 있으며, 노아의 홍수를 다가올 심판을 위한 심상으로 사용한다. 에녹서는 ‘노아의 탄생'(The Birth of Noah, 106-107장)을 수록할 정도로 노아를 중요한 인물로 그린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가 갖는 위치는 남다르다. 그의 위상을 반영하듯이 동물묵시록에서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모세이다. 단순히 구절만 비교해도 노아(89:1-9)보다 모세(89:17-38)가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에녹서 전체에서는 노아의 비중이 더 크다. 모세는 양으로 태어나 사람이 된다(89:36, 38). 그가 변형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나의 입장은 성막과 연결하는 해석이다. 몇몇 학자는 본문이 변형과 성막을 연결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한다 (“And I saw in this vision, until that sheep became a man and built a house for the Lord of the sheep and made all the sheep stand in that house,” 89:36). 한편으로는 시내산 현현을 변형의 순간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James VanderKam and Dulcinea Boesenberg). 나는 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내가 생각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본문은 변형 이후 성막을 지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우선, 모세의 생애에서 성막 건축 이전의 광야 생활을 압축적으로 진술하면서 양에서 사람으로 변형된 순간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89:36). 또한 모세의 광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변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And that sheep that had led them, that had become a man, was separated from them and fell asleep, and all the sheep searched for him and cried bitterly because of him,” 89:38). 모세의 생애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부분은 시내산 현현이다. 두 번째, 변형과 성막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 솔로몬의 업적은 성전과 궁전 건설이다(89:50).  변형과 성막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면, 솔로몬은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솔로몬은 조그만 양에서 숫양이 된다고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89:48b).

이처럼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그려지는 역사적 인물은 에녹, 노아, 모세가 전부이다. 이외에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 등장인물은 70 목자들(89:59)이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존재이다(89:59). 70 목자를 타락한 천사와 연결하는 해석이 있는데, 나는 그러한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 본문은 명백히 하나님이 70 목자를 소환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동물묵시록에서 이방 세력은 온갖 짐승으로 묘사되지만, 여기에서는 이방 통치 기간의 정당성을 위해 ‘목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임무는 양 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다 (89:59–60). 70목자는 70년을 다스린다. 70년의 시대 구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내가 볼 때 목자의 숫자나 통치 기간의 관련성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70’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70년이 이방 통치자의 지배라는 해석에는 이견이 없다.

,

앞서 말한 대로, 나는 동물묵시록을 목자-왕 전승과 연결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동물묵시록의 특징을 분석하고, 뒤이어서 목자-왕 전승과 비교해야 한다. 현재 내가 골몰하고 있는 주제는 '큰 뿔 달린 숫양'이다. 지난 글에 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1. 뿔 달린 숫양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사울과 유다 마카비 둘 뿐이다.
2. 큰 뿔 달린 숫양은 오로지 유다 마카비 이외에는 없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동물묵시록에서 숫양과 뿔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에 앞서 해결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큰 뿔 달린 숫양'이 과연 유다 마카비를 가리키는가?"이다. 다수의 견해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으로 인해 나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큰 뿔 달린 숫양은 유다 마카비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수의 견해는 어디든 존재한다. Menahem Kister와 Eyal Regav가 바로 다수의 견해에 맞서는 소수 진영에 속한 학자들이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큰 뿔 달린 숫양'은 유다 마카비로 봐야 한다는 다수의 견해를 지지한다. 소수 견해가 갖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은 다수의 견해를 취해도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소수 견해를 따르면 쉽게 풀 수 없는 의문들이 제기된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 파생되는 연결고리들이 있고, 지도 교수와 대화를 나눠야 할 주제들이라 현 단계에서는 내 생각만 짧게 남겨두려고 한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는 세대라 실향민이나 전쟁 포로의 심정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또한 고대 유대인의 사상과 심상을 갖지 않은 현대인으로서 그들의 생각을 온전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기간으로 여겨지는 셀류키드 제국의 치하에 놓인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품었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셀류키드 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수많은 유대인은 오랫동안 사악한 셀류키드 제국을 물리치고 다윗 왕국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독자적인 나라를 꿈꾸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유다 마카비가 등장한다. 제사장 가문 출신이지만 뛰어난 전술과 지도력으로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다. 유다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형제와 자녀들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다. 끝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한다. 따라서 마카비 가문의 수장 유다 마카비는 그야말로 메시아이다. 헤스모니안 왕조에 대한 후대 평가는 분분할 수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다 마카비와 그의 가문에 거는 기대는 현 순간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앞둔 시점이라고 믿는 데까지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Joseph Klausner의 유다 마카비가 메시아로 인정 받지 못한 이유에 관한 연구는 흥미롭다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