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이스라엘 왕국 첫 두 왕 사울과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임명되었다.

 

사무엘상 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사무엘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등극하는 영광을 누렸으나 그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걷어지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울 재위 당시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등극할 것을 예고한다. 사울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장로로부터 왕으로 인정받게 되고(대상 11:3), 다윗의 죽음 이후에는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이 예를 통해 기름부음과 왕위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이 밝혀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사야 45:1은 충격적이다.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에 대해 Childs는 옮게 지적하지만, 44:28의 중요성을 놓친다.

 

In 44:28 Cyrus had been named “shepherd,” an ancient designation for the caring ruler. However, in 45:1 he is named “his anointed”. The boldness of the title has long evoked surprise. Nowhere else in the Old Testament is a foreign ruler so described.

Brevard S. Childs, Isaiah: A Commentary, OTL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 353.

 

이사야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에서 왕은 목자로 비유되었다. 따라서 고레스에게 "목자"라는 칭호는 사용한 것,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 모두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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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44:24-45:8은 고레스의 예언을 다루고 있다. 고레스와 관련해서는 48:22까지 포함하지만, 45:8까지를 한 단락으로 본다. 44:24-28과 45:1-8 모두 고레스에 관한 예언이지만, 두 본문의 대상이 다르다. 앞 단락은 야곱과 이스라엘로 불리는 유대 민족이며, 뒷 단락은 고레스 왕을 청자로 지정한다.


45:1은 여호와께서 고레스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이 예언을 듣는 청중은 유대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난민 가운데 있는 유대 공동체에게 고레스를 통해 자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신다고 주장하신다. 1-3절은 고레스가 이방 열국을 지배하는데, 그 정복이 여호와의 역사라고 주장하신다. 사실 열국과 전쟁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다윗의 후손, 새로운 다윗의 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더구나 고레스의 행적을 통해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당시 고대 근동에는 수호신 문화가 있어서, 승전국의 신은 더 신령한 위치를 갖게 되고, 패전국의 신은 숭배받지 못하거나 하천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고대 근동 문화에 의하면, 여호와는 열등한 신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고레스를 택했다고 말씀하신다. 당시 사고로는 고대 근동 지역민들이나 이스라엘 민족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선포이다.


4-5절을 보면 이스라엘인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 강제로 끌고 가신다고 선포한다.


세상의 기준에서 이스라엘인들은 패배자이며, 여호와는 패배자들의 신이다. 고레스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이며, 마르둑이야말로 진정한 신 중에 신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그들의 사고를 해체하도록 요구한다. 믿음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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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고대 근동에는 "수호신"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국가 간의 전쟁은 곧 신들의 전쟁을 의미했다. 승패에 따라 승전국의 신은 위대하고, 패전국의 신은 하찮다는 등급이 생기고, 패전국의 신은 멸시당하며 승전국의 신을 섬기게 된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처절하게 멸망했다. 당시 관습에 의하면 야웨 신앙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바벨론 유수를 통해 신학적 변혁이 일어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고레스 왕을 향한 예언과 관련이 있다.

 

앞서 44:28에서 하나님은 고레스를 "내 목자"라고 부르신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가리키고, 이차적으로는 유대 지도자들, 특히 왕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이런 칭호가 이방 왕 고레스에게 사용된다. 이어 45:1에서 고레스는 "그의 기름 부름을 받은" 즉 "메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같은 용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여호와는 고레스를 통해 열국을 정복한다. 고레스의 행적은 마치 오랫 동안 고대해왔던 다윗과 같은 왕처럼 그려지고 있다. 독특하게도 고레스의 활약을 통해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이러한 묘사는 귀환 공동체의 성전 재건과 관련이 있다. 유대 공동체는 고레스의 귀환 명령을 예레미야의 예언과 연결지었다. 그들이 당면한 고민은 아마도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시키는 자가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이방 왕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와 관련이 있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이사야 44-45장의 예언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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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ould need to attribute to the prophet/poet an implausibly sophisticated (or devious) capacity to base arguments on Yhwh's ability to announce future events by means of material in which in reality Yhwh did not do so, and the subtlety or courage to attribute to Yhwh aims through Cyrus's achievements that the prophet/poet was in position to know were not fulfilled.

John Goldingay and David Payne, Isaiah 40–55, Vol. Ⅱ, ICC (London: T&T Clark, 2006), 18.

 

개인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고의 선지자는 예레미야라고 본다. 그는 발화(utterance)와 행위 예언(Performance-Prophecy)을 통해 예언의 추상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한 예언자이다. 동시에 그는 당대의 흐름과 임박한 미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수많은 관리들과 예언자들은 이집트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레미야는 바벨론 첩자라는 모함을 받고 고문을 받아도 끝까지 바벨론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레미야의 인식과 예언 사이에 얼마나 합의점을 이루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는 이스라엘의 상황과 주변 정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예레미야에 견줄만한 선지자로는 이사야를 들 수 있다. 이사야서를 두고 복수 저자설(원 이사야, 제2이사야, 제3이사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지만 논의에서 배제하고, 고레스 왕에 대한 예언과 고난받는 종 등 유대 전통에서 독보적인 사상을 보여주는 예언자가 바로 이사야이다.

 

위에 인용한 구절을 보면 예언자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 실현되지 않았으며 모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고레스 왕의 등장을 보고 그가 아직 예언을 성취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안다. 예언 자체의 모호성과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예언을 전달하는 몫은 예언자의 자질에 달려 있다. 이 부분에 관심이 많은데, 깊게 다룰 시점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현재 이사야 주석을 읽으면서 고레스 왕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데, 참으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본문 중 하나로 보인다. 좀더 읽어봐야겠으나 이 주석이 보수적 관점에서 유용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ICC는 기본 노선이 보수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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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 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26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8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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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귀환 공동체가 바사 왕 고레스의 특성이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 다윗 왕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바사 왕국의 정치 선전과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결합되어 고레스를 예언의 성취자로 생각하도록 했다? https://www.academia.edu/589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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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에서 궁극적인 국가의 통치자는 신(god)이며, 왕은 신의 대리자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 위에 왕은 통치자로서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목자-왕 전승은 목축 사회라는 시대적 토양을 기반한 은유로, 왕의 정당성과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사의 통치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왕정 국가라는 통치 체제를 요구한다. 하나님은 그 요구를 수용하셨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의 통치는 사울부터 시작되었으나, 그의 실패와 다윗이라는 불세출 영웅의 등장으로 다윗 왕조의 통치 기반은 확고해졌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반면교사로 삼지 않은 남유다 왕국은 저들의 멸망이 왕국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탓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렸다. 남유다 왕국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다 지파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행위이다.

남유다 왕국이 주변 정세 변화와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처하는 방법은 군사력 증강과 오랫동안 패권을 잡고 있었던 애굽과 외교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남유다는 풍요로웠고 견고한 동맹국을 확보하고 있었다(이러한 실상은 2:6-8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남유다의 우상숭배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할 정도로 심각했다(1:9-10). 무수한 제물을 드렸으나 그들의 마음은 진정성이 없었다(1:11-15).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부터 남유다는 실질적인 교훈을 얻지 못했다.

이런 배경에서 이사야가 등장한다. 이사야의 언어는 독특하다. 그중 하나는 "포도원"과 "포도주"(대표적인 사례는 5장을 보라)라는 단어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미가는 목자-왕 전승을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예언서 시작 부분에 기록된 예언자의 신상 정보를 토대로 활동 지역을 예상하는데(사 1:1; 미 1:1), 역사적 재구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그들의 언어가 실질적인 판단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가령 이사야는 제사장 가문에서 교육을 잘 받은 엘리트 계층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도시인이고, 미가는 목축업이 생활 기반인 시골 지역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해석자들이 많다. 이사야의 거주 지역 혹은 활동 지역에서 포도원이 주된 사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미가가 활동한 지역은 목축업이 주요 사업이었던 걸로 보인다. 그들의 청중을 고려한 비유를 통해, 예언자의 활동 무대를 추측할 수 있다고 보인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주요 용어는 "포도원"이다(대표적으로 5장). 이사야는 하나님을 포도원의 주인(5장)이나 포도원지기(27:3)로 묘사한다. 반면 타락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포도원을 망가뜨린다(3:14). 또한 타락한 지도자는 포도주에 취해 있다(5:11). 포도주는 지도자의 무책임과 남유다 지역의 풍요로움을 동시에 비꼬는 수단일지 모른다. 

이사야 역시 목자-왕 전승을 사용한다(대표적으로 40:11). 그가 여러 차례 목자-왕 전승을 사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왕으로 대표되는 지도자 집단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목자-왕 전승이 이스라엘 전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다. 단지 이사야의 청중이 목자와 양이라는 은유보다 포도원 비유가 더 효과적인 부류이었다고 추정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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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에서 목자-왕 전승은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은유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이러한 전통이 있었고, 신약에도 곳곳에 목자-왕 전승이 나타난다.

연구 본문이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이라서 목자-왕 전승은 내 연구의 핵심 주제이다. 그래서 목자-왕 전승에 관한 선행 연구를 제법 검토했는데, 흥미롭게도 이사야를 언급한 연구를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에만 없을지도 모른다)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미가는 목자-왕 전승을 여러 차례 사용한다. 이 둘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나훔도 목자-왕 전승을 사용한다(3:18). 이사야 후대에 활동한 예레미야, 에스겔, 스가랴도 목자-왕 전승을 아주 중요하게 사용한다. 목자-왕 전승을 사용한 선지자들은 이 은유를 통해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들의 방임을 책망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심판의 명분이 된다. 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참 목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신다. 여기서 내 질문은 시작된다.

'왜 이사야는 목자-왕 전승을 사용하지 않을까?'

밤늦게 이사야서를 통독하며 정답의 근사치를 얻은 듯하다. 내 질문이 잘못되었다. 내가 이사야서를 읽을 때 목자-왕 전승에 주목하지 않은 탓이지, 이사야는 곳곳에 단서를 남겨 두었다. 정말 흥미로운 건, 이사야의 용례에 특이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선지자들은 대체로 목자-왕 전승으로 심판과 회복 선포라는 공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러한 공식을 자신의 예언에 사용하지 않는다. 목자-왕 전승의 틀을 사용하지만, 그만의 특정 공식이 되기에는 적용 범위가 부분적이다.

대신 이사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공평과 정의가 그것이다. 많은 선지자들이 목자-왕 전승을 은유로 사용하여 시각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지만, 이사야는 공평과 정의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이 부분은 차후 연구로 발전 시켜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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