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필론은 이집트와 로마 제국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두 제국의 권력과 부요 등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반제국주의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필론은 『아벨과 카인의 제사』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파라오를 대면하는 장면에서 둘 사이를 대조한다 (Philo. Sacr.48–49).

Thus Jacob’s sons, trained under an all-wise father, may go down into Egypt the passion-loving body, and meet with Pharaoh the disperser of the good, who deems himself the sovereign of the animal and the composite; yet they will not be dazzled by his lavish pomp and splendour, but will confess that they are shepherds of sheep, and not only they, but their fathers also (Gen. xlvii. 3). 

And indeed no one could in power and sovereignty find so lofty a cause for boasting as these can in their office as shepherds. Surely to those who can reason it is a prouder task than kingship to have the strength to rule, as a king in a city or country, over the body and the senses and the belly, and the pleasures whose seat is below the belly, and the other passions and the tongue and in general all our compound being—aye and to rule them with vigour and with a right strong yet ever-gentle hand. For like the charioteer he must sometimes give the rein to his team, sometimes pull them in and draw them back, when they rush too wildly in unreined career towards the world of external things.

(구글 번역)
따라서 전지전능한 아버지 아래에서 훈련받은 야곱의 아들들은 열정을 사랑하는 몸으로 이집트로 내려가 동물과 합성물의 주권자라고 생각하는 선을 분산시키는 파라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호사스러운 화려함과 화려함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양치기임을 자백할 것이요, 자기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도 양치기임을 자백할 것이니라(창 47:3).

그리고 실제로 권력과 주권에서 목자로서의 직책에서 이 사람들이 자랑할 만한 고상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왕권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이며, 도시나 나라의 왕으로서 몸과 감각과 배와 배 아래에 자리 잡은 쾌락과 다른 정욕과 혀와 일반적으로 우리의 모든 복합적 존재를 다스릴 힘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강하고 강하면서도 항상 부드러운 손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차꾼처럼 그는 때때로 자신의 팀에 고삐를 넘겨야 하고, 때때로 그들을 끌어당기고 다시 끌어내야 합니다. 그들이 외부 사물의 세계를 향해 너무 거칠게 돌진할 때 말입니다.


이와 유사한 대조는 요셉 일화에 잘 서술되어 있다(참조. Philo. Agr.14; Philo. Post.96). 요셉 일화에서는 이집트는 거짓 부요를 추구하는 곳이요 야곱의 아들들이 영원히 거주할 수 없는 곳이라 단언한다.

필론은 로마 제국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표출한다 (Philo. Sacr.45). 

After hearing this the mind turns away from pleasure and cleaves to virtue, for it apprehends her loveliness, so pure, so simple, so holy to look upon. Then too it becomes a shepherd of the sheep, one who guides the chariot and controls the helm of the unreasoning faculties of the soul, who does not suffer them to be swept away in disorder and discord, without a master or a guide, lest their unbridled instincts come to perdition, when they lack the protection and control of a father’s hand, and help is far away.

(구글 번역)
이것을 듣고 나서 마음은 쾌락에서 벗어나 덕에 집착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아름다움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거룩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또한 양치기가 되어, 전차를 인도하고 영혼의 비이성적인 능력의 키를 조정하며, 그들이 주인이나 안내자 없이 무질서와 불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합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손의 보호와 통제가 부족하고 도움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의 억제되지 않은 본능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말입니다.


필론은 호메로스의 '백성의 목자'(shepherd of the people) 칭호를 알고 있다. 필론의 언급은 이 칭호가 당시 로마 목자-왕 사상에서 범용적이었다는 증거이다. 필론은 이 칭호에서 왕권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즉 그는 로마 황제의 행실을 보면, 황제가 목자의 책임보다는 왕의 특혜에 젖어 탐욕에 길들어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그는 로마 황제 가이우스를 알현했을 때 그의 무절제함을 목격한 적이 있다 (Philo.Legat.44).

결론적으로, 필론은 이집트와 로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노출한다. 그는 두 제국의 왕권과 부요에 대한 무절제함을 구전과 목격을 통해 알고 있고, 반제국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유목 생활을 이상적으로 그린다.

관련글: 필론의 목자-양 유비와 목축 사회 이상주의

,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스는 고대 크레타 섬을 통치했던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된다.

저는 그곳에서 제우스의 빛나는 아들, 미노스를 보았습니다.
그는 앉아서 황금 지팡이를 쥔 채 망자들에게 법도를 알려주고 있었고,
그들은 문도 넓은 하데스의 집에서 그를 둘러싼 채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판결을 구하고 있었답니다. (11.568-571)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이준석 역, 아카넷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11권에서 주인공 오뒷세이아는 하데스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지인들을 만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미노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바라본 미노스는 하데스에서 망자들에게 법도를 알려주고 판결을 내려주고 있었다. 이런 역할은 그의 왕의 지위와 그가 이상적인 왕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묘사한다. 또한 "제우스의 빛나는 아들"이라는 설명은 그가 갖는 위상을 드러내며, "황금 지팡이"는 그의 왕위를 드러낸다.

플라톤의 『미노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왕은 사람의 영혼에 법을 제공하는 사람이며, 미노스를 이상적인 왕이라고 평가한다.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생애에 300~400년의 시간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미노스에 대한 인식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

호메로스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일리아스』에서 '목자'의 용례는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왕(혹은 지휘관)을 지칭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전투 장면(과 관련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문자 그대로 목자와 관련된 진술이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사용한 목자의 용례 중 첫 번째는 왕(혹은 지휘관)을 지칭하는 경우이다. 호메로스는 왕(혹은 지휘관)을 지칭하는 용어로 '백성들의 목자'라는 칭호를 빈번히 사용한다. 이 칭호는 총 39회 사용되고, 총 19명에게 적용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논문과 관련된 내용이라 생략한다.

호메로스의 '백성들의 목자'라는 칭호가 중요한 이유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 왕을 목자로 비유하는 사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용례를 통해 고대 그리스 사회에 목자-양 비유 혹은 목자-왕 전승이 존재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호메로스는 전투 현장을 생생히 묘사할 때 목자-양 비유를 사용한다. 다음은 그 사례 중 일부이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 주목하라.

튀데우스의 아들은 다시 한번 선두 대열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안 그래도 그는 트로이아인들과 싸우고자 진작부터 기세가 올라 있었는데, 이제는 무려 세 배의 기운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들판에서 털복숭이 양 떼 곁에 있던 목자가, 울타리를 뛰어남은 사자에게 생채기만 입힐 뿐, 제압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사자의 힘만 돋워놓은 채 막아내지는 못하고, 우리 안으로 숨어들어 가니, 버려진 양 떼는 겁에 질려 도망친다. 양들은 서로를 향해 무더기로 쓰러지고 달아오른 사자는 마당 깊숙한 곳에서 부터 뛰쳐나온다. 꼭 그런 모습으로, 강력한 디오메데스는 작정하고 트로이아인들에게로 섞여 들어갔다. 5. 134-143

그가 이렇게 말하자 빛나는 눈의 아테네는 디오메데스에게 기운을 불어넣었고 그는 닥치는 대로 살육하기 시작했다. 칼에 맞은 자들에게서는 지독한 절규가 치솟았고, 대지는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목자 없는 염소 떼나 양 떼에게 사자 한 마리가 독기를 품고 다가와 뛰어오르듯이, 튀데우스의 아들은 트라케인들에게 다가와 열두 명을 쳐 죽였다. 10.482-488

세 번째로, 호메로스는 실제로 목자 혹은 양과 관련된 사건을 서술하기도 한다.

양떼를 많이 둔 퉤에스테스 2.106

노토스(북풍)가 산꼭대기에 안개를 쏟아부으면, 목동에게야 좋을 리 없겠지만, 3.10-11

이 육중한 소리는 멀찍이 떨어진 산속 목자의 귀에도 들린다 4.455

,

디온 크리소스토모스의 연설문에서 왕과 연관된 목자는 총 네 번 등장한다.

1. 용례

1) 왕권에 관한 첫 번째 담화

호메로스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이 사유했던 왕의 이상이 존재했다. 디온은 호메로스를 따라 이상적인 왕을 기술한다. 목자를 지칭하는 표현은 '백성의 목자'(Shepherd of the people)이다.

2) 왕권에 관한 두 번째 담화

이 담화는 산드로스와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 사이의 대화를 담고 있다. 필리포스는 알렉산드로스가 다양한 시인의 저작을 읽기를 권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호메로스의 저작을 추앙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왕을 위한 시는 오직 호메로스의 저작뿐이다.

3) 왕권에 관한 세 번째 담화

소크라테스는 왕의 자질을 선한 목자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4) 왕권에 관한 네 번째 담화

네 번째 사례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 심취한 알렉산드로스에게 호메로스의 작품 내에서 미노스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내용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이상적인 왕은 호메로스의 '백성의 목자'(Shepherd of the people)에 기반하고 있다.


2. 디온 크리소스토모스의 목자 은유
디온은 호메로스의 '백성의 목자'(Shepherd of the people)를 충실히 따른다. 네 번의 용례 중 두 차례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연결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답변은 이상적인 왕에 관한 철학적 권위를 더해주는 역할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