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개론이나 주석서를 몇 권 읽으면 제일 많이 볼 단어는 "신명기 사관"일 가능성이 크다.
역사라고 하면 국가의 주요 사건을 나열하되, 외부 정세의 흐름을 더하여 분석해야 마땅한데,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그들 나름의 독특한 관점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와 다윗이 독보적인 인물이라면 그에 걸맞게 그들의 기록을 따로 분리해 다루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모세와 다윗마저 하나님의 구속사 중 일부로 간주하는 느낌이다.
신명기 6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면 축복이고 우상 숭배는 멸절당할 저주라고 선포한다. 신명기 사관의 핵심이다.
구약성경이 신명기 사관으로 편집되었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후대 편집자로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나열할 때, 자신의 역사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스라엘 흥망성쇠의 기준이 신명기 6장이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이러한 사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은 모세와 다윗이라고 생각한다. 모세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그리고 다윗의 이스라엘 왕국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랐을 때 독립적인 국가를 수립하고 국가가 번영했다. 후대 왕의 업적을 평가할 때 다윗을 그 기준으로 둔 이유는 명확하다. 반면 왕국의 분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은 우상 숭배로 인한 결과이다.
성경에서 북이스라엘 아합 왕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이었고, 그의 통치는 악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역사 기록은 그의 통치는 대내외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사례는 구약 성경 저자나 후대 편집자들의 사관이 달랐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이유가 된다.
더구나 바벨론 포로 이후 귀환을 경험한 세대가 신명기 사관에 매료되었을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내 경우 칼빈 시절에 언약 신학을 일부 다루었고, 앞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할 주제 중 하나인데, 이런 상황에서 신명기 사관을 접할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 관심사는 언약 신학의 기능에 일차적 관심이 있고, 더하여 신명기 사관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있다.
분명 내 연구 본문은 요한복음 10장인데 온갖 주제와 본문을 다 살펴봐야 한다. 때마침 『신명기역사서연구』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고 한다. 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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