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나는 토종 한국인이다. 영어 알파벳은 초등학교(라떼는 말이야... 국민학교라 그랬지)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겨울방학에 처음 배웠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수업은 문법과 독해 위주였고,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 듣기 평가가 있었을 뿐이다. 대학생 시절 토익 시험은 한 번도 안 치렀고 교환학생을 해보지도 않았으며, 신학석사를 마칠 때까지 공인기관 영어성적을 요구받은 적이 없었다.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 진학하려고 준비한 토플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요구받은 공인 영어 시험이다. 요점은 내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칼빈 재학 시절 수업 참여도가 전무하다시피하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성적은 좋았다. 신학석사(ThM) 과정이 페이퍼에 점수를 많이 배정한 탓이다. 내용과 창의력보다 형식을 중요시하는 한 교수를 제외하고 All A를 받았다. 그래서 내가 영작을 잘하냐고? 아닌 거 같다. 유학 시절 페이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박사 과정을 위한 연구 제안서도 내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 영작을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게 페이퍼를 어떻게 쓰냐고 묻는 한인 학생이 좀 있었다. 특히, 영국 박사 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매사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는데, 요점은 한결같았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논리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만약 원어민 수준이라고 해도 논리를 강조했겠지만. 대체로 반응은 뭔 소린가 싶다는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도 힘든데 논리라니... 이런 반응이다.

영어 원어민에게 한국어는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이 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영작을 잘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랬고 주변을 봐도 석사 과정에서 영어 실력이 확 느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말하기가 그렇고 영작도 그렇다. 한 영역에 집중해서 점수를 대폭 상승시키는 경우를 보기는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영작은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물론 오타나 문법 오류는 없어야 하고 글의 흐름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는데, 글의 흐름은 영작이 아니라 논리가 좌우한다. 학술 과정에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을 넘어 논쟁점에 관한 개인의 생각을 요구한다. 최종적으로 교수에게 제출하는 페이퍼는 학생이 기존 자료와 얼마나 치열한 논리적 다툼을 벌였는지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교수는 창의력을 요구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그들이 엄청난 발견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개인의 주장을 도출하는 과정을 글로 보여주면 된다. 그 과정을 표현한 언어가 영어일 뿐이다. 글에 논리가 있으면 표현이 서툴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종종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논리적 흐름이 미숙한 영작의 한계를 극복해주기 때문이다. 영작은 뛰어나지만, 논리가 없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영작은 다소 서툴러도 논리가 탄탄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글로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면 논리력을 키우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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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와 해석

논문작성법 2020. 6. 6. 01:19

특정 주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한 후 분석에 열중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1. 최근 자료가 더 풍성한 참고문헌을 갖고 있다. 
2. 그런데도 논의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거나 같다. 

분명 자료마다 새로운 기여점이 있다. 학계의 특성상 고유의 가치가 없다면, 그 글은 출판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나만의 가정이 어느 정도 윤곽을 가진 단계라서 기존 주장과는 다른 길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로운 근거(혹은 자료)를 발견하느냐? 아니다. 이미 언급된 자료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인용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증거가 아니라 해석이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즉 대부분의 논의가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이유는 자료 부족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새로운 주장을 하고 싶다면, 새로운 증거를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해석을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게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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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의 사례?]
후대에 정립된 개념을 선대에 적용할 수는 있다. 대체로 특정 개념이 탄생할 당시에는 핵심 뼈대를 가질 뿐 구별되는 이름이나 명확히 규정된 정의를 갖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확장된 개념을 가지고 선례를 규정짓는 행위는 위험하다. 이런 실수를 학계에서는 '시대착오'(anachronism)라고 규정한다.

좀더 들여봐야겠지만, 시대착오의 사례가 될 수 있어 보이는 문장을 간략하게 남겨본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그들은 제사장-왕의 역할을 해야 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왕과 여왕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중재해야 했다. 


(중략) 


이 모든 증거는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의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동산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중재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제사장-왕이었다는 개념을 뒷받침한다. 


출처: 토마스 R. 슈라이너, 언약으로 성경 읽기, 40-42.


하나님의 임재가 에덴동산이 성막을 거쳐 성전으로 바뀌면서 신학적 발전을 했다고 해서, 성막 시대에 시작되고 성전 시대에  절정을 이룬 제사장의 역할을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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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가 끝났지만, 과제물을 붙들고 있는 한인 학생들을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친다. 저마다 사유는 다르겠지만, 바람대로 페이퍼가 잘 써지지 않아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과 달리, 이런 풍경을 몇 학기 동안 보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특히 몇몇 학생으로부터 교수에게 "extension"을 요청해야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함은 더해진다. 

과목 담당 교수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수업 마지막 날 혹은 그다음 주로 제출 기한이 정해진다. 간혹 제출 기한을 넘겨도 감점을 하지 않는 교수들이 있긴 하지만, 형평성 문제 때문에 기한을 넘기면 그 날짜에 따라 점수 차등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성적을 잘 받으려면 과제는 제출 기한 내에 제출해야 한다.

마감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담당 교수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학생은 해당 과목에 관한 연구 주제를 찾을 줄 모른다' 혹은 '이 학생은 자신의 연구 주제에 관하여 기한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 등등

특히, 학생은 "extension"(연장)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성적표에는 "incompleted"(미완성)라고 찍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간혹 자비로운 교수들은 마감일을 연장해주고 학생의 성적표에 "incompleted"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배려하는 대신 성적은 공정하게 조정하기도 하지만, 교수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간혹 성적표에 "incompleted"라는 단어가 있어도 성적이 좋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더 나은 페이퍼를 남길 수 있다면 차라리 "extension"을 요구하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이런 조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기한을 놓친 페이퍼는 더 나은 성적, 더 나은 결과물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론적으로 석사 과정은 전공에 관한 깊이를 맛보여 줄 수 있는 글을 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마감일 내에 얼개를 완성할 수 있는 역량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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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주장을 하려면 근거 제시가 확실해야 합니다. 학자들 사이에 암묵적 합의가 있다 해도, 글로 표현할 때는 독자가 해당 지식이 없다는 전제에서 충분한 사례를 제시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례의 출처는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에서 요한복음을 저술한 Andreas J. Köstenberger의 글입니다.

 

Several OT passages hint at the Messiah’s self-sacrifice (see esp. Isa. 53:12).


저자는 메시아의 자기 희생을 암시하는 여러 구약 본문들이 있다고 서술합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이사야 53:12을 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문장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위 문장 그대로 보면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여러 구약 본문들이 있는데, 저자가 그 본문을 다 다루지 않았다. 지금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2. 여러 구약 본문들이 없는데, 저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사례를 들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1번에 해당한다면 저자가 불성실한 탓이고(혹은 바빠서 실수한 경우), 2번에 해당한다면 저자의 양심을 거스른 탓입니다. 충분한 지식 없이 두루뭉실하게 썼다고 보는거죠.

저자가 "여러 구약 본문들"(several OT passages)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괄호 안에 그 본문들을 최소한 3 군데 이상을 제시해야 합니다. (A; B; C...) 그 다음에야 강조하고 싶은 본문을 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렇게요. (A; B; C. See esp. Isa. 53:12).

아니면 "대표적인 본문은"(the represent passage)으로 바꾸고, "특별히"(esp.)를 삭제해야 합니다.

The represent OT passage hints at the Messiah’s self-sacrifice (see Isa. 53:12).

사소한 실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작은 실수가 여러분들의 학문적 엄격함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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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과 근거

논문작성법 2019. 1. 23. 09:48

미가서에서 성전 파괴와 성전 건축의 근거가 터무니 없다. 본문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은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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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중복이 불필요하게 많다는 점이다. 한 줄로 충분한 내용을 두 세 문장으로 써놨다. 그리고 한영병기의 경우 제일 처음 사용된 단어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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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사용할 경우 한영병기에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한국어에 자주 사용되는 "전례"라는 용어가 있음에도 "리터지(liturgy)"를 사용한 이유는, 저자가 평소 친숙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가의 기도에 대한 저작연대와 편집시기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거라면, 그냥 자신의 의도에 따라 서술하면 된다. 그런데 독자에게 해당 질문을 하지 말라고 진술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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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언어가 왼쪽에서 오른쪽(left-to-right)으로 쓰는 반면,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right-to-left)으로 향한다. 때문에 히브리어를 타 언어와 같이 병기할 경우 아래 첨부된 사진처럼 글자의 순서가 틀어지기도 한다. 히브리어를 다루는 책이라면 마땅히 주의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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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연구할 때, 해설 단계에 앞서 특정 단어의 용례를 분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글에서는 특정 주석의 사례를 통해 통계 집계 방식을 간략히 논하고자 한다.

Here is the first reference to a remnant שְׁאֵרִית in Micah. The term occurs five times in Micah (2:12; 4:7; 5:6, 7 [Eng. 5:7, 8]; 7:18).

[출처] Ralph L. Smith, Micah-Malachi,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32 (Dallas: Word, 1984), 29.

위 주석에서는 히브리어 A가 미가서에서 다섯 번 사용되었고, 각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표기했다. 맛소라 본문과 영역본 사이의 구절이 다를 경우 대괄호 안에 영역본 구절을 남겨준다. 이 방식이 현재 성서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The remnant theme is an important one not only in the book of Micah but in the rest of the Bible. It is found in all three major sections of the book of Micah (2:12; 4:7; 5:7-8; 7:18).

[출처] Stephen G. Dempster, Micah, The Two Horizons Old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Eerdmans, 2017), 235.

위 주석에서는 첫 사례와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 빈도수를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는 빈도수 대신에 "세 영역"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에서 사용되었다고 적었다. 두 번째, 소괄호의 구절 표시는 독자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저자는 "세 영역"에서 해당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말하면서, 총 네 군데의 구절을 나열했다. 만약 저자의 주관적인 구분 방식에 대해 알지 못하면, "세 영역"과 네 구절 사이에 혼란이 생긴다. 세 번째, 빈도수는 개별적으로 집계한다. 저자는 5:7-8이라고 적었는데, 이 단락 안에 해당 단어가 몇 번 사용되었는지 적어야 한다. 가령, 7절과 8절에 각각 한 번씩 사용되었다면, Smith처럼 "5:6, 7 [Eng. 5:7, 8]"이라고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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