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인간의 창조 이유

성찰 2008. 8. 7. 17:40
인간이 존재하게 된 이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복된 상태를 주시기 위해 창조하셨다. 복된 상태란 주님의 위엄의 영광을 보며 수많은 천사들과 주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영원히 충만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러한 축복과 축복을 얻기에 적합한 수단도 주셨다.
첫 번째 수단은 인간의 올바른 성향과 경향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성향을 창조 목적에 알맞게 만드셨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지향하고 사모하는 심령을 주셨으나 인간을 이러한 상태로 고정시키거나 확정해놓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유로운 행위자로 만들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하셨다.
두 번째 수단은 인간의 생활과 습관의 올바른 질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것을 인간에게 주셨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완벽한 순종을 요구하시면서 하나님의 완벽한 법을 주졌다.

- Richard Baxter, 회개했는가,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8),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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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악함

성찰 2008. 8. 7. 17:24
죄를 강조하는 이유

당신은 당신이 범한 죄의 사악함을 온전히 알기 전까지는 그 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온전히 알 수 없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온전히 알기 전까지는 죄의 악함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첫째, 죄는 인간 영혼의 뛰어남을 불구로 만든다.
둘째, 죄는 성경의 빼어남을 소멸시킨다.
셋째, 죄는 하나님의 법의 공정함을 침해한다.
넷째, 죄는 천국의 영광의 빼어남을 멸시한다.
다섯째, 죄는 이성理性의 직무와 탁월함을 짓밟는다.
여섯째, 죄는 하나님의 무한히 뛰어나심과 전능하심과 거룩하심에 대항하는 일에 온통 열중한다.

- Richard Baxter, 회개했는가,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8),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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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 인간에게 요구하는 분량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부어주셔야 하는 게 믿음이다. 인간은 절대 자신의 의지만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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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은 말한다. "복음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다만 보고 싶을 뿐이다."

영성작가인 브레넌 매닝(Brennan Manning)사람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고 생활로 부정하는 크리스천들 때문이다. 믿지 않는 세상이 믿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그들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각주:1]
  1. Shane Claiborne,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7), 2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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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비극

성찰 2008. 6. 15. 23:22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는 교회. 가난한 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교회. 부자들로 가득찬 교회. 비극이다.

 

나는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라고 스스로 자신하는 설문 참가자들에게 예수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셨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응답자 가운데 8-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2퍼센트 미만의 응답자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거기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흠모하고 또 예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설교하셨던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설교에 갈채를 보내고 또 그 설교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도 예수님 십자가를 받들고 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비극이, 부요한 크리스천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모른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각주:1]

 

  1. Shane Claiborne,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7), 84-8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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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펜을 칠한 부분만 반복적으로 읽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자.

여러분은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거듭남이란 정말로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라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고 여러분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또한 어떤 청년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 중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돋보이게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시해버리라고 하나님께서 형광펜을 발명하신 것은 아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각주:1]
  1. Shane Claiborne,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7), 7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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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성찰 2008. 6. 15. 22:51
'나마스테'(namaste)

"당신 안에 거주하는 거룩한 존재를 예배합니다"[각주:1]
  1. Shane Claiborne,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7), 5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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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이유

 

문제는 단순하다. 성경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교활한 협잡꾼 패거리이다. 우리는 말씀을 깨닫는 순간, 즉시 그에 따라 행동할 의무를 갖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척한다. 신약성경에서 아무 말씀이나 꺼내라.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서역하는 것만 빼고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라. 그러나 슬프게도, 당신은 말씀을 따라 살면 인생이 온통 파괴될 것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말씀에 의해 인생이 파괴당하는 사태를 피하고자 어떻게 하는가? 바로 여기가 기독교 학문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기독교 학문은 성경을 거스르기 위해, 성경이 지나치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여전히 착한 크리스천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교회가 공들여 만들어낸 경이적인 발명품이다. ! 귀하고 귀한 학문이여! 너 없이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이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도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지만, 성경말씀과 단 둘이 있는 것은 더 두렵다![각주:1]

- 키에르케고르
  1. Shane Claiborne,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7), 47. Kierkegaard, Provocations: Spritual Writings of Kierkegaard, ed. Charles E. Moore (Famington, PA: Plough, 2002), 201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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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높아지는 교회개혁에 대한 목소리. 도대체 교회개혁을 목소리 높여 외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교회의 개혁을 말해야 합니까? 가장 첫 번째로 꼽아야 할 원인은 아마도 이 지상에 있는 어떤 교회도 완벽한 교회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성경이 제시하는 완전한 교회의 기준을 따라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각주:1]


지금은 교회내부뿐 아니라 교회외부에서도 교회개혁을 원하고 있다. 언론과 여론에서 맹공격을 받고 있는 현실은 분명 한국교회가 자성하고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예전보다 더 활발해져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회개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듯싶다. 더 심각한 점은 문제요인 당사자들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조차 모른다는데 있다.

어떻게 해야 교회개혁운동의 물결이 격렬하게 몰아칠까? 도저히 개혁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교회가 타락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 시대의 루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암흑시대라 일컬어지는 중세기와 같은 현실이 도래하기 전에 참된 교회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건 가망 없는 희망사항일까...
 
그렇진 않다. 드물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그리고 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꿈꾸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여전히 희망을 품어본다.


"한번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ecclesia reformata, ecclesia reformanda; the church once reformed is a church which must always be reforming itself)
  1. 정성욱, 개혁&개혁, 서울: 부흥과개혁사, 1999, p.9-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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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도인가?

성찰 2008. 4. 30. 21:11

기도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왜 기도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거의 매일 이 문제를 생각해왔다.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는 고민이 한결 깊어졌다. 기도란 게 혹시 자신을 세뇌시키는 신앙 의식이 아닌지 회의하기도 했다. 신학 서적을 읽어보아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분명히 아셔야 할 것들을 되풀이해서 알려드리는 게 기도란 말인가? 당장 결절이 나지는 않겠지만 일단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기도란 하나님께 보여드릴 지원물품 요청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질서를 재조정하는 과정이다. 우주를 아우르는 진리를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과 자신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기도하면서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바뀌었다. 산꼭대기로 기어올라가서 저 아래 꼬물거리는 한 점을 내려다보니, 그게 바로 내 자아였다. 별들을 바라모면서 비록 정확히 알지 못할지라도 우주 속에서 내가, 또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존재를 바라보는 행위다.[각주:1]



기도는 간구가 전부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란 말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시간이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자신을 정결하게하는 의식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순종을 결단하는 시간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담대함을 얻는 시간이다. 밀려드는 회의감을 저 멀리 밀쳐내고 확신으로 채우는 시간이다. 허전한 가슴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다. 슬픔이 기쁨이 되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경험한다. 인간이란 존재를 떨쳐버리는 시간이란 말이다.

  1. Philip Yancey, 기도, 서울: 청림출판, 2007, p.44-4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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