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Carsten Claussen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에서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 돌항아리 여섯"(2:6; six stone water jars for the Jewish rites of purification, NRSV)이 간과되고 있으며, 세례 요한이 예수의 정체를 메시아(1:29-36)이자 신랑(3:28-29)으로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Ruben Zimmermann의 고대 유대 문헌에서 "신랑"이 메시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사용하여, 예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이적을 통해 자신을 종말론적 신랑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냈으며, 종말론적 연회(사 26:5)를 성취하셨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신랑 은유는 앞으로 전개될 유대 절기를 성취하실 예수를 기대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Craig A. Evans and David Mishkin, eds., A Handbook on the Jewish Roots of the Gospels (Peabody, MA: Hendrickson, 2021), 156.

내가 가나 혼인 잔치는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1장 세례 요한과 나다나엘, 2장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를 제대로 몰랐다. 요한복음 서두에 예수의 신적 정체성과 성육신을 선언한 이유,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의 사역을 공표한 이유는 예수의 정체성과 사역을 청중과 독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결과이다. 이후 나다나엘을 시작으로,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가 갖고 있는 메시아사상을 들추어낸다. 다시 예수께서는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사역을 공표한다. 그러나 또다시 니고데모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전개는 가나 혼인 잔치를 종말론적 성취로 이해할 근거가 없다는 증거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선포한다. 하지만 Claussen의 주장과 달리, 신랑은 예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유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는 자이며, 메시아 사역은 예수를 통해 성취된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1:23)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3:28)

따라서, 가나 혼인 잔치에 대한 Claussen과 Zimmermann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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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mission as the good shepherd who desires the well-being of the sheep has as its goal the production of life in abundance, already signified in the abundance of wine at the wedding in Cana and the abundance of food left over at the feeding of the five thousand.

[Source] Lincol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John, 300.


요한이 예수의 첫 이적으로 기록한 가나 혼례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해석자들이 많다. 위에 기술한 Lincoln도 그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2: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의 진술은 이같은 해석의 토대로 기능한다.

하지만 요한의 기독론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보면, 가나 혼례 사건은 부정적인 기능을 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어머니와 그의 제자들이 예수를 믿고 따른 이유가 "이적을 행하는 메시아"라는 유대 메시아 사상의 전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요한의 기독론은 자기 부인(=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기반한다. 선한 목자 담론은 예수의 자기 부인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본문이다. 따라서 나는 Lincoln의 진술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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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견해와 달리, 나는 가나 혼인 잔치는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들이 갖고 있던 전형적인 유대 메시아 사상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조하라.

가나의 혼례가 갖는 의미

요한복음 1-2장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믿음과 예수의 사역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여주는 인물이 또 등장한다. 그는 바로 니고데모이다.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예수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칭하는데, 그 이유를 본인이 직접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밝힌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다시 말해, 유대 메시아 사상을 걷어내지 않으면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제자들이 예수를 믿은 이유(2:11)과 나다니엘이 예수를 선생으로 보는 이유(3:2) 모두 이적을 행하는 메시아라는 관념에 기인한다. '어머니'라는 관계 때문에 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테지만, 마리아의 요청에 대한 직각적인 대답에 예수의 태도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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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chen Flebbe는 “Feasts in John”에서 헬라어 ἑορτή의 용례를 근거로, 가나 혼인 잔치를 요한의 절기에 포함시킨다(자세한 용례는 109쪽의 표를 보라). 그는 가나 혼인 잔치가 종말론적 구원의 상징으로서 예수의 사역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한다(특히, 115쪽).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몇 가지 허점이 있다. 무엇보다, 가나 혼인 잔치를 유대 절기와 묶어서 연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견고하지 못하다. 그가 제시한 표를 보면 가나 혼인 잔치와 다른 절기에 ἑορτή가 획일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더구나 유대인들이 가나 혼인 잔치를 유대 절기만큼 중요한 사건으로 보았다는 근거도 없다. 그 다음으로, 요한이 가나 혼인 잔치를 유대 절기와 함께 예수의 사역의 시작점으로 묶었다면, 그 의미는 종말론적 구원과 거리가 멀다. 나는 그 사건의 의미가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무리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본다.

가나의 혼례가 갖는 의미

앞서 요한은 예수의 존재와 사역을 대중들이 깨닫지 못한다고 선포한다.

1:4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실제로 세례 요한의 선포 이후에도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와 사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체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다(1:35-51). 가나 혼인 잔치는 예수의 어머니와 그 제자들이 예수의 정체와 사역을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로 작용한다.

요한은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고, 예수의 사역과 유대 절기를 통해 그의 정체성과 사역의 의미를 정밀하게 선포한다.

Flebbe, Jochen. “Feasts in John.” Pages 107–24. in Feasts and Festivals. CBET 53. ed. Christopher Tuckett. Leuven: Peeter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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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에 예수의 첫 표적으로 기록된 가나의 혼례를 유대 메시아 사상에 입각하여 '종말론적 신랑되시는 예수'를 주장하는 해석자들이 있다. 예수는 혼례의 주인공인 신랑이 아니라 참석자이므로, '종말론적 신랑'이라는 주장은 해석자의 신학적 틀을 과도하게 주입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본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예수의 첫 표적이 갖는 의미에 달려 있다.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와 동행했던 제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본문의 흐름을 따르면, 혼례 이전까지 5명의 제자가 있었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두 제자(1:37). 이 둘 중 하나는 안드레로 밝혀지며,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가 추가된다(1:40-42). 후에 빌립과 나다나엘이 더해진다(1:43-51). 여기까지 최소 5명이 확인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를 믿은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표적으로 인해 그를 믿었다. 즉 이들은 기적을 행하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다.
 
또한, 이 무대에서 잊혀질 수 있는 예수의 어머니를 기억해야 한다(2:1-5).
 
요한복음은 마리아의 잉태를 다루지 않았다. 전문 용어로 '로고스 기독론'을 주장하는 요한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록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의 어머니를 부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구절을 통해 마리아가 예수를 특별한 존재로 믿고 있었다는 단서로 작용한다.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를 어떤 존재로 믿었는지 명백히 밝히지는 않지만, 최소한 예수가 떨어진 포도주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어쩌면 그녀 역시 예수를 이적을 행하는 메시아로 바라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앞으로 제자들의 기대와 달리 유대 메시아 사상을 전복하는 가르침을 설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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