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한 권으로 읽는 이사야서」를 읽다가, '인클루지오'라는 낯선 용어를 보았다. 이 단어는 inclusio의 음역으로, 신학에서는 수미상관[각주:1]구조 혹은 포위구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래는 수미상관법에 대한 설명이다.

수미상관법[각주:2]이란 처음(머리:首)과 끝(고리:尾)이 서로관계가 있게 하는 문학적 '구성방법'으로 주로 詩에서 많이 쓰나 소설, 수필, 음악, 영화 등 모든 장르에서 활용되고 있는 구성방법입니다.

예를들면 '유치환'의에서 '내 죽으면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 라는 엄숙한 선언으로 시작되어 마지막 행에서 다시'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고 다시 다짐하며 끝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시는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하여 수미상관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소월詩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나 '모란이 피기까지는...'조지훈의 중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등이 바로 그런 것이지요.

특히 최근들어 수필(隨筆)에서 주제감과 문학성을 위하여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앞에서 어떤 '암시(暗示)를 주고 끝마무리를 할 때는 앞의 암시와 관계가 있는 끝맺음(결론)으로 문학성을 추구하는 구성방법을 말합니다.


출처 : 유미자님의 문학서재 "
수미상관법이란"


개인적으로는 '포위구조'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위키피디아 설명은 다음 링크를 읽어보면 되겠다. http://en.wikipedia.org/wiki/Inclusio

  1. '수미상응', '수미쌍관'란 동의어도 있다. [본문으로]
  2. 수미일치법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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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문화원에 영문번역 자원봉사로 제공한 글입니다.

출처 : 이스라엘문화원  "랍비가 들려주는 Torah 말씀 민수기 22장2절-25장9절"


미디안의 위대한 마법사 빌람이 "이 어리석은 암나귀!"라고 외쳤다.    
"이런 몹쓸 짓을 한 게 벌써 세 번째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런 네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겠다." 지팡이로 암나귀를 세차게 때리며 소리쳤다.
한편, 빌람을 안내하던 모압의 위대한 왕 발락의 사절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빌람은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실은 이 암나귀를 평소에 타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말을 잠시 못 타게 되어, 최근에 이 나귀를 타기 시작했는데 가끔 문제를 일으키곤합니다”

갑자기, 뜻밖에도, 나귀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당신은 나를 세 번씩이나 때립니까?"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기적이로다! 당나귀가 말을 하다니!"
빌람은 녹음 메시지에 대답하듯이 암나귀에게 대답하였다. "네가 나를 조롱했기 때문이다. 만일 내 손에 칼이 있었다면, 지금 내가 너를 죽였을 것이다!"  나귀가 빌람에게 말했다. "말해보세요, 빌람. 나는 당신이 오늘날까지 탄 당신의 나귀가 아닙니까?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한 적이 있었습니까?”
빌람은 진리를 수용하도록 강요받았다. 그가 말했다. “없었다!” 그는 암나귀와의 논쟁에 졌다! (미드라쉬 – 민수기 22:28)

이 주의 내용은, 위대한 마법사 빌람이 유대 민족을 저주하는 대신 그들을 축복하는 모압 땅의 장면이다.

* * *
선지자 빌람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비유대인을 주셨기에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실패하면 용서하지 않았다. 마침내 빌람은 그 무렵 이미 음란했던 백성들로 하여금 더욱 음란에 빠지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빌람은 유대 선지자들이 했던 것보다 더 유대 백성의 본질을 규정하였다! 사실, 유대인이 회당에 들어가면서 암송하는 첫 번째 기도인 "마 토브(Ma Tovu)"는 다름 아닌 빌람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역주] 마토브 : 아침에 회당에 들어가며 읊조리는 회당에 대한 존경의 기도

* * *
발락 왕

토라에서 후에 발락이라 이름 지어진 파라샤의 구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가져온 제물의 가치(유대인들을 저주하도록 의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의 빼어난 후손(모압인 룻과 결국에는 다윗 왕까지)들의 가치는 그를 잘 나타낸다.
발락은 백성의 두려움과 백성들이 왕을 신뢰하지 않음을 보았기에, 그 자신이 행동해야 함을 느꼈다. 그래서 청년기의 모세를 알고 있는 미디안의 장로들의 충고대로  "모세의 힘은 그의 입에 있다." (영성 의미)라고  발락은 공언했다. "이번 경우에는 불에는 불로 맞서 싸워야만 하고, 그와 견줄 만한 영적인 사람을 찾아야 한다."
모압과 위대한 왕 시혼 사이에 있었던 전쟁에서 “빌람의 저주”는 시혼을 전쟁에서 이기게 만들고 빌람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은 발락은 빌람에게 전갈을 보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이 민족(유대인들)을 저주하고 그들로 중동 지역에서 떠나게 하라."

* * *
빌람의 비전

하나님이 빌람에게 나타나시고 물으셨다. "너와 함께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 이 말의 목적은 대화를 여는데 있으며, 하나님의 유명한 질문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또 "가인아,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와 유사하다. 빌람은 일신론자이지만, 여전히 주위로부터 우상 숭배의 영향을 받았고, 하나님이 인간적인 특징을 가졌다는 그릇된 신앙을 가졌다. "그는 모든 걸 알지 못한다. 그가 보지 않을 때 내가 그들을 저주할 수 있을거다.”라고  빌람은 생각했다. 빌람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크고 명백했다. "그 백성을 저주하지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민수기 22장 12절)

빌람이 정직했더라면, 그는 발락의 사절들에게 메시지를 전했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저주하려 하거나 괴롭히려고 하지마시요. 그 반대로 그들을 환대하시요.” 하지만, 빌람은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만 말했다 – 이것은 그 사절단들이 노력을 들일만큼 충분히 "높은 계급"이 아님을 내포한다.
발락이 그 다음에는 더 높은 계급의 사절단을 보냈고,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빌람에게 대답하시기를, "이번 모험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찌니라." 이 말은 곧 "나는 네게 그들을 축복하라고 말한다."라는 의미이다.
빌람이 이 메시지를 전했더라면, 발락은 아마도 "그 모든 걸 잊어라."라고 말했을 것이다. 빌람은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호의를 위한 경쟁자로 보았으므로, 두려움으로 인해 동기가 주어진 발락 보다 더 유대인들을 증오했다.
빌람은 유대인들을 완전히 멸하시기를 하나님께 구했는데,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목적이었다.

* * *
천사와 마주하다

빌람은 일찍 일어나 자신의 나귀에 안장을 얹히고(나귀를 때린 아브라함과 경쟁), 말 없이 발락의 사람들과 떠나갔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바꾸신걸로 사절단은 잘못 간주하였다(몇몇 주요 종교에서 실수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공통적인 인류의 실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들어낸 그릇된 생각 때문에 자기의 길을 가는 빌람에게 진노하셨고(그에게 허락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멈추게 하기 위해 자비의 천사를 보내셨다.
당나귀는 천사를 알아봤지만, 빌람은 그렇지 못했다. 빌람은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게 하시기까지 당나귀를 때렸고, 나귀와의 논쟁에서 지고 나서야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마침내, 빌람은 그의 임무를 취소시키기 위해 준비된 천사를 보고 절했다. 천사가 깨닫게 하려고 물었다. "너는 왜 당나귀를 때렸느냐?"

질문: 빌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러 가는차에, 그를 멈추게 하려고 보내진 천사는 빌람이 당나귀를 때린 것을 나무랍니다.
왜 그럴까요?

대답: 천사는 "네가 징조를 보았을 때 깨닫지 못하였느냐? 이 메시지는 전적으로 하늘에서 왔다. 만약 계속 가려고 억지를 부렸더라면, 너는 여전히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로 의도되어 있다. 현인들은 가르치기를 "삶의 길에서 사람이 선택하는 데로, 이끌림을 받는다!"라고 했다.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찌니라."라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두십시요. 또한 삶에서, 우리는 오직 당나귀만 인식하고 천사를 보는 데는 실패하는 상황에 처해지는 우리 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랍비 Shlomo Wolbe)

주석자들은 당나귀 사건의 목적은 사람의 말(그리고 당나귀를 통한 말)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음을 빌람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주목할 또 다른 사항은 빌람이 유대 백성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 전능자의 대변인이 되려는 시점이라는 점이다. 그는 매우 자만심이 강하고 육체적인 쾌락(“호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은과 금으로 가득 찬 궁전으로 이뤄져 있다!)에 사로잡혀 있었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겸손이라는 주요덕목이 그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나귀와의 논쟁에서 진 “비천한 경험”은 빌람에게는 결코 쉽게 잊지 못할 일이었다.


* * *
제단을 쌓다

빌람은 하나님께서 발락의 요청을 들어주시도록 제단을 쌓고 제물을 가져다 주도록 발락에게 요구했다. 제단의 수는 유대 족장들이 이전에 지었던 모든 제단 수와 같았다. 빌람은 그가 우리의 조상들과 경쟁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빌람이 신성한 계시를 받을 준비를 할 때 갑작스럽게 하나님꼐서 말씀으로 나타나셨다. 세 번씩이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함으로써 발락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 * *
빌람의 축복

(1) 저주하지 않음: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랴?" (민수기 23장 8절) 그들이 저주를 받을 만 할 때 조차도(야곱이 아버지를 속였을 때, 혹은 세겜의 모든 고을 사람들을 시몬과 레위가 죽인 것에 야곱이 격앙되었을 때처럼), 그들은 저주를 받지 않았다. 이삭은 "그 역시 축복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야곱은 단지 그들의 노여움을 저주했다.
빌람이 말했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 (여족장들과 족장들을 암시),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판단됨), 그리고 "나는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들과 같기를 바라도다!" 빌람은 유대인 같이 죽기를 원했다 – 비록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이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2) 하나님은 완전하심: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으시도다. 그는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유대인들이 거하시는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고 그들 가운데 왕의 친밀함이 있으시도다. 그들은 마법사나 마술사들이 아니며, 다만 전능자와 활기찬 관계이로다. 그들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서 그들의 적들을 밟아 누르기 전까지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민수기 23장19절)
현인들은 유대인들이 아침에 일어나 “탈릿과 테필린”을 걸치고 기도하며, 저녁에는 침상에서 쉐마를 암송하는 이런 토라를 지키는 모습에서 적을 이기는 공덕을 보았다고 말한다.

[역주] 탈릿(Tallit):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머리에서 어깨까지 두르는 찌찌트가 달려있는 보자기 모양의 쇼올
[역주] 테필린(Tefillin) : 기도할 때 이마와 팔에 두르는 가죽끈으로 된 작은 상자들을 가리키며 성물이다.

(3) 마지막 축복: 빌람은 오직 모세만 도달했던 예언의 단계에 도달하였고, 자신의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금 송아지의 죄에서 그들을 일깨울 수단으로 유대인들의 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마침내, 빌람은 유대인들의 조심성에 매우 감명을 받아서(모든 텐트의 문이 다른 방향으로 향해있어서 아무도 자신들의 이웃의 집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빌람은 그들이 자신들의 적들을 완전히 멸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마지막엔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찌로다!" (민수기 24장 9절)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제 더 이상 빌람이 그들을 저주하지 않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발락은 미래를 예언하는데 응한 빌람을 매우 못마땅해 했고, 몇 가지 치명적인 충고도 들었다. 그 후에 빌람은 초라하게 떠났다.

질문: 왜 하나님께서는 비 유대인 선지자에 의해 유대인의 본질이 명확하게 표현되길 원하셨을까?
대답: 빌람의 예언은 세대와 세대를 거쳐 울려 퍼졌다. 유대선지자들은 유대인들이 더욱 고귀해지도록 하는데 돕기 위해 건설적인 비판을 자주하였고, 유대인들을 격려하는데 더 적은 시간을 보냈다. 빌람은 유대인들의 고귀함과 그들의 전능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만방에 영원히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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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반

성서신학/신약 2007. 7. 23. 22:23

* 배경연구 과제로 제출한 내용으로 업데이트.


제물
이란 의미의
!B"ßr>q 음역된 단어로, 70인역에는 dw/ron으로 번역되었다[각주:1]. 구약에서는 제물이라는 의미로만 사용되었지만, 1 세기에는 서원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각주:2] 마가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11), 예수 당시에는 재물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여 십계명에서 명한 부모 공경의 의무를 회피하는데 악용되고 있었다(11-12). , 특정 인물들이 재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고르반이 사용되었다[각주:3]. 더구나, 고르반 서원은 취소 가능한데, 장로들의 유전을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12). 제사장 역시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사람들을 위해 쓰려는 목적으로는 취소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각주:4], 남자는 50 세겔, 여자는 30 세겔을 내면 취소 가능했으며, 너무 가난하여 지정된 금액을 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제사장이 적절한 금액을 정해주었다(Josephus, Ant. 4.73)[각주:5].

  1.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chigan:Eerdmans, 2002) 286. 직접 확인해 보니 !B"ßr>q 구약에서 28( 1:2;2:1,4,12,13;6:13;7:14;9:7, 15;17:4;23:14,27:9, 11; 7:17,23,29,35,41,47,53,59,65,71,77,83;9:7,13,31:50) 쓰였고, LXT에서 모두 dw/ron으로 바뀌었다. [본문으로]
  2. Robert A. Guelich, Mark 1-8:26 Word Biblical Commentary 34A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89), 368. [본문으로]
  3.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286. [본문으로]
  4. James R. Edwards, The Gospel according to Mark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2002) 210. [본문으로]
  5. 샌더스는 필로의 Hypothetica 7.5 근거로 하여 제사장이 봉헌된 재산을 거절하거나 대제사장이나 왕과 같이 권위가 높은 자가 봉헌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합법적으로 선언하여 서원을 무를 있다(E. P. Sanders, Jewish Law from Jesus to the Mishnah, 54) 하지만, 확인해본 결과 Hypothetica 7.5 고르반은 관련이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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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이아[각주:1]에서 건져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grammatical construction in which a word takes the gender or number not of the word with which it should regularly agree, but of some other word implied in that word. It is effectively an agreement of words according to the sense, and not the morphosyntactic form.

규칙적인 일치에 어긋나는 성이나 수를 취하는 단어을 가진 문법적인 구문이긴 하지만, 한 단어에서 다른 단어를 함축한다. 의미를 따르는 단어의 일치에 효과적이고, 형태동사적 형식이 아니다.


Glossary of Greek Grammar Terms[각주:2]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A construction in which the sense of a word or phrase is considered and not necessarily the grammatical form. For instance a singular noun which refers to a number of people, e.g., , will often take a plural verb. The agreement is to the sense of the noun and not its form. See Solecism.

단어나 구의 의미가 고려되고, 문법적인 형식은 필수적이지 않은 구문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의 수를 참조하는 단수 명사는 종종 복수 동사를 취한다. 일치는 형식이 아닌 명사의 의미를 따른다. 파격 참조.


두 정의를 종합해보면, "모범적인 문법 보다는 매끄러운 문장을 따른다"[각주:3]라고 정리된다. 추가적으로 '문법적인 성'[각주:4]은 전체의미를 담지 못한다. 신현우 교수의 설명[각주:5]에 따르면, 이 문법은 "의미에 따른 문장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BDF §134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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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심문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결심문을 지킬 있도록 내게 능력 주시기를 겸손하게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잊지말고 매주 한 번씩 이 결심문을 읽자.


1.나의 전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지금 당장이든지 아니면 지금부터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든지 간에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말자. 내가 해야 할 의무와 인류 전체의 행복과 유익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내가 부딪히게 될 어려움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한 그 어려움이 아무리 많고 크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자.

2.전에서 언급한 사항을 잘 지키기 위해 도움을 주는 어떤 새로운 수단이나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하자.

3.혹시라도 내가 넘어져 점점 무감각해져서 이 결심문 중의 어떤 내용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다시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회개하자.

4.하나님의 영광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면 영혼에 관계된 것이든지 육체에 관계된 것이든지 또는 적든지 많든지 간에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하지 말자. 만일 내가 그런 일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

5.한 순간의 시간도 절대로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을 가능한 한 최대로 유익하게 사용하자.

6.내가 살아 있는 동안 힘껏 살자.

7.만일 내 생애의 최후 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면 절대로 하지 말자.

8.모든 면에서, 즉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아무도 나처럼 그렇게 악하지는 않는 것처럼,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죄를 범하고,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범한 것처럼 행동하자. 다른 사람의 실패를 나 자신의 잘못을 살피는 계기로 삼고, 나의 죄와 비참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회로만 삼자.

9.매사에 나의 죽음과 죽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자.

10.고통스러울 때는 순교의 고통과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자.

11.해결해야 할 어떤 신학원리가 있을 때, 만일 상황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즉시 하자.

12.만일 내가 교만이나 허영이나 이런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있다면 즉시 그런 것들을 버리자.

13.도움과 사랑을 꼭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자.

14.절대로 복수심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지 말자.

15.비이성적인 인간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화라도 내지 말자.

16.절대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자. 그렇게 하는 것은 다수간 다른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며, 실제로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17.내가 죽게 되었을 때, 그 일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살자.

18.내가 최고로 헌신한 상태일 때, 그리고 내가 복음과 천국에 대해서 가장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그때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그렇게 살자.

19.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기 전, 최후의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라고 가정하고 그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20.먹고 마시는 것은 엄격하게 절제하며 살자.

21.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 가운데 내가 판단하거나 생각하기에 경멸받을 만한 행동이나 비열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22.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나의 힘, 능력, 활력, 열심, 적극성을 다하여 가능한 한 천국에서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

2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이 생각되는 일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하게 행하자. 그리고 그 일의 원래 의도와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지 원인을 파악하자. 만일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일을 ‘결심문4’를 어기는 것으로 간주하자.

24.내가 어떤 현저한 나쁜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추적하자. 그런 다음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또한 나쁜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과 내 힘껏 싸우도록 하자.

25.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를 조심스럽고도 지속적으로 찾아내자. 그런 다음 내 모든 힘을 다해 그것과 싸우자.

26.내 구원의 확신을 약화시키는 것들을 발견하면 버리자.

27.절대로 고의로 어떤 일을 태만하게 하지 말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태만은 예외지만, 자주 내 태만을 점검하자.

28.성경을 아주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자주 연구하자. 그렇게 해서 깨닫고, 쉽게 이해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라가자.

29.절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바랄 수 없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거나, 기도로 인정하거나, 기도의 간구라고 하지 말자. 또한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이라고 바랄 수 없는 것을 죄 고백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30.지난주보다 신앙과 은혜를 실천하는 삶이 더 나아지도록 매주 노력하자.

31.결코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어떤 말을 하지 말자. 그러나 성도의 명예를 아주 실추시키거나, 인류에 대한 사랑을 아주 저해하는 것에 대한 비난은 정당하다.

32.잠언 20장 1절에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라고 기록된 것이 나에게 해 당하는 말이 되지 않도록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내 신념에 충실하자.

33.다른 면에서 지나친 손해가 생기지 않는다면 언제나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유지하고 평화를 지키는 방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하자.

34.이야기하면서 어떤 사실에 대해서 말할 때는 반드시 참되고 단순한 진실만을 말 하자.

35.내가 지킨 의무에 대해서 의심이 많이 생길 때마다 그 일로 내 마음의 고요함과 평안함이 깨어지면 의문 사항들을 기록하고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방법을 강구 하자.

36.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하지 말자. 단 그렇게 하는 것이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경우는 예외다.

37.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 내가 게으름을 피웠는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내가 자신을 부인했는지 등에 대해서 자문해 보자. 또한 매주 말, 매월 말, 매년 말에도 그렇게 하자.

38.일에는 절대로 농담이나 우스개 소리를 하지 말자

39.절대로 합법성에 의문이 많이 제기되는 일을 하지 말자. 동시에 그런 일을 하고 난 후에는 그 일이 합법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조사하자, 또한 만일 내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합법적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40.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해보자.

41.매일, 매주, 매달, 매해의 마지막에 어떤 면에서 더 낫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문해 보자.

42.세례 받을 때 하였고, 성찬식 할 때 진지하게 하였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종종 새롭게 하자. 그리고 오늘 1월 12일 나는 진지하게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하였다.

43.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내 인생이 나의 것인 양 행동하지 말고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하나님의 것인양 행동하자. 토요일에 깨달은 것과 일치하게 행동하자.

44.다른 어떤 목적도 아닌 신앙만이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자. 신앙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행동하지 말자.

45.신앙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면 그 어떤 것에도 절대로 쾌락이나 고통, 기쁨이나 슬픔 등을 느끼지 말자. 어떤 감정도, 조금의 감정도 품지 말자. 그리고 그런 것과 관련된 어떤 환경도 만들지 말자.

46.부모님에게 어떠한 걱정이나 심려도 끼쳐 드리지 말자. 가능한 한 말이나 눈동자에 전혀 내색을 하지 않도록 해서 그런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특히 가족 중의 누구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가지고 그렇게 하도록 조심하자.

47.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선하고, 보편적으로 부드럽고, 친절하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만족하고, 편안하고, 자비롭고, 관용적이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순종적이고, 의무를 다하고, 부지런하고 근면하며, 자애롭고, 침착하고, 인내하고, 절제하고, 용서하고, 진지한 성품에 도움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지 말자. 그리고 항상 이러한 성품이 되도록 하자. 그리고 매 주말마다 내가 그렇게 실천했는지 여부를 엄격하게 점검하자.

48.내가 참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임종의 순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 회개할 무관심의 죄를 조금도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아주 세밀하고도 부지런하게 그리고 가장 엄격하게 내 영혼의 상태를 조사하도록 하자.

49.만일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절대로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자.

50.내가 내세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한 것이 최선이었고, 가장 지혜로운 것이었다 고 판단하게 될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자.

51.죽을 때 내가 뒤를 돌아보면서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하자.

52.나는 종종 노인들일 자기가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겠다라고 말 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때 가서 ‘내가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되는 바로 그런 일들을 하자.

53.내가 가장 기분이 좋은 상태일 때 모든 기회를 이용해서 내 영혼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던지고 맡기자. 주님을 신뢰하고 의뢰하자. 완전히 주님께 헌신하자. 이로써 내가 나의 구속주를 알므로 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54.어떤 사람을 칭찬하는 내용을 들을 때마다 나도 그런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되면 그 일을 본받도록 노력하자.

55.이미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고통을 맛 본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최선을 다하자.

56.아무리 내가 실패하더라도 내 안에 있는 부패와의 싸움을 절대로 포기하지도 말고 조금도 긴장을 풀지도 말자.

57.불행과 불운에 대한 염려가 생길 때, 내 의무를 다했는가를 돌아보고 의무를 다 하도록 결심하자.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자. 할 수 있는 한 나는 내 의무와 내 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자.

58.대화를 나눌 때 불쾌하거나 초조하거나 화를 낸 표정을 짓지 말고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친절한 모습을 보이도록 하자.

59.나쁜 성질과 분노가 가장 많이 치밀어 오르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노력해서 좋은 성격이 드러나도록 행동하자. 그렇다. 그럴 때 비록 다른 측면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때는 경솔하게 될 때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성격을 드러내도록 하자.

60.감정이 극도로 불안정하게 되기 시작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 아주 불편한 마음이 생기거나 감정이 밖으로 일관성 없이 표출될 때는 내 자신을 엄격하게 검사해 보자.

61.핑계가 무엇이든지 간에- 사실 게으름은 핑계 거리를 만들도록 하는 경향이 있지만- 신앙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도록 내 생각을 흐트러뜨리고 풀어지게 하는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62.결코 어떤 일을 의무감으로만 하지 말고, 에베소서6:6-8에 따라서 기쁘고 자원 하는 마음으로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자. 어떤 사람이 어떤 선한 일을 하든지 간에 그는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자.

63.어떤 순간에도 모든 측면에서 인격의 어떤 부분이나 어떤 환경 하에서도 언제나 성도다운 참빛을 비추며, 탁월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는 참으로 완벽한 성도가 세상에 단 한 명 있다고 가정할 때, 만일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힘껏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자.

64.바울 사도가 말하는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시편 기자가 시편119:20에서 말하는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있는 힘 을 다하여 이것들을 향상시키도록 하자. 또한 나의 소원을 아뢰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는 것이 약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러한 열심을 반복적으로 내는 것이 약 해지지 않도록 하자.

65.전 생애 동안 이것을 있는 힘을 다해 연습하자. 즉 맨톤 박사의 시편 119편 설교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나의 모든 죄와 유혹과 어려움과 슬픔과 두려움과 희망과 소원 그리고 모든 것과 모든 상황 속에서 나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열어 놓자.

66.어느 곳에서나, 어느 누구에게나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항상 친절한 태도와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자. 의무상 다르게 행동해야 할 때는 예외다.

67.고난 후에는 고난으로 인해 내가 더 나아진 점이 무엇인지,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또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도록 하자.

68.약점이든지 죄이든지 간에 내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나 자신에게 솔직히 고백하자. 만일 그것이 신앙에 관련된 것이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필요한 도움을 간구하자.

69.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볼 때, 나도 저렇게 했으면 하는 것들을 항상 행하도록 하자.

70.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자.



The Resolutions of Jonathan Edwards


Being sensible that I am unable to do any thing without God’s help, I do humbly entreat him, by his grace, to enable me to keep these Resolutions, so far as they are agreeable to his will, for Christ’s sake.

Remember to read over these Resolutions once a week.

1. Resolved, that I will do whatsoever I think to be most to God's glory, and my own good, profit and pleasure, in the whole of my duration, without any consideration of the time, whether now, or never so many myriad's of ages hence. Resolved to do whatever I think to be my duty and most for the good and advantage of mankind in general. Resolved to do this, whatever difficulties I meet with, how many and how great soever.

2. Resolved, to be continually endeavoring to find out some new invention and contrivance to promote the aforementioned things.

3. Resolved, if ever I shall fall and grow dull, so as to neglect to keep any part of these Resolutions, to repent of all I can remember, when I come to myself again.

4. Resolved, never to do any manner of thing, whether in soul or body, less or more, but what tends to the glory of God; nor be, nor suffer it, if I can avoid it.

5. Resolved, never to lose one moment of time; but improve it the most profitable way I possibly can.

6. Resolved, to live with all my might, while I do live.

7. Resolved, never to do anything, which I should be afraid to do, if it were the last hour of my life.

8. Resolved, to act, in all respects, both speaking and doing, as if nobody had been so vile as I, and as if I had committed the same sins, or had the same infirmities or failings as others; and that I will let the knowledge of their failings promote nothing but shame in myself, and prove only an occasion of my confessing my own sins and misery to God.

9. Resolved, to think much on all occasions of my own dying, and of the common circumstances which attend death.

10. Resolved, when I feel pain, to think of the pains of martyrdom, and of hell.

11. Resolved, when I think of any theorem in divinity to be solved, immediately to do what I can towards solving it, if circumstances don't hinder.

12. Resolved, if I take delight in it as a gratification of pride, or vanity, or on any such account, immediately to throw it by.

13. Resolved, to be endeavoring to find out fit objects of charity and liberality.

14. Resolved, never to do anything out of revenge.

15. Resolved, never to suffer the least motions of anger to irrational beings.

16. Resolved, never to speak evil of anyone, so that it shall tend to his dishonor, more or less, upon no account except for some real good.

17. Resolved, that I will live so as I shall wish I had done when I come to die.

18. Resolved, to live so at all times, as I think is best in my devout frames, and when I have clearest notions of things of the gospel, and another world.

19. Resolved, never to do anything, which I should be afraid to do, if I expected it would not be above an hour, before I should hear the last trump.

20. Resolved, to maintain the strictest temperance in eating and drinking.

21. Resolved, never to do anything, which if I should see in another, I should count a just occasion to despise him for, or to think any way the more meanly of him.

(Resolutions 1 through 21 written in on setting in New Haven in 1722)

22. Resolved, to endeavor to obtain for myself as much happiness, in the other world, as I possibly can, with all the power; might, vigor, and vehemence, yea violence, I am capable of, or can bring myself to exert, in any way that can be thought of.

23. Resolved, frequently to take some deliberate action, which seems most unlikely to be done, for the glory of God, and trace it back to the original intention, designs and ends of it; and if I find it not to be for God's glory, to repute it as a breach of the 4th Resolution.

24. Resolved, whenever I do any conspicuously evil action, to trace it back, till I come to the original cause; and then both carefully endeavor to do so no more, and to fight and pray with all my might against the original of it.

25. Resolved, to examine carefully, and constantly, what that one thing in me is, which causes me in the least to doubt of the love of God; and to direct all my forces against it.

26. Resolved, to east away such things, as I find do abate my assurance.

27. Resolved, never willfully to omit anything, except the omission be for the glory of God; and frequently to examine my omissions.

28. Resolved, to study the Scriptures so steadily, constantly and frequently, as that I may find, and plainly perceive myself to grow in the knowledge of the same.

29. Resolved, never to count that a prayer, nor to let that pass as a prayer, nor that as a petition of a prayer, which is so made, that I cannot hope that God will answer it; nor that as a confession, which I cannot hope God will accept.

30. Resolved, to strive to my utmost every week to be brought higher in religion, and to a higher exercise of grace, than I was the week before.

31. Resolved, never to say anything at all against anybody, but when it is

perfectly agreeable to the highest degree of Christian honor, and of love to mankind, agreeable to the lowest humility, and sense of my own faults and failings, and agreeable to the golden rule; often, when I have said anything against anyone, to bring it to, and try it strictly by the test of this Resolution.

32. Resolved, to be strictly and firmly faithful to my trust, that that in Prov. 20:6, "A faithful man who can find?" may not be partly fulfilled in me.

33. Resolved, always to do what I can towards making, maintaining, establishing and preserving peace, when it can be without over-balancing detriment in other respects. Dec.26, 1722.

34. Resolved, in narration's never to speak anything but the pure and simple verity.

35. Resolved, whenever I so much question whether I have done my duty, as that my quiet and calm is thereby disturbed, to set it down, and also how the question was resolved. Dec. 18, 1722.

36. Resolved, never to speak evil of any, except I have some particular good call for it. Dec. 19, 1722.

37. Resolved, to inquire every night, as I am going to bed, wherein I have been negligent, what sin I have committed, and wherein I have denied myself: also at the end of every week, month and year. Dec.22 and 26, 1722.

38. Resolved, never to speak anything that is ridiculous, sportive, or matter of laughter on the Lord's day. Sabbath evening, Dec. 23, 1722.

39. Resolved, never to do anything that I so much question the lawfulness of, as that I intend, at the same time, to consider and examine afterwards, whether it be lawful or no; except I as much question the lawfulness of the omission.

40. Resolved, to inquire every night, before I go to bed, whether I have acted in the best way I possibly could, with respect to eating and drinking. Jan. 7, 1723.

41. Resolved, to ask myself at the end of every day, week, month and year, wherein I could possibly in any respect have done better. Jan. 11, 1723.

42. Resolved, frequently to renew the dedication of myself to God, which was made at my baptism; which I solemnly renewed, when I was received into the communion of the church; and which I have solemnly re-made this twelfth day of January, 1722-23.

43. Resolved, never henceforward, till I die, to act as if I were any way my own, but entirely and altogether God's, agreeable to what is to be found in Saturday, January 12. Jan.12, 1723.

44- Resolved, that no other end but religion, shall have any influence at all on any of my actions; and that no action shall be, in the least circumstance, any otherwise than the religious end will carry it. Jan.12, 1723.

45. Resolved, never to allow any pleasure or grief, joy or sorrow, nor any affection at all, nor any degree of affection, nor any circumstance relating to it, but what helps religion. Jan.12 and 13.1723.

46. Resolved, never to allow the least measure of any fretting uneasiness at my father or mother. Resolved to suffer no effects of it, so much as in the least alteration of speech, or motion of my eve: and to be especially careful of it, with respect to any of our family.

47. Resolved, to endeavor to my utmost to deny whatever is not most agreeable to a good, and universally sweet and benevolent, quiet, peace_able, contented, easy, compassionate, generous, humble, meek, modest, submissive, obliging, diligent and industrious, charitable, even, patient, moderate, forgiving, sincere temper; and to do at all times what such a temper would lead me to. Examine strictly every week, whether I have done so. Sabbath morning. May 5,1723.

48. Resolved, constantly, with the utmost niceness and diligence, and the strictest scrutiny, to be looking into the state of my soul, that I may know whether I have truly an interest in Christ or no; that when I come to die, I may not have any negligence respecting this to repent of. May 26, 1723.

49. Resolved, that this never shall be, if I can help it.

50. Resolved, I will act so as I think I shall judge would have been best, and most prudent, when I come into the future world. July 5, 1723.

51. Resolved, that I will act so, in every respect, as I think I shall wish I had done, if I should at last be damned. July 8, 1723.

52. I frequently hear persons in old age say how they would live, if they were to live their lives over again: Resolved, that I will live just so as I can think I shall wish I had done, supposing I live to old age. July 8, 1723.

53. Resolved, to improve every opportunity, when I am in the best and happiest frame of mind, to cast and venture my soul on the Lord Jesus Christ, to trust and confide in him, and consecrate myself wholly to him; that from this I may have assurance of my safety, knowing that I confide in my Redeemer. July 8, 1723.

54. Whenever I hear anything spoken in conversation of any person, if I think it would be praiseworthy in me, Resolved to endeavor to imitate it. July 8, 1723.

55. Resolved, to endeavor to my utmost to act as I can think I should do, if I had already seen the happiness of heaven, and hell torments. July 8, 1723.

56. Resolved, never to give over, nor in the least to slacken my fight with my corruptions, however unsuccessful I may be.

57. Resolved, when I fear misfortunes and adversities, to examine whether ~ have done my duty, and resolve to do it; and let it be just as providence orders it, I will as far as I can, be concerned about nothing but my duty and my sin. June 9, and July 13 1723.

58. Resolved, not only to refrain from an air of dislike, fretfulness, and anger in conversation, but to exhibit an air of love, cheerfulness and benignity. May27, and July 13, 1723.

59. Resolved, when I am most conscious of provocations to ill nature and anger, that I will strive most to feel and act good-naturedly; yea, at such times, to manifest good nature, though I think that in other respects it would be disadvantageous, and so as would be imprudent at other times. May 12, July ii, and July 13.

60. Resolved, whenever my feelings begin to appear in the least out of order, when I am conscious of the least uneasiness within, or the least irregularity without, I will then subject myself to the strictest examination. July 4, and 13, 1723.

61. Resolved, that I will not give way to that listlessness which I find unbends and relaxes my mind from being fully and fixedly set on religion, whatever excuse I may have for it-that what my listlessness inclines me to do, is best to be done, etc. May 21, and July 13, 1723.

62. Resolved, never to do anything but duty; and then according to Eph. 6:6-8, do it willingly and cheerfully as unto the Lord, and not to man; "knowing that whatever good thing any man doth, the same shall he receive of the Lord." June 25 and July 13, 1723.

63. On the supposition, that there never was to be but one individual in the world, at any one time, who was properly a complete Christian, in all respects of a right stamp, having Christianity always shining in its true luster, and appearing excellent and lovely, from whatever part and under whatever character viewed: Resolved, to act just as I would do, if I strove with all my might to be that one, who should live in my time. Jan.14' and July '3' 1723.

64. Resolved, when I find those "groanings which cannot be uttered" (Rom. 8:26), of which the Apostle speaks, and those "breakings of soul for the longing it hath," of which the Psalmist speaks, Psalm 119:20, that I will promote them to the utmost of my power, and that I will not be wear', of earnestly endeavoring to vent my desires, nor of the repetitions of such earnestness. July 23, and August 10, 1723.

65. Resolved, very much to exercise myself in this all my life long, viz. with the greatest openness I am capable of, to declare my ways to God, and lay open my soul to him: all my sins, temptations, difficulties, sorrows, fears, hopes, desires, and every thing, and every circumstance; according to Dr. Manton's 27th Sermon on Psalm 119. July 26, and Aug.10 1723.

66. Resolved, that I will endeavor always to keep a benign aspect, and air of acting and speaking in all places, and in all companies, except it should so happen that duty requires otherwise.

67. Resolved, after afflictions, to inquire, what I am the better for them, what good I have got by them, and what I might have got by them.

68. Resolved, to confess frankly to myself all that which I find in myself, either infirmity or sin; and, if it be what concerns religion, also to confess the whole case to God, and implore needed help. July 23, and August 10, 1723.

69. Resolved, always to do that, which I shall wish I had done when I see others do it. Aug. 11, 1723.

70. Let there be something of benevolence, in all that I speak. Aug. 1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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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Joï-hm;

랍비 시몬스의 대답[각주:1]http://judaism.about.com/library/3_askrabbi_o/bl_simmons_matovu.htm'>에 따르면

"Ma Tovu"는 아침에 회당에 들어가면서 읊는 (민수기 24장 5절에서 시편들까지의) 운문 묶음이다.  성전을 대신하는 회당에 대한 찬양과 존경의 표현이다. (출처: "Seder Amram Gaon" Tefillot U'Bekashot, "Siddur Kol Yacov" - Artscroll).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에서 찾았다.

Ma Tovu(히브리어로 "오 얼마나 좋은지" 혹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라는 뜻)는 회당과 다른 예배 처소를 향한 존경과 경외심을 표현하는 유대교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 민수기 24장 5절에서 유래되었는데, 여기에서 이스라엘인들을 저주하려고 보낸 발람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인들의 예배당에 압도되었다. 찬양의 첫 줄은 발람의 축복이며, 비 유대인에 의해 쓰여져서 유대인 예배에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기도이다. 본문의 나머지 부분은 예배당으로의 입장과 그 이상의 기도(시편 5편 8절, 26편 8절, 95편 6절, 69편 14절)를 준비하는데 관련있는 시편의 악절에서 끌어왔다. 이 문맥에서는 유대인들이 회당에 들어가면서 암송하는 기도이다.


그 이상의 내용은 http://en.wikipedia.org/wiki/Ma_Tovu 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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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서 정의를 따르면,


파라샤는 타낙(히브리 성경)의 마소라 텍스트의 한 부분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킨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en.wikipedia.org/wiki/Parsha 를 참고하도록 한다. Jewish Torah Audio[각주:1]에는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파라샤는 "조각"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이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의 한 부분을 유월절마다 읽는다. 수천년을 거스러 올라갈 수 있는 일상적인 관습이다.  유대인들이 일주일 동안 한 주간 분량을 공부하는 전통이다. 매 주마다, 전 세계에서 그 주의 파라샤 강좌을 들으러 간다.

모세오경은 54 조각으로 나눠져 있다.

파라샤 강좌는 http://613.org/parasha.html 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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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linear Scripture Analyzer를 제공하는 곳. PDF로도 제공한다.
http://www.scripture4all.org


강세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발음 표기 역시 다르다. 이 두 가지만 보완된다면, 매우 유용할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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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koluth

고대언어/헬라어 2007. 6. 23. 18:57
anakoluth란?

In some cases, illustrated by Laporte: Caller Chris II, the projection is that of an 'anakoluth', a meaningful "coming-to-a-stop", which leaves the interactants with enough information to act upon and take over the turn that has come to a stop.[각주:1]


<IX.Die Dimensionen der Sprachvariation und die Auslastung der Varietatenraume im Vergleich>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Anakoluth = syntaktischer "Bruch¡" aufgrund einer Plananderung
(? Parameter d, e, h, Versprachlichungsstrategien i und ii),
in jeder spontanen Konversation, gleich in welcher Sprache, erwartbar.

위키피디아 http://de.wikipedia.org/wiki/Anakoluth 에도 설명되어 있는데, 두 자료 모두 독일어라 해석불가능.

참고로,
<현대독일어 인과문에 있어서의 주문장 어순 경향에 대하여>란 논문에서는 anakolth를 '파격문장'이라고 했다. 해당 파일 다운로드.


업데이트 2008년 4월 14일.
더 자세한 내용은 파격문장(anacoluthon)를 읽어보라.
  1. Wolfgang Imo, <A Construction Grammar approach to the phase "I mean" in Spoken English>, p.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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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제중에서 세 가지를 택하여 작성한후 제출하시요.



1.
종교개혁적 Sola Scriptura

 

2. 종교개혁적 이신칭의

 

종교개혁적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이며, 종교개혁 신학의 유명한 구호 교회가 서기도 하고 넘어지게도 하는 이라는 말은 칭의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칭의론은 우리가 가진 교리 가장 중심적인 교리, , , 교회의 이라고 루터는 표현한다. 1537 논쟁에서 칭의에 관한 조항은 선생이요, 영주요, 주요, 인도자요, 모든 교회 교리가 증명하고, 유도하며, 우리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지향하는 모든 종류의 교리를 판단하는 심판자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적인 칭의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칭의에 대한 언급 앞에 놓인 지평이 바로 임박한 심판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루터에게는 어떻게 인간이 심판에서 하나님 앞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했다. “칭의에 관한 조항은 옳게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칭의 조항이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과 나뉘어져서는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를 전개하는 것만이 칭의론을 바르게 다루는 것이다.

신앙은 오히려 모든 자신의 행위와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파하는 것이며, 은총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에 대해 응답할 가능하다. 칭의는 신앙으로, 다시 말해서 신앙의 형태로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현존하시고 신앙은 보물을 가지고 있기에 신앙이 의롭게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앙에서 그리스도는 현존한다. 이것이 칭의를 결정짓는 내용이요 인간의 중생의 근거이다.

루터는 칭의가 죄로부터의 무죄 선고이며 동시에 갱신이라는 둘의 불가분리의 연관성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특별히, 빌프리트 요에스트는 루터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진술들은 있는 그대로를 서로 불가분리의 연관성 속에서 보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전체적인 면이요, 다른 하나는 부분적인 면이다. 그리스도인은 전체적인 의미에서 죄인이요, 동시에 의인이라는 사실과 또한 마찬가지로 신적인 칭의와 의롭게 함을 얻었다 할지라도 부분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죄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의인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 앞에 인간에게 행위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함을 언제나 주장했다. 여기서는 오직 믿음만이 칭의를 얻기에 타당한 것이다. 매우 제한된 의미에서 루터는 행위의 필연성 확신했다. 행위는 구원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믿음만이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루터에게는 행위의 의에 반대하여 오직 믿음만이 의롭게 한다는 사실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칭의와 연관된다면 행위를 강조해서는 된다.

사실 루터는 행위가 없다는 것은 신앙이 죽은 것임을 말한다고 가끔 설명한다. “믿음에 대하여라는 논쟁에서 그는 만약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우리 마음속에 있지 않으며, 단지 죽은 믿음임이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칭의론에서는 참된 신응은 게으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와 뒤따르는 것으로부터 참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확인하고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가끔 루터는 가지 칭의를 구분하고 있다. 팔라디우스와 틸레만의 박사학위 논쟁에서 성경은 가지 칭의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 앞에서의 칭의요, 다른 하나는 행위를 통한 세상 앞에서의 칭의이다.”라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루터는 전적으로 바울 그리고 바울적인 의미로 해석된 복음서를 인용하여 오직 은총과 오직 믿음이라는 칭의를 발견하고 있다고 말할 있다. 행위에 따른 심판은 여기서 제쳐두고 있다. 최후의 심판을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 행위들은 신앙 또는 불신양의 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신앙의 우위가 확보되고 있다. 루터가 칭의론에서 목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외식으로부터의 인간의 자유이며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다. “우리 신학은 우리를 우리 밖에 세우기 때문에 확실하다. 나는 나의 양심을 의지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과 속일 없는 진리를 의지해야만 한다.”

 

루터의 말대로 칭의 교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비추는 거룩한 태양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적 신학은 칭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비롯되었고, 십자가 신학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그만큼 칭의 교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행위에 대한 논쟁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누구도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없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그의 전적인 은혜를 영원토록 찬양해야 마땅하다.

3. 칼빈의 율법 이해

 

4. 칼빈의 교회론

 

5. 종교개혁적 교회와 사회/국가의 관계

 

여기서 우리는 아담의 자손과 모든 인류를 그룹으로 나누어야만 한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그룹이며, 둘째는 세상 나라에 속한 그룹이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참된 신자들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세속적인 정부도 법도 필요치 않다. 만약 세상 전체가 참된 그리스도인 , 참된 신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영주, , 통치자, 정부, 혹은 법으로부터 받을 아무런 도움이 없다.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들은 세상 나라와 세속법 아래 있다. 그곳에는 참된 신자란 거의 없으며, 악에 저항하고 스스로 악을 행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동떨어진 다른 하나의 정부를 주셨고, 인간이 원치 않는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연약한 점을 대처할 없기에 인간을 아래 살게 하셨다라고 루터는 말했다. 루터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나누어 생각했는데, 이는 바르트에 의해 왕국론이라 불려지기 시작했다. 루터는 정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부를 조심스럽게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의를 만들어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평화를 가져오며 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어느 것도 다른 하나가 없이는 세상에서 충분치 않다. 어떤 정부도 독자적으로 수행 없는데, 세속적인 정부만 있을 경우엔, 사람을 경건케 하는 성령이 마음 속에 없을 것이며, 영적인 정부만 있다면 사회질서가 유지되지 않아 악이 횡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속 정부에 통치권과 권력을 부여하셨으며, 영적 정부에는 봉사와 직임이 있다. 왕국과 정부를 구분하는 의미는 하나님 앞과 세상 앞에 있는 인간 존재를 구분하는 것이며, 그들의 상호간계와 차이점에서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명백하게 알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 또는 국가만이 세상 나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삶을 보존하고 계속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거기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해는 루터의 율법과 복음의 구분과 일치한다.

 

칼빈은 영역으로 구분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와 시민적 질서는 완전히 상이하다고 했다. 상이성은 영역의 서로 다른 임무에 기초하고 있다. 칼빈이 생각하기로 마지스트라(magistrat)’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하여 초대하시고 그리스도와 하나로 있도록 보존하시기 위하여 쓰시는 외적인 수단이요, 보조 기관이다.” 다시 말해, 세상의 통치 질서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위한 봉사자요, 중계자이다.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는 보편적인 교회을 의미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보편적인 교회의 일원이다. 참된 교회는 모든 신자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다스리심과 성령의 새로 지으시는 권능이 확장되는 , 그것을 위하여 교회는 존재한다. 교회가 자체의 목적을 가진다면 그것은 그릇된 교회임에 틀림 없다. 참된 교회는 자체의 말을 하거나 자체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며, 또한 세상의 어떠한 지배자에게 복종하지도 않는다. 교회는 신앙인의 공동체라는 성경을 기구이다. 교회는 또한 하나님이 말씀을 중심하는 모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기초로 하여 성립되는 것이며, 말씀은 또한 직분자를 통하여 선포된다. 영역은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에 근거에 두고 있으며, 자의 역할을 유지하는데 힘써야 한다. 교회가 국가를 지배한다든가 교회가 국가에 종속되어서는 된다. 때문에 칼빈은 정부가 하는 일에는 간섭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이와 반대로 정부가 교회에 간섭하려 때에는 망설임 없이 저항하였다.

 

 

6. 종교개혁적 신학이 초교파신학의 기초하는 주장에 대해

 

서병용 교수는 초교파신학 강의에서 종교개혁적 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교파주의는 핵심적인 공통성보다 부차적인 차이성에 강조를 두고 있으며, 교파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문제다. 성경적 사고방식은 탈중심적이며, 초교파를 지향한다고 해서 교파를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학행위의 주체자는 초교파적 교회의 공동체 가운데 있으며, 초교파란 종말론적인 존재로서의 교회의 기본 관심이요 삶의 지평이다.

 

종교개혁적 신학은 복음주의적 신학의 초점과 결정적인 표준으로서 복음적 초교파신학의 출발점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적 신학을 발견하고 이를 성경적 기초 위에 두고 조직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칼빈은 이를 더욱 견고히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와 칼빈의 신학을 이해하는 종교개혁적 신학을 이해하는 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종교개혁적 신학이야 말로 개신교의 밑바탕을 이루는 신학이라고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칼빈신학이 정통교리라고 믿는다. 흔히 그리스도교 3 신학자로 어거스틴, 루터, 칼빈을 꼽는데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교의 전통교리의 기틀을 다진 신학자이며, 루터는 어거스틴의 신학을 계승하면서 종교개혁적 신학의 기초를 다졌고,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어거스틴의 신학을 계승하면서 루터의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신학을 정립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거스틴, 루터, 칼빈 신학은 그리스도교 정통교리로 인정해야 함과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받아 들여야 신학이다. 정리하자면, 어거스틴은 루터와 칼빈에게 영향을 주었고, 둘은 종교개혁을 주도하였다. 그러므로, 서병용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이들의 신학이 종교개혁적 신학이며 복음주의적 초교파 신학의 기초이다. 나아간다면 그리스도교 정통교리이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학부시절에 웨슬리안 · 알미니안주의를 교리로 받아들이는 성결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면서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나름대로 얻어낸 결론이므로 종교개혁적 신학이 복음주의적 초교파 신학의 기초라는데 적극 동의한다. 나아가 모든 교파는 종교개혁적 신학을 자신의 교파의 핵심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종교개혁적 신학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있었던 온갖 논쟁을 통해 정립되어 교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근본이라 해도 무방하며, 점차적으로 더욱 모순에 빠져가고 있는 카톨릭 교회를 향하여 외치는 참된 교회를 위한 신학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부시절을 보낸 성결대학교만 하더라도 칼빈신학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전통교리로 검증되지도 않은 웨슬리안 · 알미니안주의를 교리로 삼으면서도 자신들이 정통이며 복음주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종교개혁적 신학이 복음적 초교파 신학의 기초라는 주장이 당위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동의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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