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들에게, 이데올로기 비평이란 단어는 껄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 사람을 통해 기록되고 편집되었다면, 그 매개체의 개입 역시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그 누구도 이 전제 자체를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위정자 혹은 그의 조력자로서 집단을 통치하는 입장이라면 이데올로기 강화는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가령 다윗은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자 예배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와 동시에 시편을 통해 자기 경험을 이스라엘 국가의 이념으로 전파했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해석자로서 성경 저자 혹은 편집자의 이데올로기가 옳다/그르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해석자의 편견을 배제하고 실재 그대로 드러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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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학자들이 자신을 역사학자로 정의하는 경향과 달리, 나는 스스로를 신학자로 정의한다. 그러나 나는 성경을 신학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관점과 해석이 특정 신학을 반영하거나 근접할 수 있으나, 본문 자체의 의미를 도출하는 작업에 최우선 순위를 둔다.

내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을 위해 목자-양 유비를 택한 이유는 관련 용례의 최상위 집합으로 하위 용례들을 선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관점에 매이지 않고 관련 용례를 분석하려는 의도 역시 갖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특정 사례로 접근할 경우 본문의 의미를 넘어 연구자의 해석을 투영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다윗 목자 전승으로 연구한 사례들이 있다. 특정 연구에서는 '다윗' 혹은 '목자'가 따로 등장해도 왕권과 메시아 등 여러 개념과 연동해 버린다.

내 분석에 의하면, 목자 본문이 반드시 다윗 목자 전승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또한, 목자가 왕권 사상과 연결될 가능성은 높지만, 그렇다 하여 꼭 메시아사상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난 다윗 목자 전승이란 단어나 접근을 채택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 접근은 매우 광범위한 분석과 작업을 요구한다. 내 박사 과정이 늘어나는 이유라서 솔직히 달갑지 않지만, 훗날 후회하지 않을 결과물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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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연구 검토는 그 자체의 한계를 통해 신 연구의 시작점을 발견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이 작업은 연구자의 관점을 선행연구의 범위로 제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존 연구 추세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물길을 트려면 선행연구를 벗어난 관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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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중요성

성찰 2023. 10. 8. 05:15

플루타르코스 (Plutarchos)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 Moralia』에 지도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부분이 있다.

When the older men asked the defeated soldiers why they were such cowards as to flee from the men they had so often pursued, one of the Numantians is said to have replied that the sheep were still the same sheep, but another man was their shepherd.

노인들이 패한 병사들에게 왜 그렇게 겁쟁이가 되어 자주 쫓아오던 사람들을 피해 도망쳤는지 물었을 때, 누만인 중 한 명이 양은 여전히 같은 양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들의 목자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Plutarch, Moralia: Sayings of Romans, 201.


내 인생에서 현시기가 한국 정치 경제 사회 등 최악의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보는데, 얼마나 더 밑바닥으로 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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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수준에서는 어떤 주제를 선택해도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글을 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주제와 자료는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박사 학위 논문은 주제와 별개로 글자 수 제한을 감안해야 한다.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UStA 신학부는 글자 수 제한이 6~8만자로 적시되어 있다.

박사 과정 지원 전에 연구 제안서로 일차 평가를 받는 셈이므로, 해당 연구 제안서가 실제로 박사 학위 논문이 될 수 있는지 교수진의 평가를 통해 가늠된다. 또한 입학 후 시작되는 1년 차 심사를 지도교수(진)의 조언을 통해 연구 제안서의 가치를 재평가받게 된다. 때로는 입학 전에 연구 제안서 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능하다면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연구를 확장할 수 있는 주제를 학위 논문으로 선정하는 쪽이 장래에 도움이 된다. 대개 학위 과정 중에 수많은 자료를 보면서 현 연구 주제의 확장 가능성을 보게 되고, 학위 취득 이후 연구 주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위 취득 이후 학위 논문과 별개인 새 연구 주제를 시도해도 문제는 없지 않겠지만, 강사로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강의 준비하느라 연구 발표하느라 바쁠 테니 새 주제를 찾는 건 위험부담이 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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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최종 형태에 관한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실재를 바탕으로 기록되는 결론이 마땅하다고 본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이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고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설명할 길이 없다. 예레미야는 이전에 보지 못한 강대국들이 출현하던 시기였고, 그 제국조차도 멸망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살아남았다.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관점은 언약이라는 신앙의 언어였다.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구약에서 언약과 목자의 출현에 관한 예언은 자주 결합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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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이 지도자들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또한 그 예언자들이 지금은 참 예언자로 추앙받지만, 그 당시에는 배척당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참 예언자들이 예언의 진정성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망각한다.

오늘날 목회자들을 비롯한 사역자들, 교인들은 예언자를 배격한다. 정확히 말하면, 신학을 했다는 이들은 예언을 배격한다. 반대로 예언을 인정하는 이들은 본인과 관련된 미래에 대한 예언은 구하지만, 시대적 사명과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현대인들은 고대인보다 자신의 우월성을 암묵적으로 가정하지만, 내가 볼 때 그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축복을 위한 통로요 역사의식은 시대를 통찰한 소수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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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문 지식이 깊어질수록, 내 고유한 기여가 늘어갈수록 선행연구를 반박하는 빈도가 잦아지게 된다. 예전에는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벽과 같아 보였던 지식의 장벽이 지금은 빈 구멍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학문의 우상화가 깨어졌다는 이점이 있지만, 가끔 학문이란 이다지도 허망한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이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껏 선행연구를 쌓아 올렸기에 이만큼이라도 견고한 장벽을 세울 수 있었지, 무용론은 진리를 탐구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집요한 탐구 정신으로 선행연구를 반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누구라도 이생에 궁극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겠지만, 진보한 진리를 맛보게 해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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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과 원격 교육

성찰 2023. 7. 19. 08:26

외국인이 해외 대학 학위를 취득하려면 현지에 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러나 불과 2020년부터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인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대표적인 대안이 원격 교육(distance learning)이다. 나는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영국 대학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경험을 했고, 지금은 원래 규정대로 현지에서 학업을 지속하고 있다.

학교 측에서는 원격 교육으로 학위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로서 추가 비용을 감수해도 학생 인원 감소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학생 측에서는 해외 거주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학비 감면과 학업 기간 연장, 현업 유지 등 이점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석박사 학위 모두 원격 교육으로 취득할 수 있다. 내 주변에 영국 석사 학위를 한국에서 취득한 사례가 있고, 현재 네덜란드 박사 학위를 한국과 미국에서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아직 원격 교육 학위를 제공하는 학교가 많지는 않아서 본인이 희망하는 학교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확률은 낮지만, 해외 이동 없이 현업을 유지하며 해외 학교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는 크나큰 이점이 생겼다.

다만 최소 두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현지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학업 시간에 대한 부담이다.

먼저 유학의 장점 중 하나인 현지 생활이 생략되어야 한다. 위험 부담이 큰 게 사실이지만, 현지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 또한 상당하다.

다른 하나는 학업 시간이다. 유학생은 본인의 직업을 포기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위험 부담이 있다. 반면 원격 교육은 현지 유학생들 보다 2배 정도 늘어난 시간을 보장받는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학업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최상이겠으나 본업을 겸할 경우 시간과 체력 관리를 통해 기나긴 과정을 균형 있게 마쳐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원격 교육 학위 과정이 매력적이다. 8~10년을 내다보고 사역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면 유학생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배제하고 해외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최대 2년 내에 학위 과정을 마칠 가능성이 높아서 이대로 가야하지만, 현재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원격 교육 학위 과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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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의 Special Laws 에 초막절의 여덟번 째 달에 대한 설명이 길게 부연되어 있다. 내가 인상 깊은 구절은 아래와 같다.

All this the lawgiver observed and therefore did not permit his people to conduct their festivities like other nations, but first he bade them in the very hour of their joy make themselves pure by curbing the appetites for pleasure. (Philo, Special Laws 1:193)

율법의 수여자는 이 모든 것을 지키셨으므로 그의 백성이 다른 나라들처럼 축제를 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먼저 그들에게 명하셨으니 바로 기쁨의 시간에 쾌락에 대한 식욕을 억제하여 스스로 정결케 하라 하셨느니라.


초막절을 칠일 동안 즐기는 동안 일부 참여자들이 절기 본연의 의도인 '즐거움'을 벗어나 '쾌락'에 빠질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팔일에 새로운 죄를 짓지 않고, 절기 본연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요구하고 있다.

For strong drink and gross eating accompanied by wine-bibbing, while they awaken the insatiable lusts of the belly, inflame also the lusts seated below it, and as they stream along and overflow on every side they create a torrent of evils in-numerable, because they have the immunity of the feast for their headquarters and refuge from retribution. (Philo, Special Laws 1:192)

독한 술과 독주를 동반한 역겨운 음식은 배의 만족할 줄 모르는 정욕을 일깨우고 그 아래에 있는 정욕도 불붙게 하며, 그것이 사방으로 흐르고 넘치면서 무수한 악의 급류를 만듭니다. 그들은 본부를 위한 잔치의 면제와 보복으로부터의 피난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기 중 제사가 강조되는 이유가 최우선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 그리고 분향자의 사죄 요청이 부과적으로 수행되는 이유가 이런 맥락에 있지 않나 싶다. 절기 제사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요구되지만, 이 글에서는 초막절 팔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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