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글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많이 하지만, 평소 말은 거의 없다. 무관심하거나 화난 거 아니라 딱히 할 말이 없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좋다.

대화는 직설적으로 푸는 편이다. 소통 과정에서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느끼는 답답함을 직설적인 표현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또한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도 비슷한 원인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드문 일이지만 가끔 내 표현 방식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주로 자매들이 그렇다. 내가 수위를 낮춘다고 해도 자매들에게는 예리하게 살을 에리는 언어로 들리나 보다. 특히 남자는 해결책을 여자는 공감을 원하는 서로 다른 사고방식으로 인해, 내 말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달된다. 다행히 오해는 풀린다.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말의 권위에 대한 조언을 듣곤 했다. 그리고 유학생으로 지내면서 내 말의 권위에 대한 조언을 몇 번 더 들었다. 혹자들은 나에게 인플루엔서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런 자각이 없다.

자금까지는 공적인 자리에서 말로 실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받고 학교에서 강사로 일을 시작할 경우, 또한 교회에서 협동 목사로 사역할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내 인식과 무관하게 나는 선생이자 목사로 존재한다. 지금과는 말의 무게가 다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게 될 거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겠지. 또한 내 말의 권위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거다.

왜 내가 만났던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이 말을 그토록 아꼈는지 점점 더 이해된다. 반대로 나에게 진솔하게 자기 생각을 나눠준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더해져 간다.

앞으로 내가 조언할 기회가 있어도 지금처럼 직설적인 언어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피조언자는 내 말로 상처받을 일이 없어지겠지만, 내 걱정은 내 직설적인 언어보다 더 살벌한 현실을 인지할 수 있을까 하는 데 있다.

학위 취득 이후에는 소셜미디어에 내 사적인 일들을 남길 일은 적어질 거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바이다. 내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내 현황을 파악하는 지인들이 있다. 그걸로 족하다. 박사 학위 취득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 내 유학 생활을 통해 잘 살아 있는 내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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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박사 학위 논문은 적당히 끝낼 수 없다. 학부와 석사 학위를 최상급 학교에서 취득하지 않아 그 난이도를 가늠할 수 없지만, 내 경험에 한정한다면, 석사까지는 잘 마칠 수 있다. 성적은 또 다른 이야기임.

그러나 박사 과정은 다른 차원이다. 목회학 석사 학위 논문과 석사 학위 논문으로 지도 교수와 평가 위원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박사 과정 신입생 통과의례인 Probationary Review를 수정 없이 단번에 통과했지만, 내 예상보다 더 긴 시간과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모든 과정이 그렇지만, 영국 박사 과정은 지도 교수의 재량이 상당하다. 기본적으로 박사 학위 논문에 요구하는 기준이 높지만, 명문대일수록 그 기준은 더 높아진다. 지도 교수가 기준 이상으로 엄격할 경우 학생은 더 험난한 길을 가게 된다. 내 지도 교수는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상당히 훌륭하지만, 학생 선발에 엄격하고, 현재는 신약학 최고참이라 남들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내 연구 주제가 만만한 주제가 아니다. 내 관심사는 주요 세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박사 과정 진학을 문의할 때 내 기준 TOP 5 학교 소속 교수진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이유는, 내 연구 주제가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참고문헌을 찾기 쉽지 않고, 혹여나 찾아도 내 입장과 비슷한 관찰을 찾기 힘들어서, 내 분석에 근거해 글을 써야 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박사는 학위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출신 학교와 지도 교수의 명성이 박사 학위 소지자를 평가하는 요소가 되긴 하지만, 연구자 개인으로서의 평가는 박사 학위 논문이다. 내가 박사 과정에 합격한 이후 교수님들에게서 들은 말은 학위 논문을 잘 쓰라는 조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일단 학위 논문을 끝내버리고 싶지만, 서둘러 봉합했다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대략 알기 때문에 섣불리 갈무리 작업을 할 수 없다. 내 상황과 지도 교수의 평가 등을 고려해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내 연구 제안서대로라면 2년 이내에 박사 학위를 마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쩌면 입학과 동시에 내 제안서대로 연구를 진행했다면 2년 내에 끝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학교마다 절차가 있다. 또한 지도 교수의 지도 방향과 요구 사항이 있다. 더하여 나는 한국에서 distance learning으로 학위 과정을 시작해서 1년 그 이상의 시간 소비가 있었다. 게다가 지도 교수가 그리스-로마 문헌을 연구 범위에 포함하라는 조언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결국 조만간 박사 과정 4년 차에 접어들게 된다.

후회는 소용없다. 후회에 감정과 시간을 소비하느니 현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난 그만큼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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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발표 횟수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만 친분이 쌓이지는 않는다. 말 한마디도 안 나누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내 주제에 관심을 보이거나, 식사와 휴식 시간에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학회에서 친분을 쌓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회 관계자들과는 접촉점을 늘릴 수 있다. 이틀 전 제안서를 보내고 담당자로부터 지원 확인을 위한 답장을 받았는데, 그는 "네가 올해 여러 발표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글을 남겨주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학회를 통해 접촉점이 생기다 보니 내 이름을 기억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올해 남은 발표가 8건, 앞으로 최소 5건 정도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라 이처럼 학회 관계자들과 접촉점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도 해외 학회 발표 활동을 꾸준히 한다면, 선후배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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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 논문을 장별로(chaper by chapter) 진행하는데, 두 번째 장 두 번째 장 중간 이후부터 선행 연구에서 다루지 않는 문헌들을 연구 범위에 포함하느라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장기화하여 집중력과 동기부여가 감소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돌파구로 학회 발표를 선택했다.

보통 학회 발표는 20-25분이 주어지며, 긴 시간 같지만, 개인의 신선한 주장 하나만(one argument) 다뤄도 촉박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학회는 뭘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다양한 연구 주제를 경험한다고 생각해야 덜 실망한다. 질의응답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은 적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질의자가 놓친 부분을 다시 설명하거나 시간 관계상 생략한 내용을 설명해 주는 식이다.

나는 발표마다 다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고, 본문에 중첩되는 내용이 있어도 전개 방식과 주장은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이런 방식으로 주요 네 주제 중 세 주제를 다루고 있고, 차후 보강 작업을 발표 준비로 대체하고 있다. 아직 다루지 않은 "예수의 아들됨"은 하반기에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다.

자신이 다룰 내용을 세분화해서 참신한 주장 하나씩 제안서를 만들면, 학회 위원회에서 제안서를 수락할 확률이 높다. 내 경우 지금까지 총 17번 지원해서 2번 거절되고 15개 제안서가 수락됨.

이런 진행 방식에 나로서는 처음 접하지만, 사실 초등학교부터 석사 과정까지는 학기마다 복수 과목 수강이 기본값이라 어색 하지는 않지만, 방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으로는 효과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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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중이라 그런지 학회가 집중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리고 내 제안서가 많이 수락되어 거의 모든 학회에 발표자로 참가하고 있다. 지난주는 원고 3편을 완성하고, PPT 2개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에든버러대학교에 가서 발표하고, 화요일에는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경영대학 건물에서 발표함. 수요일부터 7월 학회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학회 발표는 올해만 집중하려고 했으나, 내년에 4회 정도 더 발표 기회를 가져야 할 듯하다. 학위 취득쯤에는 20회 발표를 달성할 수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7번 발표를 마쳤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학회 발표는 원고 마감, 여행, 만남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가진다. 원칙적으로 발표일 이전 원고와 PPT 완성을 목표로 하고, 발표 취소는 불가피한 사정 아니면 고려 자체를 안 한다. 이런 원칙을 잘 지키고 있어서 원고 마감 효과가 가장 크다. 자연스럽게 논문에 포함될 내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매번 다른 학회에서 발표하고 있어서 그때마다 다른 장소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학회 장소를 보고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하는데, 원고 마감에 시달리다가 학회 기간 전후로 여행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딱히 효과가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박사 과정 학생부터 교수까지 다양한 국가와 학교를 배경으로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형성된다. 친분을 쌓을 수는 없지만 옅은 관계는 형성이 가능하다.

학회 발표가 저널 출판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 맞나 보다.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원생 콘퍼런스에서 네 명의 패널이 "From Conference Paper to Published Article"이라는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패널 대부분 학회 발표가 저널 출판으로 이어지는 사례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저널 출판에 대해서도 그리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논문 완성에 집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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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사 과정 운영은 학교마다 분과마다 다르다. 코스웍을 운영하는 학교가 드물게 있고, 코스웍은 없지만 수업 참여를 권장하는 분과가 있는가 하면, 논문 지도에 집중하는 분과가 있다. 내가 속한 세인트앤드루스 신학부는 후자에 속한다.

코스웍은 학기마다 정해진 수업 일정과 과제 등이 학생에게 자극제가 된다. 간혹 후학 양성에 열성인 지도 교수는 학생이 학업에 집중하도록 자극한다.

일단 내 연구 주제에 바로 돌입하려고 영국을 선택했고, 지도 교수의 doctoral seminar에 참석하며 확고해진 생각인데, 나에게 더 이상 외적 자극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자기 관리가 잘 되고 논문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아무래도 혼자 달리다 보면 나태함과 성과를 관리하기 쉽지 않다. 내부 동기가 강해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내부 동기를 학회 발표로 표출하고 있다. 내 논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불필요한 작업은 제한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학회 참석을 위한 준비, 이동 시간 등은 여행이나 인맥 등 긍정적으로 활용해야 함.

더 이상 외적 자극을 받지 않고 내부 동기로 학업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이 태도가 굳어지는 중이라 달리 방법이 없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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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발표와 저널 투고가 박사 과정 진학이나 강사 구직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채점 기준을 알지 못하고 심사 위원회가 아니라서 객관적인 지표는 모르지만, 합격자들의 이력이 대부분 지원 조건을 상회하고, 기본 조건이 엇비슷할 경우 조금이라도 더 기본 조건이 낫거나 부가적인 활동에서 차별성을 가진 지원자를 선출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지도 교수마다 지도 방식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지도 교수는 학회 발표나 저널 투고를 장려하는 편은 아니다. 신학부 교수 중에는 교환 학생을 적극 권장해서 독일로 가는 사례가 종종 있다. 내 지도 교수는 논문 작업에 집중하길 원하는 유형이다. 웨신 시절 교수님들이 강조한 건, 학위 논문 출판이었다.

학위 논문 완성과 학회 발표, 저널 투고를 고려해 보니 지향점이 조금씩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사 과정 학생에게 최우선 순위는 학위 논문이고, 학회 발표는 발상 개진과 논문의 일부에 편입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저널 투고는 학위 논문에 재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면 시도할 가치가 높지만, 투입 시간과 재활용율에 비해 논문 작업 효율을 떨어뜨린다면 굳이 관심을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차라리 학위 논문 완성에 우선 순위를 두고, 논문 제출 이후 저널 투고에 시간을 할애하는 쪽이 더 나아 보인다.

내 경우 학회 발표는 학위 논문 완성을 위한 마감 효과로 사용하고 있다. 때에 따라 발표 원고를 덜어내기도 하지만, 마감 효과는 상당하다. 그러나 저널 투고는 원고의 완성도를 위해 투입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가끔 괜찮은 주제를 발견하지만 논문에 쓸 내용은 아닌 경우도 있고, 시간 대비 가치를 고려하면 그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나 싶다.

결론적으로 모든 초점은 학위 논문에 맞춰야 하고, 학회 발표와 저널 투고는 학위 논문 완성을 위한 부가 활동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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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지 않을까 싶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교회에 다니는 꽤 많은 사람이 절대적인 의미이든 상대적이든 약자에 속한다.

렘 49:10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11 네 고아들을 버려도 내가 그들을 살리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에서를 향한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사회에서 제일 연약하다 할 수 있는 고아와 과부는 잊지 않으신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고아와 과부를 향한 관심은 꽤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은 철저하게 실행하신다.

19 보라 사자가 요단 강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20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하나님의 진노는 성난 사자와 같아서 그를 맞을 목자, 즉 이방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양 떼의 어린 것들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그 처소는 황폐하게 된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돌보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철저히 심판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약자의 하나님만 기억하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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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객관성을 위해 고대 근동, 구약성경, 제2성전기 문헌, 그리스-로마 문헌을 포괄한 배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내 판단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독자적인 위치에 있다.

그동안 수많은 주장이 제기되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론은 예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복음이야말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가령, 예수의 죽음을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과 비교하지만, 엄밀히 말해 누구도 고난받는 종의 정체를 알 수 없으며, 그가 메시아사상과 연관이 있던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사야 본문은 이사야 자신도 종의 정체를 잘 몰랐다고 고백한다. 후대에 사도들의 고백에 의해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과 예수를 연결하는 해석이 정당화되고 있으나, 이 같은 해석은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설명하려는 시도의 일부이며, 이사야서의 본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혹은, 그리스-로마 배경에서 고귀한 죽음과 예수의 죽음을 연결하지만,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같은 부류의 고귀한 죽음은 없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료 분석이 요구되지만, 지금껏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히브리 전통이든 그리스-로마 전통이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견줄 만한 사례는 없다.

박사 학위라는 자격 취득과 학문이라는 틀 안에서 활동해야 하는 학자로 훈련받고 있는 자로서 배경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을 뿐, 더 많은 시간을 성경 본문 해석에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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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단체마다 제안서 확보가 성공적인 학회의 관건이다. 단체의 성격에 따라 제안서를 제출할 수 있는 자격이 다르다. Graduate는 석사 과정 재학 이상, Postgraduate는 박사 과정 재학 이상, Junior Researcher는 ABD (All But Dissertation) 이상을 자격 조건으로 둔다. 박사 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단체에서 박사 과정 재학생의 제안서를 받기도 한다. 간혹 지도 교수의 추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자격 조건을 두는 이유는 당연히 단체가 추구하는 질적 수준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제안서는 제안자의 학술 역량이 담기기 마련이다. 제안서에는 선행 연구에 대한 이해와 문제 제기, 그리고 제안자의 주장 등이 포함된다. 평가자는 단 몇백 글자 내외로 제안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제안서 마감과 학회 기간 사이에는 몇 달의 차이가 있다. 제안서 평가와 최종 발탁, 제안자의 최종 참석 여부 확인, 학회 일정 조정 등 조율해야 할 작업이 적지 않아서 4개월 정도 간격을 두는 단체가 많아 보임.

제안자는 제안서를 바탕으로 최종 원고를 준비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제안서를 제출하고 원고를 다듬을 때마다 새로운 발상이 계속 떠올라서 발표일에는 적잖은 변화가 반영된다.

간혹 제안서와 발표 원고 사이의 차이를 묻는 참석자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답변은 그 차이가 발생한 이유와 현재 원고가 더 나은 대안인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제안서와 발표 원고를 일치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제안서를 바탕으로 최선의 원고를 준비하려는 태도가 발표자와 참석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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