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과거를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특히 예루살렘의 왕들이 더 이상 살아남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예레미야는 소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상상한다. 이때 그가 소망을 갖도록 결정적 도움을 준 이미지 중 하나가 시편 23편의 선한 목자에 관한 것이다. 다윗의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여정은 예레미야에 의해 이스라엘의 여정으로 바뀌고 패배, 파괴, 흩어짐에서의 회복과 귀환의 비전으로 재형성되었다. 선한 목자 서사에서 국가적 이야기로의 이런 개작은 시편을 구성하는 이미지에 몇 가지 극적인 변화와 추가 사항을 도입함으로써 가능했다. - 케네스 E. 베일리, 선한 목자, 95.

요새 미가서의 목자 은유와 예레미야 23편의 목자 은유에 대한 분석하다 보니 여러 발상들이 떠오른다. 그 중 하나는 시편 23편과 예레미야 23편의 관계이다. 현재 내 짐작으로는 베일리의 견해와 다른 주장을 제시할 수 있을듯 하다. 지금 다루고 있는 과제물들을 빨리 완성해야 하는데, 연구주제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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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nant Motif in the Context of Judgment and Salvation in the Book of Jeremiah by Dr. Kenneth D. Mulzac

https://digitalcommons.andrews.edu/dissertations/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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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분석 중이라 단언할 수 없지만, 미가서의 특징이 보이는듯 하다.


1. 선지자 미가는 다윗 전승을 두드러지게 사용하지 않는다.

2. 목자 은유와 다윗 전승의 연관성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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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가서 4장 1-6절을 읽으면서, 스가랴서와 연관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주석을 발견했다. 내 구상에서 미가서의 위치와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될지 애매했었는데, 뭔가 기여점을 찾은 느낌이다.


* 미국 미시간 주 기준 11월 6일 오후 4시 50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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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에서 다윗 전승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문은 5:1-5이다.


Now it becomes clearer that the to bring back kingly rule to Jerusalem is also intended to include a Davidic figure. David himself is not named, but who else could it be? The associations of Bethlehem, especially the use of the old name Ephratha along with other allusive language, could have no other intention. - Francis I. Andersen and David Noel Freedman, Micah: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Bible, Vol. 24E (New York: Doubleday, 2000), 431.


이제 예루살렘에 왕의 통치를 되돌려 놓는 것 역시 다윗과 같은 인물을 포함하도록 의도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베들레헴의 연관성들, 특히 다른 암시적인 언어와 함께 옛 이름 에브라다의 사용은 다른 의도를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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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신학들이 바벨론 유수 이후에 생성되었다는 주장하는 학자들이 제법 많다. 이런 견해는 대체로 특정 역사적 사건 이후에야 고유한 신학적 개념이 생성/발전한다는 편견에 기반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온 전승이다. 이에 대해 Delbert R. Hillers는 얼빠진 제안이라고 평가한다.


A history of Zion theology whereby Micah 4:1-4 would fit only in an exilic or post-exilic phase is only one possible writing of that history. recent restudy of this question, especially by j. J. M. Roberts has made it probable that the major elements of the Zion tradition were developed long before the eighth century, under the United Monarchy. - Delbert R. Hillers, Micah, Hermeneia: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4), 52.

미가서 4:1-4가 오직 바벨론 유수 혹은 그 이후 단계라는 시온 신학의 역사는 단지 역사의 가능성 있는 진술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질문에 대한 최근의 재조명, 특히 J.J.M. Roberts는 시온 전승의 주요 요소들이 8 세기 이전 보다 훨씬 앞선 통합왕국 시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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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후 검증이 필요하지만, 혹자는 예레미야가 목자 은유를 대략 여섯번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본문은 23장 1-8절이다.

1-2절에서는 목자들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1절 보다 2절이 더 긴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상 반복이다. 3-4절에서는 양 떼의 회복과 목자 위임이 선포된다. 5-6절은 다윗 계열의 왕이 등장하여 온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다. 7-8절은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 갱신된다고 말한다.

22장은 유다 왕들을 향한 심판을 선포하면서 각 왕들의 결말을 언급한다. 반면, 23장의 목자 은유에서는 목자 심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없다. 아마도 은유 자체가 축약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기법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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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예레미야가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은유 사용법에 있다. 예레미야와 은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잘 정리된 글을 소개해 본다.


Jeremiah’s Use of Metaphors

https://claudemariottini.com/2017/07/31/jeremiahs-use-of-metaph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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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학자들이 에스겔 34장의 목자 은유는 예레미야 23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두 선지자 모두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지만, 연대적으로 예레미야가 에스겔 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자는 후대 편집을 이유로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기존 학설대로 에스겔이 예레미야의 영향을 받았을 거나, 아니면 두 선지서가 동일한 자료를 사용했을 여지도 있다.


케네스 E. 베일리는 시편 23편을 선한 목자 은유의 출발점으로 본다. 시편 23편의 개인 신앙 고백이 예레미야 23장에서 국가적인 차원의 적용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에스겔은 예레미야의 견해를 수용했다고 본다.


현재 내 연구는 베일리의 주장을 전제로 각 본문들을 비교하는데 있다. 지금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비교하고 있으며, 시편 23편은 차후에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의 상호 영향을 염두에 둔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두 선지서가 시편 23편을 공통자료로 사용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차후 연구에 별 지장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두 선지서가 시편 23편이 아닌 다른 자료를 공통자료로 사용했다면, 내 연구방향은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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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 창세기 49장 23-24절


Appealing though this image is, there is no intimation in Genesis of Joseph’s agile verbal self-defense against false accusation. Rather, he appears as the sufferer whose appeals go unheeded. 

- Gordon Wenham, Genesis 16–50,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2 (Dallas: Word, 2002), 485.


[번역] 이같은 심상이 매력적이지만, 창세기에는 잘못된 비난에 대한 요셉의 기만한 언어적 자기 방어에 대한 암시는 없다. 오히려, 그는 호소가 무시 당하는 피해자처럼 보인다.


적대자의 공격에 요셉의 반응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문맥상 요셉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힘이 더 강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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