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는 130~140년경 로마에서 비오 교황(140~155년)의 형제인 헤르마스가 저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대 교회의 일부 공동체에서 전례 때 공식적으로 낭독되고 경전으로 인정될 만큼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목자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례를 받은 뒤 죄를 지은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회개이다. 고대교회의 회개는 오늘날의 고해성사에 해당한다.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를 보면 사람들이 서로 죄의 용서를 청하기도 하고 용서를 받기도 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그런데 고대교회에서 참회한 죄인들의 모든 죄는 늘 용서받는다는 확신이 이후로도 계속 변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요한의 첫째 편지에는 이러한 변화를 암시하는 몇몇 구절이 있다.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이 내린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는 이들이, 그리고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권세를 맛본 이들이 이제 배반하고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는 회개하여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거듭 십자가에 못박고 모욕하는 것입니다』(히브 6, 4-6).
2?3세기에 노바티아누스파와 다른 엄격주의자들은 이 구절들을 엄격한 회개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또한 세례 후 중죄를 지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마침내는 공동체에서 내보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한편 다른 이들은 매우 권위적이고 결정적인 이 문구들을 엄격한 규율 조치로서보다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 대처할 교훈적 경고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히브 6, 4에서 말하는 회개의 불가능은 원칙적 불가능이 아니라, 대개 배교자는 다시 회심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상 알 수 있기 때문에 허구적 불가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회개가 고대교회에서 어떻게 개별적으로 행해졌는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분명하다. 다만 1~2세기 전환기와 2세기 전반기에 씌어진 일부 작품에서 회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목자의 회개론은 2세기 중엽의 신학 발전을 이끄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회개 논쟁은, 세례를 받은 뒤 회개를 금하는 당시의 상황에서 헤르마스가 처음으로 세례 후의 회개와 용서를 선포하였는지, 아니면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 회개를 단 한 번으로 제한하였는지에 관한 문제에서 출발하였다. 첫째 경우는 헤르마스가 교회의 성성 때문에 세례 후 회개를 거부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엄격함을 완화하였다는 입장이고, 둘째 경우는 그가 단 한 번으로 제한된, 일반적인 회개 관습을 강화하였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본문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둘째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교회는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 절대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회개할 뜻이 있는 죄인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르마스가 세례 후 회개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세운 것은 이전의 관대한 관습을 더 엄격하게 강화한 것이라 하겠다. 그 이후로 고대 그리스도교는 세례를 받은 뒤 다시 지은 죄에 대해 한 번의 회개만 허용하였다.
한 번만 허용된 고대교회의 엄격한 회개는 신자들에게 크나큰 희생을 요구하는 엘리트 교회의 관습이었다. 이 때문에 이미 테르툴리아누스 이래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공개적인 회개 조치로 자기 약점이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수치심을 느끼고 회개를 멀리하였다. 그리하여 신자들이 교회의 용서를 얻기보다 오히려 죄지은 상태에 머무르려 한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러한 개탄은, 콘스탄티누스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뒤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들면서 더 심화되었다.
교회는 새로운 상황을 맞으면서도 유연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많은 점에서 회개 규정들을 더욱 강화하였다. 특히 일회적 회개 원칙은 서방에서 철저히 지켜졌다. 이 경우 회개에 부과된 보속이 강화되어 -예를 들어 평생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 지키기도 힘들고 어렵게 되자 회개는 점점 더 임종 때까지 연기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회개한 사람은 교회에 받아들여진 뒤 거의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게다가 회개를 하고 나면 일반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갖지 못하게 하여, 성직자가 될 수 없으며, 어떤 공적인 교직도 맡지 못했다.
회개는 세례의 특성처럼 한 번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면서 적지 않은 문제가 뒤따랐고, 회개 제도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죄를 지은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정한 회개를 죽을 때까지 연기하기 시작하였고, 교회는 이를 감수해야만 했다. 더구나 506년 아그드 교회회의는 사목적인 이유에서 35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금하였다. 538년 오를레앙 교회회의는 나이 든 이들도 배우자의 동의가 있을 때만 회개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로써 회개는 실제 삶에서 멀어져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 성격이 사라지고, 생명을 위한 용서의 성사가 죽음을 준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풍조는 세례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세례 후 회개하는 것보다 평생 세례지원자로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세례를 죽을 때까지 미루었다. 사람들은 「세례복을 입은 채 사망한」이라는 표현을 묘비에 자랑스럽게 기록하였다.
이 갈등상황의 해결은 5~6세기에 접어들어 세계의 변두리인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사목적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지역 사람들은 먼저 공개적인 회개를 포기하기 시작하고, 주교나 사제, 수도자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보속을 받았다. 이는 아일랜드와 영국이 대륙 선교를 나서면서 서방에 널리 퍼져 일반적인 해결책이 되었다. 모든 신자가 해마다 한 번씩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는 규정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결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성수 박사(한님성서연구소)
[출처] 교부들의 가르침 (6) 헤르마스의 목자 / 하성수 박사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13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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