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동물묵시록에서 요시아 왕의 등장에 관한 서로 다른 주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요시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주장이고, 또다른 하나는 요시아가 등장한다는 주장이다.

Nickelsburg는 요시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1 Enoch, 384). 그는 "국가적인 배교가 완성되었다; 그곳에는 더이상 선지자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The nation's apostasy is complete; there will be no more prophets)라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은 왕의 완악한 통치와 백성의 우상 숭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살해하는 태도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등졌다는 의미이다. 그는 선지자의 존재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또한 Nickelsburg는 므낫세의 배교를 전복하는 요시아의 선한 통치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역과 메시지에 관한 언급 역시 생략되어 있다고 본다.

Nickelsburg의 입장과 달리 Laato는 요시아 왕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The Chronology i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85–90, 3–19). 나는 진작 이 주장을 접했으나, 현재 시간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 내 주제와 관련성이 깊지 않아서 세밀한 검토는 추후 작업으로 미뤄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내 입장은 조심스럽지만 Nickelsburg를 따르고 있다고 밝히겠다.

앞으로 내 견해가 달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내가 Nickelsburg의 주장을 따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에녹과 엘리야의 역할. 두 번째, 이스라엘의 배교에 그에 따른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

동물묵시록은 선지자들 가운데 엘리야의 비중을 높게 두고 있다. 설령 요시아 왕이 언급되었다는 입장을 취해도, 예레미야에 대한 진술이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엘리야의 중요성은 에녹과 연결하려는 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에녹은 계시의 수령자라는 중대한 역할을 맡는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에녹의 삶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험을 한 사람이다. 또한, 종말론적 심판 이후 에녹과 엘리야가 지상으로 내려온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앞서 다룬 "동물묵시록에 나타난 계시와 비밀"을 보라.

요시아 왕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더라도, 이스라엘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배교는 전복되지 않고 지속되며,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배교에 따른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이라는 흐름 속에서 요시아 왕의 행적을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동물묵시록에서 요시아 왕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다루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다.

혹시나 참고 문헌 정보가 필요하다면 아래 정보를 보라. 자료 표기는 각주 인용 방식으로 함.
Antti Laato, "The Chronology i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85–90,"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Vol 26.1 (2016): 3–19.
George W. E. Nickelsburg, 1 Enoch: A Commentary on the Book of 1 Enoch, ed. Klaus Baltzer, Hermeneia—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MN: Fortres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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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논증법 명칭은 모르겠으나, 동일시의 오류로 보이는 주장을 반박하는 중이다. 현 학계에서는 70 목자를 천사로 주장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나는 70 목자가 지상적 존재라고 주장할 예정이다.

70 목자의 천사설을 주장하는 진영에서 논리가 가장 탄탄한 인물은 
George W. E. Nickelsburg이다. 후대 연구자들이 Nickelsburg의 주장을 계승하지만, 그들의 근거는 설득력이 덜하다.

내 짐작에 70 목자를 천사로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1 Enoch 87:2)

노아와 모세의 변형을 천사로 주장하는 근거도 위 구절에 기반한다. 내가 볼 때 이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문자적 동일성.

노아의 변형을 언급하는 구절은 89:1, 9이다.
It was born a bull but became a man. (89:1)

That white bull who had become a man came out of that vessel, and the three bulls with him. (89:9)

모세의 변형을 언급하는 구절은 89:36, 38이다.
And I saw in this vision, until that sheep became a man and built a house for the Lord of the sheep and made all the sheep stand in that house, (89:36)

And that sheep that had led them, that had become a man, was separated from them and fell asleep, and all the sheep searched for him and cried bitterly because of him, (89:38)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became a man과 had become a man라는 문구가 사용된다. 둘 다 사람이 되었다는 진술 이후 그 변형을 초래한 동기로 보이는 건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시 천사의 외모를 설명하는 구절을 보자.
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 (87:2)

내가 주목하는 문구는 "the appearance of white men"이다. 천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흰 색을 띄고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색상은 해당 짐승의 속상을 반영한다. 그 중 흰 색은 거룩 혹은 순결함을 의미한다. 이 천상적 존재는 흰 색을 띄고 있다. 반면 타락한 천사의 후손은 검은 황소로 묘사되기도 한다(86:2). 또한, 천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오해가 발생한다고 보는데, 사람의 형체를 갖고 있다는 것과 사람을 동일시해서는 안되다.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내 기준에서 말이다. 내가 볼 때는 어이가 없지만, 그 오류의 원인이 단순히 문자적 동일성에 있다.

현재 나 스스로 검증하면서 글을 쓰고 있어서 결론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내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면, 천사와 사람을 동일시하는 해석이 우세한 현실에 대해 씁쓸함이 느껴지게 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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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C. Olson은 숫양이 왕을 의미한다면, 종말의 때에 등장하는 흰 황소(90:37)는 평범하게 예루살렘의 통치자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또한 그 흰 황소는 다윗 계열의 왕권을 상징하는 모형이 아니라고 본다(A New Reading of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167). 이 글에서는 숫양과 흰 황소로 주제를 한정한다.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룰 주제인데, 나 또한 에녹1서는 이 사상을 따르지 않는다고 가정한다고 밝힌다.

앞서 "동물묵시록에 나타난 황소와 숫양의 의미"와 "동물묵시록에 나타난 계시와 비밀"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숫양은 왕이 아니라 지도자를 가리킨다. 지도자에서는 군사적 행정적 종교적 의미가 다 포함된다. 예외적으로 야곱은 이스라엘 국가의 시발점이자 열두 아들의 아버지로 숫양으로 나온다(89:12). 야곱의 아들 중에서는 요셉이 숫양으로 묘사된다(89:14). 군사적 행정적 지도자, 즉 왕 중에서는 사울(89:42), 다윗(89:46), 솔로몬(89:48b)이 숫양으로 묘사된다. 왕은 아니지만, 마카비 항쟁을 주도한 유다 마카비도 숫양으로 그려진다(90:13, 16). 종교적 지도자, 즉 선지자 중에는 하늘에서 하강하는 엘리야를 숫양으로 묘사한다(90:31). 이러한 용례를 통해서, 숫양은 단순히 왕에 한정되지 않고, 지도자에게 폭넓게 적용되는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말론적 흰 황소(90:37)를 해석하려면 그의 등장 시점이 중요하다. 먼저 "큰 뿔 달린 숫양"이 등장하고 최후의 전쟁을 치른다(90:9–16). 흥미롭게도 이 숫양조차도 전쟁에서 힘겨워하며 '양의 주인'(=하나님)의 참전으로 승리하게 된다(90:12–19). 종말론적 전쟁 이후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90:20–27). 새로운 성전이 건축되고(90:29), 이방 세력이 하나님을 예배하며(90:30), 에녹과 엘리야가 하강하고(90:31), 모든 양무리가 정결하게 된다(90:32). 이러한 일련의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이 실현된 이후에 종말론적 흰 황소가 태어난다(90:37). 모든 맹수와 하늘의 새가 그를 두려워 한다(90:31). 여기에서 흰 황소의 등장은 족장 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아담의 창조를 회복했다는 의미라는 Nickelsburg의 주장은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이 흰 황소는 메시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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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C. Olson은 노아가 흰 황소에서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사람이 천사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A New Reading of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158–9.). Olson은 노아가 천사가 되는 시점이 방주 건조 이전이라고 본다. 그의 논증이 갖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천사들이 만들고 있다(67:2)는 구절을 토대로 노아가 천사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는 시점에 천사들이 방주를 만들고 있다고 해서 노아가 천사와 동일시되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무엇보다 두 구절은 장르가 다르다. 즉 노아의 변형은 동물묵시록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건축이 변형과 긴밀한 관계가 있더라도, 솔로몬의 성전과 궁전 건축이 그를 사람으로 변형되도록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변형과 건축 이외에 요소가 존재한다는 암시를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노아가 천사로부터 비밀(mystery)을 들었을 때 전율했다(89:1)는 구절을 근거로 노아의 천사적 변형(an angelophany)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상적 존재로서 사람 역시 전율을 느낄 수 있으며, 심지어 동물조차도 두려움에 의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전율이 천사라는 근거는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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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에서 동물에서 사람이 되는 사례가 있다. 노아와 모세가 그들이다. 둘다 변형이 건축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 천사가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동물의 한계를 극복한 존재를 사람으로 표현한다고 본다. 또한 사람과 천사는 다른 영역에 기반한 존재이다. 천사가 하강하여 활동할 때 사람의 형상(heaven [being]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 87:2)라고 설명한 이유가 그 근거이다. 사람과 천사는 다른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과 천사를 혼동하는 해석을 자주 본다. 더구나 솔로몬은 성전과 궁전을 건축했지만 사람이 되지 못했다. 단순히 변형을 건축과 한정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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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에서 하나님은 “양의 주인”(the Lord of the sheep)으로 지칭된다. 하나님이 양의 주인으로 처음 등장하는 계기는 양의 울부짖음에 대한 반응과 관련이 있다(89:16). 양의 주인으로서 그의 권위는 “지팡이”(the staff, 90:18)에서 나타난다. 지도자와 지팡이의 상관관계는 모세가 각 지파에서 지팡이를 하나씩 취하고 다시 지휘관들에게 돌려준 사건(민 17장)을 일례로 들 수 있다. 목축 사회에서 주인이 직접 목자로서 양무리를 보살피기도 하지만, 자신을 대신할 목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동물묵시록에서 하나님은 목자보다는 주인으로 등장한다. 그 특징이 “양의 주인”이란 칭호에서 잘 드러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실질적인 지도자는 모세이며, 그는 양으로 묘사된다(89:16–38). 이스라엘 왕국에서 첫 세 왕(사울, 다윗, 솔로몬)은 모두 숫양이었다. 이스라엘 멸망 이후 70 목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특정 기간에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자들이다(89:59). 동물묵시록에서는 하나님께 목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목자로 지칭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목자보다는 주인의 역할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양의 주인으로서 목자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사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의 주인”과 같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양으로 묘사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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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인공인 에녹은 꿈을 통해 하늘의 계시를 전달받는다. 동물묵시록(1 Enoch 85–90) 에녹의 번째 꿈에 해당하며, 그는 자신이 내용을 아들 므두셀라에게 전한다 (85:1). 본문에서 에녹의 일생은 언급되지 않는다. 아담부터 셋의 계보(85:1–9) 노아 일대기의 시작(89:1) 사이에는 천사의 타락과 하늘의 심판(86:1–88:3) 다룬다. 에녹은 하늘의 심판에 관한 꿈에서 천사로부터 하늘로 들려 올려져 타락한 천사의 심판을 본다(87:2–88:3). 번째 심판의 대상은 타락한 천상적 존재이다(86:1–88:3). 타락한 천상적 존재는 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악의 기원으로 간주된다.

노아의 가족은 모두 황소이다(89:1). 가족 구성원 가운데 노아만 비밀을 전수받으며, 그에게 비밀을 전수한 존재는 천사 명이다(89:1). 노아는 비밀을 듣고 두려움에 전율을 느낀다(89:1). 이어서 그는 황소로 태어났으나 사람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89:1). 그는 자신을 위해 (편의상 앞으로 방주로 표기) 만들고 그의 가족이 안에 거한다(89:1). 홍수 심판은 지상적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89:2–8). 노아가 황소에서 사람이 되는 시점은 방주를 만들 당시로 보인다(cf. 89:1, 9).

에녹과 노아는 각각 천국의 계시와 비밀을 공유 받지만, 그들은 피심판자들에게 권면이나 회개를 선포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에녹은 하늘의 계시를 자신의 아들 므두셀라에게 가르쳐줄 뿐이다. 노아는 천사가 전해준 비밀을 통해 방주를 만들어서 그의 가족은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지만, 비밀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는다. 홍수 심판의 대상은 지상적 존재이다.

천상적 존재를 위한 일차 심판과 지상적 존재를 위한 이차 심판은 피할 없는 하늘의 뜻이다. 심판에 대한 에녹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녹은 천상적 존재를 향한 일차 심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상적 존재, 특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심판에는 고통을 느낀다. 가령 에녹은 환상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당하고 (89:54)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세력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89:55),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한다(89:57).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신다(89:58). 하나님의 침묵은 심판의 필연성을 의미한다.

모세의 역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유대 전통에서 모세는 선지자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모세의 선지자 직분에 관해서는 Wayne Meeks The Prophet-King: Moses Traditions and Johannine Christology (Leiden: Brill, 1967, 최근 복간본은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17) 주요한 자료이다. 모세의 선지자 직분에 관해서는 예외적인 적용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에녹1서는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 듯하다. 양이 높은 바위의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다시 양떼로 돌아온다(89:29). 이후 줄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내산 사건과 흐름이 비슷하다. 동물묵시록에서 주요 인물의 일생을 간략하게 진술하는 특징을 고려한다면, 하나님의 시내산 현현은 꽤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89:29–35). 그러나 시내산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건인 돌판 수령은 언급하지 않는다. 지점에서 Nickelsburg 양떼의 눈이 열리는 현상(89:28) 계시와 관련이 있고, 이와 반대로 눈멈(blindness) 배교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1 Enoch, 380–1). 주장에 관해서는 면밀한 관찰과 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차후에 다룰 예정이다. 내가 주목하는 특징은 에녹 1서에 모세의 돌판 수령에 관한 진술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독대한 사건을 모세의 선지자 직분의 명분으로 삼는 전통은 차치하더라도, 고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관련된 돌판 수령을 생략한 이유를 고민해 필요가 있다. 부분에서 에녹 1서가 율법주의(legalism) 주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어쩌면 심판의 필연성은 율법 준수 여부와 무관하다고 믿어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모세에 관해서 언급해야 또다른 특징은 그는 양으로 묘사되지만, 후에 사람이 된다는 진술이다. 여기서 천상적 존재와 구별해야 한다. 천상적 존재는 사람의 형상(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 87:2) 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사람은 아니다.

엘리야(89:52) 대한 진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지자 전통을 중요시했던 고대 이스라엘의 통념과 달리 동물묵시록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선지자는 엘리야가 유일하다. 엘리야를 포함한 모든 선지자는 양으로 묘사되고, 그들의 사역은 실패로 끝난다(89:51–53). 다만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지만(89:51), 유일하게 엘리야는 건짐을 받고 하늘로 올림을 받는다(89:52). 엘리야에 관한 독특한 진술은 승천한 엘리야가 종말의 때에 하강한다는 기록이다(90:31). 하강하는 숫양의 정체에 관해서는 유다 마카비와 엘리야를 두고 논쟁이 있는데, 나는 엘리야가 적합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Nickelsburg 지적한대로, 유다 마카비는 승천했다는 기록이 없다(1 Enoch, 405). 천상적 존재가 아닌 이상 지상적 존재는 승천이 선행되어야 하강이 가능하다. 이때 엘리야는 숫양으로 묘사된다. 엘리야는 지상에서 양으로 묘사되었다가 하강할 때에는 숫양으로 그려진다. 또한 에녹과 같이 하강하는 인물이라면, 유다 마카비가 아닌 엘리야가 개연성이 크다. 여기서 에녹과 엘리야의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이에는 여러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승천을 경험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상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승천이라는 경이로운 경험은 에녹 1서에서 에녹이 계시 수령자가 되는 근거이자, 엘리야가 최후의 날에 숫양으로 하강한다고 묘사되는 이유로 작용한다. 엘리야가 왕국 분열의 종말과 관련된 인물이라서 중요하게 서술되었다는 주장이 있음(Fröhlich, “Symbolical Language,” 630–631. Chae, Jesus as the Eschatological Davidic Shepherd, 99, n.19에서 재인용).

동물묵시록에서 모세의 돌판 수령과 엘리야를 포함한 선지자의 사역에 비중을 두지 않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종말의 때에 닥칠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과 예언을 준수한다고 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바뀌지 않는다. 실제 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과 예언을 준수한 시기보다 배역한 기간이 길다. 이러한 믿음이 모세와 선지자에 관한 진술에 묻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에녹 1서는 율법과 예언의 중요성보다는 종말론적 심판과 구원의 현실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에녹 1서의 결정론적 관점은 ”(90:17) 존재에서 드러난다. 동물묵시록에서 심판이 실행될 책이 언급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에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에녹 1서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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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의 인생을 동물의 특징에 빗대어 묘사한다. 연대기의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동물의 종류와 시대 구분 사이의 관련성에 주목하되, 특별히 황소(bull)와 숫양(ram)에 초점을 맞추었다.

 

황소와 숫양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황소로 묘사된 대표적인 인물은 아담(85:3), 노아(89:1), 아브라함(89:10), 이삭(89:11)이다. 또한, 그들은 흰 황소라고 묘사된다. 흰색은 그들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갖는 정당성을 의미하는 듯하다. 황소로 묘사된 인물들이 활동한 시기는 천지창조부터 족장 시대이다. 가부장 중심으로 군락을 이루던 시대적 특징을 황소라는 동물로 표현한 듯하다.

 

숫양으로 묘사된 첫 인물은 야곱(89:12)이다. 흥미롭게도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은 흰 황소(89:11)인데, 정작 그는 흰 숫양이다(89:12). 야곱의 열두 아들은 열 두 마리의 양으로 묘사된다(89:12).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은 흰 숫양으로 일컬어지고, 나머지 형제들은 열한 마리 양으로 묘사된다(89:14). 여기서 숫양은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이 이집트에 거주하도록 해주며, 야곱의 후손들은 그 땅에서 번영한다 (89:14). 숫양의 출현은 족장 시대의 종말과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을 의미한다. 이후 숫양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칭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울(89:42), 다윗(89:46), 솔로몬(89:48b), 유다 마카비(90:13, 16. cf. 90:9)가 있다. 미세하지만 각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첫 번째로, 사울은 처음부터 숫양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다윗과 솔로몬은 양에서 숫양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유다 마카비는 양(90:9)으로 등장한 이후 숫양(90:13, 16)으로 묘사된다. 숫양은 양의 성별을 구분하는 용도가 아니라 무리의 지도력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뿔에 대한 언급이다. 사울과 유다 마카비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뿔”의 존재를 부각한 반면, 다윗과 솔로몬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도 숫양이 뿔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본문에서 뿔의 기능/존재를 언급하는 의도가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특이하게도, 출애굽 공동체를 이끌었던 모세는 숫양이 아닌 양으로 묘사된다. 더 놀라운 건, 모세가 양에서 사람이 되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노아는 황소에서 사람이 됨).

 

황소와 숫양은 지도력을 상징한다. 황소는 가부장 중심의 일족을 대표한다면, 숫양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지도력의 범위가 확대된다. 이러한 변화는 성경에서 양을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환유를 반영하려는 의도가 있다(Nickelsburg, 1 Enoch, 378).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출발점(창 35:10–11)이므로, 그를 숫양으로 묘사한 것은 타당하다.

 

덧붙여, 하나님의 등장과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출현과 동시에 시작한다(창 1:1). 하지만 동물묵시록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한 마리의 황소가 땅에서 나온다고 진술한다(85:3). 흥미롭게도 황소가 등장하는 본문에는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 숫양의 등장 이후, 정확히는 늑대로부터 억압당하는 양의 부르짖음으로 인해 “양의 주인”(the Lord of sheep)이 언급되기 시작한다(89:15).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칭호에서 둘 사이의 관계가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 정의는 목자-왕 전승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관계는 종말론적 구원이 실현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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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 1서에서 동물묵시록은 고대 이스라엘의 연대기를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동물묵시록'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본문은 두 가지 특징을 내포한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을 동물로 묘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짐승의 종류와 색상 등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주요 인물의 경우 부연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두 번째는, '묵시록'이란 장르의 특성상 천상적 존재가 등장한다. 천상적 존재 가운데 천사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편의상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사람은 아니다. 타락한 천사는 짐승으로 변한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는 따로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있다. 에녹, 노아, 모세가 그들이다. 

에녹서에서 에녹은 계시 수령자이다. 그는 꿈과 환상을 통해 하늘의 비밀을 전달받았다. 또한, 에녹은 계시 전달자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아들 므두셀라에게 가르쳐준다. 이러한 특별한 역할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창세기 5장 24절의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에서 에녹에 관한 언급은 극히 제한적이라 그런지, 에녹서에서도 그의 생애나 행적에 대한 언급은 한정되어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에 대한 기록(85:3-9) 이후 계보에 대한 언급이 잠시 중단된다. 중간에 에녹이 자신의 계시 수령 체험을 기록하며 신적 심판의 사유(86-88장)을 말한다. 이후 노아가 등장하며(89:1) 다시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은 아담과 노아를 비교하는 기법인 동시에 에녹의 생애를 건너뛰는 효과가 있다. 면밀히 말하자면, 동물묵시록에서 에녹의 역할은 환상을 보는 관찰자이다.

노아는 홍수 심판의 때에 방주를 지어 구원을 경험한 인물이다(창 6-10장). 노아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기록이 대변해 준다. 동물묵시록에서 노아는 흰 황소로 등장하며 추후 사람으로 변한다(89:1). 사람으로 변하는 시점은 방주 사건 이후로 보인다 (89:9). 에녹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선포하는 데 있으며, 노아의 홍수를 다가올 심판을 위한 심상으로 사용한다. 에녹서는 ‘노아의 탄생'(The Birth of Noah, 106-107장)을 수록할 정도로 노아를 중요한 인물로 그린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가 갖는 위치는 남다르다. 그의 위상을 반영하듯이 동물묵시록에서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모세이다. 단순히 구절만 비교해도 노아(89:1-9)보다 모세(89:17-38)가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에녹서 전체에서는 노아의 비중이 더 크다. 모세는 양으로 태어나 사람이 된다(89:36, 38). 그가 변형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나의 입장은 성막과 연결하는 해석이다. 몇몇 학자는 본문이 변형과 성막을 연결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한다 (“And I saw in this vision, until that sheep became a man and built a house for the Lord of the sheep and made all the sheep stand in that house,” 89:36). 한편으로는 시내산 현현을 변형의 순간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James VanderKam and Dulcinea Boesenberg). 나는 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내가 생각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본문은 변형 이후 성막을 지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우선, 모세의 생애에서 성막 건축 이전의 광야 생활을 압축적으로 진술하면서 양에서 사람으로 변형된 순간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89:36). 또한 모세의 광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변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And that sheep that had led them, that had become a man, was separated from them and fell asleep, and all the sheep searched for him and cried bitterly because of him,” 89:38). 모세의 생애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부분은 시내산 현현이다. 두 번째, 변형과 성막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 솔로몬의 업적은 성전과 궁전 건설이다(89:50).  변형과 성막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면, 솔로몬은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솔로몬은 조그만 양에서 숫양이 된다고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89:48b).

이처럼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그려지는 역사적 인물은 에녹, 노아, 모세가 전부이다. 이외에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 등장인물은 70 목자들(89:59)이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존재이다(89:59). 70 목자를 타락한 천사와 연결하는 해석이 있는데, 나는 그러한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 본문은 명백히 하나님이 70 목자를 소환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동물묵시록에서 이방 세력은 온갖 짐승으로 묘사되지만, 여기에서는 이방 통치 기간의 정당성을 위해 ‘목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임무는 양 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다 (89:59–60). 70목자는 70년을 다스린다. 70년의 시대 구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내가 볼 때 목자의 숫자나 통치 기간의 관련성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70’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70년이 이방 통치자의 지배라는 해석에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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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대로, 나는 동물묵시록을 목자-왕 전승과 연결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동물묵시록의 특징을 분석하고, 뒤이어서 목자-왕 전승과 비교해야 한다. 현재 내가 골몰하고 있는 주제는 '큰 뿔 달린 숫양'이다. 지난 글에 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1. 뿔 달린 숫양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사울과 유다 마카비 둘 뿐이다.
2. 큰 뿔 달린 숫양은 오로지 유다 마카비 이외에는 없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동물묵시록에서 숫양과 뿔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에 앞서 해결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큰 뿔 달린 숫양'이 과연 유다 마카비를 가리키는가?"이다. 다수의 견해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으로 인해 나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큰 뿔 달린 숫양은 유다 마카비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수의 견해는 어디든 존재한다. Menahem Kister와 Eyal Regav가 바로 다수의 견해에 맞서는 소수 진영에 속한 학자들이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큰 뿔 달린 숫양'은 유다 마카비로 봐야 한다는 다수의 견해를 지지한다. 소수 견해가 갖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은 다수의 견해를 취해도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소수 견해를 따르면 쉽게 풀 수 없는 의문들이 제기된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 파생되는 연결고리들이 있고, 지도 교수와 대화를 나눠야 할 주제들이라 현 단계에서는 내 생각만 짧게 남겨두려고 한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는 세대라 실향민이나 전쟁 포로의 심정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또한 고대 유대인의 사상과 심상을 갖지 않은 현대인으로서 그들의 생각을 온전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기간으로 여겨지는 셀류키드 제국의 치하에 놓인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품었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셀류키드 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수많은 유대인은 오랫동안 사악한 셀류키드 제국을 물리치고 다윗 왕국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독자적인 나라를 꿈꾸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유다 마카비가 등장한다. 제사장 가문 출신이지만 뛰어난 전술과 지도력으로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다. 유다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형제와 자녀들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다. 끝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한다. 따라서 마카비 가문의 수장 유다 마카비는 그야말로 메시아이다. 헤스모니안 왕조에 대한 후대 평가는 분분할 수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다 마카비와 그의 가문에 거는 기대는 현 순간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앞둔 시점이라고 믿는 데까지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Joseph Klausner의 유다 마카비가 메시아로 인정 받지 못한 이유에 관한 연구는 흥미롭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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