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내 개인 관심사라서 유독 눈에 잘 들어오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학계에 그런 흐름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최근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언약'이란 개념이 더 자주 다루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사실 기독교 신학에서 '언약'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역사적으로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는 했다.

며칠 전 토마스 R. 슈라이너의 『언약으로 성경 읽기』(기독교문서선교회)가 번역되었는데, 독서 중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정리하였다.

이 책은 서론, 제1장 창조 언약, 제2장 노아 언약, 제3장 아브라함 언약, 제4장 이스라엘과의 언약, 제5장 다윗 언약, 제6장 새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서 언약의 개념을 다루는데, 고대 근동 문화에서 왕의 하사 언약, 종주-봉신 조약, 혼인과 비교하여 성경적 언약 개념을 정의한다. 하지만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 사이의 차이점, 특히 이스라엘 언약사의 독특성을 강조하지 못했다는 인상이 남는다. 이 부분은 존 D. 레벤슨의 『시내산과 시온』(대한기독교서회)에서 잘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창조 언약이란 제목으로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다룬다. 나 역시 창세기 1-3장이 창조 언약의 근간이라고 보지만, 몇 가지 동의할 수 없는 진술들이 펼쳐진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를 예로 들겠다.

사례1.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로 정의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로 연결 지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사례2. 아담과 하와를 제사장-왕으로서 에덴동산을 통치할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뒤이어 진술한 제사장-왕으로서 예수와 연결 지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례3. 에덴동산이 성막을 거쳐 성전으로 바뀌면서 신학적 발전이 일어나는데, 그 반대로 성막 시대에 시작되고 성전 시대에 절정을 이룬 제사장의 역할을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에게 적용한다.

저자는 아담과 예수 사이에 모형론적 해석을 적용한다. 이 부분은 예수를 제사장-왕으로 묘사하는 <히브리서>의 영향으로 보인다(특히, 156-161쪽에서 그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참고로 저자는 히브리서 주석을 쓴 적이 있다(역서 제목은 『토머스 슈라이너 히브리서 주석』, 장호준 역, 복있는사람). 나는 이러한 시도가 시대착오적 오류(anachronism)로 보인다. 

5장에서는 다윗 언약을 다룬다. 저자는 예레미야 23장, 에스겔 34, 37장, 스가랴 12장(130-132쪽)을 언급한다. 이 본문은 다윗 언약에서 아주 중요한 본문이 맞다. 하지만 이 세 본문이 모두 목자-왕 전승과 다윗 언약이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신약에서의 다윗 언약의 성취라는 소제목 부분에서 요한복음 10장을 언급하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참조 133쪽).

제2성전기문헌에서 다윗 혈통, 다윗 언약을 말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중요하다. 

6장에서는 새 언약을 다룬다. 저자는 새 언약이 새로운 다윗의 도래와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하는데, 특히 예레미야 23장과 에스겔 37장에 관한 언급은 매우 중요하다(164-168쪽). 뒤이어 새 언약과 창조 언약을 연결하며 예레미야 23장, 에스겔 34, 37장을 언급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189-191쪽). 앞서 지적했듯이, 이 본문은 모두 목자-왕 전승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저자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지적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새 언약을 여섯 가지 주제로 정리하지만, 그에 앞서 새 언약의 출현 배경과 고유한 특징에 관한 연구는 미흡해 보인다. 더 나아가 새 언약과 신약에서의 성취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개별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유독 집중력이 떨어졌다.

언약이 내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보니 신랄한 비판으로 남을 수 있지만, 애초에 대중을 위한 개론서로 기획되었다면 상당히 완성도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언약으로 성경 읽기
국내도서
저자 : 토마스 R.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 / 임요한역
출판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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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목적은 차후 연구를 위해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다. 그래서 사례나 근거 제시는 빈약하다.

요한복음에는 '빛'과 '어둠'처럼 '대조'되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때 학계에서는 이 용어들의 기원이 헬레니즘의 '이원론'이라고 주장했으나, 지금은 유대주의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유대인들이 예언서의 '심판'과 '회복'이라는 주제와 '메시아사상'에 익숙했다는 전제 아래 유대주의 기원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굳이 헬레니즘 문헌을 보지 않아도, 예언서와 묵시문헌에 이분법적 표현이 제법 많이 나타난다.

나는 이 용어들의 기원보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저자의 의도라도 생각한다. 요한은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명확하게 밝힌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이 구절에서 요한이 '그리스도'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헬레니즘의 영향을 주장하는데, 다른 구절에서는 '메시아'라는 단어도 나온다. 요한이 두 단어를 번갈아 사용하여 로마 황제 숭배 사상을 배격하는 동시에 유대주의 메시아사상을 예수에게 적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요한복음의 청중이나 독자가 누구인지 단정 지을 수 없다. 학계에서는 요한공동체라는 용어를 선호하지만, 요한의 저술 의도를 고려한다면 복음 전도의 측면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너희로 ... 믿게 하려 함이요"라는 말은 아직 요한의 가르침을 듣는/읽는 무리 가운데 불신자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녀보면 알겠지만,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교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다 신자로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요한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해서 그들이 다 신자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나는 요한복음이 불신자들을 향한 전도지침서인 동시에 공동체 내부를 위한 신앙교육서로 간주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최근에 초기 유대주의 내 다양한 관점에 관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경향을 고려해, 우리는 청중/독자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 따르면, 저자는 청중/독자가 가진 선지식을 바꾸려고 한다. 공동체 일원이든 외부인이든 그들의 사상과 신앙에 도전하고 복음에 근거한 믿음을 갖도록 이끌려고 한다. 문학적 기법으로서 대조의 기능은 이러한 의도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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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의 사례?]
후대에 정립된 개념을 선대에 적용할 수는 있다. 대체로 특정 개념이 탄생할 당시에는 핵심 뼈대를 가질 뿐 구별되는 이름이나 명확히 규정된 정의를 갖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확장된 개념을 가지고 선례를 규정짓는 행위는 위험하다. 이런 실수를 학계에서는 '시대착오'(anachronism)라고 규정한다.

좀더 들여봐야겠지만, 시대착오의 사례가 될 수 있어 보이는 문장을 간략하게 남겨본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그들은 제사장-왕의 역할을 해야 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왕과 여왕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중재해야 했다. 


(중략) 


이 모든 증거는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의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동산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중재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제사장-왕이었다는 개념을 뒷받침한다. 


출처: 토마스 R. 슈라이너, 언약으로 성경 읽기, 40-42.


하나님의 임재가 에덴동산이 성막을 거쳐 성전으로 바뀌면서 신학적 발전을 했다고 해서, 성막 시대에 시작되고 성전 시대에  절정을 이룬 제사장의 역할을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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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사본의 발견은 흔히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회의주의자들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거센 공격을 받아왔던 구약 성경의 권위를 확증해주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쿰란문서는 구약과 신약의 공백기, 학계에서는 제2성전기라고 부르고, 혹자는 무성전시대라고 부르는 기간의 특정 집단의 신학과 성경 해석적 특성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신약의 구약 사용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한 번쯤 거쳐야 하는 주요 관문이기도 하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쿰란공동체와 제2성전기에 관련된 연구가 제법 많이 진행되었지만, 구약 성경 인용에 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F.F.브루스는 이 책에서 쿰란문서의 해석 방법을 분석하고 공동체적 특징을 재정의했으며, 실제로 문헌들을 분석하며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방식을 설명하였다. 특히, 쿰란공동체의 특성상 메시아사상과 관련된 부분이 많아서 나에게는 도움이 많이 된다.

사해사본의 특징과 이 문헌의 구약 사용 방식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사해사본의 구약 사용
국내도서
저자 : F.F. 브루스 / 이영욱역
출판 : 감은사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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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종말론

독서후기 2020. 3. 19. 17:51

신약학 전공자인 내가 구약의 종말론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는, 예전부터 구약성경과 종말론이란 주제에 모두 흥미를 갖고 있고, 무엇보다 내 박사 학위 논문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독특하게도 구약의 종말론은 메시아사상과 묶여 있어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여기에 게하더스 보스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가 더해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보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바울의 종말론』을 읽어 본 독자들은 동감할 텐데, 난 그 책 하나로 보스의 천재성에 매료되었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엮은이 제임스 데니슨 2세가 밝혔듯이, 이 책은 보스의 생전에 작성된 원고와 학생의 필기 등을 엮어 만들어졌다. 학창 시절 강의안을 받아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제아무리 유능하고 성실한 교수라도 개괄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그리고 핵심 내용만 학생에게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의안을 작성하고 배포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학생들은 강의 없이 강의안만으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집중해서 읽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태생적 원인에 있지 않나 싶다. 

다행히 이 책은 장마다 해당 주제의 핵심을 중점적으로 기술했으며, 논의의 정곡을 파고들고 있어서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 미완성 원고이지만, 저자의 천재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비평학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저자는 비평학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한 후 그들이 가진 허점을 논리 정연하게 비판하며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 밝힌다.

저자는 성경에 나타난 용어를 정의하는 작업으로 시작하여 주해를 통해 신학적 틀을 정립한 후 다시 각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큰 그림 아래 일관성을 갖고 각 장을 서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현대 성경신학자가 배우고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완성작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저자의 뛰어난 통찰이 담겨 있기에 구약의 종말론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구약의 종말론
국내도서
저자 : 게하더스 요하네스 보스(Geerhardus Johannes Vos) / 박규태역
출판 : 좋은씨앗 201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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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유학 상담을 요청하는 시기는 질의자에게 유학이란 꿈이 머릿속에서 두둥실 떠오를 때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결심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까지 다양하다. 내게 질문을 할 때쯤이면, 교수나 지인을 통해서 각종 정보를 들었으나 가장 최신 정보를 듣고 싶은 경우이거나 실질적인 질문이 생겼을 때이다. 미국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일 때는 그 학교에 대한 질문을 주로 받았고(최근엔 박사 과정), 지금은 영국 박사 과정에 관한 질문이 주로 받는다. 미국에서 석사를 하고 영국에서 박사를 하는 사례가 흔하지 않아서 더 그런듯하다.

참고로 나는 조언에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1. 안면이 없으면 두 번 정도 답변해준다는 것. 나는 실제 교류가 없었던 페이스북 친구는 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2. 친분이 있으면 더 자세하게 답해주고 때로는 자발적으로 정보를 주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그에게 필요한 정보만 준다.

유학은 인생을 건 결단이다. 일반적인 신학생의 재정 상황이나 사역 기회 등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내가 직접 경험했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현실이니까. 나 역시 유학 전에 많은 사람에게 자문했고,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준비하는 동안 셀 수 없는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유학을 꿈꾸는 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라고 생각되면 글로 남기고 있고, 여러 경로를 통해 나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 직접 말로는 못 하고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앞서 말했듯이 내게 질문을 할 시점이면 당사자가 유학 정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 물론 세부사항을 나에게 질문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선지식으로 충분히 유학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유학을 준비하려면 최소한 네 가지 정도가 필요하다.

1. 재정
2. 학교 성적
3. 추천서
4. 영어 점수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유학은 못 간다고 보면 된다. 재정이 어려워서 유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가장 아쉽고, 대개 영어 점수를 내지 못해 유학을 못 가는 사례를 자주 본다. 미국은 비자 심사에서 좌절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다 아쉽다.

지금 신학교에서 공부한다면 학교 성적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성적이 추천서를 좌우하니까. 그리고 대화 중에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 게, 한국 신학교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석사 수준은 유학을 가지 않고도,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 제법 질 높은 공부를 할 수 있다.

토플이나 아이엘츠를 준비하고 있다면, 목표하는 점수를 내는 게 과제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영어 점수가 부족해도 받아주는 학교가 있다고 들었는데. 요새는 그 기준이 강화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 유학 성공과 진학하는 학교는 영어 성적에서 좌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요점은 유학 정보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서 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실제로 각 단계를 밟을 때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미리 정보를 모은다고 길이 열리지 않는다. 궁금하면 학교 홈페이지와 실무자들에게 정보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인 중 유학생이 있다면 쉽게 내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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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언약

독서후기 2020. 3. 12. 00:57

현재 내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이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이 사상은 목자-왕 전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결합의 기원은 다윗 언약에서 찾을 수 있다(삼하 7:8-16).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을 선포하시며 목자-왕 전승을 사용하셨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다윗 언약에서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과 목자-왕 전승은 매우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김진수 박사는 부흥과개혁사를 통해 자신의 시리즈 설교를 묶어 『다윗 언약』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참고로 저자는 네덜란드 아펠도른신학대학교에서 H. G. L. 페일스 교수의 지도로 사무엘서를 전공했다. 

원래 나는 (지난 몇 개월간 번역한 사례를 제외하고) 남의 설교문을 일절 읽지 않지만, 다윗 언약을 다룬 책이 희박한데다가 저자의 이력을 보고 몇 장을 읽어봤는데 이 책이 튼튼한 신학 연구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설교로 작성된 원고임에도 저자는 사무엘서 전공자다운 내공으로 다윗 언약을 심도 있게 동시에 쉽게 다루고 있다. 책은 총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일관된 주제를 잘 진술하고 있으며 신약성경과의 연관성, 현대 교회의 적용 면에서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적용 부분을 요한복음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많아서 도움이 된다. 그중에서도 성전과 하나님의 임재를 요한복음의 예수와 연결한 해석은 내가 더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라 동감이 되었다.

물론 나와 다윗 언약을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고, 원고의 목적이 학술논문이 아닌지라, 내 입장에서는 흐름의 연속성이나 논의의 깊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가지고 내 목적에 맞게 재구성한다면 다윗 언약에 관한 이해를 재정립하는데 도움이 될듯하다.

업데이트 2020년 3월 20일

다윗 언약
국내도서
저자 : 김진수
출판 : 부흥과개혁사 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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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계획으로는, 박사 과정 이후에 요한복음의 삼위일체를 다룰 생각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됨'(oneness)이란 주제를 연구할 생각이다. 이 주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목자-왕 전승과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연구 주제를 확장할 수 있다.

D. A. 카슨 박사가 편집하는 "성경신학의 새로운 연구"(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중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와 스코트 스웨인이 공동집필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란 책이 몇 년 전에 번역되었다. 정확한 구입 시기와 의도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출간 시기를 고려하면 내 연구 주제와 상관 없이 순전히 책 제목에 호기심을 느낀 듯하다.

이 책은 성경신학자와 조직신학자의 공동작업을 거쳤는데, 애초 시리즈의 목적대로 각 자의 전문성을 살려 본문 해석 이후 건전한 교리를 확립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요한복음의 삼위일체가 선교를 지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님, 승천하신 예수님을 대신해 성도를 도우러 이 땅에 오신 성령님으로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주장이다. 복음서가 복음 선포라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장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요한복음의 독특한 신학을 고려한다면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진다.

이 책 자체로 집필 의도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으며, 내 차후 연구의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직까지 요한복음의 삼위일체를 다룬 책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개론서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Review of Biblical Literature
https://www.bookreviews.org/bookdetail.asp?TitleId=6661&CodePage=6661,1921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국내도서
저자 :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스코트 스웨인 / 전광규역
출판 : 부흥과개혁사 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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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처형

독서후기 2020. 3. 6. 00:52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다룰 주제 중 하나는 "예수의 죽음"이다. 비록 요한복음 10장은 "십자가"를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목숨을 버린다"(vv. 11, 15, 17, 18)라는 표현으로 예수의 처참한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vv. 6, 9).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고대 근동 전승에서 목자의 죽음, 더나아가 메시아의 죽음은 상상하지 못할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내 관심사는 바로 이 간격을 극복하는데 있다.

최근 마르틴 헹엘의 『십자가 처형』이 출간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십자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다루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십자가에 관한 유대인과 헬라인의 사고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반면 신약성경의 십자가 신학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내 관심사는 바로 이 지점에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십자가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가 당시 얼마나 처참한 형벌이었지 깨닫는데는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십자가 처형
국내도서
저자 : 마르틴 헹엘 / 이영욱역
출판 : 감은사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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