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본론에 앞서 현재 제가 읽고 있는 피터 R. 아크로이드의 『이스라엘의 포로와 회복』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상과 그와 연관된 전승의 몇몇 측면은 이미 검토되었다. 초기의 예언 자료, 특히 이사야 자료에 대한 수정과 재해석도 재앙을 반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관성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갖고 있는 자료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의 어떤 면은 이미 언급하였다. 


[출처] 피터 R. 아크로이드, 이스라엘의 포로와 회복, 144. 


이 글에 의하면, 저자는 예레미야가 이사야 자료를 수정하고 재해석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일관성이 없으며, 현존 자료의 한계로 인해 예레미야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진술한다.

내가 볼 때 이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미흡한 선행 연구와 섣부른 가정.

첫 번째, 저자의 선행 연구는 미흡했다. 예레미야의 비교 대상이 이사야에 한정되어 있다. 예레미야에 앞서 남유다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 예언자들이 있었다. 실제로 예언자의 발화에서 핵심은 '심판'과 '회복'이다. 저자가 비교군을 이사야 활동 시기 전후로 한정했다 해도 스가랴, 미가, 나훔 등이 있다. 마땅히 저자는 이사야 이외에도 세 선지자의 글을 분석하고 예레미야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추적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저자의 비교군 축소는 선지자에 국한되지 않고 전승에서도 나타난다. 인용한 부분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저자의 전승 연구는 신명기 사관이 주요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신명기 사관과 예언자의 메시지 사이의 교류를 인정하는데, 그만큼 예언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전승 중 하나로 신명기 사관으로 보고 비교 분석을 하고 있다. 물론, 역대기 사관이나 기타 전승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만, 그 비중은 현저히 낮다.

두 번째, 선행 연구 없이 섣부른 가정으로 결론을 도출했다. 비교군을 협소하게 한정했다는 건, 저자가 예레미야가 이사야의 영향을 받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는 암시일 수 있다. 나는 이런 경향성이 놀랍지 않다. 수많은 구약 연구자들이 대선지서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껏 내가 접한 자료는 그랬다.

정리하자면, 저자의 진술과 달리 우리가 가진 자료의 한계성이 문제가 아니다. 저자의 편견(혹은 고정관념)이 문제다. 예레미야는 이사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그의 암묵적 전제가 선행 연구 범위를 축소했고, 필연적으로 부실한 연구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자신의 지식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우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연구자는 자신의 가정을 넘어서 선행 연구 범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자신의 지식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우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연구자는 자신의 가정을 넘어서 선행 연구 범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다룬 주제는 내 관심사와 깊이 관련이 있으며, 다음에 다시 다룰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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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헤이스의 사도 바울과 이사야 53장에 대한 관찰은 나에게 유익한 참고자료를 하나 알려준다.

신약성경의 기독교 해석자들은 때때로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에 대한 묘사를 바울 기독론을 이해하는 실마리로 보고 그것에 관심을 집중하였습니다(비록 이러한 접근 방식이 40여 년 전 후커[Morna Hooker]의 논문, Jesus and the Servant에 의하여 심각한 타격을 받았음에도 말입니다).각주4 바울이 이사야 53장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에 대한 예언으로 읽었을 수 있지만, 이런 주장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울이 이사야서를 명시적으로 사용한 것이 그가 더 일반적으로 구약을 사용한 것처럼 이론의 여지없이 "교회 중심적(ecclesiocentric)"이라고 믿습니다. 그의 이사야서 읽기는 본질적으로 이방인들이 포함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백성이 만들어지는 것을 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사야서에서 이방인을 향한 그의 사도적 사역에 관한 근거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것에 대한 선지자적 예언을 찾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쿰란의 서약자들(Qumran covenanters)이 성경 본문을 그들 자신의 공동체 생활과 소명에 대한 예언으로 읽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였습니다. 

각주4.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이 쓴 저서에서, 우리는 예수와 그 종의 동일시가 사도 바울, 사도 요한, 또는 히브리서 저자의 사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거의 찾을 수 없고, 그들에게 이것이 알려졌다는 증거도 전혀 찾을 수 없다"(M. Hooker, Jesus and the Servant: The Influence of the Servant Concept of Deutero-Isaiah in the New Testament [London: SPCK, 1959], 127). 

[출처] 리처드 B. 헤이스, 상상력의 전환, 68-69.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내어줌'(lay down)의 가르침이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나는 박사 과정에서 이 주장을 검토할 예정으로, 내 연구 제안서의 두 번째 과제로 선정되어 있다. 현재 내 예상으로는 이사야 53장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사실 대안을 갖고 있지만 차후 연구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지도교수가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모나 후커의 책을 읽어보면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헤이스가 인용한 후커의 글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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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지서에서 다니엘서를 제외하고, 이사야서는 후대에 등장하는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와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

다윗의 자손들 특히, 왕 같은 메시야가 이방인들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왕으로 묘사되는데 반하여,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여 다스리시는 온 열방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그가 친히 창조하신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출처] 이승현, 성령, 50-51. 


이 진술에서 이사야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 구원자의 성격. 두 번째, 구원의 대상.

첫 번째, 구원자의 성격.
이사야가 내다본 메시야는 다윗 계열의 왕이 아닌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이다. 여러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선포한다. 회복 이후 이스라엘은 다윗 언약에 근거해서인지, 새 다윗 왕조를 재건한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이사야는 이러한 흐름과 달리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이라는 전례 없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두 번째, 구원의 대상.
이사야가 선포한 메시야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하신다. 구약은 민족주의적 성경이 강하다. 예언서에 반복되는 '심판'과 '회복'이란 주제는 대부분 이스라엘(북이스라엘 멸망 이후에는 남유다를 중점으로)을 대상으로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을 향해 있어서인지, 구원 역시 온 이스라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새로운 이스라엘의 등장은 새로운 다윗 왕조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공식과 달리 이사야의 새 창조에는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이 강했던 히브리인들에게 열방 구원이라는 개념은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독특성은 내게 큰 과제를 안겨준다.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내어줌'(lay down)이란 가르침을 이사야의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으로 연결 짓는 견해가 많은 탓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요한이 이사야를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자신을 목자로 지칭하고 있다는 점 역시 유의해야 한다. 다윗 계열의 메시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새로운 왕국을 통치한다는 오랜 믿음과 달리 다윗의 후손이 열방을 구원하신다는 개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밝혀야 한다. 예수의 구원 대상이 유대인으로 한정되지 않고 이방인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유의 깊게 관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관련글:
[연구주제/요한복음의 목자 은유] -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 그리고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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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

성찰 2020. 4. 11. 21:22

정치가 아니라 학문의 세계도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학자의 길을 결심한 이후 객관성을 위해, 더 나아가 성경적 진리를 발견하고 추구하는 구도자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객관성을 위해 수많은 자료를 읽고 분석하지만, 전체를 관망하는 입장에서 보면 나 역시 한 쪽 진영에 서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되는 순간은 성경 본문을 연구할 때이다. 특히, 구약. 구약본문을 연구할 때 내가 자주 마주하게 되는 불편함은 문서설과 후대 편집 등을 주장하는 진영이고 결국 그들의 주장에 반하여 글을 쓰게 된다. 신약 본문을 연구할 때는 저자들이 헬레니즘의 영향보다는 유대주의에 더 가깝다는 전제로 글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객관성이 없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의 입장에서 교수의 평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학교의 성격상 나와 비슷한 신학 노선을 가질 가능성이 크지만),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미국 교수들로부터 논리 전개가 탄탄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걸 보면, 내가 진영논리에 함몰된 건 아닌 거 같다.

오히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서학을 공부하면서, 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내가 불편해하는 문서설과 후대 편집, 헬레니즘 기원설 등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와 학계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을 고려하면, 아직도 저런 주장을 하는 글을 접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 입장에 반하는 주장이 앞으로 더나와야 하는 실정이다. 나는 내 작업이 진영싸움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주는 대안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피해야 할 건,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무조건적인 반대는 말 그대로 진영논리이며, 객관적인 분석과 대안 제시를 통한 건설적인 비판은 반진영논리라고 치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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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과 시온

독서후기 2020. 4. 10. 22:07

역자 서문을 인용하여 저자와 책을 소개하는 게 가장 적절할 듯 하다.

존 D. 레벤슨은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 대화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는 유대교 성서학자이다. 그는 구약신학을 시내산과 시온이라는 두 축으로 풀어낸다. 시내산은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의무와 헌신에 대한 강령이다. 시온은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한 사람의 신실함에 대한 대가로 준 영원한 약속을 대변한다. 한 마디로, 구약성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하나님의 약속 혹은 은혜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9-10쪽). 


나는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모세와 다윗의 연관성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 두 인물이 목자-왕 전승과 관련이 있고, 이차적으로는 언약과 성전이란 주제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240쪽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정말 알차다. 형광펜으로 주요 부분에 칠을 한다면 검은 글씨 위에 형형색색 하게 칠한 부분으로 가득 채워질 테고, 내 생각을 적어둔다면 구석구석에 필기가 남아야 할 정도로 내게 필요한 내용이 많이 있다. 

다만 레벤슨 박사의 연구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데다가 내 상식을 깨는 견해들이 있어서 신중하게 읽어야 했다. 중요도와 난해함 때문에 조만간 다시 정독해야 할 책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만약 구약신학의 진수가 무엇인지, 특히 유대교 성서학자는 어떻게 구약신학을 바라보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시내산과 시온
국내도서
저자 : 존 D. 레벤슨 / 홍국평역
출판 : 대한기독교서회 201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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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목적은 차후 연구를 위해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다. 내 기존 연구를 기반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지만,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구약에는 신명기 사관과 역대기 사관이 존재한다. 역사는 해석되며, 관점의 차이가 각자의 사관(史觀)을 만든다. 그러나 둘 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역대기 사관에서 더 두드러진다.

분열 왕국 시대 예언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백성을 향하여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예언을 무시하여 예언자들은 심판을 집중적으로 선포하게 된다. 때로는 심판이 대부분의 예언을 차지하면서도, 심판 이후 회복이 빠지지 않고 선포된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오히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계보를 대조하며 자신이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학을 견고히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속설이 있듯이, 북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남유다 중심의 기록만 존재해서 당시 주변 국가의 기록을 참고해야 좀 더 객관적인 역사 기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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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 - 이스라엘 역사와 야웨 신앙


남유다의 멸망 이전에는 목자-왕 전승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는데, 예언서에는 미가서와 예레미야서가 있다. 미가는 목자-왕 전승을 자신의 예언에 가장 먼저 적용한 예언자라고 볼 수 있다.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미가의 목자-왕 전승에 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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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3장은 대표적인 목자-왕 전승 본문 중 하나이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다윗 계열의 왕이 등장한다고 선포한다. 이 본문에서 목자-왕 전승과 창조 언약이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바빌론 2차 침공으로 포로가 된 에스겔은 남유다의 멸망에 낙담한 동족을 향해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이때 이방인을 향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동시에 선포하는데, 목자-왕 전승이 그 틀로 사용된다(34-37장). 여기서 다윗의 등장(다윗 언약)과 화평의 언약이 선포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뒤이어 에스겔은 회복의 정점으로 성전 재건을 말한다.

포로 귀환 이후 스가랴는 성전 재건을 독려했다. 몇몇 학자는 스가랴가 에스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그 배경에는 스가랴서 1-14장 전체를 관철하는 '성전 재건'이란 메시지가 에스겔 40-48장을 계승했다는 인식에 있다. 장르로 스가랴서를 크게 1-8장과 9-14장으로 나누지만, 전체 흐름이 '성전 재건'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스가랴의 목자-왕 전승 역시 주목할 만하다.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스가랴서 9-14장은 '심판'과 '회복'이란 주제를 목자-왕 전승으로 풀어간다. 또한, 다윗 언약이 기반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구약은 여러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장르에 따라 서술 방식이 다르고, 저자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구약 저자가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과 미래를 전망하는 토대는 동일하다. 구약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심점에 두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최상의 권위를 갖게 된 사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출애굽'은 하나님의 실존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인시킨 사건으로, 모세의 출현 이후 요한계시록까지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역사서에서 이스라엘 왕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었고, 그 비교 대상은 다윗이었다. 통일 이스라엘의 수립과 분열 왕국의 멸망을 토대로 다윗 언약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바빌론 유배 후 귀환을 경험하면서 다윗 왕조의 부활(혹은 새로운 왕조의 출현)을 꿈꾸게 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예언서는 하나님의 계시와 수령자인 예언자를 분석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사례를 통해 역사의 전진 가운데도 예언이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정 언약과 전승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예언자는 언약과 전승 등 다양한 사료를 알았고, 활동 당시 상황을 몸소 경험했으며, 예언을 토대로 미래의 양상을 추측할 수 있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힘쓰면서, 동시에 메시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언자는 언제나 소수이었고 청중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론 예언자 스스로 내적 갈등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역사에서 수많은 예언이 선포되었고, 그중 몇몇 예언은 실현되었기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시가 자신에게 주어졌기에 누구보다 먼저 예언자 내면에 예언을 향한 믿음이 형성되었다. 예언자에게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긴장감이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리라는 믿음이 허물어진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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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양면성

성찰 2020. 4. 8. 01:35

수많은 학자들이 구약은 신명기 사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나는 구약의 밑바탕은 언약이며, 더 나아가 신약까지 아우르는 거대 담론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기술된 가장 최신의 책은 토마스 R. 슈라이너의 『언약으로 성경 읽기』(기독교문서선교회)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언약을 다룰 때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그것이 항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약속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약은 율법, 신약은 은혜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지만, 구약에 이미 조건적인 은혜와 무조건적인 은혜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가령 존 D. 레벤슨은 『시내산과 시온』(대한기독교서회)에서 '시내산 언약'은 조건적인 은혜, '다윗 언약'은 무조건적인 은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규정한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늦어도 다윗 왕정 시대에 무조건적인 은혜라는 개념이 있었다.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에 율법과 은혜라는 모형론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주장은 신약 저자들이 오랫동안 행위와 구원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듯이, 그에 앞서 구약 저자들이 언약이란 개념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순종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구약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은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궁극적인 승리라는 확신을 주는 동시에 조건적인 은혜는 죄를 탐하는 본성을 향한 씨름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순종이라는 권면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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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분과에서 이사야서만큼이나 스가랴서도 단일저자설보다는 복수저자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이사야서의 복수저자설을 주장하는 경우 학자마다 견해 차이가 있는데 저자에 따라 본문을 둘(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혹은 셋(제1이사야, 제2이사야, 제3이사야)으로 나눈다. 스가랴서는 두 저자설(제1스가랴: 1-8장, 제2스가랴: 9-14장)로 통일되어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복수저자설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회의주의자들은 문서설이나 사본학 등 역사비평과 문헌비평 방법론을 이용해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기록된 거룩한 문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집단의 편집을 거쳐 형성된 문서로 치부한다.

복수저자설을 주장하는 진영의 논리와 의도는 자명하다. 혹자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며 기독교의 허구성을 전파하는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으며, 간혹 후대 편집 없는 원 계시를 찾는게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인 사람도 있다. 이외에 그런 용어들을 서슴없이 사용하면서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나에게 그들은 호기심의 대상이다(혹시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난 지금도 단일저자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복수저자설을 지지하면서도 선지자의 예언이나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주제는 십 년 넘게 이어온 고민인데, 얼마 전부터 한 방향으로 초점이 모이고 있다.

지금껏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성경은 매우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근동부터 헬레니즘까지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에, 동시대적 특징을 반영하는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성경 고유의 이질적인 특성이 있다. 그래서 성경을 그 자체로 읽으려면 어떠한 선입관이나 관점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한 개인은 시대정신과 특정 문화와 집단의 영향을 거쳐 사유를 형성하므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혹은 "저자의 의도대로" 읽고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우리는 몇 가지 시도를 통해 조금이라고 객관적으로 성경에 접근할 수는 있다.

1. 후대에 형성된 개념을 버려야 한다. 
가장 큰 실수는 성경을 그 시대적 사고로 읽지 않고, 현 시대적 사고로 분석하고 평가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오늘날 '저작권'이란 개념을 버려야 한다. 난 회의주의자들이 불붙이는 저작권 논쟁이야말로 가장 흔한 시대착오적 발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 성경 고유의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복수저자설로 돌아가서, 우리는 단일저자의 저작권을 의심할 게 아니라 질문을 달리해야 한다. '후대 저자는 왜 그 본문을 선택했는가?' 스가랴서를 예로 들면, '왜 제2스가랴라는 개인 혹은 집단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스가랴서를 확장하려고 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대다수 학자가 인정하듯이, 스가랴서 1-8장과 9-14장은 장르가 다르다. 장르적 차이에서 파생되는 여러 변이가 있지만, 학자들은 스가랴서가 '성전 건축'이란 일관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게 중요하다. 주제적 일치성.

스가랴의 '성전 건축'을 강조할 필요를 느꼈던 특정 인물 혹은 집단은 이스라엘 백성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묵시라는 장르를 선택했다. 후대 저자는 앞서 존재한 여러 예언 중에서 현시대를 혹은 그들이 직감한 미래를 자신의 언어로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본문을 선택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가 스가랴서를 하나의 저작물로 간주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이스라엘인들은 특정 저자의 메시지를 계승한 개인 혹은 집단을 원저자와 동일시했다. 현대 학자들은 제1스가랴니 제2스가랴니 저자의 활동 시기와 그 정체를 규명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지만,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스가랴서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이런 독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혹은 고려조차 하지 않아서), 개인의 틀을 계속 주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 읽고 공유한 글에서는 '익명성'과 '위조설'이란 단어가 거침없이 나왔다. 그 글을 계기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생각을 정리했다. 설익은 글이지만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주제이고, 내 언어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로 남겨본다.

[끄적] - 예언의 계승과 익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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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는 130~140년경 로마에서 비오 교황(140~155년)의 형제인 헤르마스가 저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대 교회의 일부 공동체에서 전례 때 공식적으로 낭독되고 경전으로 인정될 만큼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목자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례를 받은 뒤 죄를 지은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회개이다. 고대교회의 회개는 오늘날의 고해성사에 해당한다.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를 보면 사람들이 서로 죄의 용서를 청하기도 하고 용서를 받기도 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그런데 고대교회에서 참회한 죄인들의 모든 죄는 늘 용서받는다는 확신이 이후로도 계속 변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요한의 첫째 편지에는 이러한 변화를 암시하는 몇몇 구절이 있다.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이 내린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는 이들이, 그리고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권세를 맛본 이들이 이제 배반하고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는 회개하여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거듭 십자가에 못박고 모욕하는 것입니다』(히브 6, 4-6).

2?3세기에 노바티아누스파와 다른 엄격주의자들은 이 구절들을 엄격한 회개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또한 세례 후 중죄를 지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마침내는 공동체에서 내보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한편 다른 이들은 매우 권위적이고 결정적인 이 문구들을 엄격한 규율 조치로서보다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 대처할 교훈적 경고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히브 6, 4에서 말하는 회개의 불가능은 원칙적 불가능이 아니라, 대개 배교자는 다시 회심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상 알 수 있기 때문에 허구적 불가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회개가 고대교회에서 어떻게 개별적으로 행해졌는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분명하다. 다만 1~2세기 전환기와 2세기 전반기에 씌어진 일부 작품에서 회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목자의 회개론은 2세기 중엽의 신학 발전을 이끄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회개 논쟁은, 세례를 받은 뒤 회개를 금하는 당시의 상황에서 헤르마스가 처음으로 세례 후의 회개와 용서를 선포하였는지, 아니면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 회개를 단 한 번으로 제한하였는지에 관한 문제에서 출발하였다. 첫째 경우는 헤르마스가 교회의 성성 때문에 세례 후 회개를 거부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엄격함을 완화하였다는 입장이고, 둘째 경우는 그가 단 한 번으로 제한된, 일반적인 회개 관습을 강화하였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본문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둘째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교회는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 절대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회개할 뜻이 있는 죄인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르마스가 세례 후 회개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세운 것은 이전의 관대한 관습을 더 엄격하게 강화한 것이라 하겠다. 그 이후로 고대 그리스도교는 세례를 받은 뒤 다시 지은 죄에 대해 한 번의 회개만 허용하였다.

한 번만 허용된 고대교회의 엄격한 회개는 신자들에게 크나큰 희생을 요구하는 엘리트 교회의 관습이었다. 이 때문에 이미 테르툴리아누스 이래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공개적인 회개 조치로 자기 약점이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수치심을 느끼고 회개를 멀리하였다. 그리하여 신자들이 교회의 용서를 얻기보다 오히려 죄지은 상태에 머무르려 한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러한 개탄은, 콘스탄티누스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뒤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들면서 더 심화되었다.

교회는 새로운 상황을 맞으면서도 유연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많은 점에서 회개 규정들을 더욱 강화하였다. 특히 일회적 회개 원칙은 서방에서 철저히 지켜졌다. 이 경우 회개에 부과된 보속이 강화되어 -예를 들어 평생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 지키기도 힘들고 어렵게 되자 회개는 점점 더 임종 때까지 연기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회개한 사람은 교회에 받아들여진 뒤 거의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게다가 회개를 하고 나면 일반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갖지 못하게 하여, 성직자가 될 수 없으며, 어떤 공적인 교직도 맡지 못했다.

회개는 세례의 특성처럼 한 번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면서 적지 않은 문제가 뒤따랐고, 회개 제도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죄를 지은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정한 회개를 죽을 때까지 연기하기 시작하였고, 교회는 이를 감수해야만 했다. 더구나 506년 아그드 교회회의는 사목적인 이유에서 35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금하였다. 538년 오를레앙 교회회의는 나이 든 이들도 배우자의 동의가 있을 때만 회개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로써 회개는 실제 삶에서 멀어져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 성격이 사라지고, 생명을 위한 용서의 성사가 죽음을 준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풍조는 세례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세례 후 회개하는 것보다 평생 세례지원자로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세례를 죽을 때까지 미루었다. 사람들은 「세례복을 입은 채 사망한」이라는 표현을 묘비에 자랑스럽게 기록하였다.

이 갈등상황의 해결은 5~6세기에 접어들어 세계의 변두리인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사목적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지역 사람들은 먼저 공개적인 회개를 포기하기 시작하고, 주교나 사제, 수도자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보속을 받았다. 이는 아일랜드와 영국이 대륙 선교를 나서면서 서방에 널리 퍼져 일반적인 해결책이 되었다. 모든 신자가 해마다 한 번씩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는 규정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결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성수 박사(한님성서연구소)


[출처] 교부들의 가르침 (6) 헤르마스의 목자 / 하성수 박사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13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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