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유월절(2:13)과 세 번째 유월절(11:55)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하지만 두 번째 유월절(6:4)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는 기록이 없다. 이 시기에 예수께서 활동하신 무대는 갈릴리(6:1)와 가버나움(6:24)이다. 이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시기는 초막절(7:2, 10)이다.

유월절은 순례 절기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두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으셨으므로, 이 유월절은 연례 절기(annual feasts)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Daise).

이 주장은 추후 검토하겠지만, 현재 내 질문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첫 번째, 왜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갈릴리와 가버나움에 계셨나? 두 번째, 왜 예수께서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셨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예수의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다(22-59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적의 배경인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1절)에 위치한 산(3절)은 광야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49절).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첫 번째 해답과 연관되어, 광야 시절 만나 사건과 대비하여 예수의 사역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50-51절).

두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의 성취자로서 생명의 떡이 되신다. 그 성취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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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절기가 갖는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 번에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이란 글을 남겼는데, 요한복음을 분석할 수록 의문점이 더 쌓여간다.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

 
그 이유를 간략하게 말하면, 요한이 유대 전통에 따른 절기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로서 창조적으로 변형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나열된 절기는 다음과 같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요한복음의 절기 순서가 유대 달력과 맞지 않는다는 의문이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유월절, 칠질절, 초막절 순서로 나열되어야 한다. 참고로, 이 세 절기는 유대 3대 절기이다(신 16:1-17). 하지만, 두 번째 유월절의 위치는 요한이 예수의 공생애를 1년 주기로 기록했는지 2년 주기로 서술했는지 다루도록 한다.
 
그 다음은 절기의 기능이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요한복음 2장에서는 성전청결이 주요 사건으로 배열된다.
 
칠칠절은 추수감사절이라고도 하며, 일년 농사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에 하나님께 감사과 응답하는 절기이다. 하지만 5장에서 베데스다 사건 이후 안식일 논쟁이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두 번째 유월절은 본문의 위치부터 논쟁이 되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릴 지역에 있었다는데서 또다른 논쟁거리가 된다. 또한 6장에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모세의 만나 사건과 연결짓고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7장부터 유대인의 적대감과 모세의 율법에 관한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생수의 강'(7:38)은 초막절과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지만, 전통 유대인들의 사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취된다. 내 관심사인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죽음은 전통적인 목자-왕 전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이다.
 
수전절은 1세기 유대인들에게는 안티파네스와 마카비 항쟁을 연상시키는 절기로 성전성결과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한다. 하지만 11장에서는 선한 목자 담론에 대한 논쟁으로 번져 예수의 정체성을 다투고 있다.
 
세 번째 유월절은 나사로의 부활 이후에 위치하여 예수의 죽음을 향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한 해석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요한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를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였으며, 본인의 의도대로 유대 절기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요한의 유대 절기를 변형적으로 사용하여 해석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유대 절기의 역사를 조사하는 차원에서 선행연구가 끝나지 않는다. 요한이 이같은 구조를 사용한 의도를 파악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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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에 예수의 첫 표적으로 기록된 가나의 혼례를 유대 메시아 사상에 입각하여 '종말론적 신랑되시는 예수'를 주장하는 해석자들이 있다. 예수는 혼례의 주인공인 신랑이 아니라 참석자이므로, '종말론적 신랑'이라는 주장은 해석자의 신학적 틀을 과도하게 주입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본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예수의 첫 표적이 갖는 의미에 달려 있다.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와 동행했던 제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본문의 흐름을 따르면, 혼례 이전까지 5명의 제자가 있었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두 제자(1:37). 이 둘 중 하나는 안드레로 밝혀지며,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가 추가된다(1:40-42). 후에 빌립과 나다나엘이 더해진다(1:43-51). 여기까지 최소 5명이 확인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를 믿은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표적으로 인해 그를 믿었다. 즉 이들은 기적을 행하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다.
 
또한, 이 무대에서 잊혀질 수 있는 예수의 어머니를 기억해야 한다(2:1-5).
 
요한복음은 마리아의 잉태를 다루지 않았다. 전문 용어로 '로고스 기독론'을 주장하는 요한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록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의 어머니를 부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구절을 통해 마리아가 예수를 특별한 존재로 믿고 있었다는 단서로 작용한다.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를 어떤 존재로 믿었는지 명백히 밝히지는 않지만, 최소한 예수가 떨어진 포도주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어쩌면 그녀 역시 예수를 이적을 행하는 메시아로 바라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앞으로 제자들의 기대와 달리 유대 메시아 사상을 전복하는 가르침을 설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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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낸 절기이다. 초막절은 후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 이후 중요성이 덜 강조되다가, 유다 왕국 멸망 이후 포로기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는 에스겔과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 초막절이 언급된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만큼 초막절을 강조하는 성경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토세프타(Tosephta)에서 초막절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2세기 후기부터 유대 구전 율법을 수집했다고 알려져 있다.
 
요한복음은 성전 파괴 이후 기록되었다고 함의를 보고 있다. 토세프타의 저술 시기 역시 성전 파괴 이후이다. 요한복음과 토세프타의 저술 목적은 다르지만, 저술 시기가 성전 파괴 이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월절처럼 성전 중심의 절기는 더이상 지속하기 어렵겠지만, 초막절은 자신의 집 지붕에 초막을 만들어 준수할 수 있다. 요한복음이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면, 토세프타는 옛 절기를 준수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길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록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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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결정적인 논증은 유대 절기(Jewith festivals)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전히 선한 목자 담론(10장)을 주요 본문으로 설정하겠지만, 몇 가지 논의를 위해 목자-왕 전승의 중요성을 덜 부각시킬 예정이다.
* 이 글은 내 구상을 정리하는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으므로 자세한 인용은 생략한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절기는 총 여섯 가지이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유월절이 여섯 번의 절기 중 처음과 나중에 등장하고, 중간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만큼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유월절과 예수의 구속사를 연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강조해야 한다. 군사적 메시아를 고대하던 유대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의 죽음이 갖는 차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후에 펼쳐지는 예수의 부활이라는 사건을 위해서 더욱 그렇다. 현재로서는 유월절의 기능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문제는 나머지 절기와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요한이 두 번째로 언급한 명절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이라고 일컫은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선행연구에서는 이 명절을 '익명의 명절'(anonymous festival)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초막절과 수전절에 대한 언급이다. 앞서 '유대인의 명절'에서 명절의 이름을 고의로 생략했다면, 이번에는 특정 명절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두 절기가 선한 목자 담론과 연관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글에서는 '유대인의 명절'(5:1)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초막절과 수전절, 그리고 선한 목자 담론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을 같이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한 목자 담론의 앞부분이 초막절(7:2-10:21)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이후 발생한 예수의 선한 목자에 관한 가르침에 대한 논쟁은 수전절(10:22-39)과 관련이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절기의 의미는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통치를 기념하는데 있다.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광야로 나가는 대신 자신의 집 지붕에 천막을 치고 이 절기를 지켰다.

수전절은 마카비 가문을 필두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에피파네스가 모독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한 사건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이 절기는 성전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두 절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적 기능을 한다.

여기서 요한이 예수의 성전 파괴와 회복에 관한 가르침을 2장에 배치한 이유가 설명이 된다. 독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연결짓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앞으로 각 절기의 유래와 요한복음 내에서의 기능을 더 분석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섯 절기는 모두 '순례'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는 건 분명하다. 각 구절마다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유대인들은 특정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구전되고 저술될 시기는 성전이 파괴된 이후로 합의를 보고 있다. 여기서 다시 요한복음의 핵심 주장이 명백해진다. 즉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했던 유대인들에게,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 절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독특성을 파악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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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이원론을 비롯한 대립적 개념의 사용이다. 하지만 이같은 용례는 요한이 후대에 '복음서'(gospel)라는 장르(genre)로 분류되는 자신의 증언을 위한 기법 중 하나일 뿐이다.
 
요한복음에서 유대기독교인들의 현실 혹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 대표적으로 성전파괴(2장), 회당축출(9장), 순교(21장)는 예수의 제자들과 따름이들이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빛과 어둠, 죽음과 영생 등과 같은 대조 기법은 현실의 암울한 상황을 이기게 해주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요한복음이 복음서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동시에 묵시적 성격이 매우 강한 본문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로마황제숭배까지 더해지면 요한계시록과 같이 묵시의 절정에 이르지 않았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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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제안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친구들이라는 말과 관련된 유대 전승뿐만 아니라 상호 사랑과 타인에 대한 희생이라는 배경은 다른 언사들에서 영감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를 쓸데없는 일로 만든다.
[출처]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53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에 대한 해설.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 목자의 죽음에 관한 가르침은 목자-왕 전승에서 유래 없는 사례로 남는다. 또한 21장 베드로에 대한 명령에 목자 비유를 사용하셨고, 그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두 본문 모두 목자 비유는 사용하여 죽음을 암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4)
게다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예수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친구로 재설정하여, 목자의 죽음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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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목적은 차후 연구를 위해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다. 그래서 사례나 근거 제시는 빈약하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21:20)이다. 그는 베드로의 죽음(21:19) 이후에도 살아 남았으며, 예수의 관한 증언을 위해 자신의 기록을 남겼다(21:24-25). 

요한복음, 생존자의 증언


저자는 예수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으며(특히, 19:26-30), 베드로와 함께 빈 무덤의 현장에 있었다(특히, 20:2-10). 또한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특히, 21:7, 20).

요한의 증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실제로 목격한 자신의 체험이자, 예수의 가르침이 실현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상반되는 두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대조 기법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무리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복음(=예수의 구속사 사역)이 곳곳에 전파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그 사건을 부정하는 무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유대인의 불신앙은 그들의 견고한 믿음과 사상에 기인한다. 예수의 제자들 역시 유대인의 전통에 익숙했으나 스승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 그의 가르침을 깨우셨다. 요한은 유대인의 불신앙과 자신의 증언 사이에 간격을 줄어야 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가장 강력한 위험으로 작용했다고 짐작된다. 요한은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성전 재건축과 맞물려 등장한 유대주의(Judaism), 그리고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Davidic messianism)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즉 요한은 성전 파괴를 율법 준수와 결부시키려는 움직임과 다윗과 같은 메시아의 등장을 고대하는 메시아 사상의 고조를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두드러지는 모세에 관한 언급은 유대주의를 비판하는 기능을 하며, 다윗에 관한 언급을 자제하여 메시아 사상의 부상을 누그러뜨린다.

예수의 증언자, 모세

유대인의 믿음과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

요한복음에 나타난 모세 기독론과 다윗 기독론


여기에 절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긴밀하게 엮여있다. 요한은 성전 정화 사건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치환하며(2장), 절기를 통해 예수의 사역과 연결하여 유대주의를 끊어내는 동시에 예수의 사역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로 결론내린다.

목자-양 은유와 수전절


요한은 더이상 유대주의와 전통적인 메시아 사상을 고수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구속사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예루살렘 성전 중심적 사고를 예수로 대치해야 한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핵심이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에 비해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이 영적인 복음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요한이 마주한 현실의 난관을 뚫고 헤쳐나가야 하는 증언자의 책무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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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주제(=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 나타난 예수의 죽음)의 영향 탓인지, 요한복음을 분석할 수록 이 복음서가 구전되고 기록되었을 당시 상황은 매우 암울했다고 그려진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일컬어 '하나님의 어린 양'(1:29, 36)과 '하나님의 아들'(1:34)이라는 모순적 표현이 중첩된다. 특히 요한복음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1:29)라는 문구를 통해 예수의 죽음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문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요한복음 저작 연대를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로 본다. 성전 중심의 신학을 공유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전 파괴는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예루살렘 성전과 연결하는 중요한 의도가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유대인들은 오랫 동안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고대했다. 1세기는 헤스모니아 왕조 이후 메시아 사상이 고취되어가던 시기였다. 이때 예수는 유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가르쳤고 실제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메시아 사상의 정점에 닿아 있는 다윗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대인들의 기대를 자극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나는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이 그 정점에 있다고 본다.

요한복음의 마지막은 예수의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이다. 특히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21:15-17)고 명령하신 부분이 인상 깊게 남는다. 또한 예수께서 베드로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살아남는다. 그는 사도들의 순교에도 살아남아서 요한복음서를 기록한다(21:24-25).

예수의 부활을 붙들지 않는다면, 요한복음을 읽는 독자들은 암울한 분위기에 사로잡힐 수 있다. 어쩌면 예수의 생애를 공유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와 동일한 좌절감에 빠질지 모를 일이다.

이런 총체적인 상황에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설득해야했다. 요한복음 1장이 로고스 기독론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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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견해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 아래 요한복음을 해설하면서 요한계시록과 연결하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아래는 그 중 하나의 예이다.

이 예언적인 "만화"는 그 선지자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이었을 것이며 십중팔구 그 묵시로 통합되기 전에 요한 학파의 구성원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출처]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443.


난 이미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목자 은유를 살펴 본 적이 있다. 내 관찰에 의하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스가랴 9–14장의 목자-왕 은유를 동일하게 적용한다.  

하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요한복음을 해석할 때 요한계시록을 배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 연구에서 후대 자료는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이 나에게 도움만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어린 양'과 목자-왕 전승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려면, 요한계시록을 인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역으로, 요한복음에서 두 주제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요한복음의 흐름 전개를 아주 치열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요한복음의 어린 양과 목자-왕 전승

내 추정에 의하면, 요한복음에서 '어린 양'과 목자-왕 전승은 유대 절기라는 또다른 장치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절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데, 과연 내 관찰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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