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요한복음에서 유일하게 명절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절기가 바로 '유대인의 명절'(5:1)이다. 요한은 이 구절을 제외한 다른 본문에서는 절기의 이름을 적시하고 있다. 절기의 이름은 청중/독자들로 하여금 그 절기의 특성과 규례 등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요한은 의도적으로 이 절기의 이름을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칭한다. 여기에서 그 명절의 특징과 의식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라는 수식어가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예수께서는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거하셨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유대인'이라는 명칭은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4장에서 중요한 구절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다음 문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4:21) 

청중/독자들은 '유대인의 명절'이라는 절기를 알고 있지만, 그 명칭을 통해서 연상되는 대상이나 의식 등은 애매모호하다. 그에 비해 요한복음은 베데스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안식일 논쟁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의도를 통해 요한은 명절은 아니지만, 그만큼 실생활에서 지켜지고 있던 안식일이라는 규범을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한 법 (참조.  출 20:8-11; 35:1-3)인 동시에 하나님을 위한 법 (참조. 레 24:1-8)이다. 유대인들의 인식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고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예수는 그 일을 하셨고, 유대인들의 박해에 대한 답변은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17-47절). 후일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고소하게 되는 그 답변 중 다음 문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5:17)

예수는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으로, 그의 대리인으로서 일하시는 분이시며 그의 사역은 구속사적이다. 그러므로 그는 안식일의 제약을 뛰어넘으신다. 이러한 선언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으로 작용한다.

요한은 예수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유대 절기를 성취하신 분으로 예수를 묘사하려고 일부러 특정 명절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칭하며 안식일 논쟁을 주요 사건으로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익명의 절기'라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유대인'을 강조하는 특성은 사라지겠지만, 여전히 유대인들에게는 절기라는 특성은 유효하다.

,

이사야가 ‘야웨의 종’이라 칭하는 인물을 밝히려는 시도가 끊임 없이 지속되고 있다. 유력한 학자들에 의해 모세나 스룹바벨 등 여러 인물들이 언급되었지만, 그들의 역사적 재해석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강하지 못하다. 나는 이사야의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모세부터 제2성전기 시대를 통틀어 저자의 진술에 부합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해석적 난맥에 의해, 역사적 인물을 밝히려는 시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집단으로 해석하는 추세로 전향되지 않았나 싶다. 현재로서는 ‘야웨의 종’을 ‘이스라엘’로, 화자를 ‘열국’으로 구분하는 입장이 제법 영향력이 있어보인다. 이러한 입장의 변형(?)으로는 ‘야웨의 종’을 ‘이스라엘’로 보지만, 화자를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국가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해 있고, 역사적으로 그들이 번영한 시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희박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열국을 위해 희생당했다는 해석은 무리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고난과 분열, 멸망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열국을 의존하는 외교 정책 등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고난을 통한 열국에 대한 평화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열국을 향한 인식의 전환과 관련이 있는데, 변혁의 시대에 따른 사고 전환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사야조차 이런 선포를 했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 추세는 집단적 해석이 더 강세로 보이는데, 연구자는 해석적 다양성을 염두해야겠고, 나로서는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이사야서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고정 관념, 혹은 신앙과 전승 등을 뒤집는다는 데 있다. 내가 다루는 주제에 한해서는 ‘고레스’와 ‘야웨의 종’이 그러하고, 이 두 인물은 유대 메시아 사상에서 독특한 궤적을 남긴다.

고레스는 이방 왕이지만, 이사야는 이스라엘 왕에 부여될 명칭으로 이 그를 부른다 (44:28; 45:1). 그리고 그의 업적은 마치 멸망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이상이 담긴 다윗 왕과 같다. 실제로 포로 공동체는 열방 심판과 이스라엘 재건 명령은 장차 나타날 다윗과 같은 왕의 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일을 행한 인물은 이방 왕이었다. 이사야에게 이같은 모순적인 현실은 그로 하여금 기존 유대 전승을 뒤집어야 하는 도전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사야가 신적 계시에 순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별개로 그는 여전히 청중들로부터 극심한 저항에 마주하게 된다.

고레스 왕의 출현과 유대 포로민들의 저항

고레스와 다윗 계통의 왕

고레스의 등장과 열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


야웨의 종의 정체에 관한 연구들과 각종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논쟁이 가능한 영역으로 보인다. 연구 추세가 ‘종’의 정체를 역사적 인물에서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경향으로 넘어가듯 싶은데, 이런 변화마저 정체를 밝히는 어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현재 나는 그의 정체를 특정 인물로 보고 있으며, 추후 선행연구를 검토하면서 내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그의 정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사야가 그의 정체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사야 역시 군중들처럼 ‘종’의 정체를 가볍게 여겼지만, 어떤 특정 사건을 통한 유대 공동체의 상황이 변화되면서, ‘종’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이같은 변화 역시 군중들과 불일치를 일으킨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야웨의 종'의 정체


이처럼 ’고레스’와 ‘야웨의 종’에 대한 이사야의 시각은 유대 공동체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귀환 공동체의 이스라엘 재건으로 인해 고레스에 대한 이사야의 평가는 후대에 수용되지만, 아마도 ‘야웨의 종’에 대한 인식은 오랫 동안 극히 일부에게 통용되었다고 보여진다. 극적인 변화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

이사야서의 네 번째 '야웨의 종의 노래'(52:13-53:12)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정체에 대한 견해가 갈린다. 일단 내가 파악한 선에서, Klaus Balzer는 모세 전승을 강조하고(Deutero-Isaiah: A Commentary on Isaiah 40-55, 404ff), John Watts는 스룹바벨로 본다(WBC, ***). 나는 개인적으로 스룹바벨에 가깝다고 짐작하고 있으나, 이사야서 본문 해석에서 의문스러운 부분이 남아 있어서 확정할 수는 없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에스라서를 참고하면, 스룹바벨은 귀환 공동체의 족보나 현지 지도자들을 언급할 때 첫 번째나 두 번째에 언급될 정도로 입지가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스룹바벨은 1-4절의 진술에 해당되지 않는다. 혹자는 야웨의 종이 질병을 갖고 있거나 온전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야웨의 종이 '메시아적인 인물'(messianic figure)인가에 대한 견해도 갈린다. 대체로 메시아적 인물로 보는 견해가 강한 듯하나, 그에 반하는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아지는 추세로 보인다. 동시대 인물들은 야웨의 종을 멸시하고 버렸다 (3절). 더구나 야웨의 종의 고통이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5절). 야웨의 종은 메시아적 인물로 추앙받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Matthew V. Novenson은 『The Grammar of Messianism』에서, 동시대 군중들이 추앙했던 메시아들 사이에는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사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의 고난은 그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대 공동체의 질고에 기인한다. 그의 고난은 공동체를 위한 대속적 고난이다. 야웨의 종의 대속적 고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속죄(sacrifice)에 관해서는 몇 가지 견해들이 존재한다. 야웨의 종을 속죄제물로 해석하는 경향이 전통적이었다. 기독론적 해석이 대체로 이 입장을 지지한다. 실제로 이사야는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라고 진술한다 (10절). 그러나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한다는 율법의 조항에 의해 야웨의 종은 속죄제물에 부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야웨의 종의 ‘흠’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실제로 그가 육체적 질병이나 기타 흠결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2절의 진술은 야웨의 종이 메시아적 인물에게 기대되는 덕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본문에서는 그에게 더해진 육체적 흠결은 곤욕과 심문으로 인한 것이라고 진술한다 (7-8절).

여기서 이사야는 야웨의 종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에 집중한다 (5-6절). 그는 한때 야웨의 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3절), 어떤 사건을 통해 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된다.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고 추측할 만한 단서도 없으나, 종을 향한 징계는 유대 공동체가 평화를 누릴 만큼 무게 있는 사건이다 (5 절). 여기서 종의 사회적 위치가 미천하거나 무시될 만하다고 볼 수 없다는 단서가 된다.

정리하자면, 야웨의 종은 귀환 공동체에서 유망한 인물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공동체의 상황에 영향을 미칠 만한 영향력은 있었다. 어쩌면 야웨의 종의 실제 위상이 아니라 이사야의 해석이 그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확실한 건, 이사야는 야웨의 종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을 동시대 군중들과 다르게 해석했다는 사실이다.

,

느헤미야서에는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옛 영광이 훼손된 상황에서 간간이 생활하다가(1-2장) 느헤미야의 권면으로 재건 사업을 시작한 듯이 진술되어 있다(3장 이후). 성벽 건축과 문짝을 설치한 이후에야 거주민들의 족보를 살펴본다(7:1-5). 여기서 처음으로 귀환 공동체의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언급된다(7:6-7).

7: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7:6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7:7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느헤미야서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활약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 느헤미야의 등장으로 인해 성전 재건 사업이 주도되고(1-7장), 그 후에는 에스라가 등장하여 모세의 책에 따라 살아가기로 헌신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린다(8장 이후)

에스라서에서는 귀환 공동체의 족보를 앞에 배치한다 (2장).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그리고 예수아와 스룹바벨의 주도로 제단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재건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2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3:3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이 구절 이외에도 에스라서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활약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성전봉헌식(6:16ff)을 기점으로 두 인물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고, 에스라가 주목을 받는다(7장 이후).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는 재건 사업이 최대 과제로 놓여 있고, 여러 인물 가운데 에스라가 중심 인물로 그려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에 대한 집중도는 다르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활약을 한 인물로 조명받지 못한다.

내 관심사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에 있다. 이사야 52-53장의 '고난받는 종'은 역사적인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구약 성경은 의도적으로 본문의 선명성을 날리기도 하는데, 그 경우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연상시키되 열린 해석을 가능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경우가 잦다.

나는 이사야의 네 번째 '야웨의 종의 노래 '(52:13-53:12)도 그러한 의도를 가진 본문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저자와 동시대 청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와 관련된 특정 인물과 사건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후대 사건에 적용 가능하도록 종의 정체를 명시하지 않는다.

이사야가 염두에 둔 인물이 스룹바벨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귀환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인물은 희생당했고(아마도 정치적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귀환 공동체는 죄악 가운데 행하며 지도자의 뜻을 따르길 거부했고, 이는 모세의 율법에 합당치 않았다. 이사야는 이같은 현실에 애통하고 통곡하지 않았을까.

,
이번 BNTS 2022 학회에 내 지도 교수가 발표할 주제와 그 요약이다. 지난 금요일에 만나 나눈 대화 주제 중 하나가 요한복음 1장 29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고, 이 주제가 이사야 53장과 연결해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나는 다른 방식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행히 나와 지도 교수 사이에 "하나님의 어린 양"을 "Paschal Lamb"(=Passover sacrifice, 유월절 희생양)로 보지 않는 견해적 일치를 발견하는 소득이 있었다.
 
히브리서는 잘 모르지만, 아래 요약을 보고 직접 히브리서 본문을 읽어보니 지도 교수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서로 다른 본문이지만, 요한복음과 히브리서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간주된다.
 
David Moffit, University of St Andrews, ‘Isaiah 53 and Jesus’ Salvific Death in Hebrews’
 
Many modern scholars assume that Isaiah 53 does not play a significant role in the argument of Hebrews. Apart from a probable allusion to Isa 53:12 in Heb 9:28, there seems to be little direct influence of this Old Testament passage in the epistle. I argue in this paper that aspects of the logic of the argument of Heb 2 and Heb 9 are illuminated if one allows that the Isaianic servant tradition stands in the background. Specifically, I aim to demonstrate that both the claim in Heb 2 that Jesus was crowned with glory and honour because he tasted death for everyone, and the link between Jesus’ death and the inauguration of the new covenant in Heb 9, make good sense in light of the move from the servant’s vicarious death in Isaiah 53 to his exaltation and to the restoration of God’s covenant relationship with his people in Isaiah 54. Jesus’ suffering and death in Hebrews, like that of the servant, not only lead to his exaltation but also function as the means for bringing about a renewed covenant relationship. Yet, if these points can be established, they further suggest that the role of Jesus’ death can be seen to be salvific without presupposing that it is also the sum-total of his sacrificial work. Hebrews may only clearly allude to Isaiah 53 in 9:28, but some of the larger themes in the author’s argument suggest that the passage plays a more significant role in the homily’s argumentation than has sometimes been recognized.
,

현 시대에도 각 국가의 상황에 따라 주변 국가들에 대한 인식이 현저하게 다르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듯이, 이스라엘 역시 열국을 대하는 온도차가 존재했다. 더구나 전쟁이라는 실존적 위협이 언제든 발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열국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 결정적 사건중 하나가 바로 고레스 왕의 등장이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사야에서 고레스는 "내 목자"로 불리운다.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수호신과 그의 대리자인 왕에게 부여되었으며, 이스라엘도 이런 전통이 적용되었다. 목자는 대체로 이스라엘 왕을 가르쳤으며, 종종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상적인 왕으로 꼽혔던 다윗은 멸망한 이스라엘을 회복할 종말론적 왕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전승이 전해지는 가운데 이방 왕 고레스에게 "내 목자"라는 칭호가 부여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성전 재건 명령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귀환 공동체(혹은 소수의 선지자들을 포함한 무리들)가 갖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의미는 남다르다. 성전 재건은 하나님의 예언이었기 때문에, 그 주체가 이방 왕이라 하더라고, 그 명령을 내리고 시행하도록 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목자가 될 수 있다.

또한 고레스는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선지자가 고레스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사건은 실제하지 않았겠지만,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라고 담대하게 선포한다. 그 이유는 후술되어 있듯이, 열국을 정복할 왕이 등장할 예언을 성취할 자이기 때문이다. 오랫 동안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이후 남유다의 멸망 이후에는 다윗과 같은 왕이 등장하여 열국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리라는 신앙이 강화되었다(공동체의 신앙과 달리 예언자들의 선포가 강력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처럼 고레스의 등장은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을 갖고 있었던 귀환 공동체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자리잡게 된다. 다윗 가문에서 조상에 버금가는 이상을 실현할 메시아가 등장하리라는 믿음을 고수했던 그들에게, 낯선 이방 왕이 그들의 오랜 신원을 성취하였다. 전쟁을 통해 정벌해야 할 대상 국가의 적장이 이스라엘의 열망을 실현시키는 현실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분명 고레스 왕을 향한 칭호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례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이 열국을 향한 인식에 대한 변화가 얼마나 될지는 또다른 영역의 문제이다.

학자들이 이사야서의 '네 번째 야웨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워지는 본문을 두고, '종'은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화자'는 '열국'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당시 처한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척박한 상황을 '고난받는 종'에 투영한 결과로 보인다. 화자의 등장은 처참한 귀환 공동체를 바라보는 열국으로 제3자의 시선으로 처리한다. 앞으로 이사야서를 더 깊이 관찰해야 하므로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현 내 관점으로는 이러한 입장은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내가 고레스의 등장으로 인한 열국을 향한 인식의 변화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역사적으로 고레스 왕처럼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에게 호의적인 지배자는 드물었다. 이스라엘 멸망 이후 현지에 정착한 거주민들에 의해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되었고 다리오 왕에 의해 다시 공사가 재개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다리오 왕을 고레스 왕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그만큼 고레스 왕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는 이례적이다.

또한 고레스 왕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회복할 왕, 이번에는 이스라엘 혈통을 통한 왕의 등장을 고대하는 신앙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흔적이 발견된다. 다만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사야서의 독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열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극히 한정적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한다.

,

이사야서는 열국 심판과 우상 숭배라는 주제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우상 숭배를 목격하고 있으며,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열국을 일으키지만, 그들 역시 궁극적으로는 심판의 대상이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이 남아 있다(대표적으로, 56:1-7).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반복적으로 심판을 예고하고, 우상 숭배를 금하라고 명령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스스로 돌이키지 않는다. 결국 처참한 심판은 시행되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66:16-19).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으며, 공의를 행하지도 않았으며, 우상숭배를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의지로 실현되고 만다(66:22). 이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은 절망적인 이스라엘을 상황을 역전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예언서를 읽다보면 이스라엘이 경고받는 이유는 대개 '우상숭배'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여기에 이사야서의 특이점은 '정의'에 대한 반복적인 요청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었으나, 그것은 외적인 모습일 뿐 실상은 공허한 예배이었다. 이사야서를 보면 이스라엘은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1:10-13). 그들은 헌금을 드렸고 절기를 지켰다(1:14).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들을 싫어하셨다(1:14bff).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1:16-17).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외적으로 드러나는 '번제'를 드리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43:23-24),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듣기도 하였다(56:1-7; 58:13).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요청한 것은 '공의'이다(특히, 64:5).

6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이사야에게 공의는 이스라엘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길이었다.

,

Erlandsson, Seth. "Isaiah 52:13-53:12: The Messiah's Suffering and His Vicarious Atonement." Wisconsin Lutheran Quarterly, 113 no. 2 (2016): 83-95.
http://essays.wisluthsem.org:8080/handle/123456789/42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