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The ultimate and incomparable sovereignty of God is the starting point, the working principle, and the ending point of Micah’s entire theology.” - Kevin C. Peacock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비교할 수 없는 주권은 미가 신학 전체의 출발점이요, 작동 원리이며, 종착점이다.”

내 관찰에 의하면 미가서에서 목자-양 은유는 총 네 군데에서 나타난다(2:12–13; 4:6–8; 5:2–9; 7:14–17). 이 중 세 번(2:12–13; 4:6–8; 7:14–17)은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하는 용례(divine shepherd)이며, 나머지 한 번(5:2–9)은 다윗 계열의 통치자를 지칭한다.

미가는 신적 목자(divine shepherd)의 의지와 그를 향한 기대에서(4:11–5:1[4:14]) 인간 목자, 새로운 다윗의 등장으로 전환한다(5:2ff). 새로운 다윗의 통치는 평강으로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킬 정도로 번영한다. 미가는 다윗 목자의 등장을 예고하지만, 그의 역할과 비중은 새로운 다윗에 대한 기대(흔히 Davidic Messianism이라고도 하는)에 미치지 못한다. 목자-양 은유라는 특정 관점으로 미가서를 읽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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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Q504에 관한 첫 글이 "4Q504에 나타난 다윗 언약의 미래 지향적 해석"이었는데, 후속 글이 견해를 뒤집는 "4Q504에 나타난 다윗 언약의 과거 지향적 해석이다.

4Q504 1-2 frag. Col.Ⅳ를 읽으면, 다소 우세한 입장대로 다윗 언약을 미래 지향적 해석으로 볼 수 있지만, 뒷부분인 Col.Ⅴ를 읽으면 다윗 언약은 과거 사실의 역사적 진술이 된다. Col.Ⅴ는 생명수 샘 (Source of living water)의 파괴를 말하는데, 이곳은 Col.Ⅳ에서는 시온이다.

Col.Ⅳ에서 다윗 언약과 이스라엘 왕국의 건설을 다루었다면, Col.Ⅴ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기를 다룬다. 다윗 언약은 역사적 진술의 일부에 해당하며, 따라서 미래 지향적 해석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 관점에서 생명수 샘은 목자 은유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서 이 부분을 유심히 읽었는데, 덕분에 다윗 언약에 관한 해석의 기조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래서 참고 자료는 앞뒤로 잘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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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이 아닌 파편으로 남아 있는 쿰란 문서 해석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되지 않은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4Q504는 기도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혹자는 4Q504가 기원전 2세기 작품으로는 드물게 패턴화된 기도문이라고 한다. 기도라는 장르는 본문 해석의 방향성에 영향을 준다. 즉 본문은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해석에 열려 있다. 그러므로, 4Q504에 나타난 다윗 언약은 단순히 과거 사실의 반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희망의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본문은 다윗 언약에 근거해 목자, 백성의 왕자가 되어 영원토록 이스라엘을 통치한다고 진술한다. 또한 열방은 그의 영광을 본다.

이 진술만 보면 역사 진술(과거)로 해석할 수 있지만, 기도라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다윗 목자의 도래를 간구하는 기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다윗 목자를 왕자라는 단서와 함께 고려하여 에스겔과 연결하는 해석이 대다수인데, 차후에 특이점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대세를 따라도 무방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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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탈굼(The Targum of Ezekiel)은 히브리어 성경의 에스겔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책입니다. 34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구절에서 주님은 지도자들의 백성들에 대한 무관심을 폭로하십니다.

1-10절은 목자-양 비유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히브리 성경과 다릅니다. 이 구절은 목자 대신 지도자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아람어 성경이 수사적 장치보다 평이한 언어를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1-16절에서 주님은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당신의 백성에 대한 미래의 돌보심을 선포하십니다. 12절은 목자-양 비유에 대한 전형적인 예입니다. 주님은 목자가 양 떼를 찾듯이 그분의 백성을 찾아 구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목자가 양 떼를 찾듯이 그분의 백성을 찾아 구원하실 것입니다(12절). 주님은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그분의 구원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목자가 안전한 목초지와 물길을 제공하듯이 고향에서 그들을 위한 그분의 공급을 선포하십니다(13-15절). 주님은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이 길 잃은 자들을 찾아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을 돌보실 것입니다(16절).

17-22절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공급이라는 앞의 주제를 이어갑니다. 주님은 부적절한 공급에 대해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23-24절은 내 종 다윗을 부르신 새 지도자에 대한 약속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양할 지도자를 세우실 것입니다(23절).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그분의 종 다윗은 그들의 왕이 될 것입니다(24절). 이 구절은 왕권과 신적 왕권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25-31절은 주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평화 언약을 다룹니다. 25절의 사나운 짐승은 목자와 양의 비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4장은 목자-양 비유를 통해 백성, 왕, 주님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37:15-28은 이스라엘의 회복, 여호와의 종 다윗의 등장, 평화의 언약 등 34장에서 선포된 약속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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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에 나타난 절기와 안식일  (0)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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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양 비유에서 다윗을 이상적인 왕으로, 그의 후손은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 즉 종말론적 구원을 실현할 지도자로 등장한다. 또한 다윗의 후손은 그의 종말론적 사명으로 인해 메시아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이 같은 묘사는 일률적이지 않으며 변형들이 나타난다.

왕이란 칭호는 이스라엘과 이방 모두에게 적용된다 (12:20; 13:40; 15:16, 20, 33). 칭호 자체는 중립적이다. 저자는 목자나 다윗에게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목자-양 비유는 다윗과 연결되지 않는다. 저자는 목자-양 비유를 통해 목자를 양 떼를 늑대 무리에 넘겼다고 표현하여, 이스라엘의 부패한 왕 혹은 지도자의 실상을 폭로한다 (5:18). 그러나 본서에서 목자와 왕을 동일 선상에서 다루는 구절은 없다.

아들의 등장과 행동에 관한 묘사는 그를 초월적 존재처럼 남다른 면모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13:32, 37, 52; 14:9; '그 사람'에 관해서는 13:1-13을 참조하라). 그는 하나님의 열국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수행하는 기간에만 지상에 존재한다. 그의 과업은 마치 다윗의 후손을 연상시킨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된다 (7:28, 29). 본서에서 메시아는 목자-양 비유나 왕, 다윗(의 후손)과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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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서에서 '다윗'은 총 세 번(3:23; 7:108; 12:32) 등장한다.

본서에서 '종'은 대체로 에스라에게 사용되는데, 단 한 번 다윗에게 적용된다. 

3:23 So the times passed away, and the years were brought to an end: then YOU raised up for YOURSELF a servant, named David

이 구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자신을 위해 등장한 종이다. 앞서 이스라엘은 악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토라를 그들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하셨다. 저자는 다윗은 그 열매 중 하나로 간주한다.

3:20 And yet YOU did not take away from them their evil heart, so that YOUR Torah might bring forth fruit in them.

또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기를 극복한 인물 중 하나이다. 사울의 때에 사무엘이 그러했듯이, 다윗은 열병이 만연할 때 제 역할을 해냈으며,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완성한 인물이다.

7:108 And Samuel in the days of Saul, and David for the plague: and Solomon for those in the sanctuary,

마지막으로 다윗의 후손은 후대에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악인들을 책망하는 일을 맡게 된다.

12:32 This is the anointed, which the Most High YAHWEH has kept until the end of days, who will arise from the posterity of David, and will come and speak to them; He will denounce them for their checedlessness and for their wickedness, and will cast up before them their contemptuous dealings.

앞으로 다윗의 후손이 군사적 메시아로 등장하는지, 본서에 등장하는 '아들'이 다윗의 후손을 지칭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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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대로, 구약성경에서 '비'는 왕권 사상, 특히 야웨 신앙과 관련이 있다. 제2 성전기 문헌 중 하나인 솔로몬의 시편(The Psalms of Solomon)에도 이 같은 사상이 나타난다.

17:18 They were scattered over the whole earth by lawless men, for heaven withheld the rain from falling on the earth.
17:19 Everlasting springs out of abysses were held back from high mountains, for there was none among them who did righteousness and justice.

17:18 하늘이 땅에 내리는 비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법자들에 의해 온 땅에 흩어졌습니다.
17:19 심연에서 솟아나는 영원한 샘물이 높은 산에서 막혀 있었으니, 그중에는 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 번역은 DeepL Translate를 이용한 결과이다.

두 구절은 '비'와 '영원한 샘물'이 부재한 이유를 악인에게 돌리고 있다. 반대로 의와 정의를 행한다면 비와 영원한 샘물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게 된다.

시편 기자는 의와 정의가 다윗과 같은 왕이 등장해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17:40 He shall be strong in his works and mighty in fear of God, shepherding the flock of the Lord faithfully and righteously, and he shall not let any among them become weak in their pasture.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과 목자-양 비유의 결합은 다윗 왕권 사상(Davidic Kingship)에서 자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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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다윗 왕권 사상을 옹호하는 선지자이다. 그는 다윗 왕권의 정통성을 지지하는 동시에 후대에 나타날 통치자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37: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에 반해 이스라엘을 심판할 고레스의 등장에 관한 예언은 상당히 이색적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왕/지도자에게 사용했던 '목자'와 '종'이란 칭호를 이방 왕 고레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런 사례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이 정당하며, 그 수단으로 고레스가 쓰임 받았다는 깨우침을 통해서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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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하, 역대상에서 다윗이 모세의 율법을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궤 이동'과 '성전 건축'에 한정되어 있다. 절기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을 이동할 때 수레에서 흔들린 궤를 만진 웃사가 죽는 비극이 발생한다. 다윗은 이같은 일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레위 사람들이 궤를 옮기도록 조치를 취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보관될 장소를 건축하고 싶어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아닌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건축되게 하신다. 한편으로는 다윗의 마음을 기뻐 받으시고 그의 가문이 왕권을 유지하게 된다는 축복을 내리신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 이후에 초막절을 지켰고, 모세가 명한 세 연례 절기를 준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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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해석가들이 예수의 죽음에 관하여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을 연결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도전을 받고 있다.

예수와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역사적으로 이사야가 묘사한 '고난받는 종'은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로 성전 재건에 힘썼던 스룹바벨을 지칭한다. 스룹바벨은 귀환 공동체의 지지와 기대 속에서 성전 재건을 도모하지만, 그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었던 새로운 다윗의 등장이라는 약속을 성취할 자로 추앙받지만, 귀환 공동체의 기대와 달리 그는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사야의 진술은 메시아적 사역을 감당하리라고 기대를 받은 지도자의 사망에 대한 절망과 탄식 가운데 나온 고백이다.

더구나 이사야 54-66장에서 새로운 다윗의 등장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스룹바벨의 죽음 이후에도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55:3)을 말하지만, 새로운 다윗의 등장은 말하지 않는다. 반면 '영원한 언약'(55:3; 61:8)이라는 표현은 몇 차례 나온다. 절망에 빠진 귀환 공동체를 위로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특히 하나님은 귀환 공동체를 향해 '네 남편'(54:5)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남유다 왕국의 멸망 이후 새로운 다윗의 등장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선포하는 예언자들의 등장을 주목해야 한다. 많은 해석가들이 새로운 다윗의 등장에 더 주목하고 있으므로,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메시아/그리스도로 추앙받았으나,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러한 순서는 스룹바벨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자신의 궁극적 지상 사역을 성취하셨다. 따라서 예수는 스룹바벨과 구별되어야 한다.

또한 스룹바벨의 죽음 이후 하나님께서 직접 귀환 공동체를 통치하신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을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자신의 방법대로 성취하신다. 다만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좀더 세심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성경 인용에 관해서는 주의에 주의를 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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