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내 지도 교수가 진행하는 박사 과정 학생 세미나에 포함된 책이라 읽었다. 지도 교수는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두 권 선정했는데, 한 권은 『기호학과 언어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의 한계』이다. 내가 그간 지도 교수를 보면서 느낀 것이고, 책 선정은 그의 기호학과 언어학에 대한 입장을 추측 가능케 한다. 자신의 입장과 별개로 학자로서 학계의 논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견해를 접할 필요가 있다. 세미나는 그런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된 주제를 공부해 보지 않아서, 이해되거나 머리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고, 그저 읽는 행위로 만족해야 했다. 내가 이 주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지식의 진일보는 없겠으나, 향후 해석학을 연구해야 할지도 모르니 경험치를 쌓아두었다고 의미를 부여해 본다.


기호학과 언어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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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과 언어철학

<기호학과 언어 철학>은 현대 기호학의 핵심 이슈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일반 기호학의 접근법인 기호와 세미오시스라는 두 가지 이론적 대상을 분석하고 있는데, 에코는 이 책에서 두 개념이 서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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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새로 만들기" 메뉴에서 "Microsoft Word 문서"가 보이지 않는다. 내 경우 아래 지침만 추가하니 문제가 해결되었다.

Inside ShellNew create String type entry with name FileName and value C:\Program Files (x86)\Microsoft Office\Root\VFS\Windows\ShellNew\WORD12.docx


Fix Missing "New Word Document" Entry in Right Click Context Menu
Issue
https://www.mysysadmintips.com/windows/clients/845-fix-missing-new-word-document-entry-in-right-click-context-me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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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각성

성찰 2023. 11. 29. 13:57

근래 내가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무지'이다. 요한복음 1장부터 2장의 성전 청결 사건 이전까지 등장한 인물들은, 세례 요한 (1:29~34), 안드레와 시몬 (1:35~42), 빌립과 나다나엘 (1:43~51),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의 제자 (2:1~12), 전부 예수의 정체를 제대로 몰랐다. 단락별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지만, 간략하게 세례 요한을 예시로 들자면, 그는 예수께 세례를 베푸는 현장에서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1:31, 33)라고 고백한다. 

요한복음에서 이들의 무지를 지적하는 이유는 그들의 무지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고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그들의 전형적인 메시아사상을 넘어서고 있으며, 진정한 깨달음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가르치기 위함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신앙을 고백하므로, 요한복음의 시대적 인물이 겪은 오해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있다고 예단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요한복음의 동시대 인물들의 무지와 각성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요한복음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현시대의 사상과 혼합되어 요한복음의 진의에서 벗어난 복음을 증거하는 사례를 보게 된다. 내가 요한복음을 주요 본문으로 삼아서 요한복음을 예로 들었지만, 실상은 성경 전체로 확대해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요점은 성경 기록과 편집 당시의 시대를 이해하고, 현시대를 통달해야 성경이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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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끄적 2023. 11. 27. 18:35

나중에 할 일 없으면 논술학원이나 관련 업체에서 일할까 싶은데, 부업으로 성서학/성경신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교정 작업(proofreading service)을 하면 용돈벌이는 될까?

페이퍼 당 20만원 정도 지출한다는데, 월 300만원 이상 벌려면 최소 15명이 매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함. 신학 전공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현실성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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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영국 박사 과정은 시작부터 지도 교수(진)와 학생으로 진행되어 개인의 역량이 더 강조된다.

몇몇 학교에는 박사 과정에도 한인 유학생들이 적잖이 있어서 서로 교제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나, 영국에는 절대적으로 소수 인원이라 교류의 장을 구성하기 쉽지 않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만 하더라도 네 가정이 비슷한 시기에 유학하던 때를 제외하면, 한두 가정(혹은 명)이 박사 과정을 진행했다. 

친한 척 잘하는 미국인들조차도 이곳에서는 영국인들처럼 행동하고, 대체로 저마다 가정을 꾸리고 있어서 친분을 쌓기란 쉽지 않다. 또한 다들 학업을 빨리 마치고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모국어로 대화하며 학업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동료(들)의 존재는 유학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학업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대한 교류 역시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심리적인 안정성에서 그러하다. 아니면 한인 공동체에 포함되어 꾸준한 교제를 하는 쪽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사교성이 좋다면 현지에서 다행한 사람들과 만나며 친분을 쌓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언어적 장벽과 문화적 이질감이 적잖은 이질감으로 작용해서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가족이 있다면 타인과 교류가 없어도 덜 힘들 가능성이 높아서 유학 이전에 결혼을 추천함. 

혼자 지독하게 학업을 마치는 방법도 있으나, 개인의 감정 소모가 극심해서 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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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20년 가까이 수능이라는 단일 푯대를 위해 달리게 만들고, 그 이후에는 취업과 결혼 등 생계를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구조이다. 한국은 비판적 사고를 위한 토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정치는 역사의식과 사회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체로 자신 혹은 부모의 출생지, 학벌, 지연 등과 엮여 결정을 내리는 시민들이 많다. 더 심각하게는 개인의 감정이나 성향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은 대체로 성장 과정에서 특정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종교는 신앙이라는 테제로 덮고 믿어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단이나 사이비일수록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한다. 종교는 이성이라는 영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역이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통해 종교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와 종교라는 두 영역에서 맹신이라는 단어가 가정과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정치와 종교는 헛된 이데올로기의 허수아비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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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발표 활동 계획

끄적 2023. 11. 20. 11:48

내년 EABS Graduate Symposium 2024를 시작으로 발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 현재 제안서를 제출하려고 계획한 단체는 3곳이다. 제안서는 3~5개를 제출할 예정이고, 내 박사 학위 논문에 포함될 내용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BNTS: Call for Papers: Seminar on the use of Jewish Scriptures in Earliest Christianity
Thursday 21st March – Saturday 23rd April 2024
Queen's Foundation, Birmingham

Enoch Graduate Seminar
20-22 June 2024
Montréal, hosted by Concordia University Montréal and McGill University.

2024 SBL International Meeting
Jul 28–Aug 1 2024 
Vrije Universiteit Amsterdam,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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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심포지엄 준비위원회로부터 내 초록이 수락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발표 주제는 "사사기 21:19-23과 사무엘상 1:1-2:26에 나타난 절기의 정체"(The Identity of the Feast in Judges 21:19–23 and 1 Samuel 1:1–2:26)입니다. 내 박사 학위 논문의 "초막절의 역사"(The History of the Feast of Tabernacles)에 포함되는 내용입니다.

심포지엄은 2024년 2월 21일(수)~23일(금) 그라츠 대학교 University of Graz에서 열립니다. 그라츠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합니다.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빈(Vienna)입니다. 심포지엄이 아니면 이곳에 갈 일이 없을 듯하여, 여행을 겸하여 며칠 주변을 돌아다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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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와 청중

끄적 2023. 11. 16. 15:26

신자가 교회를 선택할 때 최우선 순위로 담임 목사의 설교를 꼽는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예배에서 설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설교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는 풍토에서 비롯된다.

저마다 설교자의 기준을 달리하겠으나, 난 여전히 좋은 설교자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를 해석하여 그것을 현대화하여 적용까지 도출한 설교를 높게 평가하며, 이 기준에 도달하는 설교자는 현저히 드물다.
 
더 큰 문제는 좋은 설교자들을 품을 수 있는 교회도 부족하다. 나와 비슷한 바람을 가진 평신도들을 간혹 만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은혜를 받았느냐는 기준으로 설교를 평가한다.

대중에게 알려진 명설교자는 단지 그의 능력으로 이름나지 않는다. 그를 품을 수 있는, 혹은 견뎌낼 수 있는 청중이 있어야 설교자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난 내 기준에 부합한 설교의 기준을 대다수 청중의 구미에 맞출 생각이 없다. 나 역시 설교자로 훈련돼야겠으나, 개인의 은혜를 넘어 성경 말씀에 빛비추임 받기를 사모하는 교인들을 만나길 사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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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한 질문

끄적 2023. 11. 4. 23:41

오늘 국제학술대회에서 질문하려고 적어두었으나 필기구가 없어서 전달하지 못했다. 기록 저장용으로 남겨둔다.

#1
요한계시록을 1세기 수신자의 입장에서 읽어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저작/편집 연대로 한정한다면, 후대 기독교인들이 그 기록에서 교훈을 얻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즉 현대 사회와 1세기 상황 사이의 동일시에서 얻는 유익이 거세된다. 이런 한계에서 후대 기독교인의 성경 읽기는 어떠해야 하나?

#2
바벨론을 로마로 해석할 수 있고 바벨론의 정신을 현대에 적용할 수 있다면, 현대적 적용의 바른 예를 제시해 줄 수 있나?

#3
로마 제국의 통치는 실재이고, 하나님 나라는 경험하지 못한 이상적인 실체이다.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4
요한계시록에서 출애굽 모티프를 적용하는 독법이 있다. 바벨론 혹은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을 출애굽 모티프로 볼 수 있는가?

#5
요한계시록 17-18장의 바벨론이 로마가 아니라면 미래에 등장할 바벨론을 예시한다는 의미인가?

#6
바울은 로마 문화에 타인을 위한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러한 전통을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로마 문헌의 타인을 위한 죽음을 동일시할 수 없다. 과연 바울이 두 죽음을 동일시했다고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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