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제 힘으로 연구 제안서를 준비해 현업 교수진들로부터 박사 과정 지원을 위한 동의를 구할 수 없다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 설령 주변의 도움으로 박사 과정에 입학한들 지도 교수(진)을 설득해 자신의 과제를 원만하게 완성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지만, 내 주변에 험난한 길을 걷는 박사 과정 학생들이 적지 않다. 때로는 내 조언이 냉정하게 들릴지라도 현실에 비하면 따스한 햇볕에 지나지 않다고 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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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약학 세미나는 최근 UStA에서 학위를 수여한 Dr Tyler Hoagland의 “Restoring the Kingdom to the Holy Ones: The Use of Daniel in Acts 1”란 주제로 열렸다. 제목에 반영되어 있듯이, 발표자는 사도행전 1장은 다니엘서를 사용하여 성령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선포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예시로 제시한 본문은 크게 다니엘 4:36과 7장이다. 다니엘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의 직위 박탈과 회복을 진술한다. 다니엘 7장은 인자(a son of man)의 통치와 세상 권세를 향한 심판을 선포한다.

내 관심사는 다니엘 4:36과 사도행전 1장을 연결하는 해석이다. 내가 알기로 다니엘서는 느부갓네살 왕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우상숭배이다. 다니엘서는 현실의 패권자 이방 제국을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다. 따라서 느부갓네살 왕의 왕권 회복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다소 무리라고 보인다. 나는 두 본문 사이에 "왕국의 회복"이라는 공통점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다니엘서에서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사도행전에서 성령 세례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긍정적인 묘사로 치환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내 질문에 발표자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다니엘서를 본문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부분적으로 취했다고 답하였다.

내가 느부갓네살 왕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 때문이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이 목자와 종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에스겔과 다니엘은 앞 두 선지자와 달리 느부갓네살 왕을 제국의 통치자, 그 이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도리어 그의 우상숭배를 지적한다. 나는 이러한 상반된 묘사를 강조할 내 학위 논문에 반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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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를 읽으며, 고대 그리스도인들의 신관과 유대인의 신관을 비교하게 된다. 특히, 하나님께서 피정복자의 삶에 익숙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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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신학은 곧 나의 신앙 여정과 같다. 성경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자문자답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고대 근동, 구약성경, 제2성전기 문헌, 신약성경 등을 읽다가 그리스-로마 문헌을 탐구하고 있다. 오랜 시간 성경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그리스-로마 문헌은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내 연구 주제인 탓이겠지만, 구약성경, 제2성전기 문헌, 신약 성경을 읽으면 유대인들이 갈구하는 것은 결국 다윗과 같은 왕이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시대를 연 다윗처럼, 현시대에 이방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이루고 독자적인 국가를 재건할 새로운 다윗을 갈망한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의 이상은 이적을 행하는 메시아를 향한 기대마저 더해진다.

그리스-로마 문헌에 관해서는 불과 몇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것도 목자-양 유비와 관련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고는 대단하다. 허구 인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신화와 역사를 소설로 풀어낸 호메로스의 상상력과 문장력은 현대 문장가에 뒤지지 않는다. 또한 플라톤의 정치 철학은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범하다 못해 그와 견줄만한 인물을 딱히 찾을 수 없겠다 싶다.

극단적인 단순화일 수 있으나, 유대인들의 세계와 그리스-로마 세계에 대한 바울의 지적은 옳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유대인들의 사고는 대체로 다윗으로 상징되는 메시아의 등장에 매몰되어 있으며, 헬라인들은 인간의 지성을 강조하여 신에 의존하지 않는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 시대에 예수의 십자가는 당혹스럽다.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그 어떤 문헌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 혹자는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을 말하고, 혹자는 그리스-로마 세계의 고상한 죽음에 관해 말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예수의 죽음과 유사성이 일부 있을 뿐, 기원이라고 단정할 만큼 유사하지는 않다. 나로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유일하다는 결론이야말로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연구하다 보면, 결국 예수의 가르침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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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Travel Award(학업과 관련된 여행 지원금)를 위한 지원서를 작성해야한다. 박사 과정 학생이 되니 학회 발표가 잦아져서 이런 장학금이 꼭 필요하다. 온라인 발표가 없었다면, 이 비용 또한 적잖이 소진되겠다 싶다. 또한 학회 발표를 위한 Paper Proposal을 이달 말까지 최소 2개를 작성해야 한다.

영국 박사 과정은 공부 위주로 진행하던 이전 학위 과정과 완전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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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작업 중인 박사 학위 논문은 요한복음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기독론을 중심으로 다루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아들됨'(sonship)으로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예수와 성령의 역할도 다루고 있다. 지금은 요한복음의 삼위일체를 부분적으로 다루지만,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요새 그리스-로마 문헌을 읽고 있고, 지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훑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신의 묘사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의 투영일텐데, 고대 역사만큼이나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본래 유대주의로 학위 논문을 완성할 계획이어서, 그리스-로마 문헌 작업이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이 작업조차도 흥미롭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와 그리스 신화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일신론과 다신론일 텐데, 이러한 차이는 구약 성경에서도 발견된다. 왕권 사상을 다루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주제인데, 이 역시 언젠가 본격적으로 다뤄야 할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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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학 석사 (MDiv) 학위는 한국 교단 신학을 추천하지만, 간혹 영미권 학교를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학비와 생활비, 교회 등 여러 면에서 영국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자료일지 모르지 공유해 둔다.


Divinity: Divinity (BD) & Divinity – Graduate Entry (MDiv)
https://youtu.be/6m1_IUi-Ui0?si=SIRL7zfjMuQ0qL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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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lle Gumihid-Sabanal 박사의 University of Edinburgh 박사 학위 논문이다. 올해 10월 7일까지 엠바고가 걸려 있다. 

Motif of ‘shepherd’ and politics in the Hebrew prophets
https://era.ed.ac.uk/handle/1842/22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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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초막절 단락(7:1-10:21)의 기능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이 글의 내용은 대체로 내 분석에 근거하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학위 논문에 포함될 예정이다. 

초막절 단락이 시작하기 앞서 저자는 예수를 떠나는 제자들을 다룬다 (6:66-71). 이 단락에서 저자는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고한다 (vv.70-71). 이어 예수의 활동 무대는 갈릴리로 옮기시고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이 명시된다 (7:1).

본격적으로 유대인의 명절 초막절이 언급되고 (v.2), 명절의 중간에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시기 시작한다 (v. 14). 여기서 초막절과 성전이 연결된다.

7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락은 예수의 죽음과 성령에 관한 가르침이다 (v. 37-39). 나는 이 단락의 기원을 스가랴 14장과 연결한다. 선행 연구에서는 초막절의 헌수 의식(water libation ceremony)에 초점을 맞추지만, 초막절의 기원은 출애굽의 구원이며, 점차 농사를 위한 비와 관련지어져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감사하는 절기로 정착된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v.37),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 (v. 38)고 말씀하신 이유는 다 이러한 초막절의 배경을 근거로 한다. 가장 중요한 신학적 전환은 예수께서 생수의 강을 성령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v. 39).

이어 그리스도 논쟁 (7:41-42)을 위치시킨 이유는 분명하다. 요한은 초막절 단락에서 그리스도/다윗 기독론의 절정을 의도하고 있다.

8장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자손과 펼쳐지는 논쟁이다 (특히, vv.33-59). 예수의 정체는 아브라함을 능가한다.

9장의 핵심은 모세의 제자와 펼쳐지는 논쟁이다 (특히, vv.28-41). 예수의 정체는 모세를 능가한다.

10장의 핵심은 선한 목자로서 예수께서 목자-양 유비를 사용해 자기 죽음과 부활을 가장 극명하게 가르치는 장면이다 (vv.1-18).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v.18). 선한 목자 담론은 예수의 구속 사역과 그의 권위를 통해 신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보통 목자-양 유비는 왕권 사상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스가랴 14장에서 여호와의 날 이후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고 이방 나라에 초막절을 명령하시는데, 이 명령은 열방 국가의 통치자에 대한 순종, 여호와의 열방 통치를 상징한다. 요한이 선한 목자 담론을 통해 예수의 사역과 권위를 드러냈기 때문에, 이 담론의 배경인 초막절을 고려해 스가랴 14장을 적용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요한복음은 초막절 단락에서 예수의 왕권을 진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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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사용하는 주요 용어는 연구 제안서(a research proposal)와 발표 제안서(a paper proposal)이다.

1. 공통점
제안서라는 용어대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용건을 제시하는 목적을 가진다. 각 제안서는 선행연구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고, 자신의 연구나 발표 등이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경쟁력 혹은 차이점을 부각해야 한다.

2. 차이점
보통 연구 제안서는 박사 과정 진학 준비 과정에 필요하다. 영국 대학에서는 지원 희망자가 입학 지원서를 사무처에 제출하기 전에, 자교의 교수진과 연락하여 잠재적인 지도 교수(a prospective supervisor)를 찾도록 안내한다. 이후 선발위원회에서 지도 교수(진)를 결정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따라서 연구 제안서의 일차 목적은 지도 교수(진) 선정이다. 박사 과정 시작 이후에는 연구 제안서를 토대로 지도 교수(진)와 대화하여 연구 방향을 결정한다.

발표 제안서는 학회와 세미나 등에서 발표자로 나서기 위해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주관 단체의 성격이나 희망 주제에 따라 요구하는 소논문(Call for Papers)이 달라진다.

내 판단에 가장 극명한 차이점은, 연구 제안서가 앞으로 무엇을 연구할지를 보여준다면, 발표 제안서는 앞으로 어떤 주장을 할지 간략히 서술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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