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주해자의 책무

성찰 2015. 6. 25. 23:30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짊어져야 하므로, 표절은 작가의 존재를 상실케 한다. 주해자는 단순히 기존의 견해들을 반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연구결과들을 담아내므로 그 역시 창작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하나는 타인의 글들을 자신의 언어로 바꾸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연구가 갖는 가치를 설명해야 하는 창작의 고통이다. 그러나, 후자의 고통은 반드시 짊어져야 할 의무가 없다. 기존의 연구들을 잘 이해하고 정리를 잘 하거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견해들을 재조명해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더구나 주해자는 작가와 달리 본문이 정해져 있어서 작가 차원의 고통을 짊어질 이유가 없다. 주해자는 성경을 새로 쓸 필요가 없다. 성경은 이미 주어져 있다. 주해자는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설명하는데 충실하면 된다. 그래서, 전자의 고통도 반드시 짊어질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해자의 표절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로서 성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읽었는데, 글을 쓸때 미처 인용표기를 못했을까? 아님 여러 학자들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해 강의에 사용하다 보니 인용표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책으로 내고 나니 문제가 된걸까?
작가들의 표절도 문제지만, 그들보다 덜한 수준의 책무에도 표절의혹을 받는 주해자들이 얄밉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표절에 관하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6241725261&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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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과 성서신학

성찰 2015. 6. 25. 00:30

표절반대에서 언급된 표절사례는 모두 불명예스럽게도 성서신학자들이다. 그 이유는 제보자가 성서학 전공자이기에 관련 서적으로 공부하다가 자연스레 표절을 의심하게 되고 그 검증을 하다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된 탓이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일에 고전분투하신 덕에 일부 성서신학자들과 출판사 관계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특히 전면적으로는 부인하고 직접적인 대응은 회피하면서 입막음과 뒷공작을 벌이는 등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 없이 행하는 속물들이 있다.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목사이자 교수 혹은 출판사 대표이자 장로쯤 될것이다.

특히 허탈감이 드는 건, 왜 성경주해서에서 그런 표절행위가 발견되어야 하고, 그 글을 쓴 자가 몰상식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이다.
주해를 하려면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게 된다. 원문을 읽고 또 읽고 원문과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들을 비교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삶의 변화를 겪는 유익은 그 수고에 대한 보상이다. 명성과 금전적인 보상은 그저 부산물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성경연구를 자신의 업적으로 삼고, 명성과 인세를 더 중요시 여기는 속물들이 신학계에 자리잡고 있음이 밝혀졌다. 모든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는 명제가 확인되는 나날이다.
지금껏 십년을 성서학에 매진해왔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계획이 다소 허망하게 느껴진다. 아마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가 보다. 독서의 폭을 기독교윤리, 영성신학, 정치신학으로 넓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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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 작업

성찰 2015. 6. 21. 15:11

모기장 작업.


낡아서 살짝 힘주어 누르면 찌~익하고 찢어지는 모기장을 떼어내고, 새로 작업했습니다. 그동안 더워서 창문을 열어두면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 들어온 벌레들도 이제는 바이바이겠지요. 올 여름은 모기에 물리지 않고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째, 우리 집에서 모기가 저만 무네요.


모기장을 고정하기 위해서 엄지로 꾸욱 꾸욱 누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목하게 하라"(엡 4:27) 


모기의 강제수혈과 각종 벌레들의 수면방해를 피하려고 강렬한 햇빛을 햇빛을 감수하고 모기장을 설치하는데 반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악으로 휘저으려는 사탄의 계약에는 얼마나 대비를 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그 이상의 삶을 살라고 요구합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목표는  "온전한 사람"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엡 4:13).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인의 허망한 것을 행합니다(엡 4:17-24). 한국사회와 교계를 시끄럽게 하는 사안들이 다 그러한 이유이지요. 구구절절 논하지 않아도 본질은 똑같습니다. 남을 비판해봐야 그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제 자신을 성찰하는게 더 큰 유익이 있지요. 그러니 초대교부들과 청교도신학을 공부할 시간을 갖으려고 노력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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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톨릭프레스, 이재명 성남시장, "예수는 혁명가다"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495)


작년부터였나 올해부터였나 이재명 성남시장이 언론에 두각을 두러내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사는 바로 '부채 탕감 프로젝트'였다. 나도 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성경의 희년정신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헨리 조지의 사상이 현실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정치가에 의해서 실현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신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대한민국에서 희년이라니!

사실 해당 기사만으로 그를 불교신자로 지레 짐작했다. 기사에는 여러 종파라고 쓰여있긴 했는데, 눈에 띄는 건 승복을 입은 스님들 뿐이라 그의 종교가 불교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기사에 의하면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가톨릭프레스에서 인터뷰 했는데, 기독교인이라고 한걸 보니 개신교인갑다.

천주교냐 개신교냐를 떠나 놀라우면서도 아쉬운건 그의 신학적 토대와 그 실현의지이다. 인터뷰이(이상호 편집위원)가 천주교인이라는 점에서 해방신학을 언급했을거고,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신학적 토대(혹은 신앙적 기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그가 해방신학에 해박한건 자명하고, 그 지식을 지식으로 가둬두지 않고, '부채 탕감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로 구현해냈다. 그 프로젝트의 사상적 토대는 너무나 기독교적이지만, 그 구현방식은 종교편향적이지 않다. 이러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기독교 신자임을 드러내놓는 정치인들 가운데 기독교에 오물을 뒤집어 씌우는 이들이 많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의 행보는 더욱 값지다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행보의 기반을 해방신학으로 봐서 아쉽다. 물론 이재명 성남시장이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예수의 혁명성을 가장 잘 반영한 신학은 칼빈주의라 믿고 있기에, 이념적 칼빈주의가 아닌 실천적 칼빈주의 정치자들을 기대해 본다.

덧붙여, 요새 『불의한 시대 순결한 정의』를 찜해두고 있는데 다니엘과 같은 정치인을 내 생애에 볼수 있으려나?



불의한 시대 순결한 정의

저자
브라이언 채플 지음
출판사
성서유니온 | 2014-05-3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다니엘서를 통해 암울한 현실 너머에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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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추천도서 2015. 6. 3. 23:01

사도신경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주일마다 예배 시간에 신앙고백으로 드리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교회라는 구별된 장소에서, 예배로 드리는 구별된 시간에, 신앙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은 저마다의 주관성이 아닌 보편성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믿고 믿어야 하는 기독교 신앙의 결정체가 바로 사도신경에 포함되어 있다.

제임스 패커는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이 운동의 신학적 기반을 다지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글은 언제나 간결하고 명쾌하며 핵심을 찌른다. 이 책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사도신경에 대해 잘 풀어주고 있다. 게다가 각 장마다 [더 읽을 말씀]과 [복습과 적용]이 곁들여져 있어서, 더 풍성한 이해를 도와준다. 이 책은 새신자와 세례를 앞둔 신자들을 위한 교육자료로 유용하겠다.



사도신경

저자
제임스 페커, J.I 패커 지음
출판사
아바서원 | 2012-09-28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을 한눈에 보여주는 믿음의 원칙이다. 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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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곰비스는 『이렇게 승리하라』에서 에베소서를 해석하는 주요개념이 드라마라고 보고, 상당 부분을 이와 관련해 할애하였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로마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놓여져 있었고, 드라마는 삶의 일부였다. 다만 현대 독자들이 성경 저자들의 시대적 상황과 동떨어져 있기에, 그 거리감을 좁히려는 노력 탓인지 책 절반 가량이 배경설명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저자의 의도에 반해 정작 신적 전사에 대한 설명이 다소 빈약하게 느껴진. 또한 내러티브에 대한 설명이 좀 추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최근 이름을 날리는 학자들의 추천과 달리 이 책으로 에베소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싶지만, 팁 하나는 제대로 건졌다는 느낌은 든다. 장점이라면 누구나 싶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여서 부담 없이 에베소서를 맛보는데 도움이 될듯 싶다.



이렇게 승리하라

저자
티머시 곰비스 지음
출판사
에클레시아북스 | 2013-09-09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에베소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경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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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부터 edX에서 노틀담대학교 교수들이 진행하는 "성경과 전승에 나타난 예수"라는 강좌가 공개된다. 신학과 영어를 동시에 공부할 좋은 기회다.


https://www.edx.org/course/jesus-scripture-tradition-notredamex-th120-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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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라스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Theology of Suffering, Disability, and the Church>란 강좌를 아이튠즈에 공개하고 있다.

 


Theology of Suffering, Disability, and the Church

https://itunes.apple.com/kr/course/theology-suffering-disability/id51656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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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를 추천합니다.

국민일보의 신문기사로 이 영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전부터 인생을 헤아릴만 한 나이가 되면 욥기를 통해 신정론(고통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다뤄보겠다는 원대한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에 발생하는 여러 사회적 이슈들과 그와 대한 반응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로 인해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마침 『고통과 씨름하다』 도 다 읽었겠다 조만간 후기를 남겨야겠다.

이 영화는 무신론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의 성격을 띄고 있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철학과 교수 제프리 래디슨은 그의 첫 수업에서 "God is dead."라는 문구를 쓴 종이를 제출하도록 수강생들에게 요구하고, 모든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써서 제출하지만, 유독 한 학생만이 망설이다가 끝내 쓰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교수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나 1학년에 불과한 주인공 조쉬 휘튼의 충돌이 시작된다. 더 정확히는 휘튼의 고생문이 열린다. 이 사건과 함께 다른 인물들이 등장해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가는데, 내가 볼 때 이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주제는 신정론, 즉 고통의 문제였다.

영화에서 고통의 문제에 직면하여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 신앙을 공격했으나 회심한 사람도 있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무신론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이라는 제작의도(크레딧에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신론의 확대와 관련된 사건들을 토대로 했다고 밝힌다) 보다더 심오한 복선을 깔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했을수도 있다.

그리고 제프리 래디슨을 보며 바트 어만이 떠올랐다. 『고통과 씨름하다』에도 언급되지만, 어만은 본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나,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기 위한 자료들을 조사하다가 무신론자가 되고 만다. 래디슨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잊음으로서 신앙을 져버린다. 다행히도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만도 다시 신앙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탁월한 지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썼으면 좋겠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마디로 하자면, "영화 꼭 보세요"



신은 죽지 않았다 (2015)

God's Not Dead 
6.3
감독
해롤드 크롱크
출연
케빈 소르보, 쉐인 하퍼, 트리샤 라파쉬, 코리 올리버, 하딜 싯투
정보
드라마 | 미국 | 113 분 | 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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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에는 부활신앙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중에도 부활신앙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믿음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로 부활신앙을 정의하는 자들이 있다. 그만큼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개인의 믿음과 별개로 부활신앙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있다. 이 기사는 그 근거들을 다루고 있다.


이 기사에 언급한 리 스트로벨은 『예수는 역사다』란 책을 썼다. 한국에 소개된지 10여년 이 넘었는데, 지금도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나는 학부 시절에 이 책을 읽었고, 지금까지 이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있어 봤지만, 이보다 잘 정리된 책을 보지 못했다.


기사 끝 부분에 등장하는 신현우 교수는 초대교회의 탄생을 증거로 부활의 역사적 사건으로 단정짓는 보수적 학자로, 사본학과 공관복음 문제, 역사적 예수 연구의 권위자이다. 내 논문의 지도교수이시기도 하셨다.


[증거로 증명한다] 사흘 만에 부활, 네가지 근거 있다

언론인서 기독 작가로 변신한 리 스트로벨 역사가 게리 하버마스, 증명 자료 수천 가지 주장


팔레스타인 지역의 고대 돌무덤으로 예수님 당시 무덤과 같은 형태로 추정된다.




“다 믿겠는데 부활만큼은 못 믿겠다.”  

부활은 여전히 비기독교 세계에선 전설 같은 얘기다. 백번 양보해도 죽은 예수가 살아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부활했다는 증거들을 제시한다면 그들의 회의(懷疑)를 돌이킬 수 있을까. 

언론인에서 기독교 작가로 변신한 리 스트로벨에 따르면 부활을 증명하는 자료들은 수천 가지가 넘는다. 게리 하버마스 같은 역사가는 1975년부터 수집한 자료만 2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주로 학계에서 통용되는 예수 부활의 근거는 크게 네 가지로 꼽는다. 성경 자체의 증거, 구전(口傳), 기록문서, 빈 무덤이다.

우선 신약성경 앞부분을 차지하는 사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는 모두 부활을 전한다. 복음서는 모두 AD 100년 이전에 기록됐다. 이는 회의적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장 앞선 기록은 마가복음으로 50, 60년대로 추정한다. 마태복음은 50∼70년대, 누가복음은 60∼80년대, 요한복음은 50∼85년 사이로 본다.  

지금부터 2000여년 전 특정 인물의 생애를 그의 사후 60년 안에 기록했다는 것은 다른 고대 문헌과 비교하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알렉산더 대제에 관한 가장 훌륭한 문헌 두 편만 하더라도 그가 죽은 후 400년이 지나서야 기록됐다. 기록이 빨랐다는 것은 그만큼 전설이나 신화가 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복음서 부활 사건이 복음서마다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날조된 역사일수록 일사불란하고 아귀가 딱딱 맞지 않는가. 사복음서는 예수의 공생애 기간을 전후해 그분이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독특한 관점과 시각으로 조망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성경의 상호 모순된 기록을 역사적 비진정성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므로 진정성이 있다고 해석한다.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는 일관성과 조화를 갖추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다음은 구전이다. 당시엔 녹음기나 영상기술이 없었다. 글자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글로 기록될 때까지는 말로 전해오는 구전에 의존했다. 학자들은 이 구전이 신앙고백과 찬송, 설교 요약 등의 형태로 신약성경에 그대로 옮겨져 있는 곳을 찾아냈다. 대표적 구절이 고린도전서 15장 3∼8절이다. 학자들은 이 구절이 바울이 회심한 지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베드로와 야고보를 찾아갔을 때 그들에게서 신앙고백을 전해들은 것으로 본다. 이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후 채 5년이 안 된다.  

이 신앙고백은 시기가 매우 일렀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그것을 전해준 사람들 또한 분명히 목격자들이거나 바울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이 같은 신앙고백은 전설의 산물이기엔 시기가 너무 빠르다. 구전은 신약성경에 사도들의 설교로 몇 편 남아 있다. 사도행전(2장, 13장)에 요약, 간직돼 있다. 그 설교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기록문서다. 기록문서에는 이른바 ‘사도 교부’들의 저작이 있다. 로마의 클레멘트와 폴리캅, 이그나티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등 사도 교부들도 모두 동일한 사실을 확인한다. 그들은 사도들을 직접 알았거나 사도들을 아는 사람들과 친했다. 이 때문에 그들의 편지나 책에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짙다. 이레니우스는 로마의 클레멘트(AD 30∼100년경)가 사도들과 직접 대화했다고 전하며, 아프리카의 교부 터툴리안은 클레멘트가 베드로에게 직접 안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사도요한에게 배웠고 그리스도를 직접 본 사람들과 대화했다고 전해진다. 폴리캅은 AD 110년 쯤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사도들의 말을 그대로 전한 인용문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여기서 예수 부활을 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유대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그를 사도적 전통을 잇는 중요한 고리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빈 무덤이다. 시신이 무덤 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왜 굳이 훔쳐갔다고 말하는가. 이는 무덤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나온 얘기다. 더구나 제자들이 공모해 시신을 빼돌린 후 그 뻔한 거짓말을 위해 평생 고난과 죽음까지 감수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총신대 신현우(신약학) 교수는 “죽은 예수가 어떻게 메시아로 기록되고 불렸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만약 예수가 죽은 것으로 끝났다면 그는 한낱 로마의 죄수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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