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Vrije Universiteit Amsterdam, Netherlands에서 진행 중인 SBLIM 2024에서 두 주제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는 선지서 분과에서 "The Divine Shepherd and the Davidic Shepherd in Micah"라는 주제로, 오후에는 요한복음 분과에서 "The Day of Atonement and the Feast of Tabernacles in the Gospel of John: The Johannine Jesus as Temple and His Use of Feasts"라는 주제로 내 생각을 나눈 귀한 시간이었다.
 
사진은 구약학 전공자 A 목사님이 찍어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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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교회 청소를 하고, 에든버러공항으로 이동했다. 휴가철이라 사람이 붐빌 줄 알고 여유롭게 도착하여 보안 검색대로 직행했는데 대기 줄이 길지 않아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탑승 시간이 남아서 의자에 앉아 노트북으로 학회 발표 ppt 3개를 만들었다.

사진 1. 이지젯 항공 비행기

이륙이 지연되어 예상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숙소로 이동하려고 공항에서 나와 전철역과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같은 건물로 연결된 통로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기차표는 단말기로 구매할 수 있으며, 편도 €4.30이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3.50이다. 

사진 2. 기차표 단말기

Citymapper 안내대로 기차와 트램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이틀 정도 머물 예정이다.

사진 3~4. 숙소 Holiday Inn Express Amsterdam - South, an IHG Hotel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해가 길어서 잠시 숙소 주변을 걸었다. 내일은 오전과 오후에 발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사진 5~9. 숙소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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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학회로부터 공식 유인물을 안내받지 못했으나, 공식 홈페이지에 분과 별 발표자와 초록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8월 23일(금) 오전 첫 발표자로 예정되어 있다. 내일 SBLIM 참석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나 다음 주 금요일에 돌아온다. 복귀 후 바로 원고 작업을 해야 한다. 바쁜 일정 덕에 논문 작업은 꽤 진행되었는데, 7~8월에만 6회 발표가 몰려 있고 추가 작업이 2개나 생겨서 스트레스를 살짝 받고 있다. 이 일정 이후로는 사무실에서 조용히 논문 작업이나 하련다.

Johannine Literature Seminar 2024 Programme
https://bnts.org.uk/johannine-literature-seminar-2024-progra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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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CBL 발표 원고 "Isaianic Davidic King and Cyrus as Yahweh’s Shepherd"를 완성했다. 이제 네덜란드와 벨기에 학회 일정은 문제없이 감당할 수 있다. 아직 원고 작업이 남아 있어서, 아마도 여행 중에도 틈틈이 집필 작업을 해야겠지만, 청중에게 민폐를 끼칠 일은 없어졌다.

이사야의 목자-양 은유를 연구하며 특이점을 몇 가지 발견했는데, 그 덕에 이사야서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학회를 통해 이사야서를 보는 내 시야가 더 넓어지길 기대한다.

학회는 8월 5일(월)~7일(수)에 벨기에 뢰번 가톨릭 대학교(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 KU Leuven)에서 열린다. 이번 주제는 "In Search of the Unity of the Book of Isaia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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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en Claussen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에서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 돌항아리 여섯"(2:6; six stone water jars for the Jewish rites of purification, NRSV)이 간과되고 있으며, 세례 요한이 예수의 정체를 메시아(1:29-36)이자 신랑(3:28-29)으로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Ruben Zimmermann의 고대 유대 문헌에서 "신랑"이 메시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사용하여, 예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이적을 통해 자신을 종말론적 신랑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냈으며, 종말론적 연회(사 26:5)를 성취하셨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신랑 은유는 앞으로 전개될 유대 절기를 성취하실 예수를 기대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Craig A. Evans and David Mishkin, eds., A Handbook on the Jewish Roots of the Gospels (Peabody, MA: Hendrickson, 2021), 156.

내가 가나 혼인 잔치는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1장 세례 요한과 나다나엘, 2장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를 제대로 몰랐다. 요한복음 서두에 예수의 신적 정체성과 성육신을 선언한 이유,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의 사역을 공표한 이유는 예수의 정체성과 사역을 청중과 독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결과이다. 이후 나다나엘을 시작으로,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가 갖고 있는 메시아사상을 들추어낸다. 다시 예수께서는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사역을 공표한다. 그러나 또다시 니고데모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전개는 가나 혼인 잔치를 종말론적 성취로 이해할 근거가 없다는 증거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선포한다. 하지만 Claussen의 주장과 달리, 신랑은 예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유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는 자이며, 메시아 사역은 예수를 통해 성취된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1:23)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3:28)

따라서, 가나 혼인 잔치에 대한 Claussen과 Zimmermann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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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마감일을 넘었으나 늦지 않게 원고를 완성했다. 큰 틀과 주요 근거는 갖고 있었으나, 논리 비약 방지를 위한 논증과 선행 연구 검토와 이해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껏 제안서의 내용을 발표 원고 서두에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했으나, 이번에는 수정을 여러 차례 거쳐야 했다.

내 주장과 근거는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자평하지만, 학회에서 직접 발표 후 청중의 반응을 받아봐야 내 논지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차후 연구 계획을 수정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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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와 예수의 죽음을 예수의 속죄와 제사장직으로 가장 잘 진술한 성경 본문으로는 히브리서가 꼽힌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에 비하면 덜 주목을 받지만, 예수의 속죄와 제사장직을 히브리서보다 더 설명하는 본문은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각 성경 본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히브리서적 관점으로 예수의 속죄를 설명하고자 할 때 빚어진다. 가령 내 박사 학위 논문의 연구 본문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이고, 연구 주제는 선한 목자의 죽음이다.

선행 연구를 분석하다 보면 선한 목자의 죽음을 속죄로 설명하고, 간혹 예수의 제사장직으로 풀이한다. 내 관점에 의하면, 이러한 해석은 요한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 빈번한 사례는 세례 요한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는 선포에 대한 해석에서 나타난다. 해석자 대부분이 이 구절을 속죄로 해석하며, 일부는 예수의 제사장직을 언급한다. 내 관점에 의하면, 이러한 해석은 요한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기존 해석이 요한복음의 의도가 아닌 이유와 진정한 요한의 의도를 밝혀야 할 의무가 내게 지워진다는 사실이다.

내 지도 교수는 히브리서 전공자이고, 속죄 전문가이다. 내가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후 나와 지도 교수 사이의 이견을 좁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학위 논문을 적당히 전개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내가 학위 논문 원고로 지도 교수를 설득하여 동의를 얻는다면, 나로서는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로부터 요한복음의 독특성을 도출한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 반대로 내가 지도 교수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다면, 나는 학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내 역량의 문제이지만, 지도 교수는 나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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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L 협력기관인 에모리대학교에서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eminar Papers를 디지털화해서 공개하고 있다.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eminar Papers
https://digital.pitts.emory.edu/s/digital-collections/discover?sort=dcterms_coverage_t_sort%20asc&limit%5Bitem_set_ss%5D%5B0%5D=Society%20of%20Biblical%20Literature%20Annual%20Meeting%20Seminar%20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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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8월 5일(월) 벨기에 루뱅 KL Louven에서 발표 3회가 예정되어 있다.

1회 왕복 비행기 값을 네덜란드에서 벨기에로 이동하며 쓸 예정이다. 기본안은 네덜란드에서 밸기에로 기차나 버스로 이동하는 경로인데, 독일 서쪽 뒤셀도르프나 퀼른 쪽으로 가는 방안도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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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개론서는 선행 연구를 학계 추세를 반영하여 대세의 입장을 견지하되, 중요한 소수의 주장을 소개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을 잡아 중도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개론서는 말 그대로 특정 주제를 전반적으로 소개해야 하는 목적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저자 고유의 관점이 이질감 없이 쏟아내는 방향을 택할 수 있다는 견해에 무게가 조금씩 옮겨지고 있다. 만약 내가 요한복음 개론서를 집필한다면, 내가 견지했던 개론서의 방향이 전자가 아닌 후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학위 논문을 위해 선행 연구를 섭렵하고 약술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난관이 있고, 나만의 견해가 농축되어 가면서 점점 선행 연구와 차별화되고 있어서, 두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는 더 어려운 과제가 되어 가고 있다. 아마도 내 관점에 일관성을 더하는 작업이 더 쉬워 보인다.

이전에는 선행 연구를 다루지 않고, 저자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개론서를 못마땅히 여겼다. 하지만 막상 내 입장에서 고려해 보니 그 저자와 출판사 관계자들이 많이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당장 박사 학위 논문에 매여 있는 입장이지만, 혹여나 개론서를 써야 할 기회가 온다면 꽤 긴 집필 기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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