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일개 박사 과정 학생이 학계 전망에 대해 논하기란 무리겠지만, 5년가량 '속죄'(더 정확히는 '예수의 죽음')에 관심을 둬온 입장에서 느끼는 감을 적어본다.

2019년 초쯤일 텐데 내가 박사 과정 지원을 위해 연구 제안서(Research Proposal)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Calvin Seminary 동기 목사님들에게 내 초안을 읽어봐 달라고 부탁드렸었다. 두 분 다 조직신학 전공이었고, 그 무렵 Atonement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UStA에 지원할 예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A 목사님이 톰 라이트가 요한복음의 속죄에 관해 강연한 적이 있다면서 그 영상을 보여주었다.

연구 제안서를 완성하고 내 관심사와 겹치는 교수들에게 지도를 문의하는 이메일을 보냈었다. 반응은 예상보다 좋아서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세인트앤드루스, 더럼, 에든버러 등 쟁쟁한 학교 소속 교수들로부터 긍정적인 답장을 받았다. 이 경험을 통해 내 연구 제안서는 어디서나 통하고, 앞으로 학계에 기여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UStA 입학을 결정하고 지도 교수인 David M. Moffitt 박사가 내게 한 말과 내게 보여준 관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2021년 봄학기 신약학 세미나에서 Moffitt 박사가 속죄에 관해 3차례 정도 발표했었다. 이 기간에 그가 앞으로 출간한 속죄에 관한 연구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초안은 미출간 상태이다.

2022년 본교 소속 두 교수로부터 속죄에 관한 책이 출간된다.
Oliver Crisp, Participation and Atonement: An Analytic and Constructive Account (Baker Academic, 2022).
David Moffitt, Rethinking the Atonement: New Perspectives on Jesus’s Death, Resurrection, and Ascension (Baker Academic, 2022).

Crisp 교수는 분석 신학, Moffitt 박사는 신약학이라는 세부 분야에서 각각 속죄를 다루었다.

2022년 가을학기부터 2023년 봄학기 박사 과정 세미나를 "Septuagint and Sacrifice"라는 주제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가을에는 칠십인역에 관한 자료를 많이 읽었고, 현 봄학기에는 속죄 관련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달 말에는 본교에서 Atonement Matters Day Conference가 열린다.

개인 연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서 주관적인 판단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와 동시에 속죄 관련 학술 활동이 탄력을 받는 상황이다.

이미 영미권을 비롯해 한국에서 새관점을 중심으로 칭의 논쟁이 불붙은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열기를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논쟁 이후 다양한 주장들을 논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칭의 논쟁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제 속죄 논쟁이 학계의 쟁점으로 떠오를 때가 다가오고 있다. 다만 칭의 논쟁과 달리 학계와 교계에서 쟁점을 주도할 인물이 제약되어 있다는 한계는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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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서학을 전공하면서 언어에 기반한 방법론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껏 지도 교수와 대화하고 지켜보면서 느꼈던 인상 중 하나는 그 역시 언어학적 접근에 대해 별 호응이 없다. 아래 문장을 보니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The terms "metaphor" and "analogy" are tightly define below. They are intended to indicate linguistic tropes that would be recognized within a given linguistic system, not to point to larger categories for conceiving of the very possibility of language and thought.

David M. Moffitt, Rethinking the Atonement, 119.


(구글 번역)
"은유"와 "유추"라는 용어는 아래에 자세히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주어진 언어 시스템 내에서 인식될 수 있는 언어적 수사를 나타내려는 것이지 언어와 사고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위한 더 큰 범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DeepL 번역)
'은유'와 '비유'라는 용어는 아래에 엄격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용어는 주어진 언어 체계 내에서 인식될 수 있는 언어적 비유를 나타내는 것이지, 언어와 사고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위한 더 큰 범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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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지만, 중재자로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성도를 잇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찬양과 기도 등 다양한 예배의 요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서 설교 만큼 구별된 시간도 없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자가 은혜를 받으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해도, 설교를 통해 성경의 바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성도는 신앙 생활의 중심점을 가다듬지 못한다. 그래서 설교는 아주 중요하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능력과 동시에 본문의 의미를 설교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설교는 철저하게 설교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을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설교가 내 경험과 기준에 의하면 실패하고 있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만 하더라도, 공동담임목회자 A는 구약학 박사에 강사 경력이 있고, B는 최근 신약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건만, 내가 그들의 설교로부터 감동받은 적이 없다. 내가 영어 설교를 못 알아듣는 건지 모르겠으나 도무지 그들이 뭘 전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본문과 설교 사이의 관련성은 더 모르겠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성도의 시들어가는 열정이 문제라고 판단하겠지만, 실제로 상당 부분 사실이겠으나, 성도의 입장에서 예배를 참석하는 전직 목회자로서 설교의 실패가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요새 뉴스를 접하면서 사회와 교회가 급속하게 무너지는 듯한 인상을 받는 데 답답해서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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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앤드류스 대성당 묘지에는 언약사상의 권위자였고, 언약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웨스트민스터 특사였던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러더포드 묘비 옆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토마스 할리버튼(Thomas Halyburton)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두 묘비 앞에 꽃이 놓여 있는데, 누군가 가끔씩 꽃을 두고 가는 모양이다. 다른 묘비에서 꽃을 본 기억은 없다. 최근에는 St Rule's Tower 입구 앞에도 꽃을 두었다.

내가 매일 하는 일 중 하나는 사무실에 가는 길에 러더포드의 묘비를 보며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비록 부족한 사람이지만, 러더포드를 기억하며 살아가겠노라 다짐한다. 출근길에 순교자비를 보며 네 명의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일도 하고 있다.

내가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를 최종선택한 이유는 종교개혁의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며, 학문적으로 보수적인 노선에서 최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어서이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사역을 감당하게 될지 모르지만, 이곳에 머물며 매일 같이 향유했던 거인들의 유산을 조금이라도 이어서 한국 교계와 신학교에서 나누는 일을 감당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막대한 재정과 시간 등을 소비한 가치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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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에서 부정한 사람은 그 부정을 대제사장에게까지 옮길 수 있다. 더나아가 성소까지 전염시킬 수 있다. 부정한 사람은 정결 의식을 치뤄야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으며, 그 의식을 함께 치른 제사장은 자신을 위해 별도의 정결 의식을 치뤄야 한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으나 대체로 이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음.

이와 반대로 거룩(부정의 반대 개념으로)이 그 자체의 힘으로 부정을 정화시킨다는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정한 자의 정결 의식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부정에 대한 인식은 부정이 거룩보다 강력하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부정에 관한 거부감과 거룩에 대한 동경심은 그 자체로 존중할 만하다.

내게 중요한 건, "희생"(sacrifice)와 "속죄"(atonement)인데, 그에 앞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정에 대한 인식과 그 이면의 규칙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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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아마도 제사장 집단들은, 일상의 거룩을 실천하려는 노력보다는 성전을 거룩의 영역으로 제한해 그곳을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기조에 제사장 집단들은 질병을 가진 자들을 긍휼히 여겨 치료하려는 관심보다는 성전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배제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고대 이스라엘을 비판할 수 없겠지만, 그런데도 그같은 제사장들의 노력이 타당한지 묻고 싶다. 더나아가 교회를 성전이라 부르며 교회 안에서만 거룩을 말하는 목사들이 한심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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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끄적 2023. 1. 3. 00:20

나에게 연말 연초라는 구분은 사실상 없다. 그저 주변 분위기와 관련 행사 등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가 관건일 뿐, 박사 과정 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내 목표는 2024년 11월 졸업식을 마치고, 잠시 여행을 한 후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 이러한 일정이 가능하려면, 올 한 해 내 논문의 초안을 70% 가량 완성해야 가능하다. 아직 Literature Review를 붙잡고 있지만, 내 논문의 서론에 포함되고, 작업 일정을 세분화하는 지표가 되므로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다.

2025년은 한국에서 맞이한다는 희망(?)을 품고, 올 한 해를 열심히 살고자 한다. 또한 내 맘에 들지는 않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현지 생활을 즐겨보려고 한다.

사진은 Roundel의 내 책상에서 St Andrews Cathedral를 바라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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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봄학기 세미나

끄적 2022. 12. 31. 02:00

지도 교수가 연말 선물(?)로 내년 봄 학기 박사 과정 세미나 일정을 보내주었다. 주제는 이번 가을 학기에 이어 "Readings in Septuagint and Sacrifice"로 진행된다. 순서는 지난번과 동일하게 1) 소논문과 책에 관한 토론을 하고, 2) MT와 LXX를 비교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번에는 "칠십인역"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Sacrifice"에 관해 다룰 예정이다. 소논문과 도서들을 보니 내 연구 주제에 포함될 내용들이라 기대가 된다.

이제 여유로운 시기는 다 가고 박사 과정 학생으로 학업에 집중할 때가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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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성과

끄적 2022. 12. 16. 10:22

미국 유학 3년, 그리고 한국에서 2년가량 distance learning을 진행하며 probationary review를 통과하고, 현재 영국에서 지루한 나날을 견뎌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20대 중반에 학기와 방학의 구분 없이 연구소에서 일요일 밤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외로움과 따분함에 맞서 학구열을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절과 비교하면 유학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객관적으로 현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영국 박사 학위라는 목적을 위해 달려온 여정에서 상당 부분을 거쳐 왔다. 지금까지 버텨온 날들에 비하면 앞으로 2-3년은 희망에 가까운 나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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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서학을 전공하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성경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이다.

내게 학문은 신앙과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다. 내게 학문은 신앙과 사실상 하나이다. 나는 학문을 통해 내 신앙을 바라보고, 역으로 내 신앙을 통해 학문에 전진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학문적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할 지 모르나, 나는 학문과 신앙은 분리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남들처럼 성경을 역사학자로 접근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신을 신학자로 규정한다.

학문적 의문은 대체로 연구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반면 신앙적 의문은 지식만이 아니라 체험적 요소가 수반되어야 한다. 나로서는 학문적 의문을 푸는 과정이 신앙적 의문을 대할 때 보다 훨씬 수월하다.

최근 개인적 의문이 하나 생겼는데, 앞으로 어떤 과정을 겪게 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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