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신 신학석사 시절 학위 논문으로 인해 졸업이 한 학기 늦어졌다. 바울의 새 관점이 교회와 학계에 뜨거운 소재였던 시절이라 갈라디아서 2장으로 논문 초안을 준비했지만, 지도 교수와 합이 맞지 않아 제출을 포기했다. 지도 교수와 논문 주제를 바꿔서 요한계시록의 목자 모티프로 논문을 완성하여, 한 학기가 지연되었으나 졸업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미국 칼빈 신학석사 시절 추천서 확보를 위해 두 교수의 수업을 집중적으로 들었으나, 그중 한 명으로부터 기대 이하의 학점을 받고, 자율 연구(independent study) 지도를 거절당했다. 그 덕에 3 학기 만에 졸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추천서를 위해 한 학기에 두 과목을 지도해줄 교수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구약학 교수로부터 자율 연구와 메이저 페이퍼를 동시에 지도받아서 좋은 학점과 추천서를 받았다.
센앤에서는 애초에 2년에서 2년 6개월을 예상했으나, distance learning으로 과정을 시작해 2년 가까이 한국에서 고전분투했다. 현지로 옮겨와 3년 졸업을 목표로 잡았으나, 지도 교수가 그리스-로마 문헌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라는 조언 덕분에 4년 졸업이 현실화하고 있다.
시간은 돈이다. 시간이 지연되는 만큼 돈이 들어간다. 감사하게도 한국과 미국에서 재정적 위기가 없었으나, 영국 유학은 학자금과 생활비는 꽤 부담스럽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잘 버텨왔지만, 남은 1여년은 어떨지 장담할 수 없다.
그저 바라기는 중요한 순간에 길이 막혀 우회로로 가더라도 결국에는 더 나은 길로 걸어 왔듯이, 이 과정도 끝내는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내가 루뱅에 온 이유는 학회 발표를 위해서다. 학회 발표 일정이 5일 간격이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SBL International Meeting 2024를 마치고, 벨기에 루뱅으로 이동하며 여행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Colloquium Biblicum Lovaniense (CBL)는 Faculty of Theology and Religious Studies, KU Leuven에서 주최하는 연례 학회이다. 이번 주제는 "In Search of the Unity of the Book of Isaiah"이다. 내 학위 논문에 이사야서의 목자-양 은유를 다루어서 “Isaianic Davidic King and Cyrus as Yahweh’s Shepherd”라는 주제로 발표하게 되었다.
학회 장소가 숙소에서 루뱅역에서 시내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로로, 보도 20~25분 거리라 출퇴근하며 시내 구경을 적잖이 할 수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일정이 시작되고, 그 전에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해서 일찍 학회 장소로 이동하느라 사진만 찍었다.
사진 1. Tafelrond - The Fourth (좌), Historic Leuven Town Hall (중), Saint Peter's Church (우) 사진 2. Saint Peter's Church
대문에 학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입구에 위치한 등록처에서 이름표와 각종 유인물 등을 받아서 강당으로 이동한다.
사진 3. 대문 사진 4. 학교 내부 사진 5. 이름표와 유인물
Pierre Van Hecke 박사가 좌장을 맡은 Ulrich Berges 박사를 소개하며 학회가 시작되었다. 좌장 강연 주제는 "Auf der Suche nach der Einheit des Buches Jesaja. Zwischen synchronem Anspruch und diachroner Herausforderung" (In Search of the Unity of the Book of Isaiah: Between Synchronic Claim and Diachronic Challenge)이다.
사전에 일정표를 보고 짐작은 했으나, 학회는 발표자의 선택에 따라 언어가 결정된다. 좌장이 독일 본대학교 소속이라 인쇄물과 강연 모두 독일어로 진행되어서 초반에 어리둥절했다. 학회 안내나 각종 질의 등은 영어로 진행.
사진 6. Pierre Van Hecke 박사 사진 7. Ulrich Berges 박사의 좌장 강연
좌장 강연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다. Pope’s College라는 곳인데, 계단이 있어서 단체 사진을 찍는 장소로 낙점된 듯하다.
내 기억으로 왼쪽에 마빈 스위니(Marvin Sweeney) 박사, 오른쪽에 콘라드 슈미트(Konrad Schmid) 박사가 자리했는데, 아직 학회 측으로부터 단체 사진을 전달받지 못해서 아쉽다.
사진 8. Pope’s College
단체 사진 촬영 후 티 타임을 위해 다시 대문 방향을 향한다.
사진 9. Maria-Theresiacollege
두 번째 시간은 주제 강연으로 마빈 스위니 박사가 진행했다. 발표 주제는 "Synchronic, Diachronic, and Intertextual Dimensions of the Davidic and Exodus/Wilderness Motifs in the Book of Isaiah: Gains and Losses of a One-View Reading of the Book of Isaiah"이다.
사진 10. 마빈 스위니 박사 강연
세 번째 강연은 선택인데, 네덜란드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주제 "The Book of Isaiah and Trauma/Resilience Studies"를 선택했다. 외국어에 재능이 없어서 관심 분야를 선택하지 못하고, 평소 무관심한 주제를 선택해야만 하는 내 자신에 안타까움을 계속 느끼고 있다.
다행히 강연은 흥미로웠고, '트라우마'라는 접근법이 이사야서 해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사진 11. Alphonso Groenewald / Liza Esterhuizen (Pretoria)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학교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전 조사를 안 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걸다가 다음 시간에 맞춰서 돌아옴. 왼쪽 건물이 사진 촬영 후 나온 곳으로 천주교 이름을 갖고 있다. 오른쪽에는 공원과 레스토랑 등이 있다.
사진 12. Saint Michael's Church
사진 13~14. Maria-Theresiacollege로 향하는 길목
소논문 (Short Papers) 발표 시간으로 진행은 마빈 스위니 박사가 맡았다. 첫 강연자는 박사 학위 소지자로 재단 연구 지원금으로 진행 중인 주제 중 일부를 발표했다. 두 번째 강연자는 교수로 발표 준비를 많이 했다. 내 순서는 마지막이었고, 나만 학생인지라 내 앞 강연자들 이력에 눌렸는지, 잔뜩 긴장해서 가뜩이나 유창하지 않은 영어 발표에 애먹었다.
사진 15. 소논문 발표
티 타임을 갖고 주제 강연이 진행되었는데, 강연자는 콘라드 슈미트 박사이고, 주제는 "Zeit und Geschichte als Determinanten des Jesajabuchs" (Time and history as determinants of the book of Isaiah)이다. 발표는 독일어로 진행되었고, 인쇄물도 독일어였다.
사진 16. 콘라드 슈미트 박사 강연
이어 바로 또 다른 주제 강연이 진행되었다. 강연자는 휴즈 윌리암슨(Hugh Williamson) 박사로, 주제는 "Redaction-Criticism in Proto-Isaiah and its Repercussions on the Book of Isaiah"이다.
사진 17. 휴즈 윌리암슨 박사 강연
학회 첫 말 마지막 일정은 패널 토론이었다. 주제 발표자들이 모두 나와서 서로 자유롭게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 18. 패널 토론.
학회는 저녁 7시에 끝났으나 해가 길어서 주변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학교 주변에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진 19. Grote Markt
아침에 학회 참석하려고 지나친 곳을 천천히 둘러본다. 벨기에는 시청 건물이 웅장하고 고풍스럽다.
사진 20. Saint Peter's Church
사진 21. Historic Leuven Town Hall
시내 구경 겸 간단한 저녁 식사와 음료를 사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익숙한 Lidl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사진 22~23. 주변 경치
공원 Park van de Abdij van Keizersberg를 지나온 김에 둘러볼까 했는데, 해가 지기 전 시내 구경을 해야 해서 시내를 더 돌기로 했다.
부근에 Stella Artois를 제조하는 회사가 있는데, 박물관과 시음 등을 경험할 수 있어서 맥주 애호가들에게는 필수 코스라고 한다.
사진 24~25. Anheuser-Busch InBev
다시 중심가 Grote Markt 방향으로 향한다. 옛 우체국 건물이 관광 명소 중 한 곳이다.
사진 26. Old Post Office House Leuven
아침에 지나온 The Fourth Hotel과 Saint Peter's Church를 자세히 보았다.
사진 27. The Fourth Hotel
사진 28. Saint Peter's Church
학교 주변이 여러 상권이 조밀하게 형성되어 있다. 곳곳에 식당 골목이 있는데, 여유롭게 식사할 기회를 갖기 못해 아쉽다.
사진 29~30. Ladeuzeplein로 향하는 길
광장 Ladeuzeplein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술집 등이 있는데, 저녁 식사를 마친 시간이라 그런지 더워서 그런지 음식점보다는 맥주 등 주류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새벽 4시 50분 브뤼허(Bruges) 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세탁물 건조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직원이 깨어 있어서 내 호출에 금방 대응했고 세탁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탁 상태를 확인하느라 잠을 깊게 못 잤지만, 다행히 건조까지 잘 마무리되었다. 샤워 후 입구에 설치된 최신 단말기로 셀프 체크 아웃을 할 수 있었다.
브뤼허 방면 플릭스 버스 정거장 위치는 마스트리흐트역 뒷편이다. 구글 앱으로는 역 가운데 설치된 구름다리로 건너도록 안내한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라 역의 문이 모두 잠겨 있다. 어쩔 수 없이 빙 돌아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야 했고, 다행히 여유 시간을 확보하고 움직여서 출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 1. 마스트리흐트 플릭스 버스 정류장
브뤼허에 도착하니 아침 9시 15분가량이다. 부지런히 목적지인 브뤼허의 종탑(Belfry of Bruges)으로 향한다.
사진 2. 브뤼허 플릭스 버스 정류장
토요일 오전부터 공원에 산책과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Meifoor Brugge에 장이 섰다. 빵집이 있었는데 시내 구경 이후 다시 들리기로 한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빵을 사려는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사진 3~4. 공원
사진 5~6. Meifoor Brugge
Meifoor Brugge을 지나 길목에 들어서니 종탑(Belfry of Bruges)이 보인다. 브뤼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아마도 이 종탑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것을 위해 이곳에 왔다.
사진 7. 종탑
성당을 지나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데 고풍스러운 건물에 H&M과 맥도날드 등 현대 문물이 공존하고 있다.
사진 8. Sint-Salvatorskathedraal (Saint Saviour's Cathedral)
사진 9. 길목 상권
도로를 계속 걷다 보면 목적지에 금세 도착한다. 브뤼허의 주요 명소는 Market Square 부근에 밀집되어 있다. 이곳은 잠시 후 다시 올 예정이므로 다른 곳을 먼저 둘러본다.
내 관심은 가운데 자리에 위치한 Basilica of the Holy Blood이다. 범상치 않은 이름은 예수의 피가 담긴 천을 보관했다는 유리병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내부를 둘러봐도 안내가 없어서 직접 보지 못했으나 방문한 것으로 의의를 둔다.
다시 Market Square로 와서 사진 촬영. Burg를 다녀오니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다.
사진 22. 동상
사진 23. 종탑
사진 24. Historium Bruges (역사 체험 박물관), Provincial Court (주 법원), Posterjen (우체국)
The Beerwall는 벽면에 맥주병 전시로 유명하다는 술집이다. 사진 촬영이 목적이었으나, 영업시간 전이나 건물만 사진으로 남긴다. 이 주변이 운하라 보트 투어가 한창이다.
사진 25~26. 주변 경치
사진 27~34. The Beerwall 건물과 그 주변
천주교의 영향인지 곳곳에서 Church of Our Lady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마 그 여성은 성모 마리아가 아닐까?
사진 35~37. Church of Our Lady
오전에 짧게 지나친 장터에서 빵을 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진 38. Meifoor Brugge
Site Oud Sint-Jan에 피카소의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리 평이 좋지 않아서 건물 구경만 했다.
사진 39~42. Site Oud Sint-Jan과 그 주변
다리에서 Site Oud Sint-Jan 옆 술집이 보인다. 위치는 좋아 보이는데 손님은 별로 없었다.
사진 43. 술집
역 주변부터 까지 길게 장이 섰다. 역에서 관광객이 밀려 나오고 있다.
사진 44~45. 장
사진 46. 역 주변
겐트(Ghent) 역에 짐 보관소가 있어서 가방을 맡겼다. 요금은 일괄 24시간 기준으로 기억한다. 뚜벅이 여행객에게는 짐 보관소가 큰 도움이 된다.
사진 47. 짐 보관소
주요 관광지 방향 부근에 겐트대학교 (University of Ghent)가 있길래 일부러 지나가는 길을 택했다.
사진 48~49. 겐트대학교와 그 부근
성 바프 대성당(Saint Bavo's Cathedral)이 가장 먼저 보인다. 정보 수집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가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부에 사람이 제법 있었고, 전시회를 위해 줄이 서 있기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다. 이곳에 '겐트 제단화'(the Ghent Altarpiece) 혹은 '어린 양에 대한 경배'(the Adoration of the Mystic Lamb)라는 작품이 있다고 해서, 내 연구 주제 중 하나가 '하나님의 어린 양' (요 1:29), 예상치 못한 비용을 지출해야 했으나 관람을 결정했다. 티켓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예매했고, 가장 빠른 입장 시간을 선택했으나, 시간이 남아서 시내 구경을 한 후 다시 오기로 했다.
사진 50. 성 바프 대성당
겐트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는 겐트 종루 (Belfry of Ghent)이다. 성 바프 대성당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 51. 겐트 종루
사진 52. 광장에서 바라본 성 바프 대성당
사진 53. 겐트 종루
주변에 성 니콜라스 교회(Saint Nicholas' Church)가 있다. 후기를 작성하면서 조사해 보니 공원 이름은 Emile Braunplein이며, Fountain of Kneeling Youths라는 조각상이 유명하던데 몰라서 지나침. 사진으로 확인.
사진 54~56. 성 니콜라스 교회와 그 주변
이름은 모르지만 상가 건물이라고 한다. 이 도로 뒤편에 벨기에와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Leie(혹은 Lys) 강이 있는데, 이 일대가 시내에서 가장 혼잡한 구간이다.
사진 57~63. 상가 건물과 주변 일대
시내에 자리한 성으로 이름은 Gravensteen이다. 이 건물 중심으로 상권과 교회 등 주요 건물이 자리를 잡지 않았나 싶다.
사진 64. Gravensteen
사진 65. 동상
시청(Ghent City Hall) 건물이 웅장하고 미적이다.
사진 66. 시청
예약 시간에 맞춰 성 바프 대성당에 도착해 관람을 시작했다. 3D 안경을 착용하고, 안내에 따라 이동하면 된다. 맨 마지막은 작품 관람인데, 역시나 관건은 제단화이다. 가운데 아래 그림이 이 작품을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작품 관람 전 설명을 들어서 그런지 더 감동이었다.
사진 67. 제단화
관람객에 한해 출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앞 내부를 가까이 볼 수 있다.
사진 68~69. 성 바프 대성당 앞면에서 촬영한 내부
겐트 역으로 가면서 찍은 주변 사진들
사진 70. 성 니콜라스 교회
사진 71~73. 겐트 역으로 향하는 길
게트 역 앞에 공원이 있다. 하얀 트럭이 아이스크림을 파는데, 겐트에서 가장 맛있다고 해서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사진 74~75. 겐트 역과 공원
브뤼셀(Brussels)을 들리려 했으나 시간은 가능해 보이는데, 더 이상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헨트에서 버스를 이용했으면 상태가 괜찮았을 텐데 경치 구경한다고 걸었더니 체력 소비가 심했다. 브뤼셀은 주중에 시간을 내거나 정 안되면 그냥 건너가기로 한다. 겐트 역에서 기차로 루뱅(Leuven) 역으로 이동했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붙어 있다. 숙소가 역 주변이라 일찍 휴식을 취하고 내일 일정을 준비하고자 한다.
10/5 CISSR Annual Meeting on Christian Origins University Residential Centre of Bertinoro, Italy 온라인으로 "Jewish Davidic Messianism and Jesus’s Kingship and Sonship in John 10"라는 주제로 발표합니다.
10/10-11 CBA Emerging Scholars Conference 2024 관계자로부터 콘퍼런스에 Respondent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 섹션에서 발표자들의 소논문에 응답하는 역할입니다. 논평자보다는 자유롭게 제 생각을 밝히고 질문을 구하는 역할로 보입니다.
10/15 EABS Annual Graduate Symposium 2025 제안서 제출 2025년 3월 4~6일 University of Groningen, The Netherlands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발표는 온라인으로 할 생각입니다.
11/01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원고 제출 출판 심사를 위해 원고를 수정해 제출해야 합니다. 1차 심사 위원이 학회 관계자들이고, 그들이 원고 수정 요청을 한 상황이라 힘든 작업은 아니겠으나 저널 수준을 고려해 신중히 작업해야 합니다.
11/30 CBL 학회 소논문 모음집 원고 제출 학회 소논문 출판 프로젝트입니다. 희망자에 한해 원고를 선별해서 출판하기 때문에 선배 학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혹여나 반려되더라도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 프로젝트만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올 한 해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 학위 논문 작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이름을 적시하지 않은 절기는 '유대인의 명절'(5:1)이 유일하다. 난 부림절의 유래와 요한의 절기 사용이 동떨어져 있으므로, 요한이 의도적으로 절기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관련 글: 요한복음 5장의 유대인의 명절과 안식일의 유기적 관계)
그러나 유대인의 정체에 관한 Ruben Zimmermann의 “The Jews”: Unreliable Figures or Unreliable Narration?을 읽으면서, '유대인의 명절'이 '부림절'이라는 해석이 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림절은 하만의 유대인 말살 음모에서 벗어난 기쁨을 기념한 잔치에서 유래한다 (에 9:17-22).
그러나 요한복음 5장은 예수와 유대인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다. 갈등의 시작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셨다는 이유이며 유대인들은 박해로 반응한다 (5:16). 이후 유대인은 예수의 대적자로 묘사되고, 둘 사이의 갈등은 심화하며, 결국 예수의 죽음까지 이르게 된다.
부림절이 유대 민족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예수의 구속사와 맞닿아 있지만, 에스더 시대의 유대인이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났던 것과 달리 예수님의 사역을 목격했던 유대인들은 영생을 베푸시는 예수를 대적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요한이 부림절을 적시하지 않은 이유는 익명성으로 청중과 독자의 호기심을 북돋우고, 절기의 기원과 예수의 사역에 대적한 유대인의 역설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선한 목자 담론에서 절기를 명시하지 않지만, 초막절과 수전절 사이에 있는 이 담론의 배경이 초막절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합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 선한 목자 담론에서 초막절의 역할을 제시하지 않는다. 선한 목자 담론에서 초막절을 강조하지 않기도 하지만, 담론 내부에서 초막절을 고려하지 않아도 본문 이해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선한 목자 담론의 배경이 초막절이라는 전제를 수용하며, 이 절기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담론 해석의 중요한 틀이라고 전제한다. 선행 연구와 다른 내 전제는 나 스스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만든다. 나는 선한 목자 담론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하는 이유는 스가랴서 9-14장의 영향이 크다. 스가랴서 9-14장은 목자-양 유비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그리며, 14장에서는 목자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시고 이방 국가에 초막절 준수를 명령하신다. 나는 요한복음 7:1[2]-10:21의 배경인 초막절과 선한 목자 담론의 목자-유비가 스가랴서 9-14장과 유사하다고 해석한다. 스가랴서 14장 하나님의 왕 등극과 이방 민족의 초막절 준수를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 성취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요한복음의 유대 절기는 단순한 시간 표지(temporal markers)가 아니라 예수의 사역과 정체를 설명하는 보조 장치이자 성전 파괴 이후 요한 공동체의 신앙을 정립하는 수단이라 여겨진다. 정리하자면, 선한 목자 담론에서 초막절을 고려하면, 예수의 왕권과 요한 공동체의 위기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요한의 유대 절기 변형은 유대 기독교인 공동체 내부의 이해 차이를 고려한 결론이라 볼 수 있다.
요한복음을 에스겔 환상의 네 동물 중 독수리로 규정하는데, 그 이유는 영적인 복음서라는 특징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그 시작부터 심오하다. 예수를 태초의 하나님과 존재했던 로고스로 규정하고 그의 성육신을 선포한다. 이 외에도 요한복음은 고기독론(the high christology)으로 분류되는 남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혹자는 요한의 고기독론에 최상급 the highest를 사용하기도 한다.
요한복음 기독론은 독특하다. 내 연구 주제인 선한 목자 담론만 하더라도, 예수는 제 죽음과 부활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의 죽음을 수동적으로 그린다면, 요한복음은 그것을 예수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묘사한다.
요한의 고기독론은 요한 공동체를 구별하는 신학이기도 하다. 혹자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유대인이 요한의 고기독론을 수용하지 못하는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해석은 반셈족주의(=반유대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극단적인 반항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요한의 고기독론이 요한 공동체와 유대인을 가르는 지표로서, 유대주의와 기독교의 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튜브로 즐겨 보는 것 중 하나가 종합격투기(MMA)이다. 판정 이후 선수 인터뷰에 본인 경기력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실력이 경기에서 발휘가 잘 안되었고, 훈련한 기술들이 경기에서 잘 안 나왔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예를 종합격투기로 제시했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는 자주 접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경기에서 발휘된 실력이 그의 현주소이다. 그들이 말하는 훈련 때 발휘되는 실력은 실전에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의 최대치일 뿐이다. 연습과 실전이 다르다고 하지만, 모든 평가는 실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습은 실전을 대비한 훈련일 뿐 그 과정에서 발휘되는 능력을 실전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파링 고트가 탑 랭커가 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스파링 잘 한다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다면 그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다.